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스마트폰 개발자와 전문 설계사의 '푼돈' 창업 … SNS 마케팅 대박
'이왁'의 창업자 이남곤씨(왼쪽)와 김태완씨. 이씨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개발자였고,
김 씨는 건축설계자였다.
때늦은 꽃샘추위에 벚꽃마저 고개를 숙인 올 3월 29일 새벽 6시50분. 서울 시청역 코오롱빌딩 맞은 편에 두툼한 점퍼 차림의 두 청년이 책상을 펼쳤다. 출근하는 직장인에게 ‘치킨 랩 샌드위치’를 팔 요량이었다. 생애 첫 거리 출격. 목표는 소박하게 잡았다. “70개만 팔자.” 둘은 기세등등했다. “모자랄 것 같은데”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정도였다. 예상은 보란 듯이 어긋났다. 3시간이 지난 10시쯤, 팔린 샌드위치는 고작 4개. 시간당 한 개도 채 팔지 못했다. 재고 처리를 위해 장소를 숙명여대 앞으로 부랴부랴 옮겼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그야말로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한 청년이 푸념을 늘어놨다. “이게 아닌가?”
그로부터 석 달이 훌쩍 흐른 6월 중순. 두 청년은 건국대 ‘맛의 거리’에 치킨 랩 샌드위치 전문점 ‘이왁’(EWAK·Earth, Wind &Kitchen)을 개점했다. 불과 60여 일 만에 점포를 마련할 정도로 돈을 쓸어 담았다. 비결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적절한 활용이었다.
두 청년은 이남곤(30), 김태환(30)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둘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이남곤씨는 삼성전자 해외향 휴대전화 단말기 개발자였다. 블랙잭2(2008)·옴니아프로(2009)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연봉은 5000만원 선. 청년 실업자가 넘치는 지금,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임금 수준이었다. 김태환씨는 앞날이 창창한 건설 설계사였다. LH공사 전북지사의 설계를 주도했다. 둘은 유치원 때 인연을 맺은 소꿉동무. 가는 길은 달랐지만 통하는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얄궂은 ‘운명의 열차’에 함께 올라탈 줄은 그들조차 몰랐다. 둘의 운명을 180도 바꿔놓은 건 메신저 대화였다.
유쾌한 트윗이 부른 고객
이씨는 2009년 8월 폴란드에 있었다. 삼성전자의 해외향 스마트폰 옴니아프로의 계약을 위해서였다. 해외향 휴대전화 개발자는 특정 국가와 계약할 때 동행한다. 그런데 이씨는 웬일인지 염증이 났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자신의 현실이 불편했다. ‘알아서 바짝 기는’ 몇몇 중간관리자를 보면서 “내 10년 후 모습일지 모른다”며 낙담했다. 혁신 제품을 개발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건도 아니었다. 8월 어느 날 폴란드 시각으로 오후 6시30분. 숙소에 들어간 이씨는 메신저에 접속했다. 한국 시간은 새벽 2시. 단 한 사람이 메신저에 있었다. 김태환씨였다. 그도 연일 이어지는 밤샘작업으로 녹초가 돼 있었다.
그날의 메신저 대화다. 이남곤: 늦은 시간까지 뭐하냐? 김태환: 오래전에 작업을 끝낸 설계도면 고치고 있어. 불합리해. 입찰을 이 도면으로 땄는데, 다시 만드는 게 말이 돼? 이남곤: 이렇게 인생을 허비하는 게 맞나? SNS를 활용하면 저비용 창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씨는 맞장구를 쳤다. 그러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창업을 준비했다. 이씨가 SNS에 주목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는 제법 인기 있는 블로거였다. 그가 쓰는 ‘남성 패션 이야기’는 큰 호응을 얻었다. 하루 방문자가 수천 명에 달할 때도 있었다. 휴대전화 단말기 개발자답게 트위터도 누구보다 빨리 시작했다. 이씨가 “트위터 등 SNS를 잘 활용하면 돈 들이지 않고 창업할 수 있다”고 자신한 이유다. 창업 아이템은 먹을거리로 정했다. 미국 뉴욕에서 인기를 끈 ‘치킨 랩 샌드위치’를 주 메뉴로 삼았다. 두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다. “직장인에게 팔면 그야말로 대박을 칠 수 있으리라.”
둘은 거의 동시에 사표를 던졌다. 주변 사람들은 “미쳤다”며 핀잔을 줬다. 이씨의 홀어머니, 김씨의 부모는 ‘무언의 반대’를 계속했다. 하지만 이들은 코뿔소처럼 밀어붙였고, 올 3월 롤 샌드위치 전문점 이왁을 창업했다. 그것도 길거리 창업이었다. 길거리를 무대로 삼은 덕에 창업 과정은 무척 쉬웠다. 준비한 거라곤 샌드위치를 진열하기 위한 책상·책상보가 전부였다. 모두 합쳐 봐야 비용은 고작 6만8000원. 이 쌈짓돈으로 기적을 연출할지 누가 알았으랴.
