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오른팔이 없었던 MLB의 외팔투수 짐 에보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문사에는 야구 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런 단순한 야구 이야기 아니니깐
★도 저녀석 또 야구 이야기 하네....★ 라고 생각하시지 마시고 한번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항상 자기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고 내가 제일 바닥에서 기어가고 있다고 느껴져도 그런것이 아니라는것을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의 사진과 더 자세한 것을 원하시면
www.mlbpark.com 에 가셔서 전체기사 에 가시면 그중에 하나 있습니다
짐에보트의 야구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원문]
얼마전에 끝난 월드시리즈 7차전에 시구를 했던 사람이 누군지 혹시 아십니까?
바로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Jim Abbott)입니다.
오른손이 없는 왼손투수로서 통산 10년간 87승 방어율 4.25의 기록을 남겼죠.
짐 애보트는 1967년 9월19일 미시간주의 플린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오른손이 없었던 그에게
발을 사용하는 축구를 가르치며 밝게 자라주길 원했죠.
하지만 애보트는 야구에 더 재미를 느꼈고,
6살 때 의수를 풀어 버리고 혼자 공을 던지며 놀았답니다.
11살 때 드디어 리틀야구단에 들어가게 되었고, 투수가 되었습니다.
그냥 공만 던지는 투수가 아니라 자기 또래의 아이들을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는 투수였답니다.
중학교시절을 거쳐 고교에 입학하면서
애보트는 점점 야구선수의 꿈을 키워가게 됩니다.
하지만, 타자들이 야속하게도 그의 앞으로 번트를 댈 때마다
글러브를 낄 손이 없었던 그는 속수무책으로 출루를 허용할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애보트는 공을 뿌리고 글러브를 왼손에 바꿔끼는 수비를 연습하게 됩니다.
그 과정이라는게 이렇습니다.
1.공이 담긴 글러브를 오른손에 걸쳐 놓고
2.왼손으로 공을 빼내 투구한 후
3.던지자 마자 바로 다시 왼손에 글러브를 바꿔끼고 수비 자세에 들어간다음
4.자신에게 공이오면 왼손 글러브로 공을 받아선
5.다시 글러브를 오른손에 걸치고
6.왼손으로 공을 빼내 1루로 송구하는 것이죠.
말이야 쉽지만 투수가 공 던지면 얼마만에 포수에게 도착하는지는 굳이 구체적인 시간을 적지 않더라도, 한번이라도 야구를 보신 분들은 아실껍니다.(야구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자세하게 씁니다.)
공터에서 벽돌 벽에 공을 던지며 연습했던 이런 많은 시간들을 통해서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관심을 보일정도의 투수로 점점 성장하게 되었답니다. 정말 피눈물 나는 노력이 아니었겠습니까?
고교 졸업을 앞두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애보트에게 입단을 제의해왔습니다. 1985년 당시 Free-Agent Draft에서 토론토는 36라운드에 애보트를 지명하고 계약금 5만달러를 제시했죠.
그러나 그는
"단순히 구경거리가 되기 싫다. 나는 내 왼팔로 돈을 벌고 싶지,
오른팔로 돈벌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의 오른팔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겠죠.)
고 말하며 자신의 고향 미시간대학에 진학합니다.
미시간대학에서 애보트는 시속 145Km의 직구를 뿌리며 대학 통산 26승 8패 방어율 3.03를 기록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죠.
애보트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바로 미국대표팀의 일원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부터입니다.
시범경기로 치러진 이 대회에서 서커스같은 투구로 미국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애보트는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감동을 주게 되죠.
일본과의 88올림픽 결승전
애보트는 좋은 투구로 경기를 이끌어나갔고, 4회초 티노 마르티네스(현 카디날스)의 선제 2점 홈런으로 미국 팀은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8회에 들어 일본의 반격으로 점수차는 5대 3으로 좁혀졌죠. 그 때 애보트는 놀라운 수비로 일본 주자를 아웃 시켰고 팀의 승리를 지켜냈습니다. 9회를 막으면서 경기는 끝났고, 애보트는 승리를 축하하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였죠.
장애인올림픽이 아닌 정식 하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는 한 팔이 없는 투수. 그 해에 그는 미국 최고 아마추어 운동선수에게 주어지는 설리번 상을 수상했습니다.
애보트는 88년에 프로 드래프트에서 캘리포니아 엔젤스(현 애너하임 엔젤스)에 1차로 지명되었습니다.
그는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해 또한번 미국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첫해 12승12패 방어율 3.92의 놀라운 성적을 거둡니다.
그 이듬해에도 10승(14패)을 올려 그의 실력이 거품이 아님을 증명하죠.
그리고 91년도 3년차에는 18승11패 방어율 2.89의 성적으로
로저 클레멘스(18승10패 방 2.41), 케빈 타파니 (16승9패 방 2.99)등과
사이영상까지 넘보는 투수가 되죠.
그리고 애보트는 92년 말에 뉴욕 양키즈로 트레이드됩니다.
1993년 9월4일 양키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
그 경기에서 애보트는 대망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미전역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95년도에 애보트는 화이트 삭스에 잠시 머무른뒤
다시 친정팀인 엔젤스로 왔다가
96년에 2승18패로 기록하면서 점점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게 됩니다.
99시즌에 2승8패 방어율 6.91의 성적을 올리자
밀워키는 애보트에게 방출을 통고합니다.
그 때 그의 나이 32세. 그는 마침내 은퇴를 결심하게 되죠.
그는 지난 10년간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애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구 외에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때가 왔다, 10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이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뤄놓은 것에 만족한다. 난 항상 최선을 다했다.”
장애인 투수로 100승'이라는 위대한 기록을 기대했던 팬들은 아쉬워 했습니다.
그는 설리반상, 올림픽 금메달, 노히트노런 등 야구선수로서 누릴수 있는 명예를 차지했으며,
99년 6월15일 시카고 커브스전에서
4회에 한손으로 든 방망이로 안타를 치며 타점까지 올리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그의 전 에이전트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짐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장애가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MVP?
그런게 정말 중요할까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버린 사나이..........
장애?
신체의 장애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무서운 것은 마음의 장애이니까요.
야후에서 jim abbott라고 쳐보니
제 2의 짐 애보트를 꿈꾸는 외팔 투수가 있더군요.
Chad Bentz라는 선수입니다.
이 체드 벤츠 선수도 짐 애보트처럼
자신의 꿈을 꼭 이루기를 기원하며 부족한 칼럼을 마칠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