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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스님이 차를 몰고 가 가지고 어디다가 이제 잠깐 이렇게 대났는데, 그 뭐 가게 앞인가 그랬대요. 그래서 올라갔다가, 위층에 올라가서 볼일 보고 금방 내려왔는데 그 가게 주인이 나와가지고 이렇게 훑어보더니 이 스님은 아주 점잖고 공부도 많이 한 스님이라. 두루막도 착 이렇게 뽑아 입고 그랬는데
“아저씨, 아저씨 왜 여기다 차를 대요?”하고 그러더래요. 그 스님 강의 속에 몇 번 그 소리를 들었어. 그래가지고 가슴이 철렁하더래요. 한국이 아직도 이런 상황인가? 한국이 아직도 스님을 보고 스님인 줄 모르는 세상이 아직도 한국 사회인가? 이렇게 생각한 거요. 스님을 보고 스님인 줄 모르는 그런 세계가 많이 있어요. 놀랍게도 아주 많이 있어. 아직도 많아요.
그렇습니다. 이 불음(佛音)을 듣게, 세간으로 하여금 불음을 듣게 한다. 이 중요한 거요. 그렇게 하면은 묘음(妙音)이라고 하는 광명을 얻게 됐다. 시고득성차광명이니라.
ㄹ. 捨의 光明
又放光名施甘露니 此光開悟一切衆하야
令捨一切放逸行하고 具足修習諸功德이니라
說有爲法非安隱이라 無量苦惱悉充徧하고
恒樂稱揚寂滅樂일새 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捨의 光明
그다음에 자비희사(自悲喜捨) 이게 사무량심(四無量心)인데, 사는 이제 버릴 사(捨)자인데 이건 평정심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로도 해석하고, 보시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로도 하고 그 법당에 가면 희사함 이렇게 써놨어요. 저 위에 희(喜)자하고 요 사(捨)자하고, 기쁜 마음으로 버리듯이 보시하라. 그 뜻이에요.
기쁜 마음으로 버리듯이. 헌신짝 버리듯이 그렇게 해야지. 하 내가 여 불전함에다 돈 만 원 넣는데, 돈 만 원 넣는데. 그 한 번 넜으면 못 꺼내. 그 꺼낼라면 아주 복잡해. 절에 가서 뭐 주지스님한테 이야기하고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래서 원주가 열쇠 들고 올라와가지고 그런데 그게 이제 그 돈이 그 사람 돈인지 어찌 알아? 또 그거 알라면 지문도 인식해야 되고 복잡해.
그런데 왜 넣어놓고 못 잊어? 버리듯이 희사(喜捨) 아주 기쁜 마음으로 버려. 헌신짝 버릴 때 기분 좋잖아요. 헌신짝 다 신은 거. 누가 줘도 안 가져갈 그런 신 버리듯이 그렇게 그런 마음으로 하면은 아주 개운해. 근데 그 참 보시해 놓고 그런 마음 갖기가 그 중생들로서는 쉬운 것은 아니에요. 쉬운 것은 아닌데 그것도 자꾸 연습하다 보면 그거 가능해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사(捨) 사가 이제 그런 의미로 보는게 좋아요.
(121) 又放光名施甘露니
또 광명을 놓으니 우방광(又放光) 명시감로(名施甘露) 그렇게 됐네요.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시감로(施甘露) 감로를 보시했다 그런 뜻입니다. 시감로.
이건 감로는 이제 단이슬이지마는 법문을, 부처님의 법문을 뜻하는 것입니다. 단이슬은 생명을 살리듯이 부처님의 법문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그런 뜻이죠.
此光開悟一切衆하야
이 광명은 일체중생을 개오(開悟) 깨닫게해서
令捨一切放逸行하고
일체 모든 방일(放逸)한 게으른 행(行)을 다 버리게 하고 버리게 하고
具足修習諸功德이니라
모든 공덕(功德)을 수습(修習)하게 해. 구족(具足)하게 수습하게 하나니라.
모든 공덕을 닦는 거여. 공덕 닦을려면 부지런해야 돼요. 부지런하지 않고는 공덕을 닦을 수 없어. 인생사는 결국은 공덕 닦으러 온 것이고 또 불법을 알고는 공덕 닦는 일 밖에 뭐가 있습니까? 자기를 위한 공덕도 공덕이고 남을 위한 공덕도 공덕이고
첫째 자기 그 미혹한 것을 좀 다스리기 위해서 정말 그 공부를 열심히 하는 그런 공덕 일단 하고 그러다 보면 이제 남을 위하는 일도 저절로 하게 됩니다.
