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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2월12일 동창 송년모임에 참석이 어려울 듯하여, 미리 자수하는 뜻에서
지난 10월에 '영성생활'이라는 가톨릭 잡지에 기고한 글을 동문 카페에 공유해 드립니다.
1년에 두번 발간되는 종교계 잡지인데, '고령화' 특집을 주제로 원고 청탁이 들어와서,
쓰게 된 글입니다.
제목 : 노인 인권
글 : 정진섭 (변호사, 법률사무소 솔 대표)
글을 시작하며
나 자신도 어느새 5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 고령사회의 문턱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에는 별 관심 없던 노인문제가 점점 나의 당면 현안이 되고 있다. 우리 주위에 경제력 약화나 육체적 한계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인이 늘고 있다. 병원에 자주 다녀야 하거나 자식들이 잘 사는데도 따로 살거나 노인요양원에 들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한다는 미덕의 전통이 이렇게 사라지고 있다.
이처럼 ‘고령화’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현상 중 하나다. 이런 때에 “고령화, 거꾸로 읽기”라는 주제로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자는 시도는 시의적절하다. 하지만 늙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점에서 긍정적일까?
가정이든 사회든 어른이 계셔야 중심이 잡힌다. 노인은 육체적으로 약해지나 정신적으로는 경험과 지혜가 풍부해져 가정과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역할을 한다. 젊은 시절에 바깥일이나 사회문제에 주로 관심을 갖던 사람도 노인이 되면 가정적 보람과 재미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이런 조화와 균형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더욱 사랑이 충만할 것이다.
나의 아버지 안드레아님
나의 아버지는 올해 아흔이시다. 일본강점기에 철도청 공무원으로 출발해서, 6·25동란을 비롯해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청렴하게 공직생활을 해 온 분이다. 어머니는 박봉에 시달리면서 여러 자식을 키우느라 무척 고생하셨다. 어머니는 3년 전 여든여덟에 돌아가시고, 지금은 아버지 혼자 지내신다.
아버지는 인터넷 가족 카페를 갖고 계신지 벌써 십년이나 되었다. 다음카페가 한참 인기를 끌 때 내가 ‘안드레아 소식’이라는 가족카페를 만들어 드렸다. 비록 조촐한 공간이지만 아버지께는 떨어진 가족의 소식을 주고받고 사랑을 확인하는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직도 자전거를 타고 한강 고수 부지를 달리는 노익장을 과시하신다. 살고 계신 가양동에서 멀리 잠실이나, 새로 난 아라뱃길 따라 인천까지 다녀오셨다고 자랑하신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하시지만 아들인 나는 너무 무리하실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 아버지를 모시고 일본 오사카 여행을 다녀왔다. 원래 근력이 좋은 분이지만 한두 해 전부터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다. 그러나 도착 다음날부터 지팡이를 내려놓고 젊은 사람들과 함께 닷새 동안 지하철을 타고 걸어 다니면서 구경을 하셨다. 오사카 여행 때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아버지께 해준 조언을 소개한다.
“안드레아님, 세상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부를 이룬 재벌들이 있잖아요. 예컨대 삼성의 이건희 회장 같은 분은 투자 마인드가 남들보다 얼마나 탁월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엄청난 투자마인드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죽음과 함께 전부 사라질 것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자기가 엄청난 부를 이뤘다고 할지라도 자기 죽음과 함께 그 부는 사라지는 것이죠. 가지고 갈 수 없으니까. 자기의 명예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우리가 비록 가진 것이 좀 없다할지라도 죽음을 넘어서 영원히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정말 유일하게 실재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 내 자신이 누구인지 그것에 대해 조금만 투자해 보시죠. 지금까지 살아온 삶보다 더 나은 삶 이런 걸 바라지 말고, 남은 삶에서 뭔가 더 이루려 하지 말고 자신에 대해서 조금만 더 투자해 보세요.“
이 조언을 해준 이는 40대 초반의 젊은이다. 아버지는 겸손하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사실 여태 살아오면서 그런 개념 같은 건 하나도 없었거든. 사실은 나는 뭘 해야 하니까 해야겠다 그렇게만 생각해 왔는데 여기서 며칠 지내면서 느꼈는데 그게 아니었어. 그게 아니다 말이야. 그러고 나니 잠자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살 건가 생각하게 되네. 그런데 내 나이가 벌써 90이 되어가니까 사는 게 문제가 아니야. 솔직히 내가 하루를 살아도 사는 것 같이, 나답게 살아야 할 텐데. 과연 내가 어떻게 될 건가 자꾸 의문이 들고 나는 어떻게 될 건가 이런 게 자꾸 생각이 들더라구.”
