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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童解) ―1938년 作―
촉각이 이런 정경을 도해(도해)한다. 유구한 세월에서 눈뜨니 보자. 나는 교외 정건(淨乾)한 한 방에 누워 자급자족하고 있다. 눈을 둘러 방을 살피면 방은 추억처럼 착석한다. 또 창이 어둑어둑 하다. 불원간(不遠間), 나는 굳이 지킬 한 개 〈슈트케이스〉를 발견하고 놀라야 한다. 계속하여 그 슈트케이스 곁에 화초처럼 놓여 있는 한 젊은 여인도 발견한다. 나는 실없이 의아하기도 해서 좀 쳐다보면 각시가 방긋이 웃는 것이 아니냐. 하하, 이것은 기억에 있다. 내가 열심히 연구한다. 누가 저 색시를 사랑하던가? 연구 중에는, 『저게 새벽일까? 그럼 저뭄일까?』 부러 이런 소리를 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하더니 또 방긋이 웃고 부시시 5월 철에 맞는 치마 저고리 소리를 내면서 슈트케이스를 열고 그 속에서 서슬이 퍼런 칼을 한 자루만 꺼낸다. 이런 경우네 내가 놀라는 빛을 보이거나 했다가는 뒷갈망 하기가 좀 어렵다. 반사적으로 그냥 손이 목을 눌렀다 놓았다 하면서 제법 천연스럽게, 『님재는 자객(刺客)입니까요?』 서투른 서도(西道) 사투리다. 얼굴이 더 깨끗해지면서 가느다랗게 잠시 웃더니, 그것은 또 언제 갖다 놓았던 것인지 내 머리맡에서 〈나쓰미깡〉을 집어다가 그 칼로 싸각싸각 깎는다. 『요것 봐라!』 내 입안으로 침이 쫘르르 돌더니 불현듯이 농담이 하고 싶어 죽겠다. 『가시내애요, 날쭘 보이소, 나캉 결혼할낭기요? 맹서(猛誓)듸나? 듸제?』 또,『융이 날로 패아주몽 내사 고마 마자 주울란다. 그람 늬능 우앨랑가? 잉?』 우리들이 맛있게 먹었다 시간은 분명히 밤에 쏟아져 들어온다. 손으로 손을 잡고. 『밤이 오지 않고는 결혼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탄식한다. 기대하지 않은 간지러운 경험이다. 깔깔깔깔 웃었으면 좋겠는데― 아― 결혼하면 무엇하나, 나 따위가 생각해서 알 일이 되나? 그러나 재미있는 일이로다. 『밤이지요?』 『아―』 『왜― 밤인데― 애― 우습다― 밤인데 그러네.』
『아―냐, 아―냐』 『그러지 마세요. 밤 이예요.』 『그럼 뭐, 결혼해야 허게.』 『그럼요!』 『히히히히―.』 결혼하면 나는 姙이를 미워한다. 융? 姙이는 지금 융한테서 오는 길이다. 융이 내어 대었단다. 그래보는 거다. 그런데 姙이가 채 오해했다. 정말 그러는 줄 알고 울고 왔다. 「애게―밤일세.」 『어떡허구― 왔누.』 『건 알아 뭐 허세요?』 『그래두.』 『제가 버리구 왔어요.』 『족히?』 『그럼요.』 『히히.』 『절 모욕허지 마세요.』 『그래라.』 일어나더니―나는 지금 이러한 姙이를 좀 묘사해야겠는데 최소량도로 그 차림차림이라도 알아두어야 겠는데―姙이 슈트케이스를 뒤집어 엎는다. 왜 저러누― 하면서 보자니까 야단이다. 최다 파헤치고 무엇인지 찾는 모양인데 무엇을 찾는지 알아야 나도 조력을 하지, 저렇게 방정만 떠니 낸들 손을 대일 수가 있나, 내버려 두었다. 하도 참다 참다 못해서 『거 뭘 찾누?』 『엉―엉― 반지― 엉―엉―』 『원 세상에 반진 또 무슨 반진구.』 『결혼반지지.』 『옳아, 옳아, 옳아, 응, 결혼반지 렸다.』 『아이구 어딜 갔누, 요게, 어딜 갔을까.』 결혼반지를 잊어 버리고 온 신부. 라는 것이 있을까? 가소롭다. 그러나 모르는 말이다. 라는 것이 반지는 신랑이 준비하라는 것인데― 그래서 아주 아는 척하고 『그건 내 슈트케이스에 들어 있는 게 원칙적으로 옳지.』 『슈트케이스 어딧세요.』 『없지!』 『쯧, 쯧.』 나는 신부 손을 붙잡고 『이리 좀 와 봐.』 『아야, 아야, 아이, 그러지 마세요, 놓세요.』 하는 것을 잘 달래서 왼손 무명지에다 털붓으로 쌍 줄 반지를 그려 주었다. 아무것도 낑기운 것은 아닌데 제법 간질간질한게 천연 반지 같단다. 천연 결혼하기 싫다. 트집을 잡아야겠기에― 『몇 번?』 『한 번.』 『정말?』 『꼭.』 이래도 안되겠다고 간발(間髮)을 놓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고문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 융 이외에?』 『하나?』 『예이!』 『정말 하나예요.』 『말 말아.』 『둘.』 『잘 헌다.』 『셋.』 『잘 헌다, 잘 헌다.』 『넷.』 『잘 헌다, 잘 헌다, 잘 헌다.』 『다섯.』 속았다. 속아 넘어갔다. 밤은 왔다. 촛불을 켰다. 껐다. 즉 이런 가짜 반지는 탄로가 나기 쉬우니까 감춰야 하겠기에 꺼도 얼른 껐다. 밤이 오래 걸려서 밤이었다. 패배시작 이런 정경은 어떨까? 내가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는 중에――이발사는 낯익은 칼을 들고 내 수염 많이 난 턱을 치켜든다. 『님재는 자객입니까?』 