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심야 12시가 지났다
어제 밤새 앓다가 병원에 갔는데 광복절이라고 쉰다
다행히 소아과 연 곳이 있어서, 오후 늦게까지
여러 약물이 담긴 링겔을 세 시간 넘게 맞으면서
비몽사몽에, 어제 8월 15일 새벽 0시에
일본의 기미가요가 나오는 <나비부인>을
KBS에서 방영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
카프카가 주정뱅이코라고 싫어했던*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서양남 핑거튼을 향한 15세 게이샤 쵸쵸의 헛사랑
오리엔탈리즘 비판의 대상이 되는 작품이다
언제 보아도 좋겠지만, 왜
하필 8월 15일 0시에 작전처럼 방영했을까
그것도 이틀에 걸쳐 1,2부로 방영하고
이승만 다큐로 마감하는 블랙 코메디
.
저녁에 찾아간 친구 장인 빈소
소담하고 따스한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중에,
KBS 누군가 게시판에 비판폭탄 터지듯 쇄도하자,
"시청자 여러분 사과드립니다."
JBS 홈페이지 첫 화면에 오른 사과문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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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정답으로 배웠던 한일합병 한일합방,
아니,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의 날,
백성들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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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황토현 우금치 석대들, 대둔산 전투에서
그 누군가들이 숱하게 죽었지만
이미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 당했건만
백성들은 나라가 사라지는 것을 전혀 몰랐다
우당 우회영이 6형제가 6백억 이상을 들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웠지만, 이미 늦었다
눈을 감았다 뜨니 일제시대
.
누군가 중에 안중근이 있었지만
신채호는 <조선혁명선언>에서
"안중근 열사의 폭력적 행동이 열렬하였지만
그 후면에 민중적 역량의 기초가 없었으며"**
라며 이후에 누군가가 너무도 적었다고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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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12시가 넘었다.
이미 오래 전에 짜여진 각본대로
착착 진행되는 과정 중에 있다
한 명씩 빌런들이 등장하고
최강의 빌런에게 이용되는 줄도 모르는, 아니
알면서도 이용되는 착한 시민은 성실한 몰모트로 변해간다
.
<나비부인>의 실제 장소인 나가사키 글로버 가든,
'어느 맑게 개인날'만 아는 사람들은
'나비 부인의 죽음'이라는 비극의 노래는 모른 척 하고
관광 쇼케이스에는 오리엔탈리즘 문제를 찾아보기 어렵다
관광 자본이 주는 꿀에 기댈 뿐이지
깨어있는 누군가가 없다면, 내 일본인 친구도
다시 가미카제의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
.
누군가 경고하지 않는다면
그 누군가가 많아지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온몸에 온갖 주사며 링겔을 꽂아도
백 년 이상 소생 못하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어느 날,
다시 장례식이 질펀한 치욕의 공동묘지가 될 수 있다
.
심야 12시가 넘었다
누군가 깨어 파수꾼으로
누군가 많이 늘어야 하며
누군가 더욱 결단해야 한다
그림자도 안 보이는 저들은
일본령 남한, NHK 서울지국, 착착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동학군의 결기로 맞서지만 결기만 있지 않은가
.
(2024년 8월 16일, 제79주년 광복절을 지내며. 김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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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치니도 볼 수 있는 신문매체에 실릴 <브레스치아의 비행기>라는 글에서, 카프카는 푸치니를 "주정뱅이 코라고 부를 만한 코를 지닌 푸치니"라며 우스꽝스럽게 풍자했다.
** 신채호, <조선혁명선언> (1923년 1월)
*** 몸이 따라가지 못해 토요일 광장에도 못 나가는 게으른 비계덩이를 반성합니다. 토요일 일을 줄이고 곧 다시 나가겠습니다.
첫댓글 깨어 저항하는 누군가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