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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래지식(嗟來之食)
'자, 와서 먹어'라고 하며 주는 음식이라는 뜻으로, 무례한 태도로 주는 음식을 이르는 말, 또는 모욕적인 대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嗟 : 탄식할 차(口/10)
來 : 올 래(人/6)
之 : 갈 지(丿/3)
食 : 밥 식(食/0)
출전 : 예기(禮記) 단궁편(檀弓篇)
모든 생물체는 먹어야 목숨을 유지한다. 의식주(衣食住)라 했지만 '식(食)'이 앞선다. 몹시 궁하면 보이는 것이 없다고 '사흘 굶으면 포도청의 담도 뛰어 넘는다'는 말이 나왔다.
배가 불러야 체면을 차릴 수 있으니 '수염이 대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란 속담은 그 다음에 이어졌다. 좀 나은 표현으로 음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성실한 것은 없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고 했다.
옛날 못 살았을 때 먹을 것이 없어 구걸해야 할 경우 주인이 '동냥은 안 주고 쪽박만 깬다'고 하면 사정하는 쪽의 심정은 어떨까. 하찮은 짐승일지라도 먹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다는데 최소한의 자존심은 사라지고 반감만 남는다. 쪽박은 깨지 않더라도 얻어먹는 사람을 업신여겨 무례하게 음식을 주면 크게 나을 것도 없다.
탄식한다는 '차(嗟)'는 '야! 이봐!' 라고 하는 감탄사라고 하며 무례한 태도로 불러 먹으라고 한 음식을 나타냈다. 모자라는 것이 없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베풀면 감지덕지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받는 사람은 고마울 리 없다.
진심이 없이 모욕적으로 주는 구호금품을 뜻하기도 하는 이 말이 유가의 경전 '예기(禮記)'에서 비롯됐으니 역사가 깊다. 고대 문물과 예의에 관한 방대한 기록인 이 책의 단궁(檀弓)편에 남에게 호의를 베풀 때도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제(齊)나라에 큰 기근이 들었다. 식량이 부족하여, 많은 사람들이 굶주려 쓰러졌다. 이때 금오라는 부자가 이를 기회로 하여 자신의 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길가에 음식을 늘어놓고는 지나가는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루는 굶어서 부황(浮黃)이 든 한 사나이가 찾아왔다. 너덜너덜한 옷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다 해진 짚신을 신고 있었다. 지팡이에 의지한 그의 몸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 모습을 본 금오가 왼손에 밥, 오른손에는 마실 것을 들고 사나이에게 거만한 태도로 말하였다. "이봐, 이리 와서 이걸 먹어라." 이렇게 말하면서, 금오는 그 사나이가 기뻐 눈물을 흘릴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나이가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굶주림을 잊은 듯 허리를 쭉 펴고 머리를 곧추세웠다. 그러더니 금오를 매섭게 쏘아보면서 자못 경멸하는 듯한 어조로 말하였다. "내가 이런 차래지식(嗟來之食) 따위를 먹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꼴이 되고 말았다. 가짜 선심은 그만둬라" 하고는 그대로 가버렸다.
금오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황급히 그 사나이를 뒤쫓아가 자신의 무례를 사과하고 음식을 받아 주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사나이는 결코 음식에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조금 더 걷다가 쓰러졌다. 사나이는 무례한 음식을 거부한 대가로 굶어죽었다.
명(明)나라 풍몽룡(馮夢龍)의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에도 위(魏)의 공신 낙양(樂羊)을 다그치는 부인의 가르침으로 인용한다. "지사는 도천의 물을 마시지 않고, 염치를 아는 사람은 남이 함부로 던져주는 음식을 먹지 않는 법입니다(志士不飲盜泉之水, 廉者不受嗟來之食)."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한 경주 최부자의 12대를 이은 선행이나, 흉년이 들었을 때 굶주린 사람들에게 누구나 쌀독을 열어 가져가도록 했다는 구례 운조루 쌀독은 가진 자의 마음 씀씀이가 남달랐다.
옛날에 비해 풍족해진 오늘도 빈부의 격차는 더 커져 종종 아사자가 나타난다. 하층민을 구제하는 제도가 촘촘하다고 하지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례한 한 끼보다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다. 자주 기부를 하여 주위의 칭송을 받는 사람들도 남이 모르는 선행이 더 값지다.