하고 싶지만 이런 소리를 여기 이발사를 보고도 막 한다는 것은 어쩐지 아내라는 존재를 시인하기 시작한 나로서 좀 양심에 안된 일이 아닐까 한다. 싹둑, 싹둑, 싹둑, 싹둑. 나쓰미깡 두 개 외에는 또 무엇이 채용이 되었던가, 암만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엇일까? 그러다가 유구한 세월에서 쫓겨나듯이 눈을 뜨면, 거기는 이발소도 아무데도 아니고 신방이다. 나는 엊저녁에 결혼했단다. 창으로 기웃거리면서 참새가 그렇게 의젓스럽게 싹둑 거리는 것이다. 내 수염은 조금도 없어지진 않았고, 그러나 큰일난 것이 하나 있다. 즉 내 곁에 누워서 보통 아침잠을 자고 있어야 할 신부가 온데간데가 없다. 하하, 그럼 아까 내가 이발소 걸상에 누워 있던 것이 그 쪽이 아마 생시더구나, 하다가도 또 이렇게 역력한 꿈이라는 것도 없을 줄 믿고 싶다. 속았나보다. 밑진 것이 없다고 하지만 그 동안에 원 세월은 얼마나 유구하게 흘렀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보니까, 어저께 만난 융이 만난 지가 바로 몇 해나 되는 것도 같아서 익살맞다. 이것은 한번 찾아가서 물어 보아야 알 일이 아닐까. 즉 내가 자네를 만난 것이 어제 같은데 실로 몇 해나 된 셈인가, 필시 내가 姙이와 엊저녁에 결혼한 것 같은 착각이 있는데 그것도 다 노망(蘆妄)된 일이렸다. 이렇게― 그러나 다음 순간 일은 더 커졌다. 신부가 홀연히 나타난다. 5월 철로 치면 좀 더웁지나 않을까 싶은 양장으로 차렸다. 이런 姙이와는 나는 면식(面識)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뿐인가. 단발이다. 혹 이이는 딴 아낙네가 아닌지 모르겠다. 단발 양장의 姙이란 내 친근에는 없는데, 그럼 이렇게 서슴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올 줄 아는 남이란 나와 어떤 악연일까? 가시내는 손을 툭툭 털더니 『갖다 버렸지.』 이렇다면 姙이는 틀림없나보니 안심하기로 하고, 『뭘?』 『입고 옹거.』 『입고 옹거?』 『입고 옹게 치마 조고리지 뭐예요?』 『건 어째 내다 버렸다능거야.』 『그게 바로 그거예요.』 『그게 바로 그거라니?』 『어이 참 아, 그게 바로 그거라니까 그래.』 초가을 옷이 늦은 봄 옷과 비슷하렸다. 姙이 말을 가량 신용하기로 하고 姙이가 단 한 번 융에게― 가만 있자, 나는 잠시 내 신세에 대해서 석명(釋明)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를테면 적지 않이 참혹하다. 나는 아마 이 숙명적 업원(業寃)을 짊어지고 한 평생을 내리 번민해야 하려나보다. 나는 형상 없는 모던 보이다. 라는 것이 누구든지 내 꼴을 보면 돌아서고 싶을 것이다. 내가 이래뵈도 체중이 14관(貫)이나 있다고 일러 드리면 귀하는 알아차리시겠소? 즉 이 척신(瘠身)이 총알을 집어 먹었기로니 좀처럼 나기 어려운 동굴(洞窟)을 보이는 것은 말하자면 나는 전혀 뇌해(腦骸)에 무게가 있다. 이것이 귀하가 나를 겁낼 중요한 비밀이외다. 그러니까― 어차어피(於此於彼)에 일은 운명에 파문이 없는 듯이 이렇게까지 전개하고 말았으니 내 목적이라는 것을 피력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융, 姙이, 그리고 나. 누가 제일 미운가, 즉 나는 누구 편이냐는 말이다. 어쩔까. 나는 한 번만 똑똑히 말하고 싶지만 또한 그만두는 것이 옳은가도 싶으니 그럼 내 예의와 풍모를 확립해야겠다. 지난 가을 아니 늦은 여름 어느날―그 역사적인 날짜는 姙이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만― 나는 융의 사무실에서 이른 아침부터 와 앉아 있는 姙이의 가련한 좌석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 것이 아니라 가는 길인데 집의 아버지가 나갔다고 야단치실까봐 무서워서 못 가고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도 와 앉았구나 하고 문득 오해한 것이다. 그때 그 옷이다. 같은 시미즈, 같은 드로즈, 같은 머리 쪽, 한 남자 또 한 남자. 이것은 안된다. 너무나 어색해서 급히 내다버린 모양인데 나는 좀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대체 나는 그런 부유한 이데올로기를 마음놓고 양해하기 어렵다. 그 뿐 아니다. 첫째 나의 태도 문제다. 그 시절에 나는 무엇을 하고 세월을 보냈더냐? 내게는 세월조차 없다. 나는 들창이 어둑어둑한 것을 드나드는 안집 어린애에게 1전 씩 주어 가면서 물었다. 『애, 아침이냐 저녁이냐?』 나는 또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슬을 받아 먹었나? 설마. 이런 나에게 姙이는 부질없이 체면을 차리려는 것이다. 