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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이라는 이름은 ‘큰물섬’을 한자로 적은 데서 유래했다. 물 깊은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섬이란 뜻이다. 비조봉을 에두른 섬의 일주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그 말이 실감난다. 길을 돌아서면 해변이다. 고갯마루에 숨었나 싶으면 곧 거대한 빛이 시야를 감싼다. 바다다. 큰물이 넘실댄다. 물길 건너에는 또 굴업도니, 문갑도니, 선미도니, 섬이 지천이다. 약 500m 거리에 자리한 소야도는 가장 가까운 섬이다. 100가구나 될까 싶다. 영화 <연애소설>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탔는데, 아직은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어 다행스럽다.
연안부두에서 덕적도까지 향하는 페리호가 물살을 가른다. 고물에는 도망치는 물길을 향해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이들이 여럿이다. 챙 달린 모자에 조끼까지 갖춰 입은 모양새가 낚시 꾼이 분명하다. 특유의 ‘뻥’이 섞이니 말끝에서 월척이 춤을 춘다. 덕적도는 관광객보다 낚시꾼들에게 잘 알려진 섬이다. 선상낚시, 갯바위낚시, 민물낚시가 가능하다. 특히 서포리해변에서 밧지름해변 사이에는 갯바위 낚시 포인트가 즐비하다. 1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선착장에도 낚시꾼을 데리러 나온 봉고차들이 대기 중이다.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선 상점가는 모두 ‘낚시’를 문패에 내걸었다.
삼삼오오 시끌벅적하던 그네들이 사라지니 항구에 적막이 밀려든다. 바다는 무심한 듯 잔잔하다. 그제야 멀고 가까운 섬들이 보인다. 지척의 소야도는 덕적도의 일부가 아닌가 싶을 만큼 가깝다. 남서쪽에는 고깔섬과 먹도가 보인다. 먼발치의 조그만 고깔 모양의 고깔섬은 바다 안개의 농담을 구별하는 기준이다. 능골자갈마당의 낙조를 보러 갈 때 참고하면 좋다. 먹도는 포로를 굶겨 죽였다는 서슬 퍼런 소문을 간직하고 있다. 덕적도가 인천상륙작전의 전진기지임을 실감케 한다. 지금은 무인도를 체험하고 싶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선착장에서 걸어 나오면 고개를 따라 곧장 일주도로다. 면사무소를 지나 덕적도를 크게 한 바퀴 돌아 나올 수 있다. 낚시꾼들이야 포인트 하나만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테지만, 섬의 자연을 탐하고 싶은 이에게는 섬 일주 드라이브가 제격이다. 덕적도의 매력은 바로 길 따라 들고나는 풍경이다. 마을 민박집에서 차량 대여도 가능한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직접 차를 가지고 들어가는 쪽이 낫다.
일주도로를 따라 동쪽에는 이개해변, 북리항 등이 있다. 끝자락은 서쪽으로 난 능금자갈마당이다. 길은 해안을 따라 굽이치지 않고 산길 따라 상하로 오르내리는 직선에 가깝다. 매번 바다의 풍경을 탐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외려 그 점이 매력이다. 갯벌체험장인 이개해변 입구를 지나 언덕을 넘어서면 아담한 항구가 눈에 찬다. 북리항이다. 서포리해변과 능골자갈마당의 갈림이다. 북리항은 30~40년 전만 해도 독 공장이 있어 사람들로 붐볐다. 굴업도와 문갑도 사이의 해역에는 새우가 풍부했다. 그 새우를 젓으로 담가 육지에 내다 팔았는데, 북리항의 독은 새우젓을 담는 구실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때는 “다방도 있었다”며 한때의 번성을 회상한다. 지금은 몇 척의 어선이 덩그러니 남아 그 존재를 증명할 따름이다.
북리항에서 곧장 직진하면 능골자갈마당이다. 썰물에 깎이고 밀물에 떠밀린 자갈들은 모난 구석이 없다. 동그랗게 제 몸을 말고서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낸다. 능동자갈마당은 해질녘에 찾는 것이 좋다. 덕적도에서 비조봉과 더불어 바다로 넘어가는 일몰을 볼 수 있다. 가는 길에는 갈대밭을 마주한다. 제법 넓게 자리해 있는데 샛길에는 민들레가 꽃을 피웠다. 민들레 홀씨 되어 날아간다는 노랫말처럼 바람에 몸을 떤다. 갈대의 몸짓보다 아련하고 자그마하다. 민박집마다 튤립이나 꽃잔디를 심어 꽃천지를 이루는 것도 덕적도의 특징이다.
