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된 사람들이 있다.
한 공간에 모여 있어도 결코 서로에게 닿지 않는 시선,
각자 다른 창밖을 바라보거나, 멍하니 바닥이나 공중의 한 점을 응시한다.
카운터에 나란히 앉은 남녀의 손은 한 끗 차이로 떨어져 있다.
신체적으로는 밀접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
명확한 벽이나 물리적 장애물이 없는데도 인물들 사이에
투명하고 두꺼운 유리벽이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식당의 대형 통유리는 외부와 내부를 명확히 갈라놓고,
이 식당에는 밖으로 나가는 문이 그려져 있지 않다.
빛으로 가득 찬 관 안에 갇혀 있는 인물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사라진 자리는 서늘한 침묵과 빛의 음영이 채우고,
같이 있다는 사실이 고독을 줄여주기는 커녕,
함께 있지만 교감은 없는 극단적인 소외감만 맴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탄생한 거대 도시 뉴욕은
사람들에게 익명성의 자유를 주었지만,
동시에 깊은 관계의 부재라는 대가를 요구했다.
식당 안 사람들은 서로의 이름도, 배경도 모른 채
밤의 한 자락을 스쳐 지나는 ‘익명의 타인’일 뿐이다.
호퍼는 어떤 극적인 사건의 순간을 그리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말을 건네지 않는 정적의 시간을 포착한다.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가 생각난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서로에게 바짝 다가가면 가시에 질려 다시 떨어지게 되고,
너무 떨어지면 추위에 떨게 된다.
고슴도치들은 고통을 겪은 후에야 서로의 온기를 느끼면서도
가시에 찔리지 않는 적당한 거리를 찾아낸다.
호퍼 그림을 보면서,
풍경이 되지 않고, 타인의 온기나 움직임은 느껴지지만,
개인적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는 거리, 언제든 대화에 응할 수도 있고,
원한다면 내 생각 속으로 조용히 물러설 수도 있는 선택의 자유가
확보되는 지점을 상상해 본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지만, 굳이 뻗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상태,
상대의 눈빛을 볼 수 있지만, 그 눈빛이 나를 평가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거리,
고슴도치 딜레마는 먹방 친구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호퍼 그림 속, 카운터 위, 남녀의 손은 거의 닿을 듯 놓여 있지만,
끝내 다다르지 못한 손끝 1cm의 아득함의 거리를?
알고리즘에 점령당하지 않고,
편견이나 고정 관념에 갇히지 않고,
같이 음식을 나누고, 길을 걸으면
이 아득함의 거리 1cm가 다르게 정의될 수 있을까?
첫댓글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