(122) 說有爲法非安隱이라 無量苦惱悉充徧하고
유위법(有爲法)은 편안한 것이 아니라 한량없는 고뇌(苦惱)가 다 충변(充徧) 충만이나 똑같은 뜻이죠. 두루두루 가득하다는 것을 설(說)하고
그렇습니다. 세상 유위법이라고 하는 거 그거 뭐 대통령 돼봐야 그다음에 뭐 자살하기 바쁘고 감옥 가기 바쁘고 그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도 이제 금방 몇 개월 되지 않아서 반기를 들고 “네 우리한테 그렇게 약속해 놓고 왜 약속 빨리 안 지키나?‘하고 지금 막 그냥 노조가 막 들고일어나잖아요. 유위법이라고 하는 건 결국 그것뿐이라. 결과가 그거예요. 근데 그거 한 치 앞을 못 보고 그거 하려고 기를 쓰고 그러는 거요.
유위법은 편안한 것이 아니여. 비안은(安隱)이라. 편안한 것이 아녀. 궁극적으로. 무량고뇌(無量苦惱)가 실충변(悉充徧)이라. 한량없는 문제들이 꽉 차 있음을 설해주고
恒樂稱揚寂滅樂일새
항상 즐겁게 적멸락(寂滅樂) 고요함에 대한 락을 칭양(稱揚) 그래서 드날릴새
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그러므로 이 광명(光明)을 얻게 됐다 그런 말입니다.
요건 이제 시감로(施甘露)라고 하는 광명은 이러한 이유로 그런 훌륭한 법을, 광명을 얻게 됐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오온의 육신을 가지고 사는 이상 유위법을 다 외면할 수는 없어요. 외면할 수 없습니다. 당장 먹고 숨 쉬고 입고 뭐 해야 하니까 그게 다 유위법이거든요. 그렇다고 그거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만 하 끊임없이 평생 그것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그것만 매달려서는 안된다. 그 편안한 게 아니거든, 궁극에 가서는 자꾸 매달려봐야 그 편안한게 아니여.
무량고뇌실충변(無量苦惱悉充徧)하고 한량없는 고뇌가 가득 차 있다.
그러니까 적멸락이라고 하는 것은 뭐요? 마음의 편안함이죠. 마음의 안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자꾸 우리가 소개해주고 너무 그렇게 집착하지 마라. 그거 뭐 금방 변하고 금방 무상한데 그건 아무 그렇게 집착하지 마라고 스스로도 우리가 그렇게 해야 되고 다른 사람에게,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일러줘야 깨우쳐 줘야 되고 옆에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그 유위법 하고 이거 출세간법하고 이걸 이제 그 대비해 가지고 우리 깨우쳐 주는 일 그거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면은 자기 자신에게도 아주 큰 복이 되고 그것을 듣고 말하자면 마음에 어떤 그 느낌이, 느낌을 받게 되면 그 사람에게도 큰 소득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러한 광명을 얻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설유위법비안은(說有爲法非安隱) 그랬잖아요. 그리고 유위법은 무량고뇌(無量苦惱)가 실충변(悉充徧)이다. 다 가득하다. 실충만이다. 그러니까 그걸 설명해 주고 항상 적멸락을 칭양 하고, 일컬어주고 하면은 이런 좋은 광명을 얻게 된다.
아. 一光 三學
又放光明名最勝이니 此光開悟一切衆하야
令於佛所普聽聞 戒定智慧增上法이니라
常樂稱揚一切佛 勝戒勝定殊勝慧하야
如是爲求無上道일새 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一光 三學
계정혜(戒定慧) 이것을 삼학(三學)이라고 하죠.
(123) 又放光明名最勝이니
또 광명(光明)을 놓으니 이름이 최승(最勝)이라. 가장 수승함이다 그랬어요. 가장 수승함이다.
此光開悟一切衆하야
이 광명이 일체중생을 다 깨닫게 해서
令於佛所普聽聞 戒定智慧增上法이니라
하여금 부처님 처소에서, 우리 공부하는 데서 이런 뜻이에요. 영어불소(令於佛所)하는 것은. 꼭 뭐 부처님 계신 곳이라고 그 뭐가 부처님인데? 우리가 그렇게 따지면 사실은 고정된 것은 없어요. 우리가 공부하는 데서 해도 훌륭한 해석입니다. 불소(佛所)라고 하는 것을, 불소에서 널리 청문(聽聞)하게 한다. 듣게 한다.
무엇을? 계정지혜(戒定智慧) 요게 이제 삼학(三學)이라고 하잖아요. 증상법(增上法) 가장 높은 법,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법 이걸 널리 듣게 하나니라.