북리항에서 좌측으로 접어들면 서포리해변, 밧지름해변으로 이어진다. 굽이굽이 오르는 도로인데 ‘S’자로 춤을 추는 듯하다. 굴곡 사이로는 고운 꽃밭이 이어진다. 붉은 연산홍과 노란빛 누드베키아가 군락을 이룬다. 잠깐 차를 세워도 좋을 것이, 뒤로 돌아보면 북리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끝 간 데 없이 이어지는 바다며, 기암괴석 사이로 뿌리내린 노송의 몸짓도 아련하다. 서포리해안까지 가는 길도 거대한 자연의 파노라마다.
서포리해안에서는 고운 모래사장을 걸을 수 있고, 남쪽 선착장에서 해안선의 전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아직은 바닷물이 찬 편이니 후자가 한결 나을 게다. 비조봉 트레킹도 서포리에서 출발한다. 해발 292m 밖에 안 되는 비조봉은 3~4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다. 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시야가 심심찮게 육지의 등산객을 부른다.
숨은 절경을 탐하고 싶다면 정지바위 쪽이 좋다. 마을 사람들만 알음알음으로 알고 있는 비경인데 선착장의 끝자락에서 발전소 뒷산 길을 올라간다. 또렷하게 나 있는 길이 아니니 인근 민박에 자세하게 문의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지난해 추석에는 루어낚시로 팔뚝만한 농어 20마리가 낚여, 마을 전체가 발칵 뒤집힌 적도 있다. 이후에 누군가 그물을 내리고 나서는 농어가 잡히지 않는다.
덕적도에 비하면 소야도는 한결 조용하다. 헤엄쳐 건널 만큼 가까운 거리다. 아침나절이면 소야도의 아이들이 종선을 타고 덕적도로 넘어온다. 종선은 하루 대여섯 번에 걸쳐 덕적도와 소야도 사이를 오간다. 인근의 다른 섬은 배편이 하루 한 차례뿐이라 1박이 불가피하지만, 소야도는 당일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 한적한 어촌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면 소야도에서의 민박도 의미 있다.
소야도는 <연애소설>의 촬영지로 세상에 알려졌다. 덕분에 사람들의 발길이 빈번해졌고 도로도 새로이 포장했다. 펜션 공사도 한창이다. 그렇다고 소야도만의 정취를 잃은 건 아니다. 길은 선착장에서 데뿌리해수욕장까지 이어진다. 차를 몰고 다니기엔 좁은 길도 있다. 굳이 운전의 불편함이 아니더라도 산책하듯 걸어 다니는 게 좋다. 끝에서 끝까지 한 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덕적도와 마찬가지로 몇 번의 해변이 들고난다. 첫 고개를 넘으면 장군 바위를 앞에 두고 한번, 상록수휴양원 앞에서 다시 한 번 해안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데뿌리해수욕장과 상록수휴양원 사이에는 ‘큰마을’이 있다. 마을에는 60여 가구쯤 산다. 섬 전체가 100가구이니 이름처럼 소야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소야도하면 데뿌르해수욕장이나 죽노골 해변을 본 후 상록수휴양원을 찾는 것이 기본 일정이다. 영화 <연애소설>의 촬영지로 알려진 탓이다. 하지만 소야도의 알짜배기 풍경은 큰마을이다. 변함없는 정취는 큰마을을 일컬음이다. 좁은 골목까지 콘크리트 포장이 이뤄졌지만, 마을 구석구석 아기자기한 그림이 가득 찼다. 그 사이에는 폐가도 있고 기울어진 전봇대도 있다. 돌담길 따라서 가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올라가기도 하고, 대숲이 그늘을 드리우기도 한다. 덕적도와 마찬가지로 집 앞 마당에는 색색의 꽃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 아담한 풍경이 가슴 따스하다. 뒤쪽 언덕배기에는 폐허가 된 성당이 있다. 30~40년은 족히 된 건물이다. 최 신부라는 분이 마을사람들과 먹을거리도 나누고, 정도 나누기도 했는데, 그가 미국으로 떠난 후 지금처럼 방치하게 된 곳이다. 성당 앞에는 파나 상추가 자란다. 어느새 웃자란 잡풀들도 주인을 자처한다.
큰마을 앞 바다에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다. 가섬과 가운데섬, 물푸레섬 세 개의 작은 섬이 바다 위에 떠 있는데, 사리(썰물) 때에는 물이 빠지면서 길이 열린다. 가운데 섬에서 연결된 송곳여까지도 하나의 섬이 된다. 성당이 있는 언덕배기에서 잘 보일 것 같지만, 가섬과 연결된 방파제에서 가장 가깝고도 또렷한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다. 이때는 걸어서 섬을 오가는데 갯벌에서 해산물 채취가 이뤄진다. 지나치게 욕심을 내지 말고 물길이 닫히기 전에 나와야 한다. 얕아 보이지만 물살이 만만치 않다. 물이 차면 섬에서 배를 기다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섬의 끝자락인 데뿌리해변에서는 이맘때 고동을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 5월부터 고동은 짝짓기를 하므로 한꺼번에 여러 마리가 잡힌다. 해가 지고난 후 랜턴을 들고 데뿌리해변의 갯벌을 찾으면 넉넉하게 욕심을 채울 수 있다. 데뿌리해수욕장은 갯골이 없어 물놀이하기에도 안전하다. 우측으로 난 산길을 따라가면 죽노골해변이다. 풀이 웃자랄 시기라 녹음과 송림 사이로 비치는 바다 빛이 각별하다.