가련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시절에 나는 제가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를 모르고 지냈다면 그것이 듣는 사람을 능히 속일 수 있나. 거짓부렁이리라. 나는 걷잡을 수 없이 피부(皮膚)도 거짓부렁이를 해 버릇 하느라고 인제는 저도 눈치 채이지 못하는 틈을 타서 이렇게 허망한 거짓부렁이를 엉덩방아 찧듯이 해 넘기는 모양인데, 만일 그렇다면 나는 큰일났다. 그러기에 사실 오늘 아침에는 배가 고프다. 이것으로 미루면 아까 姙이가 스커트, 슬립, 드로즈, 등속을 모조리 내다 버리고 들어 왔더라는 소개조차가 필연 거짓말일 것이다. 그것은 내 인색한 애정의 타산이 姙이더러 『너 왜 그러지 않았드냐?』 하고 암암리에 퉁명? 심술을 부려본 것일 줄 나는 믿는다. 그러나 발음 안되는 글자처럼 생동생동한 姙이는 내 손톱을 열심히 깎아 주고 있다. 『맹수가 가축이 되려면 이 흉악한 독아(毒牙)를 전단(剪斷)해 버려야 한다.』 는 미술적인 권유임에 틀림없다. 이런 일방 나는 못났게도 『아이 배고파.』 하고 여지없이 소박한 얼굴을 姙이에게 디밀면서 아침이냐 저녁이냐 과연 이것만은 묻지 않았다. 신부는 어디까지든지 귀엽다. 돋보기를 가지고 보아도 이 가련한 일타화(一朶花)의 나이를 알아내이기는 어려우리라. 나는 내 실망에 수비하기 위하여 열일곱이라고 넉넉잡아 준다. 그러나 내 귀에다 속삭이기를 『스물 두 살이라나요. 어림없이 그러지 마세요. 그만 하면 알 텐데 부러 그러시지요?』 이 가련한 신부가 지금 역수공권(亦手空卷)으로 나갔다. 내 짐작에 쌀과 나무와 숯과 반찬거리를 장만하러 나간 것일 것이다. 그동안 나는 심심하다. 안집 어린 애기 불러서 같이 놀까. 하고 전에 없이 불렀더니 얼른 나와서 내 방 미닫이를 열고 『아침이예요.』 그런다. 오늘부터 1전 안 준다. 나는 다시는 이 어린 애와는 놀 수 없게 되었구나 하고 나는 할 수 없어서 덮어놓고 성이 잔뜩 난 얼굴을 해 보이고는 뺨 치듯이 방 미닫이를 딱 닫아 버렸다. 눈을 감고 가슴이 두근두근하자니까 으아 하고 그 어린 애 우는 소리가 안마당으로 멀어 가면서 들려왔다. 나는 오랜 동안을 혼자서 덜덜 떨었다. 姙이가 돌아오니까 몸에서 우유 내가 난다. 나는 서서히 내 활력을 정리하여 가면서 姙이에게 주의한다. 똑 갓난애기 같아서 썩 좋다. 『목장꺼지 갔다 왔지요.』 『그래서?』 카스텔라와 산양유(山羊乳)를 책보에 싸 가지고 왔다. 〈집시〉족 아침 같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내 본능 이외의 것을 지껄이지 않았나 보다. 『어이. 목말러 죽겠네.』 대개 이렇다. 이 목장이 가까운 교외에는 전등도 수도도 없다. 수도 대신에 펌프, 물을 길러 갔다 오더니 운다. 우는 줄만 알았더니 웃는다. 조런― 하고 보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그러고도 웃고 있다. 『고개 누우집 아일까. 아, 쪼끄만게 나더러 너 단발 했구나, 핵교 가니? 그리겠지, 고개 나알 제 동무루 아나봐, 참 내 어이가 없어서, 그래, 난 안 간다 그랬드니 요게 또 헌다는 소리가 나 발 씻게 물 좀 끼얹어 주려무나 애, 아주 이러겠지, 그래 내 물을 한 통 그냥 막 좍좍 끼얹어 주었지, 그랬드니 너두 발 씻으래, 난 있다가 씻는단다 그러구 왔어, 글쎄, 내 기가 맥혀.』 누구나 속아서는 안된다. 햇수로 여섯 해 전에 이 여인은 정말이지 처녀대로 있기는 성가셔서 말하자면 헐값에 즉 아무렇게나 내어 주신 분이시다. 그동안 만 구 개년 이 분은 휴게라는 것을 모른다. 그런 줄 알아야 하고 또 알고 있어도 나는 때 마침 변덕이 나서 『가만 있자, 거 얼마 들었드라?』 나쓰미깡이 두 개에 제 아무리 비싸야 20전, 옳지 깜빡 잊어 버렸다. 초 한 가락에 3전, 카스텔라 20전, 산양유는 어떻게 해서 그런지 거저, 『43전인데.』 『어이쿠.』 『어이쿠는 뭐이 어이쿠에요.』 『고놈이 아무 수루두 제해 지질 않는군 그래.』 『소수(素數)?』 옳다. 신통하다. 『신통해라.』 걸인반대 이런 정경마저 불쑥 내어 놓은 날이면 이번 복수행위는 완벽으로 흐지부지하리라. 적어도 완벽에 가깝기는 하리라. 한 사람의 여인이 내게 그 숙명을 공개해 주었다면 그렇게 쉽사리 공개를 받은― 참회를 듣는 신부 같은 지위에 있어서 보았다고 자랑해도 좋은― 나는 비교적 행복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든지 약다. 약으니까 그렇게 거저 먹게 내 행복을 얼굴에 나타내이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로직을 불언실행(不言實行)하기 위하여서 내가 그 구중중한 수염을 깎지 않는 것은 지당한 중에도 지당한 맵시일 것이다. 