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 목요일(2013. 2. 21)부터 토요일까지 2박 3일동안
포천의 김준권 선생님 댁에서 열린
내손으로 만드는 햄 소시지 베이컨 강좌에 다녀왔습니다.
김준권 선생님이 인근에서 구하신 흑돼지 한마리와
모서면 득수리 임성삼 형님 댁에서 직접
농업 부산물과 쌀겨, 나무, 흙을 먹여 키운 건강한 흑암퇘지 한마리를 잡아
20명이 직접 햄과 소지지, 베이컨, 훈연갈비, 머릿고기 눌림 등 돼지고기 가공을 직접 해보고
나눠 먹어보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저 혼자 이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는 아까워서 사진 몇장과 함께 다녀온 이야기를 해드리고자 합니다.
포천의 김준권 선생님 댁입니다. 풀무원 공동체를 만들고 평생을 유기농업 운동에 헌신하신
원경선 선생님의 사위분이기도 합니다. 지난 1월까지 이 집에서 건강하게 사시다가 향년 100세의 나이로 소천하셨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인사와 소개를 하고 곧바로 돼지 도축을 합니다.
흑돼지의 눈과 귀 사이의 이마 정중앙을 망치로 가격하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쿵 쓰러져 기절합니다.
고통을 주지 않게 재빨리 목 옆의 동맥을 절단해서 피를 뺐습니다.
20분 정도 기다리면 목에서 피가 다 빠지고 숨이 끊어집니다.
토치로 털을 그슬리고 끓는 물을 부어가면서 거친 칼로 껍질이 벗어질때까지 문지릅니다.
서너명이 칼을 들고 벗겼는데, 20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곧바로 목과 발을 절단하고, 조심스럽게 내장이 상하지 않게 배를 갈라서 내장을 제거하고,
허파와 염통, 간은 찬물에 담가 놓았습니다. 나중에 커피가루를 조금 넣고 큰 솥에 삶아서 밤참으로 나누어 먹었습니다.
내장 손질을 하고 선지와 내장을 순대 가공하는 것도 배우고 싶었는데, 내장 손질이 너무 어려워
다음 기회로 미루었습니다. 아쉽죠.
돼지 90kg 정도를 도축하니, 머리와 내장, 발, 껍질과 불필요한 지방, 척추 부분을 제거하고
고기가 50kg 정도가 나왔습니다. 보통 잘 먹지 않는 어깨와 앞다리 부분, 엉덩이와 뒷다리 부분에는
기름기가 없는 살코기가 많습니다. 이 살코기와 등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등심, 조금 나오는 안심 등
순살 부분을 길게 다듬고 힘줄과 껍질 등을 제거해서 햄으로 가공합니다.
사진은 잘 다듬어진 살코기 부분입니다. 이 살코기 덩어리를 양념하여 셀로판에 싸고 연기에 그슬려 햄으로 만듭니다.
햄으로 만들때 뒷다리와 앞다리 부분의 뼈를 발골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절반 정도의 지방과 고기 조각이 살코기 부분과
거의 동일하게 나오게 됩니다. 여기에 껍질 안쪽의 비계살 조각까지 모두 다 합쳐서 아주 작은 조각으로 잘라놓습니다.
이 잡고기 부분을 양념과 함께 갈아서 소시지로 만들게 됩니다. 향후 기회가 있다면 내장과 피까지 버리지 않고
따로 가공해서 독일에서 잘 먹는다는 검은소지지 같은 것도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까 90kg 흑암퇘지 1령 정도를 잡아서 나온 고기 50kg 중 햄용 살코기가 20kg, 소지지용 잡고기와 비계가 20kg,
베이컨을 만들기 위한 옆구리 삼겹살이 10kg 가량 나왔습니다. 정말 푸짐하긴 하죠. 유기농으로 키운 돼지라 그런지
고기가 아주 탄력이 있고 비계살도 진주색 미색 광택이 나는 것이 정말 집에서 직접 키운 돼지가 아니면 어디서
이렇게 좋은 고기를 다루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성으로 가족과 함께 돼지를 키우신 임성삼 형님이
새삼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더군요. 많을 때는 돼지가 20마리, 지금은 9마리 정도를 키우고 있는데,
이정도면 몇백평 과수 농사 하기에 적당한 양질의 퇴비를 얻으면서 농업 부산물과 가정의 음식물 찌꺼기를 모두
처리하는 규모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직접 먹어보니 정말 가두어키운 일반 돼지와는 맛이 달랐습니다.
햄과 소지지, 베이컨에는 다양한 양념을 처리할수 있지만, 이날은 가장 기본적이고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양념을 최소한으로 하였습니다. 소금 2.2%만 지키고 나머지 양념은 취향껏 넣으면 됩니다.
이날은 설탕과 양파과 마늘, 생강을 다진 것과 후추를 버무려 양념을 만들었습니다.
