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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손주가 도착하기 전, 2박 3일 동안 필요한 짐을 정리하여 꾸려 차에 실어 놓았다. 반려견을 데리고 나가 산책을 한 후 귀가하여 강원도 평창 권역과 강릉 등에 대한 기상조건을 살피다. 올 겨울 최고의 낮은 기온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과거의 활동사항을 생각하고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복장과 준비한 물품만으로 충분하게 이겨낼 것이라 생각했다. 늦은 밤 11시 45분 도착한 딸과 손주, 잠을 잔 후 오전 6시 30분경 기상하여 떠날 준비를 끝낸 후 8시 무렵 출발하였다. 월정사 박물관 마을에 도착 예정시간은 약 2시간 정도로서 10시를 잡았었다. 집을 출발 강변도로를 진입, 팔당댐을 지나 퇴촌 입구를 지난 후 경안 IC로 진입하여 제2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달리다 광주 휴게소에서 주유와 가벼운 아침을 챙기기 위하여 휴게소에 들렀다. 이런저런 일로 예상외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어 지체되었다. 대신 점심시간을 건너뛰고 이른 저녁을 선택하여 활동시간은 연장해 두었다. 다시 광주 휴게소를 출발, 고속도로 통행환경은 쾌적하였다. 막힘없이 내 달려 도착한 오대산 월정사 박물관 마을, 주차를 시킨 후 입장권 2매와 주차료를 계산하고 아름다운 공원을 걸어 왕조실록. 의궤 박물관 앞에 도착하였다. 본격적으로 2박 3일 여행 중 첫 문을 연 것이다.
오대산 월정사에 주관 아래 세워진 오대산 박물관 마을은 자연명상마을, 왕조실록. 의궤 박물관, 월정사 성보박물관, 만월정, 청량지, 한강 시원지 체험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차에서 내려 박물관 마을 입구에 서자 하늘빛과 햇살은 보기 드물게 겨울 고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으나 살을 에는듯한 찬바람과 체감 온도는 지독한 시베리아 엄동이 담겨 기습적으로 다가왔다. 손이 무척 시렸다. 꼭 투명하게 얼어버린 얼음이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깨질 것처럼 카메라를 든 손도 찬바람에 전부 깨져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서둘러 겉옷을 바꾸고 머플러로 목을 감싼 후 박물관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아~~ 많이 춥다 하며 몸을 추슬러가며 박물관을 향해 올라갔다.
주혁이랑 여행을 평일로 선택하는 것은 자연학습시간으로 허용된다는 점과 평일은 타인들 동선과 엉키지 않고 충분한 학습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과 할머니도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딸과 가이드 할아버지도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평소 열이 많은 체질인 주혁이도 오늘만큼은 단단히 준비하도록 채근해 주었더니 완벽한 복장이라 마음이 놓였다.
오대산 사고(史庫)는 사각, 선원각으로 구분되는데 사각에는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 의궤 등이 보관되었으며 선원각에는 왕족의 족보, 행정서류들이 보관되어 있다. 선조 이전 실록들은 완성본이 아니라 교정쇄 본이라 가치가 크다고 한다.
출입 절차에 따라 신분, 체온 등을 체크한 후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동선이 간략하면서도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박불관 건물로서 제격이었다.
마침 로비 한쪽에 타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종류가 나뉘던 가마가 있는데 임금이 타면 연(輦)과 가교(駕轎), 왕녀가 타면 덩이라 불렀는데 왕과 왕비가 함께 타던 연이 있어 손주를 타도록 한 후 사진을 찍어 주었다. 어느새 꼬맹이 울보였던 아이가 사춘기 전형적인 모습이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 대견하기도 하고 사춘기를 탈 없이 겪어가며 더욱더 성숙의 길로 접어들기를 기원하며 사진을 찍어 두었다.
박물관 전시된 자료를 관람하기 전 사고와 관련된 영상물이 있어 시청을 하기 위하여 조용히 착석하고 잠시 명상한 후 시청하기 시작하였다.
할머니와 엄마는 옛 학창 시절 배움의 추억으로 되돌아 가 기억을 살리며 시청을 하고 주혁이 지금껏 공부를 해 오면서 단편적으로나마 접촉하였던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되새김하며 시청하였다.
사고란? 조선의 소중한 책자들을 후대까지 보관하기 위하여 조정의 주도로 지방 깊은 산속에 건립한 시설물이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게 주권을 강탈당한 후 1914년 실록은 동경제국대학, 의궤는 일본 궁내청으로 반출되어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혜문 스님의 의하여 동경대에 실록 47 책, 궁내청에 의궤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후 월정사 정념 스님, 법상스님, 학계, 정계, 행정계 등 각계각층으로 조선왕조 살록 환수위가 구성되어 2006년 오대산본 왕조실록, 2011년에는 의궤를 반환받아 국립 고궁박물관에 소장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깊은 산중에 사고를 만들어 둔 것이다.
