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심장을 지나고 있는 일월입니다.
예년보다 덜 춥다고는 하지만 요즘은 완전 추워서 밖에 나가기가 무섭더라구요.
대한과 소한 사이엔 가장 춥다고 하는데요.
어여 겨울이 빨리 지나길 바랄뿐입니다.
그렇다고 집안에만 있으면 면역력 떨어져서
외부활동 할 때 감염성 질병으로 몸이 힘들어 지겠죠.
이럴때 일 수록 잠깐의 야외 활동으로 몸튼튼 마음튼튼 으로 일상의 활력을 불어 넣자구요.
야외활동만 하면 온몸이 꽁꽁 얼어 움직임이 둔해지고 힘들어 지잖아요.
그래서 1월 한달은 바깥 여행지 보다 실내 여행지를 찾아 지적 사치를 맘껏 부려봅니다.
농업박물관으로 떠나 봅니다.
농업박물관은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6번 출구로 나와 광화문 방향으로 백 미터쯤 가면 바로 보입니다.
도심에 박물관, 미술관, 기념관 등 볼거리 가득합니다.
특별한 여행지를 찾아 꼼꼼한 여행을 하면
지리한 일상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생각의 깊이가 더 해질 수 있습니다.
선사시대 농업형태 인데요.
이 시대는 빠삐코? 가 살던 시대 잖아요.
흙을 일미터 이상 파고 깔대기 모형으로 집의 형태를 만들었죠.
음식도 집안에서 직접 불을 피워 해먹고
농사 짓는데 필수인 물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강가나 냇가쪽에 살았답니다.
지금의 캠핑하고도 비슷하죠?
이시대는 수렵과 체집, 정도이고요. 농사는 조, 기장 정도로를 지었다고 합니다.
선사시대 농작물 이예요.
청동기 시대부터는 화전을 만들고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 공동체가 시작됐는데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반듯이 불을 질러야 했던거죠
그래야 잡초도 태우고 태운 잡초는 거름이 되는 거죠
마전리 유적지에서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철기시대 부터는 도구도 이용 했는데요.
이때부터 정착농경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농사는 혼자 짓기가 넘 힘든 작업이잖아요.
품앗이를 해가면서 서로 돕기 시작한 거죠.
한국인의 근원이고 생명을 이어주는 농업은 고구려 시대를 지나
삼국시대부터는 나라의 근간으로 삼고 농업장려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이 굶주림 없이 사는 것은 나라님의 덕이 있어야 했다고 생각한거죠.
고려시대 계단식 논 입니다.
고려는 후 삼국을 통일 한 후, 재정의 토대가 되는 농업을 중시하면서 농업 정책을 더욱 강화했는데요.
국가적인 차원에서 경작 후 버려진 땅인 진전(陳田)이나
황무지를 개간하는 농민들에게 조세를 감면해주는 정책을 폈다고 합니다.
권농 정책에 따라서 왕이 직접 풍년을 기원하는
선옹제를 주관하고 친경적전이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려시대는 산꼴짜기 계곡을 따라 논밭을 만드는 개간이 많았는데요.
계단식 논인거죠.
계단식논은 벼농사를 짓는 나라에 많이 분포돼 있는데요.
적은 땅에 식량자원을 확보하는데는
효율적으로 토지를 관리했던 거죠.
중국 용승현에 있는 계단식 논(사진, 구글발췌)
주로 벼, 보리, 밀, 조, 기장, 수수, 피, 귀리, 콩, 팥, 녹두를 재배했다고 합니다.
벼를 재배할 때는 논에 직접 볍씨를 뿌리는 방식을 이용했고요.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에서 재배한 벼의 알곡이 크고 맛이 좋다고 기록되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일상생활에 이용하기 위해서 소나 말을 사육했다는 문헌도 있습니다.
삼국시대 부터 농업이 더욱 발전하고
이때부터는 소가 밭을 갈기 시작했어요.
벼농사의 필 수 물관리도 시작됐는데요.
가뭄과 홍수를 대비해서 댐도 만들고 수로도 만들었죠.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농업은 나라의 정책으로 더욱 굳건하게 장려했습니다.
종묘와 사직을 보면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왕이 죽으면 동쪽 종묘에 신주를 모시고
농업의 신(땅의신)은 서쪽인 사직단에 모신거죠.
사직단은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를 지는 장소인거죠
그래서 조선의 왕들은 종묘사직 이라는 말을 많이 썼나봐요.
당시엔 농사가 잘 되어야 안정된 기반에서 왕권을 강화 할 수 있다고 했답니다.
그러니 매년 농사철이 시작될 무렵엔 나라의 주요 행사로 제를 지냈던 거죠.
조선시대에는 농사를 장려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다양한 행사를 열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선농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전온제 였습니다.
선농제는 농사와 종자를 관장하는 농업의 신, 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사를 올려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던 중요한 국가 의례 이었습니다.
국왕은 한양의 동쪽 교외에 있던 선옹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친히 밭을 가는 친경을 실행하면서 농사를 권장하는 의례를 몸소 행했습니다.
왕비는 선담잔에서 제사를 올리고 직접 누에를 치는 친잠례를 했고요.
농사짓는 아낙을 보니 칠갑산이 생각나네요.
공밭메는 아낙네야..
배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음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눈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도 어린가슴속을 태웠소
민중의 고단함을 단적으로
표현한 노래지만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엄마생각이 나요.