소지지에만 풍미를 더하기 위해서 유기농 토마토 주스를 조금 첨가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양념은 소금입니다. 육가공품을 많이 먹는 서구에서는 보통 3% 정도의 소금을 넣는데,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에는 너무 짜다고 느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너무 짜지 않게 하면 실온 보관이 힘들어집니다.
50kg 정도의 고기를 냉장고에 다 넣기에는 너무 많죠.
많은 양을 한꺼번에 만들 경우에는 2.2% 정도의 소금을 지켜줘야 합니다. 제 입맛에는 2.2% 소금도 조금 짠 정도였습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햄 소지지 베이컨은 냉장 유통되기에 염분도 적고,
과도한 당분이나 증점제(글루텐) 때문에 짠 맛이 잘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돼지를 잡아 해체하여 햄, 소시지, 베이컨 용으로 분류하여 양념에 재는 것으로 첫날의 순서는 모두 끝이 났습니다.
저녁에 푹 삶은 간과 염통, 허파를 썰어서 막걸리와 함께 먹어보았습니다. 그 맛은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아 아 아 아 아 아 다시 먹고 싶습니다.
둘째 날 아침, 일찍부터 모여 분쇄기에 소지지용 고기를 양념에 잰 것을 넣어 곱게 갈아냅니다.
원래는 고기를 양념에 사흘 정도는 재어야 골고루 양념이 배입니다. 그렇다고 집에 갔다가 올수도 없으니
교육 일정을 위해 하룻밤만 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먹어보니 충분히 풍미가 있었습니다.
소지지 충진기에 콜라겐 케이싱을 끼워서 소지지를 만들어냅니다. 돼지 소장을 직접 손질해서 순대 충진기에 넣어서
만들수도 있다고 합니다. 검색해보니 시중에서 순대 기계 소지지 기계 등으로 몇십만원대의 가격에 분쇄충진기가
팔리고 있습니다. 웰빙 유행도 있고, 로하스나 캠핑, 맥주 동호회등의 문화가 많이 보급되었기 때문이겠죠.
만들어낸 소시지는 중간 중간에 면실을 묶어서 건조합니다.
살코기 덩어리는 셀로판지로 감싸서 면실로 묶어서 둥글게 모양을 잡습니다. 스무 명이 실습하는데 전체 한시간반 정도
걸렸습니다. 일반 농가에서 익숙한 사람들이 만들면 두세명이 반나절 정도 가공할 분량 정도라고 합니다.
나무 베니어판으로 만든 약식 훈연기 내부에 스텐 봉으로 걸어서 훈연 준비가 끝난 직후의 모습입니다. 앞부분에 걸린 것은
베이컨이고 햄 소지지가 보입니다. 아래 부분에는 쇠그릇의 불기운이 그대로 닿지 않도록 쇠판이 보입니다.
훈연용 나무는 마른 벚나무와 생벚나무를 사용했습니다. 벚나무 훈연이 가장 좋고, 참나무나 사과 나무 등 활엽수는
대체로 다 나쁘지 않은 훈연향을 낸다고 합니다. 다만 소나무 등 침엽수는 타르가 많아 훈연용으로는 절대 금물입니다.
뜨겁게 훈연하여 익히는 것을 훈제라고 합니다. 이날은 온도가 60도를 넘지 않게 따뜻한 곳에서 오랜 시간 연기를 쐬는
저훈연 방식으로 했습니다. 30~60도 온도에서 10시간 정도 훈연하였습니다.
이날 점심은 돼지등뼈를 푹 고아서 시래기와 감자를 넣은 감자탕입니다. 사진에는 좀 양이 적은데 저는 세 그릇 먹었습니다.
제가 원래 소식인데, 이런 국은 세 그릇 먹습니다.
거실 벽에 붙어 있는 <애제일야>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라는 성경 구절입니다. 원혜덕 사모님이
2박 3일동안 정성스럽게 식사와 생활을 챙겨주셔서 다들 행복하게 교육받고 왔습니다.
그날 오후에는 돌아가면서 훈연기를 지켰습니다. 밤에는 머릿고기 눌린 것이 나왔네요. 자세한 설명은 안합니다.
밤 열시, 정오에 시작한 훈연이 끝난 직후의 모습입니다. 갈색으로 적절하게 훈연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훈연이 끝난 햄과 소지지, 베이컨이 잘 식었습니다. 이제 햄과 소지지를 70도의 뜨거운 물에 30분 동안
삶습니다. 끓는 물에 삶으면 익어서 육즙이 물에 흘러나오기 때문에 60~70도의 온도를 지켜서 삶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마솥에 물을 끓여서 찬물을 부어가는 방식으로 70도 온도를 유지하여 삶았습니다. 훈연기 양옆에 훈연갈비도 있었는데
사진이 없네요. 훈연갈비는 그대로 잘라서 가마솥에 갈비찜을 했습니다. 사진도 없고 맛의 기억도 없네요. 다만 내놓자마자
광속으로 사라져간 기억은 납니다.