열공하는 주혁 군! 이 아이를 위하여 사진을 순서대로 간추려 두었다. 나중에 사진을 보면서 주석을 달아 놓은 내용만으로도 실록과 의궤에 대해서 깨닫게 하려는 목적의 시청각 자료다.
열공하는 모습을 가끔 남기려는 목적으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디지털화된 장치가 있어 스스로 잘 익혀나갈 수 있어 좋다.
오대산 사고를 관리하는 책임은 월정사 주지가 실록 수호 총섭으로서 사고를 지키는 담당이었다.
태조 이성계로 시작된 조선시대 연대기 앞에 세우고 왕자의 난 등에 대한 역사적 사건을 간추려 설명을 해 주었더니 공감을 하며 좋아하였다.
조선 이조실록은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 역사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책으로 1,893권 888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실록으로는 성종실록, 중조 실록, 선조실록 오대산 사고에 있다.
알 수 없는 군주 영조, 자식을 죽인 군주 뒤늦게 후회하며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군왕으로 세우지만 되돌릴 수 없는 아픔은 결국 정조가 효심으로 부모를 위로하지만 그 또한 정치의 희생물이 되어버린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국가는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게 되는 암흑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위치를 잡고 서 있으면 조명이 밝아져 상세하게 전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격려 차원에서 가끔 엄마가 안아 주기도 하면서 전시물들을 익혀 나갔다.
조선 왕조의 의궤는 왕실의 의식과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다. 중요한 의례들이 자주 열리는 궁궐에서의 본보기를 만들어 후대에 전승할 목적으로 제작하는 것이다. 각 의례와 행사가 실현될 때마다 도감부에서 구체적인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기록하여 만들어 놓은 서책이 바로 조선왕조 의궤이다.
고종 명성왕후 가례도감의궤, 순종 순정효황후 가례도감의궤, 철종 국장도감의궤, 고종 대례의궤,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 등이 오대산 사고본에 있다.
학습을 위하여 천천히 다음칸으로 이동하는 주혁 군.
간략한 설명만 해주고 스스로 찾아가며 박물관 속에 깃든 역사의 궤를 찾고 맞춰 보라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이동하면서 토막 시간을 이용하여 질문을 하여 인지 정도를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충설명을 해주었으며 학교에 제출하는 보고서와 할아버지가 작성한 기행문과 비교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눔 할 계획이다.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 아들 사랑이 참 끔찍한 엄마다. 처녀 때 과연 시집가서 아이라도 잘 키을 수 있을 런지? 하던 아비의 추측은 한참 빗나가고 말았지만... 쓸데없는 추측이 되고 말았다.
왕조실록. 의궤 박물관에서 나오면 아름다운 회랑이 길게 늘어서 있다. 회랑 끝에 한강 시원지 체험관이 관람자를 기다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회랑 걷는 것을 좋아한다. 길에 일종이지만 목적지가 확실하여 이탈할 이유가 없다는 안정감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기분 좋은 회랑을 걸어 먼저 도착하여 하늘 배경이 참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두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오대산 우통수, 금강연이 한강의 시원지로서 기록되어 있으며 매년 봄, 가을에 한강 시원제를 올렸다는 기록도 있다. 역사적 가치를 전달할 목적으로 한강 시원지 체험관을 신축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참 좋은 선례다.
회랑을 빠져나오면 잔디밭과 멋진 소나무들이 관람자 마음을 이끌어 준다. 그리고 토끼들이 방목되어 마음껏 오고 가며 관람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사진을 찍어 주며 주변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잡초들이 있어 뽑아 먹이로 주는 모습이 보기 좋아 남긴 사진이다.
자연 물들 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참 평화롭다. 이기적인 거래의 성사가 없기 때문에 느껴지는 기분이다.
체험관의 목적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글이다. 생명이 떠난 물은 오염수다. 인간이 이룬 문명 안에도 정의와 진리가 사라지면 오염된 사회가 되는 것인데... 가장 무게감 있게 서려야 할 정의와 진리가 정치적 목적에 의하여 사라지게 한 정권이 진보정권이다. 참 아일러니 하다는 생각을 하며 슬픔이 몰려왔다. 대신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 라고 하신 성철 스님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털어낼 수 있었다. 물을 산이라 하고, 산을 물이라 하는 바보들이 많은 세상이다.
찻물에는 삶의 행복과 불행을 담은 맛이 다 들어 있는 찻물이다. 달고, 맵고, 쓰고, 신맛과 떫은맛도 지니고 있어 인간에게 다도는 소중한 덕목의 차의 성질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떠 올리며 주혁 군에게 차속의 비밀을 익히도록 하였다.
