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변하고 미래는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가운데 전통은 그 시대의 늘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온다. 먼 과거의 통로를 따라 변화되어진 소리가 우리의 가슴을 두드린다.
어둑어둑한 골목에 가로등 불빛이 밤하늘에 아득하게 걸렸다. 인적이 드문 동네길 어귀에 이층집이 보였다. 이층 계단을 오르면서 내 발자국 소리가 리듬을 탄다.
문을 열자, 일제히 방 안의 빛들이 쏟아져 나온다. 빛과 함께 자연을 엮은 소리들도 일제히 따라 나왔다. 캄캄한 도심의 밤에 뿌려진 소리들은 다시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들은 국악이라는 음악을 매개로 교육현장에서 학생들과 소통하는 충북교사국악단 ‘소리마루’다.
충북교사국악단 ‘소리마루’는 2002년 4월 도내 국악에 관심이 있는 교사들이 국악을 배우고 익히며 국악곡의 연주를 통해 열린 공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창단한 동아리로 창단 이듬해부터 매년 정기연주회를 열고 있다.
소리마루 류재정 대표는 “국악이라고 해서 특별한 장르에 한정을 짓지 않으려고 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르기도 하지만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도 다양한 경험의 축적이 교육자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사의 경험이 가장 좋은 교육 자료이고 또한 가장 효과적으로 학생들에게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소리마루 회원들은 학생들에게 우리 국악의 ‘소리 연’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봉사, 긍정적 에너지를 만들다
충북교사국악단 소리마루에서는 정기적으로 다양하게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청원군 은혜의 집, 성모 꽃마을, 단양 은빛마을, 사회복지재단 현양원(용담초현양분교 포함), 옥천 영생원, 음성 꽃동네(꽃동네 학교 포함) 등의 복지시설 및 장애우들을 찾아가서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국악 한마당을 열고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늘 주는 것 보다 받는 것이 더 크다는 나눔의 의미를 깨우치는 소중한 활동인 것이다. 앞으로는 더욱 조직적이며 계획적으로 나눔 활동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다.
현재 청명학생교육원 수학교사로 재직 중인 충북교사국악단 ‘소리마루’ 류재정 대표는 과거 미원중학교에서 운영한 ‘소금반’은 훌륭한 국악교육의 사례였다.
류 대표는 국악을 좋아하여 평소 각자 개인적으로 배우고 있다가 충북교사국악회 소리마루를 만들게 되었고, 새로 부임하는 각 학교에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나누는 국악교실을 운영해 왔다. 그런 그가 2년 전, 미원중학교에 부임해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국악 동아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학생 몇 명을 모아 소금반을 만들어 점심시간, 방과 후 시간 등을 이용하여 아이들에게 소금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금반을 시작한지, 서너 달 지났을 무렵 교장선생은 음악활동을 특별한 축제 때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발표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소금, 보컬, 플릇, 기타반 등 몇 개의 동아리 연합으로 발표회를 갖게 되었던 것. 그랬더니 반응이 놀라웠다. 그 동안 공부에만 치중한 방과 후 활동으로 지쳐있는 학생들에게 예체능 동아리 활동은 다소나마 긍정적 에너지를 만들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이번 발표회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발표 욕구와 목표를 통해 성취감을 느꼈던 것이다. 학생들에게 또 다른 희망과 가능성을 엿보게 한 사건이었다. 그 때 공연을 보고 선생님 몇 분이 소금을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해 왔다. 세분의 선생님들이 합류하여 10명 정도 새로운 분위기의 소금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하게 되었고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국악을 하는 모습은 모두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었다. 약 6개월이 지난 후부터 학교에서의 각종 행사 시, 그리고 미원면 축제, 청원군 생명 쌀 축제, 우수동아리 발표회 등 많은 연주 활동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소금동아리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더욱 열심히 소금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으며, 교내외 많은 행사 등에서 흥겨운 국악 연주로 행사를 빛내기도 하였다.
교육적 성과와 어우러진 참 현장교육
평소 익혔던 국악을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는 국악의 소중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국악과의 소통시간을 많이 꾸려가며 음악으로 제자들과 동료교사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공부만 가르치는 사람으로 인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악기를 배우는 모습을 통해 진심으로 함께 어울려 새로운 음악세계를 공유하는 과정은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했다.
국악공연 단체이지만 교육의 현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송호인 교사는 제11회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종합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과 제15회 창원 전국국악경연대회 신인부 기악부분 대상, 2013 경주만파식적제 제10회 전국대금경연대회 대상을 수상했다. 김성기 교사와 박혜명 교사가 지도한 학생들은 제16회 전국청소년민속경연대회 사물놀이 부문에서 초등부와 고등부 대상을 수상했으며, 정현용 교사가 지도하는 청주교대부설초 ‘소리아띠’는 제11회 전국 국악경연대회 학생단체 국악합주 최우수상을 수상해 120여명의 단원들로 구성된 실력 있는 초등학생 국악관현악단으로 유명하다.