최승(最勝) 가장 수승한 거다. 그러니까 계정혜 삼학을 제대로 공부하면은 우리가 이게 이제 계(戒)는 여러분들 이제 오늘 공부하러 올려면은 주변 정리 다 해야 돼. 약속 전부 오후로 미뤄야 돼. 내일로 미루던지, 그게 계야. 주변 상황 그게 뭐요? 울타리에 창을 들고 지키는 거야. 계(戒) 자가 울타리에 두 개 이렇게 긋고 이렇게 해놓은 것은 쭈욱 울타리가 그 나무를 세워 놓고 그 나무 울타리를 말한 것이고, 그 옆에 이제 창 과(戈)자거든요. 울타리에 창을 들고 지키는 거야.
그럼 울타리에 창을 들고 지킨다고 하는 뜻은 뭐냐? 그건 이제 무조건 그 대문이던지 뭐 울타리던지 뭐 어디든지 창을 쥐고 무조건 지키면 모든 사람을 다 못 들어오게 하면은 그건 안 맞는 거지. 들어갈 사람만 들어가게 하고, 그 그 집 그 저저 집 대문 잘 지키라고 하니까 주인도 못 들어가게 하고 주인 절친도 못 들어가게 하고 뭐 그 집에 가져오는 것도 못 들어가게 하고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지. 이것도 또 지혜가 있어야 돼. 지혜가.
그 계정혜 삼학이 셋으로 나눠져 있지마는 이게 전부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예요. 그러면 선정은 뭐야? 깨있는 마음이야. 안정된 마음. 안정됐다고 하는 것은 티미하게 무슨 뭐 목석처럼 있는 게 아니거든요. 초롱초롱하게 깨어있는 마음이 선정이라. 정(定) 정이라.
그러면 이제 들어 보낼 사람과 막아야 못 들어가게 할 사람 이걸 환희 아는 거지. 그게 지혜야. 그래서 계정혜가 상부상조하는 것입니다. 계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오늘 여기 공부하러 올라면은 모든 그런 그 주변에 자질구레한 일들을 전부 다른 시간으로 미룬다던지 빨리 정리한다던지 아니면 갔다 와서 정리한다고 하는 그런 것을 딱 해놓는 이런 게 계(戒)고
그러면 마음이 안정될 거 아니여. 오늘 뭐 할 일, 오전에 할 일 다 처리했다. 더 이상 생각할 게 없다. 딱 마음이 안정되는 거야. 그럼 공부가 솔솔 귀에 들어가는 거지. 혜(慧)가, 공부하는 건 지혜거든요. 계정혜, 계정지혜. 여긴 지혜라고, 글자 일곱 자 맞출려고 지혜라고 했는데, 보통 계정혜 제대로 할라면 지혜죠.
한 가지 일을 할려고 해도 그렇다니까. 어디 가서 친구하고 차 한 잔 한 시간쯤 마실려고 작정을 했다 그러면 그 한 시간쯤은 다른 거 다 미뤄야 될 거 아니야. 그게 계야. 그래야 마시는 동안에 그래도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할게 아니야. 그게 선정이라.
우리 공부하는 데다가 대면 그다음에 이제 한 시간의 어떤 차 마시는 시간, 대화하는 시간도 아주 유익한 거죠. 지혜가 나는 거지. 유익한 거지. 공부한 데다 대면은 아주 딱 맞아요. 계정혜가. 이게 전부 다 해당됩니다. 사업을 하는데도 해당되구요. 무슨 가게를 하나 여는데도 해당되고 뭐 조그만한 집을 하나 지어도 해당되구요. 집을 하나 짓는데도 계(戒)는 뭐라고? 일단 허가를 받아야죠. 주변 사람들에게 떡이라도 해가지고 “우리가 공사하니까 며칠간 시끄러울 겁니다.” 하고 잠재워 놓는 거야. 이러이러해서 우리가 내가 한 달간 시끄러울 테니까 좀 이해해 달라고, 이게 계라고
이 계를요 아주 광범위하게 본래 의미를 충분히 살려서 우리가 이해해야 됩니다. 이걸 뭐 살생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누가 도둑질을 그렇게 계속하고 있다고 도둑질하지 말라. 그렇게 딱 편협하게 그렇게 해석해 가지고는 이게 안 되는 거요. 그렇게 할 게 아니라 그거야 누구라도 다 알지. 도둑질해서 안되는 거 다 알지. 살생해서 안되는 거 다 알지.
그러니까 이게 계정혜(戒定慧)가 아주 우리 생활 속에 광범위하게 제대로 적용되도록 그렇게 해석을 해야 됩니다. 본래 그런 뜻이구요. 그러면 안정이 딱 되는 거요. 안정이 되면 그다음에 소득이 있게 돼있어. 사업을 하든지
집 짓는 걸 따지면 이제 계자는 이제 내가 설명을 그렇게 했고 그러면은 일하는데 아무 장애가 없는 거지. 정(定) 안정이 됐다 이 말이여. 그러면 뭐 집이 올라가는 건 쑥쑥 올라가는 거라. 그게 지혜야. 계정혜.