이 그림 하나만으로도 남한강을 뗏목을 타고 내려오던 산간지방의 민초들 삶의 애환이 떠올려진다. 팔당, 봉안, 두미 강에서의 민초들의 고난이 연상되는 것이다.
우통수에 대한 시청각 자료를 감상하고...
동양인들의 물에 대한 사상도 익힐 수 있다.
심오한 물의 신비가 담겨있는 육각수는 물의 화학적인 구조 중 육각형의 고리 구조를 가진 물을 일컫는 말이다. 물의 분자구조는 (-) 산소이온 원자 1개와 (+) 수소이온 원자 2개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액체 상태의 물 분자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고리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3, 4, 5, 6, 7 각수 등 다양한 유형의 결합이 가능하지만, 5 각형 고리 구조, 5 각형 사슬구조, 6 각형 고리 구조 등 3종류가 안정적인 결합 형태로 꼽힌다. 이 중 6 각형 고리 구조를 이루는 물이 바로 육각수다.
분자 구조가 5각이든 6각이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물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흘러가는 물이 썩지 않는 이유, 사람 몸속의 체액이 부패하지 않는 이유가 물의 육각형 구조, 즉 육각수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은 우리 몸의 60%~80%를 차지한다. 혈액 등 체액의 경우는 90% 이상이 물이다. 물 전문가로 불리는 KAIST 전무식 박사는 체액 중 전해질로 조성된 물을 분석한 결과 62%가 육각수, 24% 오각수, 나머지가 사각 수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혔다. 건강한 인체가 가장 선호하는 물의 구조가 육각수라는 결과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육각수의 비중이 높아지면 인체가 질병 등에 대처하는 능력이 커진다는 실험들이 이뤄졌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육각수에 대한 시청각 자료를 끝으로 한강 체험기는 끝을 맺었다. 옛적 물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기억해 두었던 육각수에 대하여 위와 같이 설명해 주고 체험관 빠져나왔다.
나가는 길을 청량지와 단월 정을 선택하였다. 뒤에 보이는 정자가 단월 정이고 밑에 보이는 물이 바로 청량지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를 이용하여 월정사로 이동하였다. 어느새 빛은 노루꼬리로 변해 있었다. 이동하면서 주혁이에게 좋았느냐? 물었더니 좋았다고 화답을 한다. 표정이 참 맑다. 이동하는 중에 일주문을 지나면서부터 눈 길이 이어졌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려다 잠시 머뭇거렸다. 제노의 무릎 때문에 주차 위치를 바꾸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다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출가학교 한옥 사채 주차장으로 옮겨 주차한 후 월정 사 경내로 들어갔다.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 월정사(月 精 寺), 자장율사는 638년 당나라 유학을 떠나 산시 성 오대산을 찾아 참배하며 문수보살을 친견하게 된다. 이후 643년 경주로 돌아와 황룡사 구층 목 타을 건립하는 등 장엄 불사를 완성하고 신라의 땅 오대산을 찾는다. 자장율사는 중대 비로봉에 석가모니불의 두개골 사리를 봉안한다. 그리고 현재의 월정사 터에 이르러 풀로 집을 짓고 머문다. 비로소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상주 설법처이자 부처님 사리가 모셔진 불교 성지 된 것이다. 현재는 팔 각구층 석탑 보수공사로 절마당의 고요한 모습이 흩어져 있다. 주혁이가 각 건물에 대하여 관심이 많아 엄마하고 다녀 보라고 자유 시간을 주었다.
나 역시 한가롭게 그러한 마음으로 절의 추녀를 돌며 가람의 모습과 자연의 모습을 비교하며 조화를 발견해 나가고 있었다. 절마당만 빼놓고 다른 곳은 참 한가롭다.
검은 까마귀 한 마리가 삼성각 언덕 볕이 좋은 곳에 앉아 있더니 해가 넘어가자 날아 올라 지장전 지붕 위로 날아 올라갔다. 산사의 겨울 저녁은 참 빠르게 다가온다. 나도 모르게 산사 경내를 살피면서 나옹선사의 청산은 나를 보고 시를 부르고 있었다.