“선생님, 그게 뭐에요? 태평소 아니에요?”
“이건 태평소고, 이건 피리라는 전통 국악기야. 소리 한 번 들어볼래?”
“네, 네!”
태평소 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지자, 큰 소리에 아이들은 깜짝 놀라고, 얼굴이 빨갛게 되어 연주를 하는 나를 보고 아이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하하하! 선생님,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요? 너무 웃겨요!”
“웃기지? 선생님, 다음 주에 공연해. 한 번 보러올래?”
“네! 꼭 갈게요.”
소리마루 공연 당일. 청주 시내에서 공연하는 것이기에 면소재지에 사는 아이들이 잘 찾아 올 수 있을까, 저녁 시간대라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선생님! 저희 왔어요, 응원하고 있을게요.”
도착한 아이들이 연달아 문자를 보내어 응원을 해주었다. 다른 반 친구들도 데리고 왔다고 자랑하며, 맨 앞줄에서 본단다. 떨리는 와중에 내가 열심히 연습한 걸 내 제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기뻤다. 2곡정도 연주를 하자, 관객석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일에는 사고뭉치들이 더 앞장서서 나선다. 우리학교 개구쟁이들이 모두 모여 앞좌석에 앉아서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평소 수업 시간에는 집중 못하던 아이들도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관객은 멋진 연주를 보고 감동을 얻지만, 연주자는 관객의 반응을 보고 감동을 얻어 더 멋진 연주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지니, 더욱 더 열심히, 더 신나게 연주를 하게 되었고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선생님, 어제 선생님 연주하는 거 봤어요. 멋졌어요!”
다음 날, 말 한 마디 해 본 적 없는 다른 반 아이들도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했고, 평소 굳은 표정으로 아이들을 혼내기만 했던 나도 아이들에게 미소로 답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최신 음악만 좋아하고, 전통과 국악은 고리타분한 거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욱 거부감 없이 국악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니 참 고마웠다. 이 일을 계기로 그 해의 아이들과 더욱 가깝게 되었고 학교를 떠난 지금도 연락하며 행복했던 추억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위의 글은 옥산초등학교 정수현 교사의 <우리를 연결하는 끈>이라는 수필 중 일부다. 정수현 선생님은 “나에게 자그마한 꿈이 있다면,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피리 중주단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공연하는 것이다. 또 시간이 흘러 내가 나이가 많이 들어도 국악을 내 주변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수놓아 가고 싶다. 그 시간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열고 우리 문화를 더 친하게 느끼는 순간을 선물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현재 정수현 교사는 충북교사국악단 ‘소리마루’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
국악은 이제 젊은 세대도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소리마루는 많은 장애인과도 국악을 통해 소통하고 함께 국악의 길을 동행하고 있다. 충북교사국악회 소리마루에서는 정신지체, 지체장애 학생들이 공부하는 특수학교인 꽃동네에서도 국악을 전파하고 있다. 꽃동네 장애인들과 충북교사국악단 소리마루에서 실시하는 직무연수를 통해 참여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대금, 소금, 해금, 가야금, 장구의 다섯 개 동아리에서 각자 활동하고 있다.
또한 수업시간에는 유난히 음악활동을 좋아하는 장애학생의 특성을 살려 음악 치료적 활동으로서의 사물놀이, 모둠북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국악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마루의 회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소리마루 송호인(청안초)국장은 “용기를 내어 시작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 특히 박범훈 님의 “소리 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소리 연이란 ‘내가 만난 소리, 내가 만드는 소리, 나를 만드는 소리’ 의 세 가지 인연을 말한다. 어떤 사연이든 음악적으로 감흥을 받게 되어 음악과 인연의 고리가 이어지는 것이 ‘내가 만난 소리’요, 음악이나 악기와 한마음이 되어가며 표현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내가 만드는 소리’이며, 내가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음악이 나를 일깨우고 발현, 수양케 함이 ‘나를 만드는 소리’의 인연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첫 번째 소리 연을 아이들에게 이어 줄 의무까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충북교사국악단 소리마루가 결성된 지 벌써 10년을 훌쩍 넘었다. 가야금, 거문고, 피리, 대금, 소금, 해금, 모듬북, 사물놀이, 남도민요 등 다양하다. 연습은 주1회 2시간을 원칙으로 동아리별로 탑동에 있는 소리마루 연습실을 중심으로 정기모임을 하고 있다. 소리마루에 가입할 수 있는 조건은 ‘국악에 관심 있는 성인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다만, 충북교사국악단라는 이름에서 비롯되는 정체성으로 인하여 대부분 교사들이 지원하고 있다. 현재 10개 동아리에서 회원들이 동의하는 기본적인 절차에 의해서 가입을 하고 있으며 월 회비는 현재 5만원(강사비 포함)이다.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