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문사 기자가 파블로 카잘스를 찾아갔다. 마침 연습 중인 그에게 질문하기를 "당신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손꼽히는데 왜 아직도 하루에 6시간씩이나 연습을 하는가?" 라고 묻자 "지금도 내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답했다는 일화는 많은 연주인에게 교훈처럼 남겨져 있다. 이때 카잘스 나이 95세 때의 일이다.
첼리스트 카잘스가 바흐의 악보를 발견한 곳은 바르셀로나 해안가 고서점에서였다. 창문 너머 바닷냄새가 철 따라 오가는 배경으로 음악 서적을 넘기는 일은 연주 못지않은 즐거움이었다. 바다와 서점의 근접 거기에는 우수가 있고 음악에의 꿈이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계절이 옮겨가고 몇 편의 습작노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평범한 일상이던 그에게 한 묶음의 악보가 발견되면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바흐의 명곡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난이도가 높은 악보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인 카잘스는 완벽하지 않으면 무대에 좀처럼 나서지를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첫 연주회를 하기까지 1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마치 수행자처럼 면벽정진하여 득음에 이른 것이다. 마침내 무반주 첼로 모음곡 초연함에 세세하면서도 유장한 연주는 바흐를 대신한다는 평을 얻게 된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는 두 사람의 음악적 특징이 담겨 있는데 전통적인 클래식 경계를 넘나드는 멜로디는 화려함으로 나타나 팝적인 요소가 묻어난다. 이는 오페라를 제외한 모든 장르를 섭렵한 바흐의 왕성한 창작에서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바흐를 기리는 카잘스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지중해 연안이 고향이다. 그에게 고향은 몹시 그리운 존재였다. 언제든 갈 수 있는 사람은 가치를 잊고 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간절하다 못해 애절한 법이다. 그가 단순히 고향을 떠났다기보다는 망명에 가깝다.
당시 스페인은 암울했고 평화를 위협하는 불성실한 사람들에게 음악으로써 메시지를 전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또한, 평화스러운 풍토가 정착하기 전에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은 자국민들을 일깨우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래서 무대에 서면 가끔은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연주 중간에 해설을 곁들일 때면 카탈루냐 고향의 새는 피스 ( peace) ~하며 운다는 흉내를 내기도 하고 연주 중에 목소리를 넣어가며 추임새를 이끌어내는 독특한 무대는 자연스러움이 되어 관객 안으로 들어가고 관객은 안아주는 감동적인 장면을 지금도 흑백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 연주하든 엔딩은 카탈루냐 민요 '새의 노래'였다. 앵콜에 붙들려 나가도 제 차 '새의 노래'였다고 한다. 원래 새의 노래는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아기예수 탄생을 알리는 성탄 캐롤송으로도 불려졌다. 클래식 공연임에도 평화를 노래하고자 팝적인 민요를 어김없이 연주하였던 것이다. 새는 창공을 날을 때만이 자유롭다. 날으고 싶었고 날아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바람은 일지 않았다. 고독한 알바트로스처럼 무거운 날개를 접은 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머니의 고향 푸에토리코 '산환'에 잠든다.
찔레꽃
찔레꽃은 마을 어귀 산골 초입에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다. 화려하지 않아서 있는 듯 없는 듯 우리와 함께 봄을 건넌다. 그러하니 소리꾼 장사익은 순박한 꽃이라고 불렀다.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 연두빛 이파리에 촘촘히 박힌 찔레꽃은 고향 광천 땅 정서에서 발원하여 어느 때는 별빛으로 오고 어느 때는 달빛으로 내려 풀꽃이 노래가 되었다.
장사익 소리꾼은 작사 작곡에도 능하여 국악가요를 작곡하는 김영동과 더불어 중심축에 있다. 작사 작곡 소리까지 1인 3역을 소화해내는 뮤지션으로 국악 쪽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소리꾼이다. 여기에 음유시인이라는 명함을 하나 더 얹힐 만큼 시적인 감성이 풍부하여 노랫말은 대부분 그의 몫이다. 1집에서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찔레꽃'이 여성스럽다면 '국밥집에서'는 삶을 다 살아버린 것 같은 체념적 서정이 솔직하게 배여 있어 섦다.
여러 곡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 하늘 가는 길'이다. 이 곡은 광천에서 들소리로 떠돌고 상엿소리인 망가로 구전되어온 소리를 채록하고 다듬어 내놓은 곡이다. 유교적인 윤리관을 살짝 벗어나 망자를 보내는 고통과 애달픔을 담담한 마음으로 추스르고 놀이 가락조의 해학성을 첨부하여 긴장감을 이완시킨다. 이는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지혜로운 기치까지도 노래 속으로 끌어들인 장사익표 구비문학적 소리라는 관점에서 옛것을 현대감각에 맞게 끌어낸 데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목소리는 가뭄 뒤에 함초롬하게 젖어나는 땅 냄새 같기도 하다.어떤 이는 건초 더미에서 풍기는 풀 내 같다고도 한다. 이러한 재주꾼을 두고도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명창 안숙선이다. "아이고 아깝당게 당신은 처음부터 소리(판소리)를 했어야 허는디 .." 모 방송국에 출연해 두 사람 간에 주고받은 말의 추임새 한 대목이다.