그래도 이 우둔한 여인은 내 얼굴에 더덕더덕 붙은 바 추(醜)를 지적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숙명을 공개하던 구실도 헛되거니와 그 여인의 애정이 부족한 탓이리라. 아니 전혀 없다. 나는 바른대로 말하면 애정 같은 것은 희망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결혼한 이튿날 신부를 데리고 외출했다가 다행히 길에서 그 신부를 잃어 버렸다고 하자. 내가 그럼 밤잠을 못 자고 찾을까. 그때 가령 이런 엄청난 글발이 날아 들어왔다고 내가 은근히 희망한다. 『소생이 모월 모일 길에서 주운 바 소녀는 귀하의 신부임이 확실한 듯 하기에 통지(通知)하오니 찾아 가시오.』 그래도 나는 고집을 부리고 안 간다. 발이 있으면 오겠지, 하고 나의 염두에는 그저 양양한 자유가 있을 뿐이다. 돈지갑을 어느 포켓에다 넣었는지 모르는 사람만이 용이하게 돈지갑을 잃어 버릴 수 있듯이, 나는 길을 걸으면서도 결코 신부 姙이에 대하여 주의를 하지 않기로 주의한다. 또 사실 나는 좀 편두통이다. 5월의 교외 길은 눈이 부셔서 실없이 어찔어찔하다. 주마가편(走馬加便) 이런 느낌이다. 姙이는 결코 결혼 이튿날 기을 앞서지 않으니 姙이로 치면 이날 사실 가볼 만한 데가 없다는 것일까. 姙이는 그럼 뜻밖에도 고독하던가. 닫는 말에 한층 채찍을 내리우는 형상, 姙이의 적은 보폭이 어디 어느 지점에서 졸도를 하나 보고 싶기도 해서 좀 심청 맞으나 자분 참 걸었던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떡 없다. 내 상식으로 하면 귀한 사람이 가축을 끌고 소요(消遙)하러 할 때 으레히 가축이 앞선다는 것이다. 앞서 가는 내가 놀라야 하나. 이 경우에 그러면 그렇지 하고 까딱도 하지 않아야 더 점잖은가. 아직은? 했건만은 어언간 없어졌다. 나는 내 고독과 내 노년을 생각하고 거기는 은행 벽 모퉁이인 것도 인식하지도 못하는 중 서서 그래도 서너 번은 뒤 혹은 양 곁을 둘러보았다. 단발 양장의 소녀는 마침 드물다. 『이만하면 유실(遺失)이군?』 닥쳐와야 할 일이 척 닥쳐왔을 때 나는 내 갈팡질팡 하는 육신을 수습해야 한다. 그러나 姙이는 은행 정문으로부터 마술처럼 나온다. 하이힐이 아까보다는 사뭇 무거워 보이기도 하는데, 이상스럽지는 않다. 『拾圓째리를 죄다 십전째리루 바꿨지, 이거 좀 봐, 이만쿰이야, 주머니에다 넣세요.』 주마가편이라는 상쾌(爽快)한 내 어휘에 드디어 슬럼프가 왔다는 것이다. 나는 기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담하게 그럴 성싶은 표정을 이 소녀 앞에서 하는 수는 없다. 그래서 얼른 SEUVENIR! 균형된 보조(步調)가 똑같은 목적을 향하여 걸었다면 겉으로 보기에 친화하기도 하련만, 나는 내 마음에 인내를 명령하여 놓고 파라독스에 의한 복수에 착수한다. 얼마나 요련 암상은 참나? 계산은 말잔다. 애정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증거! 그러나 내 입에서 복수라는 말이 떨어진 이상 나만은 내 姙이에게 대한 애정을 있다고 우길 수는 있는 것이다. 보자! 얼마간 피곤한 내 두 발과 姙이의 한 켤레 하이힐이 융의 집 문간에 가 서게 되었는데도 깜찍스럽게 姙이가 성을 안 낸다. 안차고 겸하여 다라지기도 한다. 융은 부재요, 그러면 내가 뜻하지 않고 姙이의 안색을 살필 기회가 온 것이기에, 『PM 다섯시까지 〈따이먼드〉로 오기를.』 이렇게 적어서 안잠자기에게 전하고 흘깃 姙이를 노려보았더니― 얼떨결에 색소가 없는 열액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사학을 나는 내가 마치 姙이 편인 것처럼 민첩하게 찾아 놓았다. 폭푸이 눈앞에 온 경우라도 얼굴 빛이 변해지지 않는 그런 얼굴이야말로 인간고의 근원이리라. 실로 나는 울창한 삼림 속을 진종일 헤매고 끝끝내 한 나무의 인상을 품쳐오지 못한 환각의 인(人)이다. 무수한 표정의 말뚝이 공동묘지처럼 내게는 똑같아 보이기만 하니 멀리이 분주한 초조를 어떻게 점잔을 빼어서 구하느냐. 〈따이먼드〉 다방 문 앞에서 너무 머뭇머뭇 하느라고 들어가지 못하고 말기는 처음이다. 융이 오면― 따이먼드 보이 녀석은 융과 姙이 여기서 그늘을 사랑하는 부부인 것까지도 알고, 하니까 나는 다시 내 필적(筆跡)을 『PM 여섯시까지 집으로 저녁을 토식(討食)하러 가리로다. 물경(勿驚) 부처(夫妻).』 주고 나왔다. 나온 것은 나왔다 뿐이지 DOUGHTY DOG 이라는 가증한 장난감을 살 의사는 없다. 그것은 다만 10원 짜리 체인지와 아울러 姙이의 분간 못할 천후(天候)에서 나온 경증(經症)의 도박이리라. 여섯시에 일어난 사건에서 나는 완전히 실각(失脚)했다. 가령―(내가 융더러) 『아 아 있군 그래. 따이먼드에 갔든가, 게다 여섯시에 오께 밥 달라구 적어 놨는데 밥이라면 술이 붙으렷다.』 『갔지, 가구말구, 밥은 여편네가 어딜 가서 아직 안됐구 술은 내 미리 먹구 왔구.』 첫째 융은 따이먼드까지 안 갔다. 