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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고향 풍기 원문보기 글쓴이: 시보네
부부 해로(偕老) 장수마을 곰수골 ‘대사동’
세 의인(義人)이 남긴 송계산, 삶의 터전 돼 풍기읍 대사동 가는 길 그 아래 소쿠리형 골짝 양지바른 터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마을이 장수(長壽)마을로 소문난 대사동(大寺洞)이다. 지난 19일 오후 대사동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장용손 이장, 진병두 노인회장, 김순오 부녀회장, 김기철 어르신 그리고 여러 어르신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역사 속의 대사동 조선 중기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순흥도호부 창락면(昌樂面) 관촌리(館村里)가 됐다. 1896년(고종3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13도제로 개편할 때 경상북도 풍기군 창락면 대사동(大寺洞)과 웅수동(熊水洞)으로 분리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군 풍기면 창락동으로 통합되었다가 해방 후 창락2리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용손(69) 이장은 “창락2리는 본 마을인 대사동과 유석사와 곰수골(웅수동)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며 “예전에 강릉최씨가 마을을 개척한 후 여러 성씨들이 살았는데, 부부(夫婦)가 해로(偕老)하며 산다 하여 ‘장수마을’로 명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명 유래 대사동이란, 저명한 유석사(留石寺)가 있어 큰 대(大)자 절 사(寺)자를 써 대사동(大寺洞)이라 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쉬어 갔다고 해서 대사동(大師洞)이라 했다는 설이 존재한다. 또 강서김씨 족보에 보면 대사동(大司洞)이라 기록하고 있어 유래가 분분하나, 조선총독부가 펴낸 행정구역 명칭에 보면 대사동(大寺洞)으로 기록되어 있다. 웅수동(熊水洞)은 곰수골에 한자어를 붙이니 웅수동이 됐다. 곰수골은 산세가 곰처럼 생겼다는 설과 산세가 험준해서 곰이 살았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진병두 노인회장은 “우리 마을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물이 좋은 마을”이라며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 90이 넘도록 부부가 해로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세 의인이 남긴 송계산 당시 공적비건립 추진위원장인 김기철(89) 어르신을 공적비 앞에서 만났다. 김 어르신은 “세 선생은 100년 전 대사동에 사셨던 분으로 일생을 학자로 살아오시면서 마을을 이끌고, 문맹퇴치와 후진양성에 몸 바치신 분”이라며 “일제강점기 초 전 국토를 측량할 때 곰수골 산(山) 60정(18만평)을 인수하여 1924년 4월 25일 세 어르신 연명으로 영주군청에 등기함으로써 마을 공동재산이 됐다”고 말했다. 어르신은 또 “이와 같은 내력을 가진 산을 송계산(松契山)이라 한다”며 “이 산에서 맑은 공기와 청량한 식수를 비롯하여 산나물, 송이버섯, 목재, 땔감 등이 쏟아져 주민 의식주의 바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고 말했다.
서당교육과 학교설립 선생의 손자 이장희(72.골마)씨는 “조부님께서는 학교교육이 시작되기 전 인 1920년 초에서부터 1940년대까지 창락, 전구동, 수철동 청년들을 모아 한문과 유학의 도(道)를 가르치셨다”며 “여기서 공부한 학동들이 커서 지역사회 지도자로 많이 진출했으며, 저의 삼촌(이관식)께서는 봉현면부면장을 지내셨다”고 말했다. 세 분 중 또 한분이신 김석권(1878-1958) 선생은 조선말(1904)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벼슬을 지내신 분으로 경학(經學)과 문장에 밝았으며, 위엄과 인자하심을 두루 갖추어 만인의 추앙을 받았다고 전한다. 이 마을 김기철 어르신은 “김석권 선생은 1937년 풍기공립보통학교 창락간이학교를 설립할 때 학교부지 2천평을 기부한 공로자요 교육자이셨다”고 말했다.
강서김씨 집성촌 이 마을 김병구(83)씨는 “북한 땅 평양부근 강서가 고향인 저의 조부(김석권)님께서 1900년대 초 증조부(應田)님을 모시고 십승지의 땅 풍기로 와서 산수 수려한 대사동에 터를 잡으셨다”면서 “그 후 강서에서 함께 내려와 흩어져 살던 일가친척들이 이곳으로 모여 집성촌을 이루게 됐다”고 말했다. 김석권 입향조의 차남 김찬육(92) 어르신은 “강서김씨 대사동 문중은 남한에 정착한 일가 중 유일하게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 왔다”며 “산업화 전에는 30여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15호 정도 산다”고 말했다. 대사동 김기철 종중은 “저의 조부(김근현)님은 강서에서 평창으로 이거하여 살면서 김석권 선생과 서신교환을 하다가 대사동으로 오게 됐다”며 “이곳은 물이 좋고 산을 많이 오르내려서인지 모두 만수를 누리다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곰수골 산골커피 이곳은 예술애호가 늘산 김철진(70. 부인 강영순)씨 부부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은 산막이다. 산골커피에 가면 지역 작가들의 시와 그림과 음악이 있고, 철따라 변하는 소백산의 수려한 풍광을 담을 수 있다. 김씨 부부는 “늘 산이 좋아 산에서 산다”며 “여기는 저명한 유석사 가는 길이기도 하고, 소백산자락길 희방사역-곰너미재-당골-삼가동 구간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지만 산이 좋아 찾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대사동 사람들 장 이장은 “마을에 좋은 일이나 먹거리가 있으면 너나할 것 없이 가지고 와서 정나누기를 한다”고 말했다. 올해 98세이신 권태연 어르신께 ‘장수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여쭈니 “술”이라고 답했다. 김형석(84) 어르신은 “권태연 어른신은 지금도 술을 잘 하시고, 가벼운 농사일도 하신다”고 말했다.
70대로 보이는 임관수(84) 어르신은 “우리마을 사람들은 85세까지는 송이따고 산나물 채취도 하고 사과농사일까지 거뜬히 해낸다”고 하면서 “장수의 비결은 좋은 호흡과 좋은 물 그리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女노인회장이신 손형진(80) 할머니는 “마을이 화합하고 활기찬 것은 장용손 이장과 김순오 부녀회장, 이옥례 총무의 덕분”이라며 “올해는 경로당을 새로 짓는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김순오(63) 부녀회장은 “우리마을 어르신들은 여든이 넘으셔도 모두 곱고 단정하시다”며 “아마도 산을 많이 오르내리시고, 좋은 공기와 좋은 물이 장수의 비결 같다”고 말했다. 이옥례(67) 총무는 “우리마을의 자랑 첫째는 부부해로 장수마을”이라며 “이장님은 ‘어르신들이 이제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냐?’며 어르신들을 정성껏 모신다”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풍기읍 창락2리 대사동 사람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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