자존심(自尊心)
굶주린 자가 혀를 차며 불러서 주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것에 대하여
이제 살펴보니, 혀를 차며 부르는 말이 불경(不敬)하기는 하지만, 욕을 하며 주거나 발로 그릇을 밀어서 주는 음식에 비하면 그래도 낫지 않겠는가? 더구나 곧바로 사과를 해서 잘못을 고치려는 군자의 마음이 있었으니, 굶주린 자가 끝내 먹지 않고 죽은 것은 참으로 현자가 지나쳤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옛날의 현자 중에는 대개 한 번 죽어서 세상의 교화를 도운 경우도 있었다. 사과를 받았으면 먹어도 된다는 것을 그 또한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마음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혀를 차며 불러서 주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평소의 소신이었다. 이제 이미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서 한 그릇의 식은 밥이라도 먹지 않으면 목숨을 구할 수 없고, 또 검오(黔敖)처럼 곧 바로 사과를 하는 자도 이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없다면, 어차피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왕 죽을 바에는 차라리 흔쾌히 목숨을 버려, 세상의 의리를 잊고 음식만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보다 더 싫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부귀를 믿고 교만을 부리는 자들로 하여금 현인을 기를 때 예의를 갖추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천지 사이의 호연지기(浩然之氣)는 과연 이런 부류들 덕분에 보존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 아! 옛날의 사람들은 진실로 가난을 면할 요량으로 벼슬을 했지만, 구차하게 녹을 먹지는 않았다.
저 묘소에서 구걸을 하고, 마당에서 낟알이나 주워 먹는 자들이야 논할 것도 못되겠지만, 세상 사람들 중 녹봉깨나 지녔다고 하여 하인과 일꾼을 아이처럼 부리려고 하는 자들이라면, 그래도 혀를 차며 오게 하는 것을 너무 지나치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녹봉에 연연하여 떠나가지 않는다면, 위의 굶주린 자에 대해 부끄러운 기색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황직경(黃直卿, 황간黃榦)이, "말세에는 참으로 의당 장저(長沮), 걸닉(桀溺) 같은 사람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하였으니, 나 또한 위의 굶주린 자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겠노라.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은 춘추시대의 은사(隱士)들이다. 공자(孔子)가 근처를 지나다가 제자를 시켜 나루를 물었을 때, 천하가 온통 다 어지러운데 누구와 더불어 변화를 시키겠느냐고 힐책하며, 그 제자에게 차라리 세상을 피하는 선비인 자신들을 따르라고 했던 고사가 논어 미자편(微子篇)에 보인다. 황간의 말은 '논어집주대전' 권18 소주(小註)에 나온다.
[원문]
餓者不食嗟來之食。今按嗟來之言雖不敬。視諸嘑爾蹴爾之食。不猶愈乎。况從而謝之。有君子補過之心。則餓者之終不食以死。誠不免賢者之過矣。然古之賢者。盖有一死以扶世敎者。夫也非不知其謝之可食。其心曰吾之不食嗟來之食有素矣。今旣濱於死。非一簞食所可救。如黔敖之從而謝者。此世又不可多見。則等是死耳。無寧快意於舍命。使世之忘義餔餟者。知所惡有甚於死。挾富宣驕者。知養賢不可無禮也。是則天地間浩然之氣。果非賴此輩存得乎。噫。古之人固爲貧而仕。而未嘗苟祿焉。彼墦而丐。場而啄者。不足道。世之挾其區區之祿食。欲以兒呼人僕役人者。其爲嗟來也。不以大乎。如是而懷祿不去。則視餓者有愧色焉。故黃直卿曰。季世正當扶起沮溺人。吾於餓者亦云。
- 이인행(李仁行) 단궁의의(檀弓疑義) 신야집(新野集) 5권 -
융통성이 없이 원칙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는다. 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물이 불어나는데도 다리 밑을 떠나지 않다가 익사한 미생(尾生)이 그랬고, 전장에도 군자의 도가 있다면서 기습을 하지 않고 상대가 진영을 갖추기를 기다려 주다가 도리어 대패하고 목숨까지 잃은 송(宋)나라 양공(襄公)이 그랬다.
신의와 예의, 명분은 유가(儒家)의 절대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로 흘러, 중용(中庸)의 도를 해치는 것은 크게 경계하였다. "군자는 무조건적으로 고집하지 않는다(君子無可 無不可)"는 공자(孔子)의 말에서 보듯이, 오직 그 상황에서 가장 의로운 선택인가가 판단의 전제였을 뿐이었다.