이왁 창업 후 첫 번째 길거리 장사
다시 3월 29일. 첫째 출격에서 쓴잔을 마신 두 사람은 블로그에 실패 내용을 생생하게 올렸다. 트윗도 날렸다. 그러자 블로그가 방문자로 북적거렸다. 기존 방문자에게 트위터를 타고 들어온 사람들이 합세한 결과다. 그냥 놀러온 게 아니었다. 갖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음료를 함께 파는 건 어떨까요? 멋진 홍보물을 비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닉네임 빚의 제일) “샌드위치를 진열하는 것보다 투명 케이스에 넣으면 좀 더 깔끔한 인상을 줄 것 같네요.”(닉네임 루얼) 장소에 대한 의견도 많았다. “강남 부근에서 해보세요. 외국계 회사가 많을뿐더러 분위기가 자유로운 회사가 많아 가능성이 있어요.”(닉네임 TTL)
둘은 블로거와 트위터리언의 의견을 수용했다. 홍보물을 만들고, 아이템을 세분화했다. 그리고 4월 1일 옺전 7시 강남역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시청에 이은 두 번째 출격이었다. 이번엔 트윗을 먼저 날렸다. “강남역 3번 출구에서 오전 7~10시 랩 샌드위치를 팝니다”라고. 그날은 만우절.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트위터를 통해 예약이 쏟아졌다. “HSM@EWAK_TWIT: 내일 8시45분까지 5개요^^”“soundyoon@EWAK_TWIT: 내일 샌드위치 예약할게요 ㅋㅋ 9시쯤 수원 방면 버스 타는 길에 꼭꼭 들르겠음.”
두 청년이 만든 샌드위치 70개는 금세 동났다. 놀랍게도 그날 이후 계속 그랬다. 수백 개가 팔리는 날도 있었다. 단체주문도 쇄도했다. SNS가 만든 작은 기적이었다. 물론 트위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팔로워가 많아도 매력적이지 않은 트윗은 의미가 없다. 두 사람이 여러 사람의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유쾌한’ 트윗을 날린 게 주효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빙수 개발 준비 중, 오늘 개시.” “이왁이 만난 트위터리언의 실제 모습.” 흥미로운 트윗을 날리고, 블로그에 설명을 붙이고,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을 기록하고, 다시 길거리에 나가고…. 이 4박자가 맞아떨어진 게 대박의 비결이었다.
길거리 창업 두 달 만에 점포 마련
SNS 마케팅에 성공한 두 사람은 이제 어엿한 CEO다. 규모는 33㎡에 불과하지만 이왁 1호점을 열었다. 길거리 창업을 한 지 두 달 만에 점포 임대비용을 뽑은 덕이다. 여기에 변변한 매출 없이도 수개월은 버틸 수 있는 여윳돈을 확보했다. 하지만 ‘성공 팡파르’를 불긴 아직 이르다. 길거리 가게와 점포 장사는 차원이 다르다. 길거리는 움직이는 사람이 중심이지만 점포는 지역을 잡아야 한다. SNS 마케팅으론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점포를 개장한 후 길에서 팔 때보다 매출이 떨어진 게 사실입니다. SNS 마케팅은 붐업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어요.” 이씨의 말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SNS라는 새 마케팅 기법에 전통 방식을 도입했다. 전단지를 뿌리고 길거리 장사를 다시 시작했다. 온·오프라인 마케팅의 융합이다. 점포를 트위터리언이 만나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만들 계획도 세웠다. 이를 위해 점포의 출입구와 창문을 개방할 수 있게 만들었고, 영화·그림·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프로텍터를 설치했다. 이왁 1호점을 ‘온·오프라인이 결합한 동네 전시관’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두 청년의 돈키호테 같은 도전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모른다. 쾌속질주를 가로막는 허들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들의 실패관(觀)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무리수를 던질 테고, 그렇지 않다면 무한도전을 계속할 게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두 사람은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실패? 두렵지 않아요. 길거리에서 출발해 점포를 마련한 경험은 큰 도움이 될 겁니다.”(이남곤).“다시 시작하면 되죠. 이왁이라는 뿌리가 있는 걸요.”(김태환) 두 명의 돈키호테 CEO가 던진 이 말은 한국 사회에 ‘무거운’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이렇게. “스펙 쌓기에 매몰된 대학생이여!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라.” “기성세대여! 실패에 인색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