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2: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요한일서에서는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하죠. 그런데 지금 요한복음에선 뭐라고 해요?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누가? 하나님이.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셨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둠이고 그리고 어둠을 우리 안에 받은 채 눈이 멀어지는데, 우리의 어두움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거죠. 우리의 어두움이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우리의 어두움이 있다, 라고 하는 거예요. 이 요한복음 말씀은 이사야서를 인용한 말씀이에요.
(사 6:9-12)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이 말씀을 지금 요한복음에서 인용한 거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암이라고 해요, 백성. 백성에게 이르기를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 라고 해요. 그러니까 성도는 태초에 빛을 받은 존재라고 했어요. 근데 성도가 빛을 받고도 바로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는 거죠. 그게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고 해요. 마음을 둔하게, 샤만이라고 해요. 살찌게 하라, 라고 해요. 살이 쪘다는 거예요, 둔하게 한다는 건. 가난해야 되는데, 갈급해야 되는데 그런데 살이 쪘다, 라고 해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본다고 하는데 소경이 되는 거예요. 염려하건데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라고 하는데 염려하건데, 라는 말은 없어요. 뭐 하지 않도록, 펜이라는 말이 있어요.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지 않도록 막히게 하라, 감기게 하라, 라고 하는 거예요.
자, 어쨌든 돌아오지 못하도록 눈과 귀를 막으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런데 중요한 거는 이 백성이라고 하는거죠, 하나님이. 이 백성이라는 말이 암이라고 했어요. 이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이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에요. 암이라는 말은 아인과 멤이라고 했죠? 진리의 말씀을 뜻하는 거예요. 아인은 눈이에요. 눈은 진리를 말한단 말에요. 그리고 멤은 말씀이잖아요. 하나님이 택해서 진리의 말씀을 주는 존재가 백성이란 말이에요, 암. 그러니까 지금 이 말씀은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주는 말씀인데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란 말이죠. 근데 눈과 귀를 막아버리라고 한 자가 백성이었어요. 하나님의 백성.
근데 그거 보다 더 중요한 게 뭐냐면은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라고 하는 그 질문이에요.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또 대답을 해주시죠. 그러니까 이게 눈과 귀가 막히고 못 알아먹는 게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확실하게. 일시적이고 한시적이라고 하는 거예요. 어느 때까지입니까?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성읍이 황폐하게 되어서 주민이 없어질 때까지라고 하는 거죠? 일차적으로.
성읍은 이르에요. 성은 우리를 이야기하는 거죠? 샤아, 와르르 무너져 황폐해지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무너지는 거란 말이에요, 큰 성 바벨론이. 우리가 큰 성 바벨론이란 말이죠. 나라고 하는 그 큰 성 바벨론. 율법의 성이 무너져서 거기에 사는 주민이 없어지는 거란 말에요. 그리고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가옥은 바이트, 집이에요. 집은 성전이에요. 옛 성전에 사람이 없고 가옥들에 사람이 없고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고, 다 같은 얘기에요.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역시 같은 이야기에요. 아다마, 땅이란 말에요.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러한 일이 있었지만 이 일들은 지금 성경 독자인 나를 가르쳐주시는 내 안의 이야기인 거예요. 나의 옛 성전으로 박살내고 거기 살던 내 옛 사람을 멸하는 이야기란 말이에요. 내 안에 그 가나안 칠족을 진멸하는 가나안 정복 전쟁과 같은 이야기인 거예요.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사람, 사람은 아담이에요. 하 아담. 여기에 사람들이라고 했지만 단수에요, 하 아담. 그 아담. 한 사람이에요. 나, 나를 구원하는 이야기란 말에요.
그리고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다, 라고 해요.
땅, 땅은 에레츠, 나란 말에요. 하 에레츠. 그 땅. 태초에 천지를 지으시잖아요? 하늘과 땅을 지으시잖아요. 그 땅이란 말에요. 하 에레츠, 나란 말이에요. 가운데, 케레브에요. 케레브가 내부, 중앙, 한가운데인데. 그러니까 케레브 에레츠. 땅 가운데, 내 가운데란 말에요. 내 안이 아주바, 아주 황폐해진다. 폐허가 된다, 라고 하는 거예요. 완전히 박살날 때까지. 그때까지 뭐 한 대요? 나는 소경이 된다. 그리고 귀머거리가 된다, 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폐허가 되고 내가 폐허가 되고 완전히 박살나면 어떻게 돼요? 그러면 나의 귀머거리 소경은 끝난다고 하는 거죠. 볼 수 있게 되고 들을 수 있게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는 저주의 말씀이 아니라 은혜의 말씀이란 말이죠. 복음이란 말이죠, 구원의 말씀.
우리는 지금 그런 시간을 살고 있잖아요? 근데 하나님은 왜 이런 시간, 이런 과정을 겪게 하시느냐?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그죠? 자기 아들도 죽이시고 그리고 자기 백성들은 광야에서 그 고생 고생을 하고. 그러한 시간이 왜 필요하다는 거예요? 도대체? 그런 과정이. 이유가 있겠죠? 하나님이 어떤 뜻이 있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겪게 하시는 거겠죠?
자, 그러니까 구원의 능력은 우리에게 없다, 라고 하는 거예요, 전혀. 구원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눈과 귀를 막으신 그 일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우리를 가르쳐주시는 그 일과 관계없이 내가 스스로 깨닫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죠? 막지 않으면?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구원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하는 거죠. 그거 알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의 그 자비와 긍휼이 아니면 아무도 못 돌아온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눈과 귀를 열어주셔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결론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의 은혜를 알라, 라고 하는 거예요. 열어주시는 게 은혜이고 그리고 깨닫게 하시는 게 은혜란 말이죠. 이게 전부 그 빛을 받은 성도가 한시적으로 어둠을 경험하는 이유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자랑할 게 없는 거예요, 은혜를 받은 자는. 진짜 은혜를 받은 자, 그 은혜를 아는 자는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자기를 드러내는 게 아니에요. 그 은혜를 찬송하는 자로 가는 거예요. 시편이 전부 아들들의 찬송이란 말이죠. 시편을 찬송하는 자가 되는 거예요, 아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