큰 흉년 때 자신에게 혀를 찾다는 이유로, 그가 주는 구호 음식을 거절하고 굶어 죽은 제(齊)나라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가 일단 사과를 했으면 그냥 받아 먹었어도 되는데 너무 자잘하게 예의를 따졌다고 증자(曾子)가 부정적 평가를 내린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보이는 고사인데, 이 고사는 두 가지 가치를 보여준다. 하나는 아무리 중요한 원칙이라도 상황에 맞게 권도(權道), 즉 융통성을 부려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현실에 타협하거나 비굴하게 굴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대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후자의 가치, 즉 자신의 자존심을 드러내는 목적으로 이 고사를 많이 인용하였다.
조선 후기의 학자 신야(新野) 이인행(李仁行)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의 행동이 다소 지나친 듯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음으로 인해,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면서도 자리 보전이나, 작은 이익을 위해 몸을 굽히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말세일수록 이런 사람들의 행동을 격려해 줄 필요가 있다고까지 역설한다.
공교롭게도 신야가 세상을 떠난 해에 태어난 후산(后山) 허유(許愈)도 '불식차래론(不食嗟來論)'이라는 글에서 같은 소재를 다루었다. 후산은 신야와는 달리 권도(權道)가 필요하다는 것에 더 비중을 두었다. 비슷한 시기를 살아간 두 학자의 다른 시각은 격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지식인들이 취했던 대응 양상을 반영하는 것 같아 재미있다.
좋은 말로 유연해지지 않으면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다섯 말 녹봉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면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귀거래(歸去來)한 도연명(陶淵明)의 호기로움을 마냥 남 말 하듯 요구할 수 없는 시대다.
그 사람이 어떤 사정 때문에 그런 판단을 했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면, 자신은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절대 그러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면, 더더욱 경솔하게 손가락질할 일은 아니다. 그렇기는 해도 스스로 부끄러워 하는 마음마저 없다면 너무 비참한 인생이 아닐까?
매일 묘지 주변을 배회하며 제사 음식을 배불리 얻어 먹고 들어와서는, 처자에게 고관대작들과 노닐다 왔노라고 허세를 떨어대던 '맹자(孟子)' 이루장(離婁章)의 제(齊)나라 사람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야! 밥 먹어라
예기(禮記)에 차래지식(嗟來之食)이란 말이 있다. '야!' 하고 부르면 와서 먹는 음식 즉, 남을 업신여겨 무례한 태도로 주는 음식을 말한다.
춘추시대의 어느 해 제나라에 큰 기근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을 하거나 그것도 못하는 사람은 주린 배를 움켜잡고 죽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이를 보다 못한 검오라는 부자가 음식을 해다가 길가에 벌여놓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어느날 얼마나 굶었는지 걸음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어떤 남자가 다 해어진 옷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짚신을 질질 끌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초라하고 기진맥진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검오는 왼손에 음식을, 오른손엔 마실 것을 들고 말했다. "야! 이리 와서 먹어(嗟, 來食)"
검오는 당연히 그 남자가 허겁지겁 다가와서 음식물을 움켜쥘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남자의 태도는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는 눈을 치켜뜨고 한참 동안 검오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따위 남을 업신여기며 던져주는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이 꼴이 되었소(予不食嗟來之食 以至於斯也). 당신의 이 같은 적선(積善)은 받아들일 수가 없소."
검오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방 쏘아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그 남자를 검오는 쫒아 가서 무례를 사과하고 음식을 받아주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음식 받기를 거절하면서 몇 걸음 더 걷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굶주려 죽은들 차래지식(嗟來之食)은 받아먹을 수 없었기에 그는 마침내 허기져 죽은 것이다.
음식 말고도 모욕적인 성금이나 의연금품(義捐金品), 부조(扶助) 등을 일컫기도 한다. 요즘 좀 있는 사람들이 생색내기용 성금이나 물품을 가져다주고는 사진만 찍고 가는 여러 가지 행태들도 이에 해당 한다 할 것이다.
하긴 요즘 경제사정이 어려워 여러 복지시설에 기부하는 발길들이 많이 뜸해졌다고 하는데 어떤 자세로 주던 안주는 것 보다는 좋은 일인지 모른다.
다시 본래 얘기로 가보자.
여기서 우리는 이 남자의 행위측면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목숨을 한 순간의 모멸감이나 자존심이란 것으로 바꿀 수 있는 하찮은 가치인가? 더욱이 검오가 사과를 하였음에도 그것을 거절하는 태도는 또한 검오의 교만과 뭐가 다른 것인가?