고 안잠자기 말이 아이구 댕겨 가신지 오분두 못 돼서 들오세서 여태 기다리섰는데요― PM 다섯시는 즉 말하자면 나를 힘써 만날 것이 없다는 태도다. 『대단히 교만하다.』 이러려다 그만두어야 했다. 나는 그 대신 배를 좀 불―쑥 앞으로 내어 밀고 『내 아내를 소개허지. 이름은 姙이』 『아내? 허― 착각을 일으켰군 그래. 내 짐작 같애서는 그게 내 아내 비슷두 헌데!』 『내가 더 미안헌 말 한 마디만 허까, 이따위 서푼째리 소설을 쓰느라고 내가 만년필을 쥐지 않았겠나, 추억이라는 건 요컨대 이 만년필망큼두 손에 직접 잽히능게 아니란 게 내 학설이지, 어때?』 『먹다 냉길걸 몰르구 집어 먹었네 그려, 자넨 자고로 귀족취미는 아니라니까, 아따 자네 위생이 부족헌 체허구 그저 그대루 견디게 그려, 내게 암만 퉁명을 부려야 낸들 또 한번 죗다 버린 만년필을 인제 와서 어쩌겠나?』 내 얼굴은 담박 잠잠하다. 할 말이 없다. 핑계 삼아 내 포켓에서 DOUGHTY DOG 을 꺼내 놓고 스프링을 감아 준다. 한 마리의 〈그레이 하운드〉가 제 몸집만이나 한 구두 한 짝을 물고 늘어져서 흔든다. 죽도록 흔들어도 구두는 구두대로 개는 개대로 강철의 위치를 변경하는 수가 없는 것이 딱하기가 짝이 없고 또 내가 더럽다. DOUGHTY 는 더럽다는 말인가, 초조하다는 말인가. 이 글자의 위압에 참 나는 견딜 수 없다. 『아닝게 아니라 나두 깜짝 놀랬네, 놀랜 것이 지애가(안잠자기가) 내 댕겨 들오니까 헌다는 소리가, 한 마흔댓 되는 이가 열칠팔 되는 시액시를 데리구 날 찾어왔드라구, 딸 겉기두 헌데 또 첩 겉기두 허드라구, 종이쪼각을 봐두 자네 이름을 안 썼으니 누군지 알 수 없구, 덮어놓구 따이먼드루 찾어갔다가 또 혹시 실수허지나 않을까봐, 예끼 그만 내버려둬라, 제눔이 누구등 간에 날 보구 싶으면 찾어오겠지 허구 기대리는 차에, 하하 이건 좀 일이 제대루 되질 않은 것 겉기두 허예 어째.』 나는 좋은 기회에 姙이를 한 번 어디 돌아다보았다. 어족(魚族)이나 다름없이 뭉툭한 채 그 이 두 남자를 건드렸다 말았다 한 손을 솜씨 있게 놀려 DOUGHTY DOG 스프링을 감아 주고 있다. 이것이 나로서 성화가 날 일이 아니면 죄(罪) 씨인 것이다. 아― 아―. 나는 아― 아― 하기를 면하고 싶어도 다음에 내 무너져 들어가는 육체를 지지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공부하지 않고는 이 구중중한 아― 아― 를 모른 체 할 수는 없다. 명시 여자란 과연 천혜(天惠)처럼 남자를 철두철미 쳐다보라는 의무를 사상(思想)의 선결조건으로 하는 탄성체(彈性體)던가. 다음 순간 내 최후의 취미가 『가축은 인제는 싫다.』 이렇게 쾌히 부르짖은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망각의 벌판에다 내다 던지고 얇다란 취미 한 풀만을 질질 끌고 다니는 자기 자신 문지방을 이제는 넘어 나오고 싶어졌다. 우환(憂患)! 유리 속에서 웃는 그런 불길한 유령의 웃음은 싫다. 인제는 소리를 가장 쾌활하게 질러서 손으로 만지려면 만져지는 그런 웃음을 웃고 싶은 것이다. 우환이 있는 것도 아니요 우환이 없는 것도 아니요 나는 심야의 차도에 내려선 초연한 성격으로 이런 속된 혼탁에서 돌아서 보았으면― 그러기에 이번에 적잖이 기술을 요했다. 칼로 물을 베듯이 『아차! 나는 T가 월급이군 그래, 잊어 버렸구나! (하건만 나는 덜 배앝어 놓은 것이 혀에 미꾸라지처럼 걸려서 근질근질 한다. 융은 혹은 식물과 같이 인문(人文)을 떠난 방탄조끼를 입었나) 그러나 융! 들어보게, 자네가 모조리 핥었다는 姙이의 나체는 그건 姙이가 목욕할 때 입는 비누 드레스나 마찬가질세! 지금 아니! 전무후무하게 姙이의 벌거숭이는 내게 독점된 걸세, 그러게 자넨 그만큼 해 두구 그 병정구두 같은 교만을 좀 버리란 말일세, 알아 듣겠나?』 융은 낙조를 받은 것처럼 얼굴이 불콰하다. 거기 조소(嘲笑)가 지방(脂肪)처럼 윤이 나서 만연하는 것이 내 전투력을 재채기 시킨다. 융은 내가 불쌍하다는 듯이 『내가 이만큼꺼지 사양허는데 자네가 공연히 자꾸 그러면 또 모르네, 내 성가셔서 자네 따귀 한 대쯤 갈길런지두.』 이런 어리석어빠진 논쟁을 왜 내게 재판을 청하지 않느냐는 듯이 〈그레이 하운드〉가 구두를 기껏 흔들다가 그치는 것을 보아 임이는 무용의 어떤 포즈 같은 손짓으로 『지이가 〈도오스〉의 여신입니다. 둘이 어디 모가질 한 번 바꿔 붙여 보시지요, 안 되지요? 그러니 그만들 두시란 말입니다. 융헌테 내애준 육체는 거기 해당한 정조(貞操)가 법률처럼 붙어 갔든 거구요, 또 지이가 어저께 결혼했다구 여기두 여기 해당한 정조가 따라왔으니까 뽑낼 것도 없능거구 질투헐 것도 없능거구, 그러지 말구 겉은 선수끼리 악수나 허시지요, 네?』 융과 나는 악수하지 않았다. 악수 이상의 통봉(痛棒)이 융은 몰라도 적어도 내 위에는 내려 앉았던 것이니까. 