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춘동계 조직을 알 수 있는 "계춘동계안(桂春洞契案)" 등 문서가 있다. 마을은 내동마을과 같이 지형에 따라 일부 남향(南向)이고, 대체적으로 천관산을 마주하는 서향(西向)이다. 1747년(丁酉) 장흥읍지에 桂春洞은 "맑은 샘과 골짜기가 아름답고 연못과 정원의 화초가 늘상 피어 있어 마을 사람 위세보(1669~ 1707)는 詩·書·畵 3절로 스스로 즐기며 살았다"고 소개하였다. 또한 계동춘풍(桂洞春風)은 계수나무골에 부는 봄바람은 항상 훈훈함을 표현 한 것으로 방촌8경 중, 제2경에 해당된다.
현재 행정상으로는 방촌리 3반으로 경계범위는 내동 방향에서 첫번째 위점환님 가옥부터 다산재(茶山齋)까지 포함하고 있다. 지난날에는 존재고택을 중심으로 한 일대를 "우대미" 죽헌고택을 중심으로 한 일대를 "아대미"라고 불렀다. 마을 동계에서는 2000년 以前까지 4반 신기동계와 공동하여 주민 임종(臨終)시 장례(葬禮)를 주관하는 부상계(賻喪契)가 있었다. 현재 15호가 거주하고 있으며, 유사 1인이 동계(洞契) 일을 보고 있다. 보유자산은 현금 40,000,000원 이다.
자문 : 근헌(勤軒) 위공환
3.신기 동계
천관산 기슭인 서쪽에서 바라볼 때 동쪽의 마을은 전체적으로 한 마을군으로 보이고 실제 마을 구조의 혈관이라 할 수 있는 마을 안길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신기마을은 내동, 계춘동과 달리 집촌(集村)으로 형성되지 않고 3개群 정도로 흩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볼때 방촌 동쪽에 마지막으로 조성된 마을이다.
휼륭하신 조상님들의 옛발자취와 방촌마을 역사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된 글이네요.
잘보고 갑니다.
계춘 신기동계에 대해 잘 알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글이 좋아 보입니다. 벤치마킹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