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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교회' 특집, 주안장로교회 나겸일 목사의 감동 목회기!
"대형교회 비난 떨치고 '보수신앙+성령운동+전도훈련'으로 알차게 부흥 일궈"
성장 포인트1 - 보수신앙
저는 언제나 교회 성장 요인의 첫 번째로 목회자의 보수신앙을 꼽습니다. 이것은 곧 보수신앙의 토대 위에 교회가 세워질 때 성장도 탄탄하게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칼빈의 개혁주의 보수신앙을 토대로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칩니다. 이미 잘 알고 계시듯, 바른 신학을 갖고 있을 때 말씀을 논리적으로 깊이있게 가르칠 수 있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만약 목회자에게 올바른 신학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자칫 시대의 흐름에 동조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나 인본주의에 젖어들 우려가 있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단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목회자 한 사람의 잘못된 신학으로 인해 전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잘못 알게 될 뿐 아니라 이단에까지 빠지는 엄청난 일이 파생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수신앙은 교회성장의 가장 기초적인 뼈대가 되고 핵심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수신앙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보수신앙이란 복음의 본질에 충실한 신앙을 뜻합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복음이란 한마디로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복음적인 사역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는데, 목회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목회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리스도, 그분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핵심,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는 것이 목회 성공의 절대요소입니다. 교회의 모든 사역, 특히 설교 사역에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상식적인 일 같지만, 목회자들이 가장 많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고 외치는 목회자보다는 자꾸 다른 소리를 하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부흥회를 참석해보면 이런 현상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곤 했습니다. 은혜받은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외치기보다는 말씀은 뒷전인 채 설교시간에 교회를 비판하고 목사님들을 후욕합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저분이 은혜를 받기는 받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은혜를 깊이 받으면 모든 사람을 따뜻이 감싸는 인격의 포근함을 갖추게 되어 있고, 교회에 봉사하게 되어 있으며, 비판의 삿대질보다는 섬김의 사랑을 실천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믿습니다.
이 사실은 비단 목회자들에게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에게도 적용됩니다. 교회 밖에서 은혜받은 사람 말만 듣고는 교회를 부정하고 비판하지 말고, 교회 안에서 은혜받은 사람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은혜는 교회 밖과 교회 안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한쪽만 강조하지 말고 그 양쪽의 은혜를 모두 체험하고, 그 양쪽의 은혜에 귀기울일 수 있을 때 복음이 복음답게 두루 퍼져간다고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무엇보다 복음을 변색시키지 말고 그리스도 그분을 교회 안에서 온전히 선포할 때 교회 성장의 기초가 다져진다는 것, 그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성장 포인트 2 - 성령운동
저는 교회 성장이 인간의 방법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성령의 주권적인 기름부으심에 의해 부흥의 영적 파도타기를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에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받은 바 은혜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을 불러일으키고, 힘있게 일하도록 돕는 영입니다. 성령께서는 복음 전할 사도를 직접 택하고 파송하실 뿐 아니라 전도와 교회 개척, 또한 교회 성장에서 항상 주도자로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곧 교회 성장의 전략가이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안에는 교단의 독특한 정서 때문에 이 성령운동을 소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주안장로교회는 장로교 통합측 교단의 일반 정서와는 달리 성령운동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견지해왔습니다. 그 결과 성령의 각종 은사에 열려 있음은 물론, 초자연적인 기사와 표적의 역사가 교회 안에 나타났습니다. 병자를 위한 신유의 역사와 귀신 들린 자를 위한 치유 등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닌 일상화된 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안장로교회는 이른바 보수신앙의 토대 위에 성령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교회로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은 저의 간암 투병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간암 말기의 진단을 받고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떨어졌지만 성령의 역사로 기적적인 소생을 경험한 뒤로 교회 안에는 각종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가 폭포수처럼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주안장로교회의 성장 이면에는 성령의 치유하시는 역사와 은사의 힘이 있었습니다만, 담임목회자의 투병 이후 저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성령의 은사와 역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방언은 물론 방언 통역과 신유의 은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다보니 부흥회 초청을 받고 타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도 성령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말씀만을 나누는 방식으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지만, 간암에서 회복된 직후에는 저도 의도하지 못한 방식의 부흥회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원래 성격과는 동떨어진 사역을 하게 된 셈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서울의 대표적인 보수교회에서 저에게 부흥회를 요청해왔습니다. 몹시 망설여졌습니다. 그 교회의 교인들은 대부분 학적인 사람들이라 학적인 설교가 요망되는 곳이었는데, 저를 부흥회에 강사로 불렀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그 교회 분위기에 맞추어서 점잖고 논리적으로 설교를 풀어나갈까도 생각해봤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그 교회로 부르신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흥회를 통해 특별한 은혜를 그 교회에 부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로 여기고 저는 부흥회 첫날부터 '성령을 받으라'는 주제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아마 그 교회에서 그런 식의 말씀이 선포되는 일은 매우 낯선 일이었을 겁니다.
