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이 밤 묶어 둘 수는 없는 것일까!
솔향 남상선/수필가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나는 고3때 담임한 제자를 비롯해서 몇몇 제자를 잊을 수가 없다. 그 가운데에도 대천사는 부국건설 대표이사 정지식 제자한테는 평생 보은으로도 안 되는 사랑을 받았다. 그러기에 정지식 제자가 맨 먼저 생각났는지도 모르겠다. 대천에다 전원주택을 지어준다는 걸 비롯해서 매년 김장까지 해서 보낸 일들을 내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게다가 생일이며 이름 있는 날짜 다 챙기고 명절까지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매년 추수 끝나면 햅쌀 40㎏씩을 보내온 미담도 빼 놓을 수 없다. 그리고 수시로 별미 반찬에 철 따라 나오는 전복, 꽃게, 주꾸미 박스가 끊이질 않았으니 어찌 무감각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제자라기보다는 자식보다 더 고마운 사람이었다. 크건 작건 간에 상대방에게 신세를 졌으면 조금이라도 보은을 해야 하는 성격이기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생각 끝에 해마다 대천 제자 가족을 대전으로 초대해서 회포 푸는 밤을 갖기로 했다. 가족 같은 구성원들이 약주 잔을 기울이며 행복한 밤을 보내는 거였다. 마냥 회포를 풀고 밤 12시가 되기 전에 예약된 호텔로 가서 쉬게 하는 거였다. 금년에도 예년처럼 제자 가족 4식구와 인근에 사는 딸 사위 외손녀를‘구르메’라고 하는 한정식집으로 초대했다. 제자 부인이 마침 금년 2월에 회갑이라서 샴페인 1병에 생일 케이크도 준비했다. 보은은 안 되지만 옷 한 벌 해 입으시라고 봉투 하나도 마련했다. 게다가 한산에서 주문 배달해온 한산 소곡주 1병도 잊지 않고 들고 갔다.
나는 낯가림 술을 하고 있다. 평상시는 술 한 모금 못 마시는 샌님이 좋은 자리나 분위기를 띄워야 할 자리에선 취할 때까지 마셨다. 평상시 못하는 용기까지 내어 분위기를 흥겹게 하곤 했다. 술의 위력은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평시엔 생각도 못하던 말을 취하면 용기가 나기 때문이었다.
좋은 자리라 준비했던 샴페인과 한산 소곡주 병까지 다 비우고 맥주병 소주병 여러 개를 빈 병으로 만들었다. 사랑과 정이 무르익고 있었다. 서로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오가는 술잔에 행복이 묻어나고 있었다. 거리감 없는 술잔이 즐거움에 정까지 열심히 나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는 것도 아닌 오로지 마음에 느낄 수 있는 거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그게 바로 사랑이란 걸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덕담이 묻어나고 유머가 자리를 빛내 주고 있었다. 정지식 제자는 학창 시절부터 의리가 있고 가슴이 따뜻했다. 돈을 잘 버는 사업가이기도 하지만 돈을 멋지게 쓰는 통 큰 사람이기도 했다. 모교인 충남고에 수시로 장학기금도 많이 내놓는가 하면 연말연시엔 불우이웃 돕기 성금도 아낌없이 쾌척하는, 멋쟁이 사업가였다. 제자이지만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삶을 살고 있어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행복한 시간은 물줄기처럼 흐르고 있었다. 행복을 맥질하는 밤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쉬움을 더해가는 순간순간이었다. 이 밤이 다하면 제자 가족은 호텔을 뒤로하고 대천으로 가야 했다. 시간을 붙들어 매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게 안 되는 아쉬움이었다.
“행복한 이 밤 붙들어 맬 수는 없는 것일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더니 이 밤은 왜 이리 행복한지 모를 일이었다.
내가 응급실 실려 가서 전립선암 4기 판정을 받았을 때 만약,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 이런 암이 나한테 걸려. 재수도 되게 없지!”
이런 말을 하면서 부정적 생각으로 살았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도 그게 아닌, 감사만 하고 살았더니 기적까지 일어났다. 오늘따라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명언이 감명 깊게 새겨지는지 모르겠다.‘감사의 분량이 행복의 분량’이란 말이 왜 이리 실감이 나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2년전 병원 응급실 실려 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전립선암 4기’라 했던 청천벽력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4기암 환자가 전이가 안 되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응급실에 실려 가지 않았다면 전립선암은 알지도 못하고 집에서 전이가 되어 그냥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걸 생각하니 하늘이 날 살려 주시려고 응급실에 가게 하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부터 나는‘감사’만 하고 살았다.‘감사하는 생활’로 4기 암 환자가 건강을 되찾았다. 수술이나 방사선 항암치료 그 어느 것도 받지 않고 psc235, 정상 수치가 되었다. 기적이었다.‘감사’만 하고 살았더니 하늘이 기적을 선물로 주신 거였다.‘감사하고 살면’‘감사할 일이 생긴다’더니 그것이 나한테 실감나는 현실이 되었다.‘감사하는 생활’로 암도 고치고 덕분에 사랑하는 제자 가족과 행복을 만끽하는 자리도 마련되었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니 시간 가는 것이 아쉬웠다.
‘감사의 분량이 행복의 분량!’
이라 말해 천추만대 세인들의 가슴을 울린 타고르의 명언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빅토르 위고의 명언도 ‘내가 질쏘냐?’ 손짓하고 있었다.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사랑을 확신하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감사하는 생활’로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기쁨, 즐거움으로 여물어 가는 이 밤
감사와 행복으로 맥질해 가는 이 밤이여, 부디 더디 새소서.
“행복한 이 밤 붙들어 맬 수는 없는 것일까!’
첫댓글 남상선 수필가 형님 좋은 글입니다
강추위에 건강하세요♥
낯가림 술을 하시는 분께서 취할 때 까지 마셨으니 얼마나 유쾌하셨을지 상상이 됩니다. 좋으신 분들이 주변에 많으니 참 복이 많으시네요. 부럽습니다 :)
"감사의분량이 행복의 분량이다!"
역시 타고르 다운 명언입니다.
선생님께선 행복한 밤을 궂이 잡아놓지 않으셔도 충분히
더 큰 행복을 끊임없이 연속 시키실 성품 이십니다.
선생님께선 섬세한 겸손함과 남을 생각하는 따뜻한 배려심을 타고 나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