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령 여름 야생화
팔월 하순 넷째 토요일이다. 간밤은 열대야가 사라져 선풍기나 에어컨 전원을 껐을 뿐 아니라 창문까지 닫고 잠들었다. 새벽녘 잠을 깨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려 거실로 나가 베란다에 서보니 더 크게 들려왔다. 바람이 잔잔한 밤이라 날이 밝아와 들녘으로 나가면 풀잎에는 영롱한 이슬이 맺혀 있을 듯했다. 노트북을 켜 인터넷으로 켜 뉴스를 검색하면서 날이 밝아오길 기다렸다.
전날 강둑 트레킹에서 본 애기나팔꽃으로 남긴 시조를 초등 친구와 지기들 카톡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면서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 식후 다녀올 자연학교는 거리를 제법 멀게 정해 길을 나섰다. 진전 둔덕에서 여항산 미산령을 넘어 함안 파수로 나가 가야에서 마산으로 돌아올 동선이었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의 꽃밭으로 나가 꽃대감은 보질 못하고 밀양댁 안씨 할머니만 뵈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정류소에서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마산역 근처를 지날 때 내렸다. 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변은 주말 아침이면 노점상들이 여러 가지 물건을 내다 팔았다. 생활의 때가 묻은 골동품이 있는가 하면 한약 건재들이나 담금주도 진열되었다. 손두부와 메밀묵을 빚어 나오고 맷돌에 갈았다는 콩국도 팔았다. 나에겐 친근감이 가기로는 흙내음이 물씬한 제철 푸성귀였다.
노점을 지난 번개시장 들머리에서 김밥을 마련해 광장 모퉁이 농어촌버스 출발지에서 76번을 탔다. 어시장과 댓거리를 거치면서 승객이 불어나 일부 구간은 서서 가는 손님도 있었다. 동전터널을 지나 진동환승장에 잠시 들렀다가 오서를 둘러 양촌과 대정을 거쳐 둔덕골로 들어섰다. 종점 둔덕을 앞둔 골옥방에서 기사는 시동을 끄고 십여 분 쉬다가 정한 시각이 되자 다시 출발했다.
둔덕까지 간 승객은 현지 주민인 듯한 노부부도 같이 내렸다. 그들은 마을로 향하고 나는 오곡재로 오르는 자동찻길을 걸었다. 아침나절 햇살이 드러나는 산골은 고추잠자리가 날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시원함이 느껴졌다. 오실골 당산나무에서 예각으로 크게 튼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미산령으로 가는 임도로 들었다.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쉼터에서 삶은 고구마로 간식을 삼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임도를 걸으니 길섶에는 여름을 건너온 몇 종의 야생화를 볼 수 있었다. 포물선을 그린 꽃대에 자잘한 붉은 꽃잎을 단 이삭여뀌가 더러 보였다. 거미가 줄을 쳐 놓은 듯한 등골나물이 피운 꽃도 봤다. 봄날에는 길바닥에 납죽 엎뎌 자란 짚신나물은 잎줄기를 제법 불려 노란 꽃을 피워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귀한 몸이 된 물봉선꽃도 거기서는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해발고도를 점차 높여 간 어디쯤에는 지난번 태풍으로 산사태가 나서 응급 복구를 마쳐 놓은 곳이 나왔다. 산중 여름 야생화는 귀해도 제철을 잊지 않고 피어난 꽃들은 자리를 지켰다. 봄날에 산나물로 제 소임을 다한 영아자는 파란 꽃을 피워 저물고 있었다. 꽃잎이 분홍색인 이질풀과 하얀 꽃잎 쥐손이풀꽃도 만났다. 마타리꽃이 자라던 언덕은 산사태가 나 미끄러져 볼 수 없었다.
지난번 태풍 때 많은 비가 내렸는지 미산령에 이르기까지 산사태가 난 구역이 몇 군데 되었다. 상처를 입은 자연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예전 보습으로 돌아가지 싶다. 고갯마루 미산정에 오르니 산들을 겹겹이 겹쳐 바다로 향해 뻗어갔다. 멀리 산이 끝난 곳이 진동 광암 앞바다고 거제섬이 다시 바다를 에워쌌다. 정자에서 준비해 간 얼음 생수로 목을 축이고 김밥으로 요기했다.
점심 식후 정자에서 내려와 미산령 북향 비탈로 향했다. 행정구역이 창원에서 함안으로 바뀌었는데 거기도 산사태가 나서 힘들게 응급 복구를 마쳐 놓았더랬다. 영아자와 물봉선이 피운 꽃을 여전히 만났고 뚝갈이 피운 하얀 꽃도 만났다. 바위를 비집고 흐르는 석간수를 받아 마셨더니 목마름과 더위를 함께 잊었다. 길고 긴 임도를 걸어 미산마을에 닿아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23.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