덕적도는 길을 따라 바다가 사람을 부른다. 가슴 속 답답함을 후비어 내는 힘이 있다. 소야도는, 어디를 가든 동화 같고 소설 같은 옛 풍경이 조곤조곤 말을 걸어온다. 대꾸 대신 소리 따라 발길을 돌리면 그만이다. 붉기도 하고 푸르기도 한 자연의 빛이 가득한데 그만큼 화사한 5월의 봄 길은 없다.
인천 연안부두(032-887-2891)에서 오전 7시 45분과 9시 30분, 오후 3시 세 차례 덕적도까지 가는 배편이 있다. 성수기, 비수기에 따라 운행 횟수나 시간이 조금씩 달라진다. 차를 가져갈 경우 오전 7시 45분 배편을 이용해야 한다. 약 1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요금은 1인당 1만550원이다. 안산 방아머리(032-886-7813)에서도 9시 30분 첫배가 출발하는데 차를 가져갈 수 있다. 다만 인천 연안부두보다 1시간쯤 더 걸린다. 덕적도에서 소야도까지는 아침 8시 40분 첫배를 시작으로 하루에 5~6회 정도 운행한다. 요금은 1500원이다. 돌아올 때는 소야도에서 덕적도를 향하는 종선에서 인천 연안부두까지 가는 배표를 바로 끊을 수 있다. 소야도와 덕적도 사이의 종선은 인근 민박에 부탁하면 시간에 관계없이 1만원에 오가기도 한다.
덕적도에서는 걸어서 이동하는 것이 힘들다. 차량을 가지고 가거나 민박의 봉고차 또는 택시 밴을 이용해야 한다. 1시간에 1만5000원 정도를 지불하면 일주 관광도 가능하다. 보통 3~4시간 걸리는데 5~6만원이 든다. 페리호 도착 시간에 맞춰 시내를 오가는 버스도 운행 중이다. 주유소는 일주도로를 진입하면 곧장 우측 편에 있다. 육지에 비해서 기름 값이 비싸다. 저녁 5시가 넘으면 문을 닫는다. 덕적도에는 우체국과 농협이 있는데 각각 5시와 5시30분까지 현금 인출이 가능하다. 카드보다는 현금을 소지하는 게 편하다. 소야도는 걸어다니기에도 무리는 없다. 다만 편의 시설이 거의 없다. 선착장에 매점이 있는데 수시로 문을 닫는다. 먹거리는 미리 챙겨야 한다.
선착장에 내려서면 민박집이 즐비하다. 북항에는 폐교를 개조한 새마음연수원(032-834-2119)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방갈로가 좋다. 덕적파출소 앞 삼거리의 지니랑 어비랑 펜션(032-831-3315)은 아담한 정원이 매력 있다. 시설 괜찮은 민박집이나 펜션은 서포리해수욕장 인근에 몰려 있다. 섬사랑(032-832-9660)이나 소나무향기펜션(032-832-1111) 등이 있다. 숙박료는 보통 민박은 4~5만원 선이다. 소야도에는 상록수휴양원9032-832-9661)이 유명한데,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영월민박식당(032-832-8053)은 민박과 식사를 겸하는데 주인장의 손맛이 빼어나다. 우럭매운탕이나 반찬으로 나오는 홍어무침도 맛있다. 하지만 덕적도에 왔다면 ‘갱국’을 꼭 먹어 볼 것. 웅진군과 덕적도 일대의 지역 별미다. 영월민박식당의 서영월 씨는 문갑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전통 갱국을 끓여낸다. ‘갱(다슬기의 방언)’을 깨뜨려 껍질을 벗긴 후 눈을 떼어내고 된장과 함께 버무린다. 버무려진 갱과 된장은 절구에 넣고 갈아서 끈적끈적한 액을 만든다. 이것을 찬물에 타서 냉국처럼 먹는 게 갱국이다. 여름철 입맛을 잃었을 때 보양식으로도 좋다. 손이 많이 가는 탓에 지금은 덕적도에서도 맛보기가 쉽지 않다. 미리 전화를 하고 찾아야 먹을 수 있다. 대신 재료를 준비하는 품삯 3만원은 따로 지불해야 한다. 북항 지나 도우회가든(032-831-8704)도 덕적도의 맛집이다. 소야도에는 특별한 맛집이 따로 없다. 민박집에 말하면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횟감은 맛볼 수 있다.
글 : 박상준 사진 : 박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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