맞두레 입니다.
양쪽으로 끈을 달아서 둘이서 물을 퍼 올리는 도구 입니다.
장군 인데요.
오줌 장군 똥장군 분뇨를 밭으로 나르는 도구 입니다.
똥장군
봄이면 논에 모내기를 해야..
일년 먹을 곡식을 생산하죠.
옹구 입니다.
곡식을 나르는 도구 라네요.
처음보는 것이라서 완전 신기했어요.
각 지방의 호미 입니다.
모양도 제각기죠?
그 지방 토질과 환경에 맞게 토구를 만들어 사용한거죠
탈곡기?
"남태"
흙덩어리를 부스거나 씨앗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땅을 다지는 도구 입니다.
도깨비 방망이 같죠?
조선시대 농사 풍경입니다.
농사는 정직한 땀으로 귀결된다고 하는데요.
맞는 것 같아요.
고생한 만큼 거두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자연살이인 거죠.
사뭇 농민분들이 존경스럽더라구요.
"깍지" 입니다.
농사지을때 풀을 뽑을때 손톱을 보호하는 기구 입니다.
예전엔 어머니들이 바느질 할때 골무를 사용했잖아요.
그와 비슷한 거죠.
농사지을때 손톱을 보호하는 까지...
울 조상님들 정말 훌륭하세요.
소소한 것 까지 사람의 몸을 보호하고 챙기셨으니까요.
사랑채 입니다.
왼쪽은 군불도 지피고 똥간도 있고 가운덴 황소가 있습니다.
오른쪽엔 남자들이 세끼도 꼬고, 짚신도 만들고, 가마니도 만들고, 멍석도 만들고
남정내들 모여서 술도 한잔하고 가끔 노름? 도 하는 곳입니다.
정겨운 부엌 ..........
예전엔 부엌에서 군불을 지폈죠.
그런데 군불이 부인과 질병에 아주 좋다고 하네요.
저 어릴때 시골 이모집에가면
군불에 밤, 군고구마, 옥수수 구워주면 그렇게 맛이 좋더라구요.
지금도 생각납니다.
군불에 구워먹던 군고구마...
마루 밑에 누렁이, 요강, 짚신까지
나의 살던 고향은...
왜 고향 하면 떠오른 정서가
농촌 풍경에 김이 모락모락나는 굴뚝
마루밑에 누렁이 요강, 짚신 내지는 고무신, 털신,
어머니가 부엌에서 군불을 때며 밥을 짓는 모습이 떠오를까요?
예전엔 황소도 집안에 있었죠.
사랑방 옆에 붙어 있는 누렁이 집
누렁이는 사람과 참 인연이 깊은 동물이예요.
죽을때 까지 일만하고
죽으면 소고기로 남김없이 인간을 위해 온몸바쳐 헌신하니
참....고마운 존재죠...
아주 오래전 뒷간인데요.
사랑방 군불때는 곳 과 뒷간이 함께 있었답니다.
군불때고 남은 재로 응가를 덮으면 냄새도 안나고 자연적으로 거름이 된다고 하네요.
장독대..........
어릴때 숨바꼭질 할때 장독대에 숨은적이 있는데요
옛날 생각 이 새록새록.
또 한가지 일화는요...
항아리 속에 머리 집어 넣었다가 빠지질 안아서 울다가
엄마가 빼준적이 있는데요
장독대 보니 그때를 아십니까...가 생각났습니다
장날에 쌀 장사 인데요.
듬뿍 담아서 팔고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실랑이 합니다.
쌀이 귀했던 시절엔 그럴만도 했죠.
떡 방아간 입니다.
떡 만드는 도구가 다 있네요.
두부 틀 입니다.
장날엔 역시 엿장수...
대장간 입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궈 원하는 도구를 만들죠.
등잔 가게입니다.
저 어릴때 시골 이모집에 가면
등잔을 사용했는데요.
그땐 등잔으로 불을 켜고 어둠을 밝혔거든요.
그리고 해떨어지면 언능 자라고 하도 성화이어서 잘수 밖에 없었던 기억이....
방짜 가게 입니다
품질이 좋은 놋쇠를 녹여 부은 다음 다시 두드려 만든 그릇입니다.
놋 그릇이라고 하잖아요.
근데..
놋그릇에 음식을 담으면 쉬 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건강엔 최고의 그릇인거죠.
포목점
농업박물관 외관입니다.
화장실인데요
휠체어가 어찌 들어가라구 저따위로 설치했는지
참 어이없더라구요
"나라의 근간은 농업이라
이는 천년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말은 진리 인것 같아요.
요즘은 휴대폰 없으면 못사는 시대라고 하지만
휴대폰 못한다고 굶어 죽진 안잖아요.
하지만 밥을 못먹으면 굶어 죽습니다.
식량안보 정말 중요하죠.
가는 길..
지하철 5호선 6번출구 광화문 방향 백미터 보행
화장실...
박물관내 있습니다.
먹거리..
광화문 쪽으로 가서 드셔야 합니다.
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지하 1층 "아띠"에서 먹었어요
편의설 완전 좋거든요.
농업박물관에서 2키로 정도 되는데
전동훨로 가기엔 그리 멀지 않거든요.
첫댓글 지금도 이렇게 있는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은 정말 아주 잘 못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