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필립보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교회는 오늘 예수님의 제자였던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를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으나 후에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제자 필립보와 알패오의 아들로서 믿음과 더불어 행동하는 실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야고보 서간을 저술한 작은 야고보라고 불리는 야고보를 기억하는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예수님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가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를 가리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십니다. 길이며 진리이고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 이미 하느님 아버지를 알게 되었고, 이 앎을 통해 이미 하느님을 뵌 것과 같으니, 이제 아버지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힘주어 역설하고 있을 때, 제자 필립보가 너무도 엉뚱하게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요한 14,8)
이 말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지금 바로 필립보의 면전에서 그것도 방금 전에,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이라고 하는 길을 통해 진리를 실천하고 그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일치의 삶으로 나아가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하느님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고 청하는 이 필립보의 청은 너무나도 생뚱맞게 보이면서 동시에 필립보가 예수님이 하고 있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답변의 뒷문장의 의미를 곰곰이 새겨보면 다른 것을 다 필요 없으니 설명을 차치하고 그 하느님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겠나 해달라는 말로도 들립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아님 정말 무슨 악의적 의도를 갖고 예수님의 말씀을 폄하하려고 작정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필립보의 이 질문에, 예수님도 역시 답답함을 느끼셨는지 예수님의 대답 속에 그 분의 답답함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하느냐?”(요한 14,9ㄴ-ㄹ)
예수님의 이 대답을 통해 예수님이 느끼셨을 답답함, 속 터짐의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 예수님은 필립보의 믿지 못함을 따져 물으시며, 정 예수님의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예수님이 일으키시는 일들을 보고서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라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필립보를 위시한 다른 모든 제자들에게 굳은 믿음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힘주어 역설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너희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2-14)
도무지 믿지 못하고, 믿으려 하지 않는 제자들에게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인지 최후의 비장의 카드를 꺼내십니다.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아버지 하느님을 통해 들어 주시겠다는 결정적 카드를 꺼내 드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믿음으로 이끄는 데에 얼마나 절박하셨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은 믿지 못하는 필립보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굳은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한편, 오늘 독서의 말씀은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안에서 자신이 전해 받아 코린토인들에게 전해 준 복음의 내용을 이야기하며 이 복음의 말씀을 굳게 지켜나간다면 그 믿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바로 그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게 될 것임을 힘 있게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전해 받는 복음의 내용을 상세히 서술하며 그 복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도 야고보에 의해 자신 역시 만나게 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 그 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3-5.7-8)
이처럼 오늘 독서와 복음은 사도 필립보와 야고보의 모습을 전하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한 가지, 곧 굳은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그 믿음이란 바로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길이며, 그 길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때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며, 깨달은 그 진리를 통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스스로를 가리켜 말씀하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그 분을 통해 하느님께로 나아가라고 하시는 말씀의 참 뜻입니다.
오늘 화답송의 말씀처럼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인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온 누리에 펴져 나가고, 그 말은 땅 끝까지 퍼져 나갑니다. 그리고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해들은 이들은 모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과 함께 하게 되고 그를 통해 하느님이 주시는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사실, 바로 오늘 사도 필립보와 야고보를 기억하는 오늘 우리가 듣게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이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는 하늘과 그 분의 솜씨를 알리는 창공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하느님이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깨달아 믿음으로서 그 분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구원의 선물을 얻게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소서.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리이다.
필립보야, 나를 본 사람은 곧 내 아버지를 뵌 것이다. 알렐루야”(요한 1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