하지만, 판소리보다는 태평소 소리에 매료된 그는 독학으로 매달렸다. 석 3년 우공이 산을 옮기듯이 정진한 끝에 그 길로 사물놀이패를 찾아간다. '돈은 달라고 안 할 테니 태평소 주자로 올려 달라' 고 하여 마침내 정단원으로 활동하기에 이른다.
일이 잘 되려고 그랬는지 전주대사습놀이에 참여한 농악패는 태평소를 앞세워 장원을 차지한다. 차츰 공연 요청도 잦아지고 공연 뒤에는 으레 뒤풀이가 있기 마련, 한 번은 좌중이 무르익자 피아니스트 임동창 선생이 피아노를 두들겼고 장사익선생이 소리로 화답하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기투합해 희망 한 단 뿌리는 판을 만들어 간다.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며 곡의 완성도를 높여갈 즈음에 타악에 김규형 선생, 기타에 김광석 선생이 합류하여 '장사익 소리판' 1기가 짜여진다.
1994년 고시레, 찔레꽃, 귀가, 국밥집에서, 꽃, 섬, 하늘 가는 길 ..등 민초들의 허기진 삶이 눅진하게 배여나는 1집에서부터 6집 '꽃구경'까지 가슴 저미는 곡들이 주종을 이루지만 소리꾼 얼굴은 해맑다. 화동이라 불릴 만큼 꽃을 좋아하다 보니 꽃과 연관된 노래가 많다.
음악여행
손님을 기다리는 공항 택시기사들은 문을 반쯤 열어 놓은 채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을 구걸조로 들려준다 . 공항을 벗어나 말레꼰으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내걸린 빨강 노랑 파랑 원색의 빨래와 옷감들. 몬드리안 풍 수직과 가로 미적 넓이의 추상미와 오버랩 되어 차창밖으로 스쳐간다.
말레꼰 해변의 검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영화 속 소품처럼 서 있는 오렌지빛 가로등. 어디선가 들려오는 반도네온 소리와 뒤엉켜 이방인들을 몽롱하게 만든다. 카리브해 사탕수수에서 축출한 다이키리 한 잔에 블루스 한 스테이지면 더할나위 없다는 연인들. 자연과 체제에 순응하며 삶을 즐길 줄 아는 저들만의 여유로운 문화가 이채롭기만 하다. 이는 카리브 해를 배경으로 역사와 환경에 따른 공동체 의식이 음악이라는 통로로 이어진 까닭이다.
쿠바의 음악을 알기 위해서는 과거로 회귀 하여야 한다. 콜롬부스가 쿠바의 영토를 스페인 땅으로 선포하고 7개 지역으로 분할 관리하면서 중남미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한다. 그 무렵에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함에 따라 많은 노동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아프리카에서 원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다.
이때 스페인 문화와 아프리카 문명이 혼합하여 다양한 혼혈문화권이 형성 되는데 음악문화로는 '아프로큐반'(아프리카.쿠바) 이라는 독특한 음악세계가 자생하기에 이른다. 아프리카 특유의 탄력 있는 리듬과 섬세한 멜로디를 지닌 스페인 음악이 숙성 되면서 오늘날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BuenaVista Social Club 환영 받는 클럽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쿠바 혁명 전 고급 술집 이름,음반 타이틀, 음반 레코딩에 참여한 멤버, 영화제목 ) 이라는 음반이 만들어진다.
명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프로듀싱한 미국 출신 기타리스트 '루이 쿠더'는 뿔뿔이 흩어진 전설적인 뮤지션들을 한데 모아 음반제작에 들어 간다. 여기에 참여한 뮤지션은 콤파이 세군도(Compay Segundo 기타.보컬) 이브라임 페레르(Ibrahim Ferrer보컬) 오마라 포르트온도(Omara Portuondo 여성 보컬) 루벤 곤잘레스(Ruben Gonzalez 피아노) 엘리아데스 오초아(Eliades Ochoa 기타 보컬) 5명을 중심으로 팀을 이루고, 세션을 참여시켜 '아프로큐반'음악의 진수를 보이는데 60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린다.
'내 뜰에는 꽃들이 잠들어 있네. 글라디올러스와 장미 그리고 흰 백합 깊은 슬픔에 잠긴 내 영혼 난 꽃들에게 내 아픔을 숨기고 싶네. 인생의 괴로움을 알리고 싶지 않아 내 슬픔을 알게 되면 꽃들도 울테니까 조용히 깨우지마라 모두가 잠들었네 글라디올러스와 흰 백합 내 슬픔을 꽃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내 눈물을 보면 시들어 버릴테니까 .' 이브라임 페레르 그리고 여성보컬 오마라 포르트온도가 듀엣으로 부른 조용히(Silencio)라는 명곡의 서정적인 가사다. 이곡은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 삽입 되어 국내에 많이 알려진 곡이다 .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만든 빔 벤더스 감독은 "쿠바에서 음악은 흐르는 강과 같았고 영화도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영화 '파리 텍사스'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루이 쿠더와 함께 말로만 전해오던 전설 속의 음악과 뮤지션을 무대 위로 이끌어내어 유장한 아프로큐반의 서정을 한껏 프리즘에 투과시켜 낸다. 이리하여 시애틀 국제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타리상,그래미상 ...등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 '빔 벤더스'와 '루이 쿠더' 그리고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멤버들과의 환상 콤비는 궁핍하고 녹록치 않은 하바나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지주 역할을 하며 자유로운 영혼의 안식처를 부여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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