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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포식 본능을 가지고 있고
성체가 되면 체격과 힘이 크게 증가하며
먹이·영역·번식 등의 상황에서 공격성이 나타날 수 있고
사람에게 익숙한 개체라도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과 친하다"와 "야생성이 없어졌다"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을 이사야 11장에 적용하면 더 흥미롭습니다.
오늘날 동물원이나 사육 환경에서 사자와 사람이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인간의 관리와 환경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제한적인 관계입니다. 반면 이사야 11:6~9의 모습은 인간이 동물을 길들여서 만든 평화가 아닙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출처 입력
여기서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근본적인 적대관계 자체가 사라진 것처럼 묘사됩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하신 인간 사회의 비유와 연결하면 더욱 선명합니다.
사람이 사자를 길들임
→ 외적인 환경과 관리에 의한 평화
메시아가 통치하심
→ 존재와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에 의한 평화
오늘날 인간 사회에서도 비슷합니다. 법과 제도, 교육, 감시 때문에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마음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이사야 11장의 메시아 왕국은 억지로 폭력을 억제하는 사회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져 더 이상 해치고 상하게 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9절이 핵심입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출처 입력
결국 이사야 11장의 평화는 사자를 훈련시킨 평화가 아니라 창조질서 자체가 회복된 평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 보면 앞에서 말씀하신 "겉으로 착하고 겸손한 것"과 "중심이 변화된 것"의 차이와도 연결됩니다. 외부에서 억제된 행동과 내면에서 변화된 본성은 같지 않습니다. 메시아의 통치는 단순히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중심과 세계의 질서까지 새롭게 하는 통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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