어떤 일에도 이 계정혜 삼학이 해당 안되는 데가 없습니다. 한 시간 와서 공부하는 데는 말할 것도 없구요.
그게 증상법(增上法)이야. 제일 높은 법. 계정혜의 증상법을 널리 청문(聽聞) 듣게 하나니라. 최승(最勝)이라는 광명 참 좋습니다. 이름도 뭐 가장 수승하다 했으니까. 최승.
그다음에 이 광명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124) 常樂稱揚一切佛 勝戒勝定殊勝慧하야
모든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수승한 계(戒)와 수승한 선정과 수승한 지혜 그것을 칭양(稱揚)해. 항상 즐겁게 칭양해.
아 불법은 계정혜야. 계정혜는 참 설명 무궁무진해. 계만 가지고 설명해도 뭐 몇 날 며칠이 걸리고 모든 일에, 모든 일에 밥 한 끼 먹는데도 계정혜가 해당 안 되는 게 없다. 그러면 밥 한 끼 먹는 데다 계정혜를 갖다가 대비해서 우리가 보자 말이야.
밥 한 끼 제대로 먹을라면은 어째야 돼? 첫째, 손 씻고 가야 되고 그다음에 주변에 그래도 밥 먹을 수 있는 그런 그 환경을 다 갖춰야지. 그게 계(戒)야. 밥 먹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지. 그게 환경이 안 됐는데 그 저 식사를 할려고 해봐야. 그 식사가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또.
그다음에 그래야 안정되게 식사를 할 수 있고 그렇게 안정된 상태에서 식사를 해야 그게 영양이 되는 거요. 영양가가 돌아가고 그 힘이 왕성해지고 몸에 그게 이제 소득이 있고 온갖 식사를 하는 그런 그 목적달성을 제대로 하는 거죠. 그게 지혜야. 그게 혜라구요.
식사를 한 끼 하나 빨래를 하나 공부를 하나 뭐 잠깐 전화를 하나 TV를 보나 계정혜 삼학 이거 갖다가 전부 갖다가 한 번 들이대 보십시오. 전부 뭐가 잘못됐으면 아 이거 내가 계정혜 이게 잘못됐구나. 계부터 첫째 잘못 됐구나. 그래서 이제 뭐 안 되는구나. 그래 알면 틀림없습니다.
이거요. 아주 여러 가지로 그렇게 적용이 됩니다. 그래서 뭐라고? 증상법(增上法)했잖아. 최고 높은 법, 더욱더 높은 법, 더 이상 없는 그런 높은 법.
그래서 여기서 더 이제 일체 부처님을 승계승정수승혜(勝戒勝定殊勝慧) 가장 수승한 계와 수승한 선정과 수승한 지혜를 칭양(稱揚)해서 자꾸 그냥 들먹거리는 거야. 드날리고 들먹거려서
如是爲求無上道일새
이와 같이 무상도(無上道)를 구(求)하기 위함 일새. 가장 높은 도,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하면 되요. 무상도하니까 뭐 또 특별한 생각하지 말고 가장 이상적인 삶, 이상적인 인생사를 구하기 위함일새
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이러한 까닭에 이 광명(光明)을 얻게 되었다.
아주 그 광명이 하나이지마는, 최승(最勝)이라고 하는 광명이지만 그 하나의 광명 속에는 삼학이 들어있어. 불교의 쪼가리가 삼학이야. 줄거리가 탁 아주 기본 기둥 역할을 하는 게 삼학이야. 계정혜 삼학.
그게 이제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을 여기다 배대를 합니다. 경 율 론. 경(經)은 이제 정학(定學)에 해당되는 것이고, 율(律)은 계에 해당되는 것이고, 론(論)은 부연설명하는 것이니까 지혜에 해당되고, 그런 식으로 배대도 하고 뭐 배대 안 하는 게 없습니다.
이게 이제 이런 기본적인 것을 내가 뭐 이렇게 나왔을 때 또 설명을 이렇게 해야 되니까 그래서 이제 계정혜. 하나의 광명으로써 삼학을 드러내는데 그 말씀드릴 기회가 아주 잘됐어요. 계정혜에 대해서 참 중요한 것인데도 따로 뭐 이야기할 그런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그 계정혜 삼학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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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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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甘露光名--부처님의 법음을 듣게해서 마음의 평안을 얻게한다.
*最勝光明--戒定慧를 잘 지켜서 부처님의 수승한 가르침을 알게 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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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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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