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좋은 저녁입니다”
강희근 (요셉 시인)
정애 엘리사벳(김장원, 서울공대 재학)은 4학년 1학기에 교환학생으로 영국 런던에 가 있었다. 짧은 방학이 되어 스페인과 로마기행을 하면서 교황선출이라는 세기적 현장에 초점을 잡고 바티칸에 닿았다. 엘리사벳은 교황청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수녀원 민박시설에 짐을 풀었는데 수중에는 돈이 바닥이 나 있었다. 스페인에서 소매치기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통영에 있는 집으로 연락을 하여 로마에 와 계시는 마산교구 신부님을 수소문한 끝에 최진우 아드리아노 부제(신안동 출신)와 연결이 되어 로마에서 쓸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엘리사벳은 2013년 3월 12일 콘클라베가 시작되는 시간부터 베드로 광장의 군중들과 함께 맨 앞줄을 놓치지 않고 자리잡고 있었다. 교황 선출이 임박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던 군중들이 3월 13일 오후 7시에 이르자 시스티나 대성당 굴뚝을 쳐다보고 흰 연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굴뚝 끝에 앉아 있는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가지 않고 있어서 소리를 질렀다. “날아가 비둘기! 비둘기 날아가!” 아니나 다를 까, 비둘기가 뜬 뒤 바로 흰 연기가 솟아오른 것이다.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들은 모두 베드로 성당 발코니를 쳐다보고 있는데 엘리사벳 옆에 있던 한 사람이 “엇, 저기 스크린에 당신 얼굴이 떠요. 보세요!”라는 말에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얼굴이 뜨고 가득 차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이런 일이! 교황 성하 탄생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리는데 ‘내 얼굴’까지 화면에 오르니 무엇인가를 붙들고 싶어 다른 사람의 옷소매를 잡았다. 그 사이 교황 프란치스꼬1세는 교황복으로 갈아입고 발코니에 나타나셨다. “좋은 저녁입니다. 여러분의 환영에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 세계의 통신은 뉴스를 실어나르기 바빴고 필자는 우리 평화방송 뉴스를 고정해 놓고 있는데 교황 탄생의 침묵이 흐르고 드디어 뉴스 자막에 “제266대 교황 탄생”이 떴다. 기다리는 동안 자막 위에 엘리사벳의 얼굴이 2,3초간 떴다. 조금 뒤 새 교황님이 발코니에 나와 손을 흔드셨다. 이 순간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긴장의 순간이었다. 이때 통영 태평동 성당 주변에서는 난리가 났다. “엘리사벳이 서울에 있을 낀대 와 베드로 광장에 있노?” “TV에 나오는 처니애가 태평동에 한의원 딸애 아이가?” 전화가 바리바리 얼키고 설키어 왔다. 네티즌들은 “저 여자가 한국 사람 같기도 하고 일본 사람 같기도 하네” “아니야 한국 여자야. 주님이 한국을 잊지 않고 계시는 것 같애.”
각설하고, 필자의 처조카 이야기라 사적으로 흐른 감이 없지 않다. 이제 세계가 기다리던 그 교황님이 즉위한지 1년여에 갖가지 이야기들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프란치스꼬 충격’이니 ‘파격 행보’니 하는 일들이 우리를 새롭게 하기도 하고 설레게 하기도 한다. 8월이면 우리나라에 오신다. 처해진 입장에 따라 각기 기대하는 바가 클 것이다. 필자의 경우, 새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에 나오는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렵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라는 대목에 특별히 주목하고 있다. 부활을 앞둔 사순절에 글자로 읽지 않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는 은총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