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신론(讀史新論)_인종(人種)
단재 신채호
우리나라 인종을 대략 여섯 종류로 나뉘니, 첫째 선비족, 둘째 부여족, 셋째 지나족, 넷째 말갈족, 다섯째 여진족, 여섯째 土族이다. 선비족은 맨 처음에 우리 민족과 요동과 만주에서 병립하여 서로 혈전을 계속하였던 자이다. 그 후 크게 쫓기어서 그 근거지를 잃고 지금 시베리아 등지에서 그 명맥을 보존하고 있다. 부여족은 곧 우리의 신성한 종족인 단군 자손이다. 4천년 동안 이 땅의 주인이 된 종족이다. 지나족은 조선과 중국 두 나라의 경계가 접근한 까닭으로 기자가 우리나라에 오던 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한 차례 혁명을 겪으며 전 왕조의 충신 및 난을 피하려는 인민들이 계속 넘어온 까닭에 부여족 이외에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한 종족이다. 말갈족과 여진족은 보래 고구려에 부속되어 함경도와 황해도 지역에 살았던 종족인데 고구려가 신라에 병합되므로 고구려의 남은 신하들이 이들을 이끌고 요주와 심주 등지에 옮겨 들어가 발해국을 창설하였는데 중국의 금과 청의 두 제국도 이 종족이 건설했다. 토족은 고대에 南北韓 지역에 있었던 종족으로 삼한의 여러 부락과 동쪽의 예와 맥 종족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하였는데, 우세한 자는 살아남고 열등한 자는 멸망한다는 원리에 따라 여러세대를 거치면서 도태를 당하여 아메리카의 인디언과 아프리카 토인과 같이 자취를 찾아볼 수 없이 소멸되어 온 종족이다. 그 외에 몽고족과 일본족의 두 종족이 있다. 일본족은 우리 민족 4천 년의 대외 적국 가운데서 교섭과 경쟁이 가장 치열하여 접촉하면 접촉할수록 더욱 사나워짐을 나타내고 있으나 그러한 과거 역사는 풍신수길의 임진왜란 하나 이외에는 단지 변경지역이나 해안가에서 불쑥 나왔다가 불쑥 사라질 뿐이었고, 내륙지역에 섞여 살면서 서로 맞붙어 싸운 일은 없었다. 몽고족은 고려시대의 중엽 말엽에 교섭이 가장 많았으나 단지 정치상 밀접한 관계를 가졌을 뿐이요, 우리 국민들의 경제생활에는 영향이 실제로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역사상에 나타난 민족은 실제로 위의 여섯 종족에 지나지 않는다.
살펴보건대 저 몽고 일본 두 종족이 고려 말엽에 제주도의 목장치기와 세종조 때 삼포에 항복해 온 왜인 등으로 내륙지역에 섞여 살았던 특별한 예가 더러 있기는 하였으나, 그 후에 모두 반란을 일으켜 목을 베었고 瓠公 金忠善(이것은 일본만 홀로 지칭함) 등 귀화한 사람이 가끔 있기는 하였으나 이것은 수백 년 동안에 한두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또 살피건대 신라 때에 임나부를 설치하였다는 설은 우리나라 역사에 보이지 않는 바이니 그들 역사에서 운운한 바를 눈 어둡게 믿을 만한 기록이라 하여 의거함은 옳지 않는 것이다.
그 여섯 종족 가운데 모습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다른 다섯 종족을 정복하고 흡수하여 우리 민족의 역대 주인이 된 종족은 실로 부여족 한 종족에 지나지 않으니 대개 4천년 우리 역사는 부여족의 흥망성쇠의 역사다. 이제 교통이 사방으로 터지매 동서양이 크게 교통을 터서, 저 하늘의 뜻이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한 구석에 틀어박혀 오래 잠자도록 허용하지 아니하는 까닭에 마침내 이 20세기의 세계무대에 나와서 6대 주의 여러 민족과 군대로 서로 맞서게 되니, 이 이후 우리 부여족이 눈을 부릅뜨고 큰 걸음으로 힘차게 나아가서 만국의 역사 가운데에 승리의 한 자리를 차지할는지도 알 수 없으며, 혹시 미련하고 어리석으며 움츠러들어서 날마다 퇴보하여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까지 남에게 빼앗겨버릴지도 알 수 없지만, 과거 우리나라 역사는 곧 우리 부여족의 역사니 이것을 모르고 역사를 얘기하는 자는 진실로 헛소리나 하는 역사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