스스로 생존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모욕당하는 것은 감수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분하다면 생명을 부지한 후 크게 발분(發憤)하여 성공을 이루고 검오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될 일이다.
자존심 자주 운운하는 사람치고 정말 자존심이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자존심 상한다고 노래 부르듯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자기의 부족함이나 실수 그리고 부덕(不德)을 자존심이란 말로 포장하려 하는 사람이다.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는데 음식을 던져주던 와서 먹으라하던 그것은 받는 사람의 태도 문제일 뿐이다. 주는 자, 배려하는 자의 됨됨이는 또한 그 사람의 가치일 뿐 자신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감수하고 못 얻어 먹을 정도라면 애초에 오지 않았음이 현명한지 모른다. 자기 분수를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춘추전국시대에 앙숙지간인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의 와신상담(臥薪嘗膽)에 등장하는 월왕 구천(勾踐)은 전쟁에서 패했을 때 회계산(會稽山)에서 스스로 오왕 부차(夫差)의 마차를 끄는 노예가 되겠다고 맹세하고, 온갖 수모를 다 당하면서 절치부심(切齒腐心)하여 마침내 12년 후 전쟁에 승리하여 오왕을 자살하게 하였다.
또 한(漢)나라의 맹장(猛將)인 한신(韓信)은 출세하지 못하고 있을 때 동네 불량배와 시비가 붙었는데 불량배가 자기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면 용서해 주겠다는 말을 하자 모든 능력을 숨기고 그 가랑이 사이로 지나갔다.
훗날 한신은 대장군이 되어 금의환향(錦衣還鄕)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그 불량배는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신은 그 불량배를 불러 그 옛날 그런 치욕을 내가 견디게 해 줄 수 있도록 해준 것에 감사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상을 내렸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 과하지치(胯下之恥)이다. 즉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는 치욕'이란 뜻이다.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거나 상대 할 가치가 없는 자와 다툼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의 불리함에 굴하여 쉽게 포기해 버리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딛기 일어서려는 의지가 인간적 가치가 아닐까. 위의 얘기에서 스스로 생명을 함부로 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검오보다 나은 가치를 부여 할 수 없다.
여기서 하나 더 보고 가자.
와신상담에 등장하는 회계산(會稽山)은 중국의 명주로 꼽히는 소흥주(紹興酒)가 생산되는 소흥시(紹興市) 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하(夏) 왕조를 세운 우(禹) 임금이 그곳에 올라 천하의 제후들을 불러 모아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행한 곳이다.
쉽게 말하면 요즘말로 경영평가를 해서 상을 주거나 실적 제고를 위한 독려를 하는 등의 회의를 장기간 머물면서 하였는데 결국은 실적을 계산하는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계(稽)가 계(計)로 대체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회계(會計)란 말의 어원이 된 것이다.
아무튼 기왕에 마음에서 우러나 하는 일이라면 없는 자의 입장을 배려하면 더욱더 그 가치는 높아질 것이다.
묵자(墨子)에 "재물이 너무 많아 썩히면서 남에게 나누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올바른 도리를 알고 있어서도 숨겨 놓고 남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세태를 비판하였다. 알다시피 묵가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겸애주의(兼愛主義)를 부르짖었고, 그것은 공산주의 사상의 단초를 제공 하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어려운 시절에 재물도 정(情)도 나누어지는 따뜻한 겨울이 되길 바래본다.
▶️ 嗟(탄식할 차)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差(차)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嗟(차)는 ①탄식하다(歎息--) ②감탄하다(感歎--) ③탄식(歎息) ④감탄(感歎) ⑤창졸(倉卒)간에, 갑작스럽게,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탄식하고 한탄함을 차탄(嗟歎),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어 칭찬함을 차칭(嗟稱), 슬프다의 뜻으로 슬퍼서 탄식할 때에 쓰는 말을 차호(嗟乎), 슬픈 일을 당하여 몹시 놀람을 차악(嗟愕), 애달아서 아깝게 여김을 차석(嗟惜), 탄식하고 두려워 함을 차구(嗟懼), 슬프게 탄식함을 상차(傷嗟), 혀를 차며 애석히 여김을 돌차(咄嗟), 슬피 탄식함을 애차(哀嗟), 원망하고 탄식함이나 원통한 탄식을 원차(怨嗟), 애석하게 여겨 탄식함을 자차(咨嗟), 꾸짖는 것을 질차(叱嗟), 눈 깜짝할 사이를 일컫는 말을 돌차간(咄嗟間), 사람을 업신여겨 푸대접하는 음식을 일컫는 말을 차래지식(嗟來之食), 느시 깃의 탄식이라는 뜻으로 백성이 난리나 부역으로 부모를 봉양할 수 없음을 탄식함을 일컫는 말을 보우지차(鴇羽之嗟) 등에 쓰인다.