그때 앞에 앉았던 아가씨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자신이 방언을 할 테니까 통변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방언이 끝난 다음 제가 그 아가씨에게 물었습니다.
"자매님, 6개월 전에 남편이 죽었지요?"
그러자 그 자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옆에 같이 앉았던 청년들은 일제히 소리쳤습니다.
"아니에요, 목사님. 아직 미혼이에요. 결혼 안 했어요."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지요?"
이번에는 청년들이 모두 까르르 웃었습니다.
"아니라니까요. 결혼을 아직 안 했다니까요."
"아니, 옆에서 대답하지 말고 본인이 대답하세요."
그러자 그 자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옆에 있던 청년들로부터 '와!'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그 자매는 서독에서 결혼생활을 하다가 남편이 6개월 전에 죽는 바람에 한국으로 돌아와 미혼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화여대를 나오셨지요?"
"네."
"학교 다닐 때도 예수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때는 교회에 안 나가셨잖아요. 그리고 남편이 죽은 다음에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교회에 다니면서 은혜를 많이 받기 시작했어요. 맞지요?"
"네. 목사님 말씀이 다 맞아요."
"자매님, 남편이 왜 죽었는지 아십니까?"
"아니요, 모르겠는데요."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매님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런 슬픈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자매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저는 왜 남편이 죽었는지 몰랐습니다."
"지금 현재 자매님은 신학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지요?"
"네. 맞습니다."
부흥회가 그렇게 진행되어 나가자 그곳에 모인 교인들은 물론, 처음으로 초대받은 불신자들까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깊어지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실존을 강하게 느끼기 마련입니다. 모든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나타나는데, 아마도 그때 나타났던 현상으로 인해 그 자매님뿐만 아니라 머리로만 하나님을 믿는 교인들과 하나님의 실존을 체험해보지 못한 불신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겼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는 말씀의 깊이있는 연구와 묵상을 통해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법입니다. 만약 말씀을 깊이 상고함이 없이 그냥 기도하다가 들려지고 보여지는 것 위주로 은사를 사용하게 되면 자칫 교회의 덕을 세우기는커녕 깨뜨릴 수가 있고, 하나님의 실존을 나타내기는커녕 자신을 드러내는 교만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제대로 은혜받은 그리스도인, 제대로 성령을 체험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늘 자신의 부족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가운데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나타나는 성령의 불길을 성경공부를 통해 균형을 갖추고, 전도훈련을 통해 조직화하고 체계화하여 하나의 힘으로 묶을 때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는 계속해서 드러나고, 그것은 곧 교회 성장이라는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장 포인트 3 - 전도훈련
주안장로교회의 성장에는 새벽기도와 함께 전도라는 미련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여 주님께로 이끌기 위한 방편으로 우리에게 전도를 요구하셨습니다. 주안장로교회는 전도에 열심인 교회로도 매우 잘 알려져 있는데, 만약 전도함이 없이 교회가 성장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성장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경우 대부분은 수평이동으로 인한 교회 성장이기 때문에 위험하고, 두 번째는 전도하지 않는 교인들을 그대로 방치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기도를 열심히 해서 성령충만하게 되면 그 내적 에너지를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외부적인 데로 발산시켜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전도라고 믿고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교인들은 툭 건드리면 복음을 전하고, 툭 건드리면 주님을 증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불신자를 향한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교회는 본격적으로 전도하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전도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들이나 성도들 모두 전도하지 않고 교회 성장을 바란다는 것은 사기를 치는 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목회자는 전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지도력을 보여줘야 하고, 성도들은 전도 현장에 뛰어드는 헌신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헌신 없이 목회자만 탓하며 교회 성장의 둔화를 비판하는 성도가 있다면 돌이켜야 합니다.