이것은 여기 앉았다가 밴댕이처럼 납작해질 정조가 아닌가 겁이 차츰차츰 나서 나는 벌떡 일어나면서 들창 밖으로 침을 탁 배앝을까 하다가 자분참 『그렇지만 자네는 만금을 기울여두 이젠 임이 나체 스냅 하나 보기두 어려울 줄 알게, 조꿈두 사양헐게 없이 구구루 나허구 병행해서 온전한 정의를 유지허능게 어떵가?』 하니까, 『이착(二着) 열 번 헌 눔이 아무래두 일착 단 한 번 헌 놈 앞에서 고갤 못 드는 법일세, 자네두 그만헌 예의쯤 분간이 슬 듯헌데 왜 그리 바들짝바들짝허나 응? 그러구 그 만금이니 만만금이니 허능건 또 다 뭔가? 나라는 사람은 말일세 자세 듣게, 여자가 날 싫어허면 헐수록 좋아허는 체허구 쫓아댕기다가두 그 여자가 섣불리 막 물건을 단 한 번 건드리구 난 다음엔 당장 눈앞에서 그 여자가 싫어지는 성질일세, 그건 자네가 아주 바루 정의가 어쩌니 허지만 이거야말루 내 정의에서 우러나오는 걸세, 데체 난 나버덤 낮은 인간이 싫으예, 여자가 한 번 제 마즈막 것을 구경시킨 다음엔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밑으루 내려가서 그 남자를 쳐다보기 시작이거든, 난 이게 견딜 수 없게 싫단 그말일세.』 나는 그제는 사뭇 돌아섰다. 그만큼 정밀한 모욕에는 더 견디기 어려워서. 융은 새로 담배에 불을 붙여 물더니 주머니를 뒤적뒤적한다. 나를 살해하기 위한 흉기를 찾는 것일까. 담뱃불은 이미 붙었는데― 『여기 10원 있네, 가서 가난헌 T군 졸르지 말구 자네가 T군헌테 한 잔 사주게나, 자넨 오늘 그 자네 서푼째리 체면 때문에 꽤 우울해진 모양이니 자네 소위 신부허구 같이 있다가는 좀 위험헐걸, 그러니까 말일세 그 신부는 내 오늘 같이 〈키네마〉루 모시구 갈테니 안헐 말루 잠시 빌리게, 응? 왜 맘에 꺼림직헝가?』 『너무 세밀허게 내 행동을 지정허지 말게, 하여간 난 혼자 좀 나가야겠으니 姙이, 융군허군 키네마 가지, 응, 키네마 좋아허지 왜.』 하고 말끝이 채 맺기 전에 姙이 뾰루퉁하면서― 『姙이 남편을 그렇게 맘대루 동정허거나 자선허거나 헐 권리는 남에겐 더군다나 없습니다. 자― 그거 받아서는 안됩니다. 여깃세요.』 하고 내어 놓은 무수한 10전짜리. 『하하. 야 이것 봐라.』 융은 담뱃불을 재떨이에다 벌레 죽이듯이 꼭꼭 이기면서 좀처럼 웃음을 얼굴에서 걷지 않는다. 나도 사실 속으로, 『하하. 야 요것 봐라.』 안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도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姙이 등을 어루만져 주고 그 백동화(白銅貨)를 한 웅큼 주머니에 넣고 그리고 과연 융의 집을 나서는 길이다. 『이따 파헐 임시(臨時)해서 내 키네마 문 밖에서 기다리지, 어디지?』 『단성사, 헌데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난 오늘 친구한테 술값 꿔주는 권리를 완전히 구속당했능걸! 어― 쯧쯧.』 적어도 백보 가량은 앞이 매음을 돌았다. 무던히 어지러워서 비척비척 하기까지 한 것을 나는 아무에게도 자랑할 수는 없다. TEXT 『불장난―정조책임이 없는 불장난이면? 저는 즐겨합니다. 저를 믿어 주시나요? 정조책임이 생기는 낫살에 벌써 이 불장난의 기억을 저의 양심의 힘이 말살하는 것입니다. 믿으세요.』 평(評) = 이것은 분명히 다음에 서술되는 같은 姙이의 서술 때문에 姙이의 서술 때문에 姙이의 영리한 거짓부렁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즉 ' 『정조책임이 있을 때에도 다음 같은 방법에 의하여 불장난은―주관적으로만 이지만―용서될 줄 압니다. 즉 아내면 남편에게, 남편이면 아내에게, 무슨 특별한 전술로든지 깜쪽같이 모르게 그렇게 스무드하게 불장난을 하는데 하고 나도 이렇달 형적을 꼭 남기지 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그러나 주관적으로 이것이 용납되지 않을 경우에 하였다면 그것은 죄요 고통일 줄 압니다. 저는 죄도 알고 고통도 알기 때문에 저로서는 어려울까 합니다. 믿으시나요? 믿어 주세요.』 평(評) = 여기서도 끝으로 어렵다는 대문 부근이 분명히 거짓부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역시 같은 姙이의 필적, 이런 잠재의식 탄로현상에 의하여 확실하다. 『불장난을 못하는 것과 안하는 것과는 성질이 아주 다릅니다. 그것은 컨디션 여하에 좌우되지는 않겠지요. 그러니 어떻다는 말이냐고 그러십니까. 일러 드리지오. 기뻐해 주세요. 저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입니다. 자각된 연애니까요. 안하는 경우에 못하는 것을 관망하고 있노라면 좋은 어휘가 생각납니다. 구토(嘔吐). 저는 이것은 견딜 수 없는 육체적 형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자연발생적 자태가 저에게는 어째 유취만년(乳臭萬年)의 넝마조각 같습니다. 