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그릇과 더 연약한 그릇(벧전3:7)
2023.5.14 부부주일 및 스승의 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김해숙, 박진희 주연의 “친정엄마”(2010)라는 영화에서 보면, 어린 자녀들 앞에서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놀라서 한쪽 방으로 피해서 울다가, 나중에는 집을 뛰쳐나가서 친구에게 ‘자신은 앞으로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부 모습이 아이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는 장면이다.
*** "친정엄마" 영화 속의 슬픈 장면들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8hLJTLnY0Y8&t=216s
영화 속의 한 장면이지만, 이런 장면들이 왠지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 않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영화 속의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과거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고, 싸우는 부부의 모습이 현재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기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부터는(지금부터라도)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일까?
오늘은 부부주일 및 스승의 주일이다. 성경에는 아담과 하와 부부에서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부부들의 모습들이 등장하고, 올바른 가정생활이나 부부관계에 대한 주옥같은 말씀들도 많이 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그런 말씀들 중의 하나이다.
오늘 설교본문인 베드로전서 3장 7절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남편의 의무와 그 의무를 이행해야할 이유들에 대해서 말씀한 내용이다. 남편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이지만, 자세히 사실은 부부 모두에게 권면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물론 여러분들 중에는 아직 미혼이거나, 또는 이런 저런 이유로 혼자살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성경적인 올바른 가르침들을 잘 배워야, 자신의 앞날이나 자녀손들 앞에서 본을 보일 수 있고, 그들에게 성경적인 권면도 해줄 수 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중요하다.
먼저 다 같이 본문 말씀을 함께 읽어 보자.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7)
1. 가정에서 부부생활의 의무
이 말씀을 보면, 남편들에게(또는 아내에게도 해당) 두 가지 의무를 지적한다. 그 첫째는 “지식을 따라 동거하고”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의 가르침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성경이 말씀하는 가정의 목적이나 부부생활의 원리들을 따라서 아내와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예를 들면 에베소서5장 22-25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씀했다.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2-25)
이 말씀들을 보면,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다. 그 이유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지배나 계급적인 차등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한 몸으로서의 영적인 질서와 역할을 말씀한 것이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창세기 2장 18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부부관계를 “돕는 배필(Helper)”로 말씀하셨다. “돕는 배필”의 히브리 원어는 “에제르 케네그도”인데, “에제르”는 돕는 자(조력자)라는 뜻이고, “케네그도”는 ‘앞에서 서로 마주 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부부는 서로 사랑의 눈빛으로(독사처럼 째려보는 것이 아님) 마주보면서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부부이다. 이는 동등함 권위에서의 역할분담을 의미한다. 이러한 말씀의 지식을 따라 사는 것이 부부의 의무이다.
남편의(부부의) 두 번째 의무는 아내를 귀히 여기는 것이다. 여기서 사용된 “귀히 여기라”는 말 속에는 ‘존경하라’, ‘존중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겠지만, 실제 부부 사이의 언행을 보면, 자신의 아내나 남편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예를 들면 다른 여자나 남자들 또는 친구나 동네사람들에게는 쩔쩔 매면서 온갖 예를 갖추면서도, 집에서는 너무 쉽게 불친절하게 짜증을 거나, 말꼬리나 잡고 막말로 호통 치는 것 등은 귀히 여기는 태도가 아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동일하다. 이처럼 성경말씀이라는 지식을 따라서 살기위해서는, 반드시 평소에 계속해서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2. 부부가 서로를 귀히 여기고 존중해야 할 이유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처럼 말씀의 지식을 따라 아내를(남편을) 귀히 여기고 존중해야 할 세 가지 이유도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본문을 읽어 보자.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7)
부부가 서로 귀히 여기고 존중해야할 첫째 이유는 “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이기 때문이며, 마지막 셋째는 “기도가 막히지” 않기 위해서 이다.
“더 연약한 그릇”이라는 표현 속에는 남편이나 아내나 둘 다 연약한 그릇인데, 그중에 아내가 좀 더 연약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남자의 힘이나 남편의 권위를 이기적으로 오용하지 말고(예: “이게 어디다대고?” 등의 말, 협박, 폭행, 폭언 등), 오히려 아내의 연약성을 인정하고 보호해 주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휴 우리 집사람은 덩치가 커서(또는 성격이 좋아서) 무슨 말을 해도 상관 안해요?”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말이다. 아내나 남편이 연약한 그릇인 것은 외모나 체격과 상관없다.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라는 말씀은, “동료 상속자” 또는 “공동 상속자”라는 뜻이 있다. 노사연 권사의 노래 “바램”에 끝부분에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라는 가사처럼, 부부는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유업으로 받을 영원한 친구이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동지(同志)이며, 하나님 나라의 공동 상속자이다. 그렇기에 다른 누구보다도 귀히 여겨야 한다.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함이라”는 말씀은, ‘너희 기도가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라는 뜻이 있다. 부부가 서로에게 시기와 다툼과 불평을 품고 있으면, 기도가 안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6-27)고 했다.
3. 아이들은 본 대로 배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반석 위에 가정의 집을 지어가는 부부의 모습은 자녀들의 신앙과 성품과 말투, 행동에 깊은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부부는 자녀들에게 스승이기도 하다. 물론 학교 선생님이나 교회학교 선생님에게도 배우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아이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곳은 가정이다. 아이들은 보고 들은 대로 배운다. 이것이 아이들의 특징이다.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 부모를 흉내 낸다. 그래서 가장 좋은 교육은 가정에서 좋은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어떤 젊은 아빠가 부부싸움을 한 후에 초등학교 2학년 딸의 폰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딸의 폰에는 있는 검색 기록을 보고 반성했다는 글을 읽어 본 적이 있다. 딸의 폰에는 이런 검색어가 있었다(사진).
“엄마 아빠 싸울 때 말리는 방법”,
“엄마 아빠 이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그러므로 이 시간 이후에는 더욱 더 주 안에서 서로 귀히 여기고 존중하자. 서로를 사랑하되,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사랑하자. 그래서 자녀손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부모가 되고, 주님이 주시는 행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자.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