저는 주안장로교회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교회의 사명에 충실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기에 '민족복음화에 앞장서는 교회, 세계선교에 앞장서는 교회'라는 목표를 두고 전도와 선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전 교인 모두가 믿지 않는 불신 영혼들을 전도하려는 열정에 불타오릅니다. 이 열정 위에 성령의 역사가 가미되어 폭발적인 전도 열매들이 맺혀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좋은 전도훈련에는 반드시 말씀의 은혜와 성경공부, 기도훈련, 성령운동이 가미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전도할 수 있는 인격체가 다져지고, 기도로 뜨거워지면 전도의 열정은 계속해서 더해갑니다. 전도를 통해 은혜받고, 전도를 통해 감사기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교회가 주욱 강조해온 보수신앙과 성경공부, 기도훈련, 성령운동이 밑받침된 전도훈련이 이루어지면 온 교인들이 전도에 보다 창조적이며 생산적으로 임하게 됩니다. 그럴 때 교회가 부흥으로 불타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 대부분이 전도를 일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 전도왕들의 상당수가 우리 교회 교인이라는 점에서도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도왕들이 탄생하기까지는 여러 훈련 과정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전도왕은 처음부터 태어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고 훈련되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한다면 어느 교회에든 수백 명, 수천 명을 전도하는 전도왕들이 나타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주안장로교회에 부임하기 전에 이미 전도 관련 서적을 백여 권 이상 독파하고 전도의 방법론을 터득했었습니다. 믿지 않는 부모님의 구원을 놓고 고민하던 가운데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된 분야가 바로 전도였습니다. 사영리, 전도폭발, 브릿지, 다리 예화 등 접해보지 않거나 암기하지 않은 전도법이 없었습니다. 그런 것을 바탕으로 저만의 전도법을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준비도 없이 목사 안수를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주안장로교회에 부임한 얼마 뒤부터 교회가 새벽기도회를 통해 성장해갔는데, 그때 유독 새신자들을 잘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몇몇 눈에 띄었습니다. '저들을 훈련시키면 큰일을 해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새신자를 많이 전도하는 교회'로 주안장로교회의 목표를 삼아, 구역장들을 중심으로 전도훈련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전도하는 방법, 전도하는 내용들을 세심하게 가르치면서 때로는 외부 강사를 모셔다가 훈련을 받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훈련된 평신도에게 적절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와 재정을 아낌없이 사역에 투자하는 교회의 잠재적 자원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평신도들을 훈련시켜서 잘 활용할 줄 아는 교회야말로 건강한 교회, 희망이 있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세 확장을 목표로 삼지 않는 총동원 전도주일
주안장로교회에서 실시하는 대표적인 전도 프로그램이 총동원 전도주일입니다. 총동원 전도주일을 통해 우리는 매해 엄청난 숫자의 새신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양육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엄청난 준비와 철저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불신 영혼 한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기 위한 교인들의 땀과 수고와 눈물의 기도는 말할 것도 없고, 불신 영혼들이 마음문을 열어 주님을 영접하도록 하기 위한 조직적인 기도와 교회적인 배려는 엄청난 편입니다.
그러나 총동원 전도 주일에 초청하는 불신 영혼들의 숫자를 높게 잡고, 이를 위해 그야말로 모든 힘과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런 수고와 기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더 큰 교회를 만들려는 계산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교인 숫자가 교회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게 최선을 다해 달려가다보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는 게 목회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주님 품에 안기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큰 교회다, 교인 숫자가 많다 하는 것은 목회의 부산물이지 목적은 아닌 것입니다.
만약 큰 교회가 되었다고 해도 교만해버리면 훨씬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겸손한 목회자로 사는 것보다 못한 일이고, 세계 제일의 큰 교회를 이끈다 해도 게으르다면 조그만 교회에서 교인들의 영적 풍요를 위해 부지런히 사는 목회자보다 훨씬 못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목회 안에서 얼마나 이루었는가 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주의 형상을 얼마나 닮았는가, 그것이 목회자의 평생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 교회 부흥회를 다니면서 주보를 많이 가져옵니다. 그런데 주보에 적힌 목표를 보고, '어떻게 이런 목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자기 욕심에 따른 목표만 세우는 교회들이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금년에 백명 돌파 운동!'
이런 것은 자기 욕심이지 결코 교회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목표가 '우리'나 '여기'에만 국한된다면 하나님께서는 크게 역사하시기 어렵습니다. 비록 한 사람의 교인을 두고 목회를 할망정 목표를 지엽적으로 두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크게 정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맘껏 나타난다고 봅니다.
우리 교회의 목표는 20여 년 동안 계속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민족복음화에 앞장서는 교회, 세계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이것을 말로만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온 교인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끊임없이 훈련을 시켜왔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되기를 원하며 하나님 나라가 이 민족과 전세계 위에 임하기를 날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어떤 교회를 방문해보면 비록 작은 교회라 하더라도 세계를 그 가슴에 품고 뜨겁게 기도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큰 교회, 큰 교인들이 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은 부자라도 여러 사람을 궁핍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여러 사람의 영혼을 살찌우는 참다운 부자가 있다고 하는데, 교회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참으로 큰 교회, 큰 교인들은 기도 속에도 내 것, 내 가정, 내 교회만을 담는 게 아니라 이웃과 민족과 세계를 담아냅니다. 그렇게 기도하기 시작할 때 교회는 나누는 교회, 섬기는 교회, 베푸는 교회로 넓어지기 시작합니다.