기뻐해 주세요. 저를 이런 원근법에 좇아서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평(評) = 나는 싫어도 요만큼 다가선 위치에서 姙이를 설유 하려드는 〈대쉬〉의 자태를 취소해야 하겠다. 안하는 것은 못하는 것보다 교양 지식 이런 척도로 따져서 높다. 그러나 안한다는 것은 내가 잊어 내이는 기후 여하에 빙자해서 언제든지 아무 겸손이라든가 주저없이 불장난을 할 수 있다는 조건부계약을 차도 복판에 안전지대 설치하듯이 강요하고 있는 정조에 틀림없다. 나 스스로도 불쾌할 에필로그로 귀하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박빙을 밟는 듯한 회화를 조직하마. 『너는 네 말마따나 두 사람의 남자 혹은 사실에 있어서는 그 이상 훨씬 더 많은 남자에게 내주었든 육체를 걸머지고 그렇게도 호기 있게 또 정정당당하게 내 성문을 침입할 수가 있는 것이 그래 철면피가 아니란 말이냐?』 『당신은 무수한 매춘부에게 당신의 그 당신 말마따나 고귀한 육체를 염가로 구경시키셨습니다. 마찬가지지요.』 『하하 너는 이런 사회조직을 깜빡 잊어 버렸구나. 여기를 너는 서장(西藏)으로 아느냐, 그렇지 않으면 남자도 포유행위를 하던 피데칸트로프스 시대로 아느냐. 가소롭구나. 미안하오나 남자에게는 육체라는 관념이 없다. 알아 듣느냐?』 『미안하오나 당신이야말로 이런 사회조직을 어째 급속도로 역행하시는 것 같습니다. 정조라는 것은 일대일의 확립에 있습니다. 약탈결혼이 지금도 있는 줄 아십니까.』 『육체에 대한 남자의 권한에서의 질투는 무슨 걸레 조각 같은 교양 나부랭이가 아니다. 본능이다. 너는 이 본능을 무시하거나 그 치기만만(穉氣滿滿)한 교양의 장갑으로 정리하거나 하는 재주가 통용될 줄 아느냐?』 『그럼 저도 평등하고 온순하게 당시의 정의하시는 본능에 의해서 당신의 과거를 질투하겠습니다. 자― 우리 숫자로 따져 보실까요?』 평(評) = 여기서부터는 내 교재에는 없다. 신선한 도덕을 기대하면서 내 구태의연하다고 할만도 한 관록(貫錄)을 버리겠노라. 다만 이제부터 내 부족하나마 노력에 의하여 획득해야 할 것은 내가 탈피할 수 있을 만한 지식의 구매다. 나는 내가 환갑을 지난 몇 해 후 내 무릎이 얼어서는 날까지는 내 〈오크〉재로 만든 포도송이 같은 손자들을 거느리고 다점에 가고 싶다. 내 아라모드는 손자들의 그것과 태연히 맞서고 싶은 현재의 내 비애다. 전질 이러다가는 내 중립지대로만 알고 있던 건강술이 자칫하면 붕괴할 것 같은 위구(危懼)가 적지 않다. 나는 조심조심 내 앉은 자리에 혹 유해한 곤충(昆蟲)이나 서식하지 않는가 보살펴야 한다. T군과 마주 앉아 싱거운 술을 마시고 있는 동안 내 눈이 여간 축축하지 않았단다. 그도 그럴 밖에. 나는 시시각각으로 자살할 것을 그것도 제 형편에 꼭 맞춰서 생각하고 있었으니― 내가 받은 자결의 판결문 제목은 『피고는 일조(一朝)에 인생을 낭비하였느니라. 하루 피고의 생명이 연장된느 것은 이 건곤의 경상비를 구태여 등귀(騰貴)시키는 것이어늘 피고가 들어가고자 하는 쥐구멍이 거기 있으니 피고는 모름지기 그리 가서 꽁무니 쪽을 돌아다보지는 말지어다.』 이렇다. 나는 내 언어가 이미 황막한 지상에서 탕진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정신은 공동(空洞)이요, 사상은 당장 빈곤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유구한 세월을 무사히 수면하기 위하여, 내가 몽상하는 정경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입을 다물고 꿀항아리처럼 잠자코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몽고르퓌에〉 형제가 발명한 경기구가 결과로 보아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의 발달을 훼방 놀 것이다. 그와같이 또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 발명의 힌트의 출발점인 날개가 도리어 현재의 형태를 갖춘 비행기의 발달을 훼방 놓았다고 할 수도 있다. 즉 날개를 펄럭거려서 비행기를 날으게 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차륜을 발명하는 대신에 말의 보행을 본떠서 자동차를 만들 궁리로 바퀴 대신 기계장치의 네 발이 달린 자동차를 발명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억양도 아무 것도 없는 사어(死語)다. 그럴 밖에. 이것은 〈장 꼭또〉의 말인 것도. 나는 그러나 내 말로는 그래도 내가 죽을 때까지의 단 하나의 절망 아니 희망을 아마 〈텐스〉를 고쳐서 지껄여 버린 기색이 있다. 『나는 어떤 규수작가를 비밀히 사랑하고 있소이다 그려!』 