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관련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이 다뤄 본 관계 갈등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억울함"입니다.
내가 이 관계를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데, 어쩜 나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지?
불공평해, 나는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어, 난 억울해!!!
인간관계에서
노력한만큼 항상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라온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안타까운 건 여러분,
인간의 마음은 산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간의 심리는 복잡계의 영역이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유기체와 같아서, 정해진 길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습니다.
가령,
상식적으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내가 상대방에게 베풀었을 때,
응당 상대방도 그에 대한 보답을 해 와야지만 올바른 일이겠으나,
상대방의 성격이나 인성, 성장 과정, 현재의 경제 상태 등에 따라서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는 것이 곧 인간의 마음인 것입니다.
(ex. 베풀어도 고마워하지 않음, 나를 이용해 먹으려고 함, 고마워하다가도 곧 적응되서 무덤덤해짐 등등)
특히나 우리들 인간에게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면,
나와 심리적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는 고마움을 잘 느끼는 반면,
나와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ex. 별로 안 친한 친구가 도움을 주면 엄청 고마워하면서도, 엄마가 잘 해 주는 것에는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함)
이건 고마움에 대한 일종의 적응이자 면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막에서는 오아시스가 정말이지 귀한 존재지만,
마실 것들이 천지에 널려있는 도심에서는 아무도 물의 소중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사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것이죠.
하지만 불운하게도,
노력을 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내가 행한 노력들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전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요.
나는 내 노력을 잊지 않지만,
상대방은 내 노력에, 계속되는 호의에 적응되서 무덤덤해지는 것
이러한 무질서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간 마음의 생태계"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① 인간의 마음이란 산수와 같은 단순계가 아니라 복잡계의 영역에 속한다.
② 인간관계에서 노력의 당사자는 내가 들인 비용을 항상 기억하지만, 그 노력의 수혜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의 호의에 무감각해진다. (만족 적응 기제)
③ 인간이 지닌 만족 적응 기제에 따라, "지속적 호의"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용이 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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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유로,
관계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쪽이
오히려 억울해하고 불공평함을 느끼고 내적 분노에 휩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그냥 상대방의 문제 아닌가요?
그 사람의 잘못 아닌가요??
그렇다기보단,
상호호혜성에 의거하여 항상 보답을 돌려주는 사람들이 오히려 "훌륭한 인성"을 가졌다고 해석하는 편이 더 이치에 맞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이건 잘못이라기보다는 만족 적응 기제에 따른 인간의 본능, 즉, 디폴트에 가깝다는 것이죠.
즉, 인간이 원래부터 그렇게까지 윤리적이라거나 합리적인 존재가 애당초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관계에서 최적의 노력 전략이란 어떠한 것일까?
바로, "비지속적 노력"입니다.
의도적으로 밀당을 하라는 게 아니라 살면서 한번씩은 남을 위한 노력을 거두고,
그 노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남을 위한 노력 - 나를 위한 노력 - 남을 위한 노력 - 나를 위한 노력 ......
이러한 식으로 자기중심적 노력과 타인중심적 노력을 교차로 배분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호의가 한 번씩 끊기면서 지속적으로 리셑되므로 고마움에 면역이 되지 않을 것이고,
내 입장에서는 주기적으로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정신적 웰빙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억울할 일도 별로 없겠죠?
상대방에게 과한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았고, 나에 대한 고마운 감정은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면서,
나는 또 나름대로 나를 위한 시간을 즐겼으니까 말이죠.
심리는 산수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위해 노력할 때 역설적으로 관계가 더 좋아질 수도 있다는 점이
우리들 인간의 마음이 지닌 특별하고 재미난 요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연애도 관계도 지속적인 호의는 정말 독인거 같아요... 그냥 잘되려면 무심코 가끔의 호의가 더 먹히거나... 정말 더 고마워하죠 어렵습니다 인간이란^^
정말 맞아요. 저는 밀당이 나쁜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자기 존중감이 충분한 사람은 그냥 밀당을 저절로 구사하고 있더군요. 저는 너무 스스로를 낮추기만 함으로써 건전한 관계 형성을 방해한 것 같아요.
완전 공감합니다!
항상 좋은글 감사 드립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 내용은 특히 공감가는 부분이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