대형교회가 비난받지 않으려면
저는 목회자들이 대형교회를 목표로 목회를 하는 것이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이고 타락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조건 대형교회라고 해서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태도 역시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형교회가 대형교회여서 그 특성에 맞게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다면 교회의 축복을 기뻐해주고 박수를 쳐주며 그를 통해 도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교회가 커질수록 개인이 그 권력을 집중화하려고 하거나 그 교회만을 계속해서 성장시키려는 욕심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교회의 커짐을 통해 선교의 응집력과 사회적인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수 있다면 교회 성장은 민족복음화를 위해 큰 역할을 감당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평이동을 통한 교회 성장이 아니라 불신자들을 전도해서 성장하는 교회 모델에 대해서는 보다 순수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들이 너무 아쉬운 시대입니다.
주안장로교회는 수평이동이 아닌, 전도를 통해 성장한 교회입니다. 총동원 전도주일이 되면 교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주안장로교회로 몰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교회가 한바탕 축제의 도가니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간혹 그 모습이 독불장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주안장로교회는 제가 부임한 이래로 타교회 중직자를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교회의 중직이 되면 어찌 됐거나 모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고, 주안장로교회는 옮겨 다니는 중직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불신 영혼들을 전도해서 순수하게 전도하는 교회이고 싶었습니다. 교회가 성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할 즈음에는 힘있는 중직자들이 아쉬웠지만,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런 원칙을 고수해나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에 와서는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큰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교인들을 보면 대부분 다른 교회에서 영입된 사람들이더라는 것입니다. 부득이하게 한두 번쯤은 교회를 옮겨야 하는 특별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만, 말썽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툭하면 교회 옮긴다는 것을 미끼로 목회자의 속을 시꺼멓게 만들곤 합니다. 교회 옮기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교인이라면 틀림없이 문제를 일으키고도 남습니다.
주안장로교회는 처음부터 타교회 중직자들을 완강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까닭에 지금도 그런 문제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소위 말썽을 일으키는 교인들이 비교적 없다는 것입니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는 교인 막지 말고 오는 교인 막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들도 설득력이 있지만, 주안장로교회의 경우, '가는 교인 막지 말고 오는 교인은 막는다'는 원칙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부임한 뒤부터 만약 타교회 중직자가 우리 교회에 등록하려고 하면 그 등록이 자동적으로 취소되도록 아예 못박아버렸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약간의 잡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은혜스럽게 일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번은 서울에서 아주 큰 부자로 알려진 장로님 한 분이 우리 교회에 정식으로 등록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흔쾌히 기뻐하며 받아들일 줄 알고 제의를 해오셨는데, 저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안 됩니다, 장로님. 집 가까운 교회로 나가십시오. 그래야 새벽기도도 나가시기 편하고 신앙생활하시기도 좋지 않겠습니까? 저를 좋아해주시는 것은 고맙습니다만, 하나님은 똑같은 하나님이시니까 다른 교회 나가서 그 교회 섬기십시오. 저희 교회는 타교회 중직들은 등록이 안 됩니다."
그러자 그분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목사님이 보통 목사님이 아니시네요. 오히려 존경스럽습니다. 알겠습니다. 목사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결국 이런 목회방침은 매우 큰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교회마다 잡음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비교적 잡음 없는 교회, 조용하게 협조하는 은혜스러운 교회로 주안장로교회의 모습이 그려질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목회방침을 교인들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목회자가 전도에 대해 도전하고 격려할 때에도 교인들이 무척 순수하게 받아들일 뿐 아니라 목숨 걸고 전도에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불신 영혼들을 전도하라고 외치는 목회자의 외침이 결코 교세 확장을 위한 욕심이 아니라 오직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를 위한 뜨거운 열정임을 교인들이 먼저 알아주고, 그들도 그런 마음으로 한 영혼을 전도하기 위해 목숨 걸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나겸일 목사/'생명을 건 목회이야기'(두란노)에서
숭실대 철학과, 서울대 대학원,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풀러신학교 목회학 박사. 부임 초기 성도 200명이던 인천의 주안장로교회가 25년이 지난 오늘날 재적 성도 7만 명의 큰 교회로 성장하는 데 목자의 역할을 잘 감당했다. 헌신적인 목회와 선교활동을 인정받아 1991년 국민훈장 대통령상을 받았고, 1999년에는 한국 기독교 선교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총동원전도와 교회성장', '새벽기도와 교회성장', '전도 집중 교회로 만들라' 외 14권이 있고, 역서로는 피터 와그너의 '영적 전투를 위한 교회성장' 등이 있다.
첫댓글 귀한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