▶️ 來(올 래/내)는 ❶상형문자로 来(래/내)는 통자(通字), 간자(簡字), 倈(래/내)는 동자(同字)이다. 來(래)는 보리의 모양을 나타낸 글자이다. 아주 옛날 중국 말로는 오다란 뜻의 말과 음(音)이 같았기 때문에 來(래)자를 빌어 썼다. 나중에 보리란 뜻으로는 별도로 麥(맥)자를 만들었다. 보리는 하늘로부터 전(轉)하여 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래서 오다란 뜻으로 보리를 나타내는 글자를 쓰는 것이라고 옛날 사람은 설명하고 있다. ❷상형문자로 來자는 '오다'나 '돌아오다', '앞으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來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來자의 갑골문을 보면 보리의 뿌리와 줄기가 함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來자는 본래 '보리'를 뜻하던 글자였다. 옛사람들은 곡식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來자는 점차 '오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來자가 이렇게 '오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夂(뒤져서 올 치)자가 더해진 麥(보리 맥)자가 '보리'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來(래)는 ①오다 ②돌아오다 ③부르다 ④위로하다 ⑤이래 ⑥그 이후(以後)로 ⑦앞으로 ⑧미래(未來) ⑨후세(後世) ⑩보리(볏과의 두해살이풀)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갈 거(去), 갈 왕(往), 머무를 류/유(留)이다. 용례로는 올해의 다음 해를 내년(來年), 오늘의 바로 다음날을 내일(來日), 죽은 뒤에 가서 산다는 미래의 세상을 내세(來世), 다음에 오는 주를 내주(來週), 겪어 온 자취를 내력(來歷), 후세의 자손을 내예(來裔), 외국인이 한국에 오는 것을 내한(來韓), 적이 습격해 오는 것을 내습(來襲), 오고 가고 함을 내왕(來往), 손님이 찾아옴을 내방(來訪), 와 계신 손님을 내빈(來賓), 찾아 오는 손님을 내객(來客), 와 닿음을 내도(來到), 남에게서 온 편지를 내신(來信), 다음에 다가오는 가을을 내추(來秋), 어떤 결과를 가져옴을 초래(招來), 아직 오지 않은 때를 미래(未來), 금전을 서로 대차하거나 물건을 매매하는 일을 거래(去來), 앞으로 닥쳐올 때를 장래(將來), 가고 오고 함을 왕래(往來), 그 뒤로나 그러한 뒤로를 이래(以來), 사물의 내력을 유래(由來), 변하여 온 사물의 처음 바탕을 본래(本來), 이르러서 옴이나 닥쳐 옴을 도래(到來), 올 때는 갈 때의 일을 모른다는 뜻으로 양면을 다 알지는 못함을 이르는 말을 내부지거(來不知去), 지나간 일은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장차 다가올 일은 조심하여 이전과 같은 과실을 범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내자가추(來者可追), 오는 사람을 막지 말라는 뜻으로 자유 의사에 맡기라는 말을 내자물거(來者勿拒), 오가는 사람 즉 자주 오가는 수많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내인거객(來人去客), 오는 사람을 금해서는 안 됨을 이르는 말을 내자물금(來者勿禁),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라는 뜻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을 고진감래(苦盡甘來),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온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에 굴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남을 일컫는 말을 권토중래(捲土重來), 즐거운 일이 지나가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는 뜻으로 세상일이 순환됨을 가리키는 말을 흥진비래(興盡悲來), 서로 변론을 주고받으며 옥신각신함을 일컫는 말을 설왕설래(說往說來), 부근에 있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먼 곳의 사람들이 흠모하여 모여든다는 뜻으로 덕이 널리 미침을 이르는 말을 근열원래(近悅遠來), 여러 말을 서로 주고 받음 또는 서로 변론하느라 말이 옥신각신함을 일컫는 말을 언거언래(言去言來), 동지를 고비로 음기가 사라지고 양기가 다시 온다는 뜻으로 나쁜 일이나 괴로운 일이 계속되다가 간신히 행운이 옴을 이르는 말을 일양내복(一陽來復), 뜻밖에 닥쳐오는 모질고 사나운 일을 일컫는 말을 횡래지액(橫來之厄), 눈썹이 가고 눈이 온다는 뜻으로 서로 미소를 보냄을 이르는 말을 미거안래(眉去眼來), 찬 것이 오면 더운 것이 가고 더운 것이 오면 찬 것이 감을 일컫는 말을 한래서왕(寒來暑往),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밥이 오면 입을 벌린다는 뜻으로 심한 게으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반래개구(飯來開口), 과거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미루어 짐작한다는 말을 이왕찰래(以往察來), 추위가 물러가고 무더위가 온다는 뜻으로 세월이 흘러감을 이르는 말을 한왕서래(寒往暑來)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食(밥 식/먹을 식, 먹이 사, 사람 이름 이)은 ❶회의문자로 饣(식)은 동자(同字)이다. 