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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일 사회통합위 이념분과위원장은 무관한가? |
wicks(일본회원) |
노동당 거물공작원인 郭東儀(곽동의, 1928년생)가, 2006년1월에 ‘국가유공자’로 결정되어 매달 100만원씩 ‘보훈보상금’을 받고 있다는 조선일보 6월30일자 1면 기사는 상식적인 대한민국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고 녹여냈다. 특히, 곽동의에게 보훈보상금이 지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在日民團(재일민단) 사회는 아예 할 말을 잊은 듯하다. 노무현이 박아놓은 대못인 세종시 문제도 그렇고, ‘노무현의 유훈통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전혀 안 보이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폭발 직전 상태이다. G-20정상회의니 뭐니 하지만, 도대체 이게 무슨 나라인가? 이런 법치국가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일차적으로 보훈처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 보도로는 곽동의가 1950년 8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종군했다고 하나, 일본에서는 곽동의가 동료인 한창규와 함께 일본을 떠난 것이 1950년 9월13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곽동의는 월북을 기도했으나 여의치 않자, 탈영을 해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는 실정이다. 상식적으로 戰時에 종군(참전)하는 자가, 더구나 자원해서 의용군으로 참전한 자가 전상자도 아닌데, 반년도 안되어 제대할 수 있는 것인가? 영화 '포화 속으로'처럼, 6·25전쟁 때 참전했던 학도병들은 약 5만명 중 7000여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만약 재일동포 사회에 알려진 대로 곽동의가 탈영(탈주)을 했다면, 군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가? 대부분의 국가는 전장을 이탈한 탈영병(탈주병)이 해외로 도망하면 시효가 정지된다. 주한미군 복무 중 1965년 1월에 월북했던 찰스 젠킨슨은, 열아홉 살 때인 1978년 8월 일본에서 모친과 함께 북한공작원에게 납치되어온 일본여인 소가 히토미와 1980년 8월 결혼해 살다가, 김정일이 일본정부의 요구에 응해서 2002년 10월에 소가 히토미를 풀어주고 在北가족들도 2004년 7월 일본으로 귀국이 허용되어 일본에서 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지만, 39년간의 탈영에 대해 주일미군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다. 보훈처는 사실관계를 어떻게 확인했는가? 곽동의는 어느 부대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근무했고, 반 년 정도 만에 제대한 경위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확인했었는지 공개해야 한다. 좌우간, 곽동의는 귀일(밀항?) 후 다시 좌익 활동에 종사하다가 이윽고 북한공작원에게 포섭되어 북해도에서 공작선을 타고 入北하여 평양에서 공작원으로 밀봉교육을 받은 것이 법정에서 밝혀졌고, 韓統聯(한통련) 등 반국가단체의 수괴로 활동해온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곽동의는 송두율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떨어지는 공작원이 아니다. 곽동의는, 노무현 정권 때인 2004년 10월에 여권을 받아 한통련 방한단 147명을 인솔 방한하여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이 행세해 왔다. 이후 ‘6·15민족공동위원회’ 해외측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된 곽동의는, 조선일보의 취재에 의하면, 2006년 1월에 국가유공자가 되었고, 그해 2월에 민단중앙본부 단장이 된 河丙鈺(하병옥)을 조종하여 연방제 반역의 서막을 올리려던 유명한 '민단-조총련 5·17공동성명'을 지휘한 인물이다. 곽동의 자신이 평양과 연락하면서 추진했던 것을 인정한 사실이다. 반국가단체의 수괴급 공작원인 곽동의가 이처럼 화려하게 부상할 때 주일한국대사관은 무엇을 했던가? 반국가단체가 민단을 장악하는 과정에는 당시 주일대사의 비호와 지원이 있었다. 당시 주일대사는 현재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의 이념분과위원장인 라종일 우석대학교 총장이었다. 라종일 대사는 2004년 3월 부임 이래 2007년 3월 귀임시까지 반국가단체인 한통련 멤버들과 체포간첩 등을 대사관저로 초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종일씨가 주일대사의 임기 중에 곽동의가 복수여권을 발급받고, 반국가행위에 대한 조사를 받기는커녕 국가유공자가 되고, '5·17사변'이 발생하는 등 사건들이 있었다. 라종일 대사는 귀국 후에도 자신의 우석대학 총장 취임식(2007년 3월26일)에 조총련과 연방제를 추진하다가 민단에서 축출된 한통련계 인물들을 대거 초청했다. 그는 분망한 대학총장인데다 최근엔 사회통합위원회 이념분과위원장 신분임에도 은밀히 수시로 일본을 왕래하면서 조총련계 거물을 만나고, 조총련 간부 자녀의 결혼식 주례를 서고, 민단중앙본부 단장에게는 고향(호남)을 위해 기여하도록 종용하는 등 아직도 엽기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걸로 알려지고 있다. 라종일은 문정인과 함께 사회통합위원회(2009년12월 발족)의 첫 사업으로서 '북한에 나무심기'를 발안해 냈는데, 공교롭게도 그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조총련도 금년도 주요사업이 '조국(북한)에 나무심기'이다. 재일동포 사회에는 혁명정부도 아닌데 왜 사회통합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야 하는지, 이명박 대통령이 어째서 라종일 같은 자들을 끌어 들이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는 사람들이 많다. 청와대가 이 모양이니, 주일대사관과 영사관들은 물론, 민단 사회도 법과 상식보다 '중도실용'을 따라야 하는 게 아닌가하고 헤매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2010.07.01) http://www.chogabje.com/ |
[ 2010-07-01, 08:14 ] 조회수 : 255 |
첫댓글 보훈보상금 토해내라!
찾아보면 많을겁니다..10년 뒤집힌 세상 뒤집힌 잡놈들 끌어 내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