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글쓴이 산골소년
‘이걸 …전해야 할 텐데.’
길가에 엎어진 사람의 눈에 흰색 개가 비친다. 그는 힘겹게 손을 들어올려 개에게 이리오라 손짓을 했다. 제법 영특한 개였는지, 그에게 다가와 고개를 내밀었다. 그가 빙긋 웃으며 한쪽 손에 쥔 채 놓지 않고 있던 사과를 개에게 건넸고 개는 그 사과를 덥석 물고 어딘가로 몸을 이끌었다. 그가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편하게 눈을 감았고 곧 팔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그래, 어서 가거라. 어서… 그리고 네가 날 대신해서 전해다오…’
의자에 몸을 맡기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연우는 눈물이 찔끔 나올 만치 크게 하품을 했다. 한 손에 든 비닐봉투에는 일주일치 장거리가 가득 하다. 어머니를 일찍이 여윈 연우로서는 다른 가정에서 어머니가 맡아야 할 몫까지 자신이 책임져야 했다. 그의 아버지는 워낙에 귀찮음을 많이 타 장이며 식사며 하려고 들지 않았다. 철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잠시 머릿속에 떠올린 연우가 또 입을 하마마냥 떡하니 벌렸다. 잠을 설쳐 피곤하고 눈이 설설 감겨온다. 연우는 자신이 잠을 설친 이유를 아버지 탓으로 돌렸다.
어제저녁 연우의 아버지가 주워온 개가 문제였다. 어디서 허연 개를 주워와 가지곤 얼굴 앞에 턱하고 내놓고 고작 하는 말이, 이름은 둥실이로 정했다 라니. 연우는 자신이 개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집에 개를 들여 논 아버지가 서운하기만 했다. 하다못해 고양이 정도였더라면 그도 흔쾌히 허락했을 텐데. 마누라도 없이, 홀로 늙어가는 처지를 연우가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직업이 자칭 프리랜서였기에 아무도 없는 집을 지키기가 쓸쓸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연우는 개만은 한사코 반대 할 수밖에 없었다.
부자간에 대판 싸움이 일어났다. 평소에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게 하필 그날 터져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결국 개를 주워왔던 곳에 오늘 다시 돌려놓기로 서로 간에 합의를 봤다.
연우는 비닐봉투를 내려다 봤다. 검정 비닐봉투 안에는 비교적 사과가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연우는 사과를 바라보며 실실 쪼갰다.
사과로 사과를 한다는 우스운 행동을 시작한 건 그의 아버지가 먼저였다.
예전에 부자간에 주먹이 오고 갈 정도로 싸웠던 일이 있었다. 물론 일방적 때리는 건 아버지 몫이고 연우는 그저 자신의 몸을 지키려 노력하는 정도였지만. 아무리 그들의 가정이 다른 가정에 비해 다투는 일이 잦다고 쳐도 주먹이 오고 갈 정도의 다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싸움이 끝난 뒤 집안 분위기가 몹시 가라앉았었다. 한마디 말이 오고가지도 않고 같은 밥상에 앉기도 꺼려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그의 방에 들어서며 냅다 사과를 건네 왔다. 그러며 말하길,
“옛다, 사과 받아라.” 랬다.
연우는 사과를 먹으며 아버지를 묘한 눈길로 쳐다봤고 아버지는 몸을 긁적이며 말을 꺼냈었다.
“그럼 사과 한거다?”
아버지의 뜻을 알아차리고 연우는 다시금 사과를 깨물었다. 이런 철없는 아이디어를 짜낸 아버지가 우스워 연우는 미소 지었었다. 그 후로 다툴 적마다 그들은 사과로 화해했었다.
광활한 과수원이 눈앞에 펼쳐져있다. 지평선이 맞닿는 곳까지 온통 사과나무 투성이다. 그런 과수원에 연우가 홀로 서있다. 둘러봐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사과나무뿐. 연우는 지금 혼란상태다.
어리둥절해 있는 연우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는 뭔가가 있었다. 연우가 고개를 숙여 응시하니 그것은 작은 꼬마아이였다. 대여섯 살은 먹었을까. 그 꼬마는 연신 연우의 바지를 잡아당기며 자신에게 관심을 유도해내고 있었다. 마침내 연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자 꼬마는 환하게 웃으며 연우의 주위를 뱅뱅 돌며 뜀뛰기를 하기 시작했다.
연우의 눈앞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꼬마가 자신의 곁을 한 바퀴씩 돌 적마다 꼬마는 마치 한살씩 먹는 것처럼 자라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우의 배꼽에도 못 미치던 녀석이 눈 깜짝할 사이에 어깨까지 자라났다. 꼬마는 돌고 돌고를 반복하여 금세 연우와 키와 비슷할 정도까지 무럭무럭 키를 키워나갔다.
헌데 연우는 꼬마, 아니 이제 사내라고 불러야 할 사람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낯설기는커녕 오히려 친숙한 얼굴이라 느껴졌다. 사내가 연우의 곁을 돌면 돌수록 눈가의 주름도 하나둘 수를 더해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익숙하게 느껴지는 사내의 모습. ‘아, 그래.’하며 연우는 작게 탄성을 질렀다. 사내의 얼굴은 영락없이 연우의 아버지의 얼굴과 닮았다.
