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묘 프리마켓에 나왔다... 10시-12시까지 놀 생각이다... 아비랑 조인트 할 사람 여기 모여라! 야채 곱창 쏜다(저는 오늘 학원갑니데잉... 조은 하루) 쏘리 쏘리...열공하시라!(나 /예주)" "ㅋㅋㅋ 지금 일어났습니다(에스더)" 인풋 못지않게 아웃풋도 중요합니다. 생파 때 남은 케이크-빵-과일-홍어-족발을 처리하느라고 생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존재의 내장 기름 끼는 갓김치에 물 말아 먹는 것으로 겨우 위를 세척했는데 문제는 남은 음식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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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5만 원 넘는 돈을 갖다 버릴 수도 없고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는지 아시나요? 비포 20년 동안 세상이 확 바뀐 느낌입니다. 60 대 3년의 체감만 해도 선친 세대의 방식을 대물림 하는 것보다 새로 살아냐 하는 것이 90%가 넘는 것 같습니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른 것 같아요. 변하는 중인데 가랑이가 찢어지는 느낌이랄까... 예전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것보다, 무엇을 내려놓고 어떤 기준으로 살아갈지가 더 중요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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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형님은 중년 이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남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힘에의 의지>에요.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자신을 다시 세우는 시간이니까 고독 따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고독을 사랑하라!" 니체 형님이 혼자 있는 시간을 단순한 외로움으로 보지 않은 건, 내가 사람들 속에서는 쉽게 남의 기준에 휩쓸릴 수 있다고 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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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부러라도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고독 속에서야 진짜 생각과 감정이 드러난다는 걸 아시나요? 결국 혼자 설 수 있는 사람이 흔들리지 않아요. 50대 이후에도 계속 인정받으려 하면 삶이 피곤해져요. 그래서 니체 형님은 남의 시선에 맞춰 사는 순간 자기 삶을 잃는다고 말해요. 사람들의 기대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중요한 건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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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성님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건 편안함이 아니라, 견뎌낸 시간이라고 봤어요. 힘든 순간을 무조건 불행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을 통과하면서 사람은 더 단단해진다고 말해요. 그래서 삶의 어려움도 내가 지금이 되어가는 새 창조의 과정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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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쉽게 과거에 머물지요. 안주하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니체 성님은 예전의 방식만 붙잡고 있으면 삶도 함께 멈춘다고 보고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삶을 강조해요. 공격이 최대의 수비가 맞아요. 익숙함 속에서도 계속 새로운 생각과 태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살아 있다는 건 계속 변화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깐.
2.
“왜 나이 들수록 ‘더 버리는 법’이 중요해질까? 동묘 프리마켓에 간다는 짧은 메시지에서 이 글은 시작되지만, 사실 이 글의 핵심 공간은 시장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남은 케이크와 족발, 홍어와 과일을 처리하며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중얼거리는 순간은 단순한 음식 정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잉여와 과잉을 처리하는 중년의 풍경입니다. 젊을 때는 “더 채우는 것”이 능력처럼 보입니다. 더 벌고, 더 사고, 더 확장하고, 더 인정받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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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깨닫습니다. 인생은 채우는 기술보다 비우는 기술이 더 어렵다는 것을. 특히 이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무엇을 내려놓고 어떤 기준으로 살아갈지가 더 중요해졌어요.” 이것이 바로 중년 이후 존재론의 핵심입니다. 20~30대의 질문이 “어떻게 성공할까?”라면, 60대의 질문은 “무엇 없이도 나로 남을 수 있을까?”에 가까워집니다. 여기서 프리드리히 니체 가 등장합니다. 필자는 니체를 단순한 허무주의자가 아니라 “자기 삶의 주권을 되찾으려 한 사람”으로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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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니체의 “고독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외로움 예찬이 아니라, 남의 기준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훈련으로 해석하는 지점이 좋습니다. 사람은 군중 속에 있으면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누가 더 성공했는지, 누가 더 젊은지, 누가 더 돈이 많은지.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은 그런 사회적 소음을 걷어냅니다. 그때 비로소 자기 욕망의 진짜 얼굴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니체의 고독은 단절이 아니라 “자기 회복의 공간”입니다. 또 흥미로운 것은 글 전체에 흐르는 “변화의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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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 이 문장은 단순한 시대 푸념이 아닙니다. AI 시대 이후 인간이 느끼는 실존적 속도감입니다. 예전에는 경험이 자산이었다면, 지금은 경험이 금세 구식이 됩니다. 그래서 필자가 “선친 세대의 방식 되물림보다 새로 살아내는 것이 90%”라고 말하는 대목에는 절박함이 묻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이 단순한 자기계발론으로 흐르지 않는 이유는, 고통을 “정금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읽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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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경쟁의 욕망이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자기 삶을 창조하려는 생명력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글은 동묘 벼룩시장 이야기 같지만, 실은 인생 후반전의 생존 전략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무엇을 더 가질까보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보다, 내가 내 삶을 납득할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필자는 오늘도 갓김치에 물을 말아 먹으며, 남은 음식과 남은 인생을 함께 정리하고 있습니다.
2026.5.17.su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