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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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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 마주하기] 죽음, 윤회, 중음신(최봉수 교수님 강의)
기억하기 추천 0 조회 407 11.06.23 05:54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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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6.23 11:13

    첫댓글 오온이라는 경험이 조건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다보면, 관찰하는 마음도 일어났다 사라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_()_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1.06.25 00:42

    업과 보가 있다 하더라도 업력이 소멸되는 것을 보면...업를 짓는자도 사라지고, 보를 받는자도 사라진다고 봅니다

  • 11.06.25 23:15

     제가 책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라서...사실 글도 이곳의 글이 아니면 거의 안읽어요... 그러다보니...최봉수 교수님을 전혀 모르구요... 그래서 참...뭐라 말하기 그런...
     어쨌든...[업과 보는 있지만, 업의 배후에 업을 일으키는 주체는 없고 보의 배후에 그것을 받는 당사자는 없다]와 같은 번역은, 한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상좌불교권에서도 그렇게 번역하는 편이구요. 그러다보니 영어권등에서도 그렇게 번역하는 편입니다... 따라서 위 본글의 [서양말과 인도말은... 관계대명사 용법은 두 가지.. 제한적 용법과 서술적 용법... ... 한자경전안에는... 그런 문법적 장치가 없기 때문에...]는 낭설인 거죠.

  • 11.06.25 23:25

    ===
     본문에 제1의공경이 나오는데...그 내용이, 일차적으로 별로 어려울 것은 없어요. 업보는 있지만, 그 배후의 주체나 당사자는 없습니다. 그 정도의 의미를 일차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아주 쉬워요...
     업은 조건발생에 따라 오는 곳이 없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조건소멸에 따라 가는 곳이 없이 소멸합니다. 마찬가지로...보는 조건발생에 따라 오는 곳이 없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조건소멸에 따라 가는 곳이 없이 소멸합니다. 여기서 조건발생과 조건소멸을 칭하는 것이 속수법입니다. 유전연기와 환멸연기인 거죠...
     즉 업과 보는 각각, 오는 곳이 없이 발생하고 가는 곳이 없이 소멸합니다. 하지만 보는 업을 조건으로 발생합니다.

  • 11.06.25 23:35

    업은 그것을 발생하게 하는 또 다른 조건이 있어요. 소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즉 의지한 것에서 오거나 의지한 것으로 가는 것등은 아니지만...연기의 이치에 따라 (자성이 없어 비어 있으므로 전적으로 다른 무엇에) 의지하여 발생하고 의지하여 소멸한다는 겁니다. 업을 조건으로 보가 발생하지만, 보는 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고...업이 없는 것을 조건으로 보가 소멸하지만, 보가 업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연기의 이치는 함께 할 뿐, 어느 일방에서 오거나 가는 것은 아니예요. 인중유과와 차이점이죠...인중유과에서 결과는, 원인보다 앞서 존재해 원인의 안에서 나오잖아요.

  • 12.08.31 11:53

    차음이 멸하고 이음이 상속하되 속수법을 제하는 그런 작자는 없다 이런 해석이 옳다면 지금까지 알고 있는 작자는 없다는 것과 해석이 많이 다르네요. 원어를 보았다니 그런 해석이 바른것 같습니다.
    즉 업과 보의 배후에 어떤것이 따로 있지 않다. 방문객님 설명대로 보면 "연기의 이치에 따라 (자성이 없어 비어 있으므로 전적으로 다른 무엇에) 의지하여 발생하고 의지하여 소멸한다는 겁니다" 오히려 배후를 의미하게 되어 부처님 설명과는 반대의 의미가 되는게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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