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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회 드시고 싶다는 두 노인 모시고 삼천포 바닷가 횟집을 찾았다. 저자거리에 오일장마다 활어를 가지고 와서 생선회를 파는 사람이 있다. 장날마다 회를 사다 드렸지만 그 생선회로는 양에 차지 않으신 것인지. 바깥바람을 쐬고 싶어서 그러시는지. 나가자면 나갈 수밖에 없다. 삼천포에 사는 도예 가에 시인이신 지인의 도움을 받았다. 걸음도 시원찮은 시모와 나 때문에 수산시장을 돌아다닐 수도 없어 횟집으로 직행한 것이다. 시인께 싸고 맛있는 집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친동생이 수산시장 근처에서 횟집을 한단다. 덕분에 편하게 맛난 회를 양껏 먹었다.
시부는 쌩쌩하지만 시모는 장거리 여행도 버거워하신다. 당신 옷 하나 챙겨 입지 못하실 정도로 정신이 온전치 않지만 바깥바람 쐬자는 말에 얼굴이 활짝 퍼진다. 외출준비에서부터 딸은 할머니의 손발이 되었다. 딸의 애교에 두 노인은 웃음을 연거푸 터뜨린다. 시부는 날마다 생삼에 우유를 갈아드시는 덕인지 더 건강하신 모습이다. 회와 매운탕으로 포식을 하고 나오니 옆 가게가 바로 종친회 식구다. 시부의 장광설이 시작된다. 그 집 어르신과 잘 아는 사이였다는 것, 젊어서 같이 문중대소사를 오랫동안 봤다는 것 등등, 건어물은 생필품인데다 싸다. 팔아주고 싶어 멸치며 황태며 미역이며 양껏 샀다. 같은 성씨라는 것이 참으로 큰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 같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다. 낮술 몇 잔에 취한 딸 때문에 진풍경을 연출했지만 그것도 잃어버린 추억의 한 장면 같아서 기꺼이 웃는다. 딸의 입장에서 안쓰럽다. 빈틈없이 야무졌던 할머니의 풀어진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는 딸이다. 어느 집이나 노인이 오래 살면 잡음은 예상된 길이다. 노인 모시기 힘든 것이야 누구나 공감하는 일이다. 특히 바깥노인이 오래 살면 더 힘에 부친다. 독선적이고 가부장적인 시부 같은 노인이 대다수기 때문이다. 평생 차려주는 의식주에 익숙한 노인이기 때문이리라. 마음 여리고 노인들에게 정이 많은 딸이기에 상노인과 중노인 틈새에서 힘이 든 모양이다.
두 노인을 시댁에 모셔다놓고 돌아와 나는 뻗었다. 숙제를 끝내 마음은 홀가분한데 몸은 여전히 천근이다. 쉽게 풀릴 피로는 아니리라. 내일은 딸도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저것 챙기다보니 저녁 답이다. 수영장에 가서 놀다왔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승으로 다시 수영장이 문을 닫을지도 모르겠다. 수영장 문 안 닫기를 간절히 빈다. 수영장이 나를 살린다는 농담은 진담이다.
그러나 밤에 딸은 어지럽고 속이 매슥거린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생선회에 체한 것 같다. 네 노인 모시고 다니며 보호자노릇을 하느라 힘이 들었던 것일까. 손가락 혈을 따고 약손을 하고, 소화제를 먹이고, 이 것 저 것 챙겨 먹이다보니 자정이 지나고 새벽별이 한창이다. 응급실에 데리고 가야하나 어쩌나. 가슴을 졸이다 쌀뜨물 생각을 했다. 어릴 적 친정아버지께서 약주를 좋아하셨다. 술에 절어 들어오시면 할머니는 ‘야야, 쌀뜨물 갈아라.’ 어머니께 명령하셨다. 커다란 자배기에 쌀 한줌을 놓고 몽돌로 싹싹 갈아 하얀 뜨물을 받아 아버지께 먹이셨다. 몸도 못 가눌 정도로 휘청거리던 아버지께서 쌀뜨물 한 그릇을 드시고 큰 대자로 뻗으셨지만 다음날 너끈히 일어났었다. 나도 딸을 위해 쌀을 갈았다. 몽돌이 아니라 믹스기에 넣고 확 갈아서 체에 걸렀다. 쌀뜨물 한 그릇을 마시고 방에 들어가 누웠던 딸은 금세 튀어나온다. 속에 것을 다 게워내는데 ‘이젠 괜찮을 거야.’ 딸의 등을 토닥거렸다.
딸은 어지러움과 매슥거림이 가라앉았단다. 그 사이 나는 쌀뜨물 빼고 남은 찌꺼기 쌀로 미음을 끓였다. ‘체기는 내려갔나 보다. 빈속은 또 쓰릴 거다. 이거 조금만 먹어 봐. 속이 편해질 거야.’ 미음을 적당히 식혀 조선간장과 함께 내밀었다. 딸은 간장을 찍어 미음 반 그릇을 먹더니 잠이 올 것 같단다. 다 큰 딸을 품에 안고 잤다. 얼마 만에 딸과 함께 잠드는 밤인가 싶다. 품에 안긴 딸의 고른 숨소리를 듣고서야 나도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