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2월 3일
여러분의 오늘도 역사가 됩니다.
1430년 2월 3일 세종, '농사직설' 반포
1468년 2월 3일 서구권 금속 활자 발명가 구텐베르크 사망
1809년 2월 3일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 멘델스존 출생
1874년 2월 3일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 태어남
1876년 2월 3일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다
1956년 2월 3일 한국과 미국, 원자력 협정 체결
1989년 2월 3일 통일신라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보 제10호 실상사백장암상층석탑 도굴
1994년 2월 3일 미국, 베트남 금수 조치 해제
2006년 2월 3일 이집트 대형 여객선 알 살람 98호 침몰로 1000여 명이 실종 또는 사망
2007년 2월 3일 이라크 바그다드 시장에서 자폭 테러 발생, 132명 사망
2023년 2월 3일 위싱턴에서 한미 외교장관 회담 / EU 지도부, 우크라이나 방문,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 / 차별받는 '성소수자'를 위해 복음과 사회운동 실천한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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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는 '대사부에 관한 95개조 논제'를 걸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인쇄술 덕분이었다. 루터의 글이 곧 바로 인쇄되어 유럽 전역에 퍼져 변화를 갈망하던 사람들의 힘을 모아 내는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었다.
아울러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은 유럽 북방의 인본주의를 확산시켰고, 고전 문헌이나 기독교의 고전이 일반에게 널리 읽힐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노년의 구텐베르크는 거의 귀족과 같은 자격을 부여받았다. 1468년 2월 3일 사망한 후 그는 로마 가톨릭교도들에게는 '악마의 화신', 신교도들에게는 '신의 은총'이라고 불렸다.
- 이종하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