靑山兮要我 - 청산은 나를 보고 나옹선사 (懶翁禪師)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더더욱 어두움이 내리기 전에 우리도 숙소 용평 리조트로 떠나야 한다. 체크인한 후 저녁을 챙기고 내일 일정을 위하여 휴식을 취해 두어야 한다. 다시 올라 용평 리조트로 출발하여 30여분 만에 도착하였다. 체크인을 한 후 다시 차를 이용하여 한적한 곳에 있는 빌라 숙소로 이동하였다. 3층 2호 숙소 잘 정비되어 있었다. 주혁 군에게 피곤 여부에 대하여 질문을 하니 컨디션이 최고라 답을 한다. 짐을 정리하고 휴식 후 횡계마을 산 마루에 있는 한우 정육식당으로 갔다. 3층으로 규모가 큰 식당이다. 한우의 질이 무척 좋은 집이다. 나는 내시경 이후 식도 염증 문제로 처방을 받아 복용 중인 약이 탈을 일으켜 맑은 곰탕을 시켜 먹었다. 식사 후 안심할 수 없어 다시 상비약을 복용 후 추이를 살피기로 하였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 후 수면을 취하였으나 발왕산 기슭을 휘감고 돌아나가며 부는 바람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보길도 외송리 자갈밭 해변에서 파도가 들어왔다가 나가는 소리만큼이나 자글거렸다. 그러다 잠이 들었는지 동창이 밝아 오는 느낌이 들어 거튼을 들워 보니 아침이었다. 조식은 리조트식으로 오전 7시부터 10시 30분 까지, 적당한 시간을 정한 후
12월 02일. 둘째 날의 시작은 아침식사로 시작하였다. 오늘은 무척 분주한 날이 될 것 같다. 식사 후 강습, 그리고 케이블카를 타고 발왕산 정상과 타워 스카이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그리고 내려와 공룡과 해양관을 찾아 견학한 후 차를 이용하여 강릉으로 이동하여 오죽헌을 탐방하면서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 이율곡의 발자취를 밟아야 한다. 이어서 초당으로 가 허균을 비롯하여 그의 누이 허난설헌 만나고 김시습 박물관까지 살핀 후 사천항으로 가 해물로 저녁을 챙긴 후 다시 대관령을 넘어 숙소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부지런을 떨어야 하지만 아무래도 일정상 초당과 김시습 박물관 견학은 차후로 밀어야 될 것 같다.
식사 시간이 즐거운 주혁 군은 할아버지와 함께 앉았고
건너에는 모녀가 나란히 앉았다.
지금은 대림 시기~~ 곧 성탄이 다가올 것인데 세상은 또 변종으로 시끌벅적 해지고 있는 중이다. 언제 즈음이나 조용해지려는지 통 속을 알 수 없다. 재앙은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멈춰질 것인가? 주혁 군 세대, 아래위 새대에게 시련이 멈추는 시간이 빨리 오도록 기도하지만 그리 밝지 않으니 걱정이다.
모닥불만큼 겨울 정서를 만들어 주는 것도 없을 것 같다. 식사 후 잠시 쉬며 하루의 일정을 스크린해 보며 시간 조정에 심혈을 기울여 보았다.
하나 둘 일정대로 진행한 후
부엉이 벽화가 아름다운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가 미리 탑승권을 발권을 받은 디지털 확인서를 보여주고 케이블카에 올랐다.
바람이 불어 걱정하였지만 25분 만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로비에 설치된 발왕산 권좌에 앉아 스카이 워크 인증 사진을 남겨 두었다.
나 홀로 걸어서 오르고 제노님과 딸과 손주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쓩~~
그러나 체감온도는 영하 50, 강풍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제트기류였다. 위험하다는 판단에서 진입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아쉽지만...
스카이 워크에서 찍은 하늘공원, 이 사진을 찍은 후 산정으로 내려왔다.
모나 파크라는 뜻은 (mother nature park)에서 mona 채집한 후 park를 붙여 만든 신조어다. 어머니의 품 안 같은 자연이란 뜻이다. 스카이 워크를 준공하면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제트기류에 실려 오는 강추위~~ 이런 추위는 최근에 처음 경험하는 겨울 날씨였다. 오래전 선자령 걸음 여행을 정월에 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와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엄동이었다. 그래도 딸과 손주 사진을 찍어주기 위하여 제노 여사님은 적극적 셧터를 눌러 주셨다.
모자지간도 두 손을 꼭 잡고 모텔 역할을 충실하게 하며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오대산 줄기가 계방산과 더불어 일자 형태로 나란히 서 있는데 능선 위로 운해가 일자 띠를 이루며 흐르는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무지개가 보였다가 사라지고 다시 보이기를 반복하더니 사라져 버렸다.
월계수 잎을 엮어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원형 구조물, 주혁 군을 세우고 사진을 찍은 후
딸을 불러 옆에 세우고 다시 사진을 만든 후 스카이 타워 건물 1층으로 내달렸다.
제노 여사의 얼은 몸을 녹여 주기 위하여 권좌에 앉도록 한 후 양 옆으로 딸과 손주가 호위하는 모습을 연출하여 더 이상 추위에 머물 수 없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선자령 보다 바람이 드센 곳이 바로 발왕산 정상이다.
저 아래 마을이 바로 힁계마을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치르면서 마을이 더욱더 발전한 모습이 보인다.
제2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