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산악회의 토요산행지가 천보산 천덕산과 부소산성이다.
부소산성은 산행이라 하기엔 많이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4시간동안 금남지맥의 일부같은 천보산과 천덕산을 걷는다니
늦으막히 신청을 한다.
부소산성을 둘러보고는 얼른 정림사지 5층석탑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배를 타고 낙화암을 올려다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흐린 하늘에 7시 반에 비엔날레 주차장을 빠져 나와 고창에서 한번 쉬고 두시간이면
도착한댄다. 신청자에 이름이 보이지 않던 동양회장이 올라오며 배 타러 가느냐고 한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에 어느 순간 빗방울이 차창에 빗금을 긋더니 점차 많아진다.
산행 시간을 오후로 미루고 백마강변을 걷고 부소산성부터 산책하기로 한다.
차는 잠깐 방향을 바꾸더니 9시 반이 못 되어 백제보 부근에 내려준다.
모두 비옷을 챙기고 나온다. 나도 작은 소주병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비옷을 입는다.
기념관? 옥상 전망대 2층에 올라 사진을 찍는다.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오르지 않는다.
추워지면 마시려던 술이 있다고 했더니 도리포가 얼른 달라고 한다.
둘이 마시다 느린보님도 한모금 마시니 금방 없어진다.
내려 와 어느 분이 가져 온 따뜻한 정종까지 현관에 가서 나눠 마신다. 속이 따끈해진다.
보온병은 내 비옷에 넣는다.
강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 강변을 따라 걷는다. 자전거길과 잔디가 깔린 강변을 따라
질척이는 길을 서넛씩 무리지어 걷는다.
잔디와 흙에 신발이 젖는다. 비가 오는 흐린 강변은 조망이 없다.
유식한 한시는 아니더라도 백제를 그리며 싯구 하나라도 떠올리길 바라지만
내 머리엔 '꿈꾸는 백마강' 트로트만 생각난다. 노래방에서 폼 잡고 부르던
백마강은 차마 부르지 못한다. 억새 풀숲 사이에 백마강 관련 시와 노랫말이 적힌
까만 비석이 보이곤 한다.
난 뒤에서 일행을 멀리서 보며 자주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열면서 손이 시리지만
제 분위기의 멋은 살리지 못한다.
공사 중인 개천지류의 흙무더기를 지나 찻길로 올라 식당 옆의 감나무 한 그루를 본다.
하수종말처리장이 있는 삼거리에서 선두는 강변으로 가는데 난 부소산성 작은 계단을 오른다.
일행에게 손짓으로 따로 간다고 알리고 오르는데 쇄락이 형님과 가겠다고 따라온다.
산성 길은 호젓하다. 하얀 안개에 쌓인 산록은 적당한 깊이로 나무들을 달리 보여준다.
쇄락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내가 잘 풀어주면 좋으련만 나의 말은 가닥이 없다.
하긴 그의 관심 분야와 나의 관심은 다르고, 그 다름이 더 의미가 있는 건 아닌가?
명말의 문학가인지 정치가 인지 이탁오와 황종희도 들먹이며,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설명은 못하고
영화며 사진이며 가닥없는 이야기를 하며 작은 번호표를 붙인 소나무 숲 사이
길을 걷는 맛이 좋다. 백마강길 이정표가 군데군데 나타난다.
태자천이 저만큼 보이는 곳에서 사자루 쪽을 향하는 쇄락을 끌어 일행이 있는 쪽으로 가자한다.
궁녀사는 저만큼에 두고 가게 앞 삼거리에 오니 더러 관광객들이 오고 있다.
아직 남은 단풍이 몇 개 보이고 몇은 색깔을 잃어버린 이파리를 달고 있다.
구부러진 길 양쪽으로 나무들을 깊이를 다르게 멋있게 찍어보고 싶은데
나의 안목이나 시간은 형편이 안된다.
일행을 벗어난 미안함에 백화정도 두고 고란사로 내려간다.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입구에서 고란사를 내려다 보고 있는데 동양이 다 보았노라며 선착장으로 내려오란다.
모든 일행이 부소산성을 돌고 있다하고 도리포는 아래서 기다린댄다.
쇄락과 고란사 뒤로 돌아 고란정에서 물을 떠 마신다. 한잔에 몇 년이 젊어진다했더라?
남은 단풍을 찾아 백마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는데
도리포가 뭐 하고 있으냐고 전화가 온다. 내려가니 막걸리와 소주를 두고 뻥튀기를 안주삼아 마시고 있다.
동양과 셋이서 마시고 놀고 있어도 일행은 오지 않는다. 한참 후 고란사 쪽에서
일행이 내려온다. 백화정에 들르지 못함이 아쉽다. 정림사지5층탑도 포기해야한다.
만원을 꺼내 막걸리와 소주 하날 더 시키고 일어나 조룡대 주변을 왔다갔다 한다.
돌계단 위에 있는데 도리포가 배 왓다고 얼른 오란다. 위에서 배를 지켜본다 했는데
선착장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 사람이 많아 지체되고 있어 얼른 타 손을 흔들어 준다.
저 만큼에 물 속에 떠 있는 새들은 배가 지나가도 날아가지 않는다.
배는 잠깐 돌아 구드레 선착장에 내려준다. 춥다. 차로 들어가 잠깐 이동해 부소산성 정문 쪽으로
이동해 비닐 하우스를 빌려 점심을 먹는다. 도리포가 오라는데 어부님이 술을 잔뜩 내 놓으시며
앉으라고 해 그 앞에 앉는다. 바로 뒤에 술꾼인 도리포와 동양이 잇어 섞여 마신다.
오후 산행은 철계단 암반 바위 구간이 있다고 취소한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한참 달려 채석강에 간다.
물이 차 채석강의 바위들은 아랫쪽은 보여주지 않는다.
방파제를 따라 걷는데 등대 옆에 술꾼들에게 가 같이 마신다.
이미 취했는데 또 마신다.
취해도 나의 말과 행동에 어긋남이 없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오만이다.
취했다고 저지른 부끄러운 뒤끝의 책임은 여전히 나에게 있다. 어쩌랴.
하늘은 밝아지는데 또 차를 달려 곰소에서 젓깔이 여럿 놓인 반찬에 저녁을 먹는다.
술을 마시며 셔터를 막 눌렀던 모양이다.
쇄락이 집 앞까지 데려다 주어 바보랑 식당에 가 또 저녁을 먹으며 소주를 입가심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