사람(人)이 살아가기 위해 좋아하며(良) 즐겨먹는 음식물로 밥을 뜻한다. 사람에게 먹이는 것, 먹을 것, 먹게 하다는 飼(사)였는데 그 뜻에도 食(식)을 썼다. 부수로서는 그 글자가 음식물 먹는데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食자는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食자는 음식을 담는 식기를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食자를 보면 음식을 담는 식기와 뚜껑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食자는 이렇게 음식을 담는 그릇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도 대부분이 '음식'이나 먹는 동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모양이 바뀌어 飠자나 饣자로 표기된다. 그래서 食(식)은 ①밥 ②음식 ③제사 ④벌이 ⑤생활 ⑥생계 ⑦먹다 ⑧먹이다 ⑨현혹케하다 ⑩지우다 그리고 ⓐ먹이, 밥(사) ⓑ기르다(사) ⓒ먹이다(사) ⓓ양육하다(사) ⓔ사람의 이름(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음식을 청해 먹은 값으로 치르는 돈을 식대(食代), 부엌에서 쓰는 칼을 식도(食刀),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 일을 식사(食事),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 음식점이나 식당에서 먹을 음식과 바꾸는 표를 식권(食券), 밥을 먹기 전을 식전(食前), 식사를 마친 뒤를 식후(食後),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을 식기(食器), 음식만을 먹는 방 또는 간단한 음식을 파는 집을 식당(食堂), 뜻밖에 놀라 겁을 먹음을 식겁(食怯), 음식에 대하여 싫어하고 좋아하는 성미를 식성(食性), 음식(飮食)을 만드는 재료를 식료(食料), 남의 집에 고용되어 부엌일을 맡아 하는 여자를 식모(食母), 음식(飮食)을 먹고 싶어하는 욕심을 식욕(食慾), 한번 입 밖으로 냈던 말을 다시 입속에 넣는다는 뜻으로 앞서 한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을 식언(食言), 각종 식품을 파는 가게를 식품점(食品店), 음식을 먹은 뒤에 몸이 느른하고 정신이 피곤하며 자꾸 졸음이 오는 증세를 식곤증(食困症),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식이위천(食以爲天), 식량으로 옥을 먹고 계수나무로 밥을 짓는다는 뜻으로 물가가 비싸 생활이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식옥취계(食玉炊桂), 생선을 먹을 때에 한쪽만 먹고, 다른 쪽은 남겨둔다는 뜻으로 민력을 여축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식어무반(食魚無反), 근심 걱정 따위로 음식 맛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식불감미(食不甘味), 집게손가락이 움직인다는 말로 음식이나 사물에 대한 욕심 또는 야심을 품는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식지동(食指動), 먹을 것은 적고 할 일은 많음이라는 뜻으로 수고는 많이 하나 얻는 것이 적음을 일컫는 말을 식소사번(食少事煩), 사방 열 자의 상에 잘 차린 음식이란 뜻으로 호화롭게 많이 차린 음식을 이르는 말을 식전방장(食前方丈), 식량이 떨어져 기운이 다함을 일컫는 말을 식갈역진(食竭力盡), 음식을 잘 차려 먹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식불이미(食不二味), 맛있는 고기만 먹고 지내면서 누리는 부귀를 일컫는 말을 식육부귀(食肉富貴), 식객이 삼천 명이라는 뜻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음을 이르는 말을 식객삼천(食客三千), 나라의 녹을 받아먹음을 일컫는 말을 식국지록(食國之祿), 나라의 녹봉을 받는 신하를 일컫는 말을 식록지신(食祿之臣), 소라도 삼킬 정도의 기개라는 뜻으로 어려서부터 기개가 뛰어남을 이르는 말을 식우지기(食牛之氣)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