아버지의 대답에 그 젊은이는 몇 가지 조언을 보탰다.
“안드레아님은 90여년을 살아오셨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든까지 사신 분보다는 10년을, 일흔까지 사신 분 보다는 20년을 60살까지 사신 분 보다는 30년 더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마세요. 지금까지 충분히 소신대로 살아오셨으니 앞으로 남은 삶이 얼마이든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지 마세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100년을 살았다 할지라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그 삶은 내 삶이 아니라 막연한 누군가의 삶이 될 수밖에 없고, 단 하루를 산다 할지라도 내가 누구인지 알고 살면 그 삶은 바로 내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살까에 대한 생각은 더 이상 하지 마시고, 내가 누구인지 그것을 아는 데에 남은 생을 조금만 더 투자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90세 노인과 40대 초반의 젊은이의 짧은 담소였지만 노인의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한 사랑과 지혜가 함축된 대화였다. 아버지는 젊은이의 조언을 진지하게 경청했고 젊은이는 그의 출중한 사랑과 지혜를 전달해 주었다.
고령층에 접어든 나의 형제자매
내 부모님은 70년을 해로하면서 여러 자식을 낳아 길렀다. 중간에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칠순이 넘은 누님을 비롯해 5남매가 살아 있고, 막내도 50세가 넘어 형제자매가 모두 고령인구에 속하게 되었다. 큰형은 젊은 시절 국제적인 금융인으로 활약한 멋쟁이였는데 어느새 은퇴하여 지하철 공짜혜택을 받는 ‘지공선사’가 되셨다. 버스 운전기사인 둘째형은 60세 정년이 되어 촉탁직원으로 3~4년 연장 근무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나 자신도 25년간 공직생활과 3년간의 법과대학 교수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로 자유직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이 먹는 동안 인생의 굴곡이 없을 수 없다. 경제적인 어려움, 건강 문제 등 우리를 괴롭히는 일은 꾸준히 따라다닌다. 하지만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밝은 마음을 갖고 버티면 해결책이 보인다. 10년 동안 폐암으로 고생하고 계신 매형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독실한 개신교신자인 매형은 여러 차례 힘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의지와 희망을 잃지 않고 건강을 되찾았다. 그래서 몇 년 전 암 치유 성공사례로 언론에 보도된 적도 있다. 요즘도 항암치료를 받고 있지만 긍정적 생활태도에 환자 같은 느낌이 거의 안 든다.
며칠 전에는 매형 문병차 5남매가 모처럼 모였다. 각자 떨어져 살고 바쁜 일상으로 자주 못 만나던 형제자매가 매형 덕택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매형은 우리를 반가운 웃음으로 맞아주고, 손수 운전하여 식당으로 안내까지 하셨다. 도무지 10년 동안 암투병하고 있는 분처럼 보이지 않는다. 매형은 ‘나를 고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건강철학을 몸으로 실천하는 모범적인 분이다. 병이란 무엇인가? 건강의 부재일 뿐이다. 자신의 병을 잊고 즐겁게 지내다보면 중증 암세포도 어느새 사라져 버리는 게 신비한 우리 몸이다.
나의 노인봉사 체험과 직업적 보람
공무원 재직시절 주말마다 집 부근 ‘노인요양원’에 가서 노인들에게 한두 시간 말벗도 해 드리고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가평 꽃동네에 3박4일 봉사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다. 지난해에는 몇몇 지인과 장미봉사회라는 이름으로 신내동 꽃동네 노인요양원에 반년 정도 매주 토요일 자원봉사를 다녔다.
내가 노인봉사를 체험한 이유는 그동안 사랑의 진면목을 모르고 살았다는 반성 때문이었을 게다. 가부장적 문화의 남자라는 습관 때문에 실제 경험보다는 관념에 치우치는 경향이 컸다. 1980년대 중반 가톨릭에 입문한 이후에 신앙생활이나 책을 통해서 사랑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내에게 모든 걸 책에서 읽은 대로만 사랑한다는 지적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엄청난 헌신과 사랑을 다 실천하긴 어렵지만 시늉이라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봉사체험에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봉사활동을 통해서 내가 얻은 건 무엇일까? 심지어 마더 데레사도 하느님은 과연 계시는가 하는 의심을 했다고 한다. 하느님을 찾지 못하는 괴로움과 인간적 한계를 편지로 고백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추구하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주말 짬을 내어 봉사활동 하는 것으로 완전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가? 나의 봉사는 한없이 보잘것없고 미미한 활동에 불과한 것이라는 마음을 벗기 어려웠다.