그 규수작가는 원고 한 줄에 반드시 한 자씩의 오자를 삽입하는 쾌활한 태만성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이 여인 앞에서는 내 추한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거동의 심리적 여유가 없다. 이 여인은 다행히 경산부다. 그러나 곧이듣지 마라. 이것은 다음과 같은 내 면목을 유지하기 위해 발굴한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결혼하고 싶어하는 여인과 결혼하지 못하는 것이 결이 나서 결혼하고 싶지도 않은 저쪽에서 결혼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 여인과 결혼해 버린 탓으로 뜻밖에 나와 결혼하고 싶어하던 다른 여인이 그 또 결이 나서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렸으니 그야말로―나는 지금 일조(一朝)에 파멸하는 결혼 우에 저립(佇立)하고 있으니――일거에 삼첨(三尖)일세 그려.』 즉 이것이다. T군은 암만해도 내가 불쌍해 죽겠다는 듯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 보더니, 『자네, 그 중 어려운 외국으로 가게, 가서 비로소 말두 배우구, 또 사람두 처음으로 사귀구 그리구 다시 채국채국 살기 시작허게, 그렇거능게 자네 자살을 구할 수 있는 유일의 방도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그럼 박정한가?』 자살? 그럼 T군이 눈치를 채었던가. 『이상스러워할 것도 없능게 자네가 주머니에 칼을 넣고 댕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자네에게 자살하려는 의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겠나. 물론 이것두 내게 아니구 남한테서 꿔온〈에피그람〉이지만.』 여기 더 앉았다가는 복어처럼 탁 터질 것 같다. 아슬아슬한 때 나는 T군과 함께 바를 나와 알마치 단성사 문 앞으로 가서 3분쯤 기다렸다. 융과 姙이가 1장 2장하는 문장처럼 나란히 나온다. 나는 T군과 같이 「만춘(晩春)」시사(試寫)를 보겠다. 융은 우물쭈물하는 것도 같더니 『바통 가져 가게.』 한다. 나는 일없다. 나는 절을 하면서 『일착선수(一着選手)여! 나를 열차가 연선(沿線)의 소역을 자디잔 바둑돌 묵살하고 통과하듯이 무시하고 통과하여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순간 姙이 얼굴에 독화(毒花)가 핀다. 응당 그러리로다. 나는 이착(二着)의 명예 같은 것은 요새쯤 내다 버리는 것이 좋았다. 그래 얼른 릴레이를 기권했다. 이 경우에도 어휘를 탕진한 부랑자의 자격에서 공구(恐懼) 횡광리일씨(橫光利一氏)의 출세를 사글세 내어온 것이다. 姙이와 융은 인파 속으로 숨어 버렸다. 〈갸렐리〉의 어둠 속에 T군과 어깨를 나란히 앉아서 신발 바꿔 신은 인간 코미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랫배가 몹시 아프다. 손바닥으로 꽉 누르면 밀려 나가는 김이 입에서 홍소(哄笑)로 화해 터지려 든다. 나는 아편이 좀 생각났다. 나는 조심도 할 줄 모르는 야인(野人)이니까 반쯤 죽어야 껍적대이지 않는다. 스크린에서는 죽어야 할 사람들은 안 죽으려 들고 죽지 않아도 좋은 사람들이 죽으려 야단인데 수염 난 사람이 수염을 혀로 만지적만지적 하면서 이쪽을 향하더니 하는 소리다. 『우리 의사는 죽으려 드는 사람을 부득부득 살려 가면서도 살기 어려운 세상을 부둑부둑 살어가니 거 익살 맞지 않소?』 말하자면 굽달린 자동차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고들 있다. 나는 차츰차츰 이 객(客) 다 빠진 텅 빈 공기 속에 침몰하는 과실씨가 내 허리띠에 달린 것 같은 공포에 지질리면서 정신이 점점 몽롱해 들어가는 벽두에 T군은 은근히 내 손에 한 자루 서슬 퍼런 칼을 쥐어 준다. (복수하려는 말이렸다.) (융을 찔러야 하나? 내 결정적 패배가 아닐까? 융은 찌르기 싫다.) (姙이를 찔러야 하지? 나는 그 독화(毒花) 핀 눈초리를 강막(綱膜)에 영상(映像)한 채 왕생(往生)하다니.) 내 심장이 꽁꽁 얼어 들어온다. 빼드득 빼드득 이가 갈린다. (아하 그럼 자살을 권하는 모양이로군, 어려운데―어려워, 어려워, 어려워.) 내 비겁(卑怯)을 조소하듯이 다음 순간 내 손에 무엇인가 뭉클 뜨뜻한 덩어리가 쥐어졌다. 그것은 서먹서먹한 표정의 〈나쓰미깡〉, 어느 틈에 T군은 이것을 제 주머니에다 넣고 왔던구. 입에 침이 쫘르르 돌기 전에 내 눈에는 식은 컵에 어리는 이슬처럼 방울지지 않는 눈물이 핑 돌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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