연우가 의문 섞인 목소리로 ‘아버지?’하고 사내를 부르자 사내는 빙긋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연우의 아버지라 생각되는 사내는 연우에게 다가와 온기어린 손길로 연우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기 시작했다. 연우는 부자간의 이러한 행위가 참 오랜만이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다 큰 나이에 받아보는 쓰다듬도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연우는 부자간의 친목을 막는 벽을 부수고 한시라도 빨리 화해를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평소에 멀리 느껴지던 아버지랑 보다 가까워지길 원했다. 마침 도구로 쓸 사과도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아무 사과나 하나 따다가 평소처럼 서로 나누기만 하면 화해는 이루어질 것이라 연우는 믿고 있었다.
그 때, 연우의 아버지가 격려의 뜻으로 연우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버지는 주름이 가득 잡힌 눈웃음으로 연우의 눈을 바라보고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연우는 어디로 가시냐고 묻고 싶었으나 접착제로 붙여 놓은 듯 입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연우의 아버지는 어느새 지평선이 마주 닿는 곳까지 도달해 있었다. ‘아버지, 어디로 가시나요?’ 연우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과수원에 울려 퍼진다.
덜커덩하는 소리와 함께 연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잠깐 잠이 들었었나 보다.
연우의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덜커덩 소리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였나 보다. 연우도 황급히 짐들을 챙기며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섰다. 연우는 일층에서 내려 출구로 향했다.
출구에서 마주하는 밝은 햇살에 연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햇살 사이에는 허연 개 한마리가 존재하고 있었다. 눈에 익은 것이 아마도 아버지가 주워온 개인 것 같다며 연우는 추측했다. 개가 앞발을 놀려 앞에 놓여진 사과를 연우 앞까지 굴려 보냈다. 연우는 무릎을 굽혀 사과를 주워냈다. 피 색깔 마냥 붉게 익은 사과였다.
집에 가는 좁은 길목을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도로에 트럭을 세워 사과를 파는 노점상 앞이었다. 사람들은 트럭을 둘러싸고 제각기 쑥덕거렸다. 언뜻 스치며 지나가는 연우의 눈에 핏자국이 보였다.
아까부터 손에 쥐고 있던 사과를 옷에 쓱쓱 문지르고 한입 깨물었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퉤퉤 뱉어냈다. 개가 연우에게 건넨 사과는 달기는 커녕 어이가 없을 정도로 쓴 맛의 사과였다. 아버지나 드려야겠다며 연우는 사과를 봉투 안에 담았다.
오늘은 부자간에 화해를 도모하며 사과로 배를 채울지도 모르겠다고 연우는 생각했다. 사과로 사과를 한다는 것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재미있는 발상인지라 연우는 피식 웃어보았다.
적막한 영안실. 그곳을 연우는 쓸쓸히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이 알려주길. 노점상에서 물건을 사던 도중 도로에서 차가 튀어나와 박았단다. 그렇게 연우의 아버지는 영영 세상을 떴단다. 무관심하게 스쳐 지나간 그 트럭 앞에서 아버지는 세상을 달리했단다.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연우에게 가장 먼저 알려온 것은 경찰이었다. 갑자기 접한 안타까운 소식은 연우를 절망에 빠뜨렸다. 이제야 아버지랑 친해지려 다짐했는데. 연우의 가슴에 후회의 물결이 밀려왔다.
요 며칠 사이, 많은 사람들이 연우에게 찾아와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떠나갔다. 아버지의 관 앞에서 엉엉 울부짖는 사람들도 이따금 눈에 띄었고 그런 때에 연우는 묘한 안도를 느끼곤 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도 있다며.
영안실에 앉아있던 연우는 작은 움직임조차 없이 연신 관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면 죽은 사람이 돌아오기라도 한다는 듯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관을 응시하던 연우가 몸을 슬쩍 일으키고 밖으로 향했다.
한참을 나가있던 연우가 돌아왔을 때 그의 오른손에는 검은 비닐봉투가 들려있었다, 관 앞에 털썩 주저앉은 연우는 봉투에 손을 넣어 부스럭거리며 사과 두개를 꺼냈다. 연우는 꺼낸 사과를 옷에 쓱쓱 문지르고 하나는 아버지 관위에 올려 두며 말했다.
“많이 늦었지만, 사과 받으세요.”
정말 많이 늦었네요. 사실 며칠 전에 나눴어야 되는 건데. 연우는 속으로 연속해서 되뇌며 사과를 와삭 깨물었다.
“……써.”
눈물이 흘러내려 사과를 적시고 손을 적셨다. 한입 깨문 사과는 지독한 이별과 슬픔의 맛이었다.
하... 의외로 사과로 사과를 하는 계기를 만드는게 난감했어요.
흠, 수정할 소설이 넘쳐나는데 또 수정할 소설을 만들다니;;;
뭐, 포인트를 두는 연습할겸, 사과에 초점을 맞췄는데;
역시 어렵네요;; 뜻대로 안되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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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문 문자앙~!
복선이 많은 소설이네요. 뒤늦은 '사과'의 회한이 그대로 손에 잡힐 듯합니다. 건필하시구요, 글 앞에는 가문 문장 [G]를 달아야 한답니다.
요즘 단편만 보이네. 건필해-!
굿 잡 건 필.
우와, 멋있어요+_+[감동] 여우각시 언제 올려요? 잉잉[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