삶은 햄과 소지지를 꺼내어 식히는 모습입니다.
이게 바로 통베이컨입니다. 시중에서 종이처럼 얇은 베이컨만 보던 터라 통베이컨은 좀 생소합니다.
그래도 이만한 덩어리 전체를 마트에서 사면 대체 얼마일까 생각을 하니 절로 행복합니다.
얇게 썰어서 빵에 끼워서 시식을 해보았습니다.
맛을 사진으로 보여드릴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비계의 영롱한 진주빛 색깔이 사진으로 안 보이네요.
만들어진 햄과 소지지, 베이컨을 골고루 나누어 가지고
2박 3일동안 상세하고 자상하게 알려주신 김준권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교육을 받으면서 느낀 바는
소농들이 소규모 축산을 하면 장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농업 부산물을 처리하고, 양질의 퇴비를 자급하면서 축산 가공품을 통해서 부수입도 올리고,
돼지를 잡는 날 마을 잔치를 하고 머릿고기와 감자탕을 나누어 먹으며 마을 공동체도 회복되는 그런 광경을 꿈꾸게됩니다.
대규모로 공장제 축산을 하면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짐승들을 고통스럽게 키우고,
소비자들에게 건강하지 않은 고기만을 주고, 경기 하락에 따라 실패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 하는 등
대규모 축산의 폐해가 얼마나 많은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고기를 먹지 않는 선택을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기는 어렵습니다.
귀농한 우리들부터 소규모 축산을 통해서 안전하고 맛있는 고기를 나누어 먹었으면,
막상 배우고 보면 어렵지 않은 가공을 통해서 집집마다 이런저런 우리집만의 명품을 만들고
부수입도 올리고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직접 흑돼지를 키우고 이번에 돼지를 내신 임성삼 형님과 한차를 타고 귀가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상주에서도 직접 돼지를 한마리 잡아서 열명 내외의 인원이 모여서 육가공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임성삼 형님은 이번 가을 쯤 포천 김중권 선생님댁에서 기계를 임대해서 돼지잡을때 직접 만들어 보겠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향후 기회가 되면 언젠가는 상주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 소규모 축산과 가공을 권장하는 의미에서
이런저런 실습교육들이 활발하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기회를 제공해주신 전국귀농운동본부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사진이 안 보입니다=.=
수정하겠습니다 ㅠㅠ
좋은걸 배우고 오셨네요.상주에서도 이런 교육들이 있었으면 좋겠읍니다.
좋은 배움을 하고 오셨네요....저도 가을 돼지 잡을때 임성삼 샘집에 참석해야 겠네요.
아~ 맛있겠다^^
좋은 경험하시고 오셨네요*^-^*~
눈으로 잘배우고 갑니다...
언제 한번 가볼까 하다가 계속 가보지못하네요. 씨앗을 뿌려 가꾸어 가공까지 알아야 하는게 농사인가 봅니다. 더불어 가축도 길러 이용을 하고요.
예전 연탈불 피울때 돼지머리를 사다가(상당히 쌉니다.) 솥에 삶아 먹으면서 눌린머리 고기를 만든다고 해보아도 잘 안되던데 말입니다. 요새도 가끔씩 족발이나 껍데기를 사다 삶아 먹어보면 그 맛도 괜찮습니다.
예전에 고향 친구 10여 명이 소도 한마리 잡아 먹어 보기는 했는데... 소를 죽일때는 다 도망가 있다 넘어지니 모여들어 껍질 베끼고, 내장 분리하고 각 뜨고....
아 참, 군침 돕니다.
상주환경농업학교에서 경축순환농업에 오랫동안 몸담은 회원과 함께 금년에 흑돼지를 키울 예정입니다. 학교에서 직접 만든 사료(콩비지, 버섯배지 등등..)로 상주환경농업협회 회원이 기증한 새끼흑돼지를 키워서 교육과정을 개설하거나 친환경농업 새내기교육때 유사하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익한 교육이었네요. 우리 센터에서도 한번 해보면 좋을거 같네요.
돼지 한마리 잡읍시다.
관심이 많습니다. 정말 좋은 시간 보내셨네요.
고기가 몸에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관행축산으로 키워진 고기는 좋지 않다...
선순환 축산과 농사 멋집니다.
좋은 교육 받으셨네요. 상주에도 3농가가 소규모 축산으로 돼지를 사육하고 있습니다. 현재 제가 80여마리정도 사육하고 있구요 조만간 환경학교에서 육가공 교육을 진행해볼 계획으로 있습니다.
좋은 정보라서 제 카페로 스크랩해갑니다.
상주교육참여부가 불투명해서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