노인 봉사활동과는 조금 다른 성격이지만, 변호사인 내가 요즘 보람 있게 하는 일이 있다. 최근에 보훈처에 행정심판사건을 맡았는데 70세 고령인 의뢰인은 1970년대 초 육군 장교로 재직 중 혹독한 훈련 탓에 위장병이 생겨 급기야 위천공으로 생사기로에 섰다가 퇴역한 분이다. 40년 동안 법률절차를 잘 몰라 국가의 원호 혜택 없이 지내다가 최근에 보훈심사를 신청했으나 기각되었다. 변호사가 없으면 재심에서 이길 수 없다는 조언을 듣고 내게 부탁을 해서 변론을 맡게 된 것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전문분야를 자유업으로 갖고 있어서 다행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근력을 별로 소요하지 않으니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다. 이게 나의 가장 확실한 고령 대책이다. 아주 단순하다. 비록 노인요양원 봉사 활동에는 서툴지만 법률지식으로 남의 어려움을 돕는 일에는 능숙하니 이것이 바로 나의 축복이다. 내 직업을 통해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영적인 관점에서 보는 노인문제 해결책
우리 인생에는 하느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 갓 태어난 아기 때부터 혈기 왕성한 청소년, 중장년을 거쳐 노년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다. 사랑, 미움, 관심, 무관심, 행복, 불행, 건강, 병...... 그 겉모습이 어떨지라도 하느님이 우리 곁을 떠난 적은 단 한순간도 없다. 그러므로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나이 먹는다는 것은 결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아주 자연스런 삶의 여정이며 청춘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축복의 시간이다.
우리 인생은 노인이 되어도 수많은 희로애락 오욕칠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데 사랑이란 무엇인가? 미움이란 무엇인가? 미움은 사랑의 변형일 뿐이다. 무관심이야말로 사랑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나의 마음 안에 있다. 마음 밖에서 결코 행복을 찾을 수 없다. 불행은 단지 행복의 부재일뿐이지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존재 자체가 바로 사랑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태어나기 전에도, 살아가는 동안에도, 육신이 사라진 뒤에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함께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우리는 그 사랑을 하느님(神, God, Dieu)이라고 부른다. 개신교로 표현하면 하나님(Oneness)이며, 불교로 표현하면 대자대비(大慈大悲)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이렇게 모든 인간은 인종이나 종교를 떠나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언제, 어디서나,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도 예외 없이 하느님이 베푼 무조건적 사랑과 무한한 자비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당신 앞에 있는 것들은 미미하기 이를 데 없으나 당신 안에 있는 그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신다. 당신 안에 그 모든 것이 있음을 자각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자각을 통한 의식 성장을 이루어 이와 같은 하느님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는 분이시다.
마무리
현재의 고령화 현상을 골칫거리나 우려할 사회문제로 받아들이는 시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지하철 무료승차 혜택을 주는 국가정책에 지하철 적자 요인이 된다는 반대론도 있지만 나는 적극 지지한다. 영성적 관점에서 노인은 삶의 지혜와 경험이 풍부하고 하느님의 무조건적 사랑과 무한한 자비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체험한 분들이다. 지혜와 경험이 풍부한 노인들의 활동은 사회의 건강성을 지켜나가는 데 큰 보탬이 된다. 이는 금전적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영적인 축복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국가는 노인복지를 위한 정책과 제도를 잘 마련하고 그 집행을 공평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제도만으로는 미흡하다. 영성적 관점에서는 국민 각자의 효심(孝心) 회복이 급선무다. 모든 것이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부모 자식 간에 사랑과 공경으로 가정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려야 한다. 학교 교육에서부터 효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배양해야 한다. 직장에서도 효를 위한 휴무나 여가시간을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 의사는 노인 환자를 자기 부모처럼 정성껏 진료하고 국회의원은 노인복지 제도의 근본을 제대로 반영한 입법을 해야 한다. 행정공무원도 노인복지를 위한 각종 제도를 제대로 집행해야 한다.
노인 복지를 향상하는 길에 이런 마음이 모이면 우리 사회는 노인의 지혜와 경험이 충만해지고, 가정마다 자식사랑과 효도가 어울려 건강하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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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버님 건강하시고 5남매간 우애 좋고 또한 늦게까지 전문업으로 남 도우며 살아가는 진섭이 올 한해도 축복 듬뿍~!
이제야 읽었네. 미리 읽었으면 우리 신문에도 전재 부탁했을텐데. 좀 늦었지만 발췌 요약해 다시 싣게 허락해 주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