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병자들의 무르가murga (외 1편)
주하림
얼마나 벌어야 너랑 살 수 있을까 파도 위의 서퍼들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물결 네가 내 마음에 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나봐 입에서 짓무른 복숭아 냄새가 나거든 젊은 날의 조코비치처럼 태양 아래 조코비치처럼 목덜미 땀냄새 테니스코트 위를 굴러다니는 볼 붉은 꽃의 꽃말은 바람이 불고 썩은 정액 냄새가 난다 플라워 패턴 반다나를 쓴 저 애들은 어디 출신이야 우린 발리에서 만났고 그때부터 성격이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번엔 무엇이 되기 위해 바다를 찾은 것은 아니야 우리가 바다 앞에 컨테이너와 노점상을 지어놓고 여름을 나는 건 바다에서 들려오는 무르가 무르가 때문에 손에선 늘 소금 마늘 레몬 냄새가 나고 이따위 엉터리 천국은 나도 만들겠어* 무한히 아름다운 날들, 물냉이 향, 서퍼들이 먹고 난 그릇들, 설거지하다 생긴 상처는 곪고 마르지 않고 해가 지면 너는 모닥불과 치킨 춤으로 시끄러운 비치 파티에 갔고 때론 롱보드 대신 다른 것을 옆구리에 끼고 돌아왔지 웃고 마시고 흔들며 해변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을 눈으로 좇게 되어 있어 다시 검은 숲으로 사라져가는 반딧불같이 우리의 이별을 생각했지 해변의 컨테이너로 들어오는 공기 폐에서 빠져나가는 공기 주방과 거실 바닥을 굴러다니는 차가운 테니스 볼 손에서 바다에서 낮게 불어오는 오줌냄새 무르가 무르가 *영화 「Le Tout Nouveau Testament」 (2015). 여름 키코 테이블 위 케이크 케이크가 난방에 녹고 있다. 동그란 어깨뼈를 드러낸 사촌 여자애들이 모여서 케이크를 먹는다 긴 흑발의 언니와 동생들 그만 먹자 키코, 크림은 몸에서 녹지 않아 왜 크림은 입에서 녹잖아 의자에 앉아서 먹자 여름에는 남자가 도망간다 멀쩡하게 같이 살던 남자가 그후로 의자를 모으는 취미가 생겼다 점점 좋은 의자를 모았고 언니는 의자를 쌓아놓고 의자 꼭대기에서 창을 바라보는 취미가 생겼다 그녀 표정은 빈방을 고통으로 채색하려는 듯 더운 곳에 가고 싶다 그리스, 덥고 인간의 환대로 가득한
언니의 의자 모으는 취미는 여름에도 가을에도 끝나질 않는다 남자가 또 도망간 뒤 이제는 취미 대신 아나키스트 땅 거래 집문서 공부를 시작했지
마지막 꿈꾸기와 더 나은 꿈 기억의 두 가지 빛이 섞인다
누군가 포크로 케이크 바닥을 긁는다 동그란 어깨뼈에 맺히는 땀 중학교는 다니지 말걸 파란 대문 뒤에서 옆 남고생 애들을 대주던 여자애와 오토바이를 타다 종아리 화상을 입던 애들뿐이었거든 잠들기 전까지 괴기한 생각 이제는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는 사촌들 그중 하나가 길바닥에서 발작하며 피거품을 뿜는다 간질이래 얘기 들었어? 블러드 문blood moon에 고백을 받았대 나는 너의 어느 쪽을 밀어도 만지고 싶은 미래 기억은 자기를 알아보는 누군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대 하지만 천국에도 지옥에도 그런 에피소드는 없었지 블러드 문이 뜬 바닷가 바닷가 천국이 지나간 자리 언니의 남자들은 언니 마음이 투사된 그림이야 키코, 그를 잠깐 사람으로 왔던 신이 쓴 글이라고 생각해 종아리 화상 때문에 졸업식 사진은 상반신뿐 잘려나간 하반신들이 걷고 있을 바닷가 끈적거리는 피의 해변 머리카락에 크림 닿는 것이 싫어 단발이 되었다 졸업식에 올 수 없는 부모와 누군가에게 일일이 실망할 기운도 없다 120페이지 종아리 화상이 벚꽃 잎처럼 보인다 비가 오기 시작
—시집 『여름 키코』 2022. 7 ---------------------- 주하림 / 1986년 서울 출생. 2009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비벌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 『여름 키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