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성도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와 연합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9장 2절을 보면 선견자 하나니의 아들 예후는 길르앗 라못 전쟁에서 귀환하는 여호사밧 왕을 맞으며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냐고 책망하였습니다. 이것은 여호사밧 왕이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동맹을 맺고 그를 도와 길르앗 라못 전쟁에 가담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책망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악한 자’ 란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가리킵니다. 여로보암 이래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악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아합은 특히 악하였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물론, 바알 숭배의 온상이었던 시돈의 공주 이세벨을 아내로 맞음으로써,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북이스라엘에서 공식화한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여호와의 선지자를 박해하고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실로 아합은 하나님을 미워한 자로 북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사밧은 이러한 아합과 결혼 동맹을 맺고 연합하였던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이처럼 아합과 동맹을 맺은 것은 아마도 아합 시대의 북이스라엘이 비교적 강성하였는 바, 북이스라엘로 인한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 그가 아합을 도와 길르앗 라못 전쟁에 가담한 것은 길르앗 라못이 본래 이스라엘 땅이었는 바, 그것을 되찾아야 한다는 민족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나아가서는 아람이 길으앗 라못을 점령하고 있는 한, 남유다에도 위협이 된다고 여겨 그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합한 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후의 지적대로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악한 자와의 연합은 반드시 악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예후는 여호사밧 왕에게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라고 경고하였는데, 실로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합한 결과는 매우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즉 여호사밧은 이후 모압 · 암몬 연합군의 공격을 받는가 하면, 에시온게벨에서 상선이 침몰하는 불행한 사건을 겪었고, 결정적으로 아합의 딸로서 여호사맛의 아들 요람의 아내가 된 아달랴로 말미암아 남유다에서 왕의 씨가 마를 뻔하는 위기가 찾아오기도 하였습니다 (22:10-12), 다행히 다윗과의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의 혈통이 단절되지는 않았지만 남유다에는 일시적이나마 다윗의 왕통이 끊어지는 엄청난 시련이 불어닥쳤습니다. 이것이 여호사밧이 악한 자와 연합한 결과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의 만남과 연합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로 우리 성도들은 악한 자와는 연합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이 믿지 않는 자와는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 경고한 대로(고후 6:14),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 불의한 자와는 연합하지 말아야 합니다(잠1:10). 비록 그 일이 현실적인 유익이 있다 해도 악한 자와 연합하는 것은 성도가 마땅히 피해야 할 일입니다. 악한 자와의 연합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며, 결국 필연적으로 악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물론 우리 성도들도 악한 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한, 악한 자들과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지역 사회나 국가적인 을 위하여, 그들과 협력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다만 자기의 세속적인 유익을 위하여 악한 자를 만나고 연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악한 자와의 연합은 그 자신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대열에 가담하는 것이 되며, 그 결과는 하나님이 악한 자를 위해 예비하신 진노를 함께 받는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