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영화보기
최 화 웅
9월의 첫 불금. 제13호 태풍 ‘링링’과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로 세상이 온통 시끄러웠다. 지난 6월 영화의 전당에서 개봉한 영화〈행복한 라짜로(Happy as Lazzaro)〉를 보지 못하고 놓쳐 못내 아쉬워 하던 참ㅇ 상영 일정과 투석치료가 없는 날이 맞아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이 각본을 쓴 영화〈행복한 라짜로〉는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제71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비롯한 로테르담, 시카고, 시체스 국제영화제 등에서 작품상과 심사위원상을 싹쓸이한 작품이었다. 또한 지난달 개봉한 디자인을 넘어서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 게리 허스트윗 감독의 다큐멘터리〈디터 람스(Dieter Rams)〉를 아내와 함께 보면서 ‘Less, but Better원칙’을 제시한 람스의 ‘좋은 디자인 10가지 원칙’이 나의 삶을 비추는 공부가 되었다. 오랜만에 명화 <행복한 라짜로>에서 '라짜로'역을 맡은 아드리아노 타르디오로가 순수한 미소년으로 열연하는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성인을 만나는듯 했다. 라짜로가 죽었다 되살아나는 과정을 영화에서는 1, 2부로 나누었다.
라짜로는 성경 '요한복음 11장'에 등장하는 라자로다. 그는 마리아의 오빠로서 예수님의 친구였고, 나흘 동안 무덤에 있다가 예수에 의하여 죽음에서 부활하였다. 가톨릭 성인이었던 그는 수도원 성당 근처의 오두막에서 수행의 삶을 살았다. 목가적인 삶의 풍경과 우화적 플롯, 그리고 시간 여행을 통한 마술적 리얼리즘을 통해 시간이 멈춘 듯 아름다운 시골 마을 인비올라타의 정경. 라짜로는 이웃들과 함께 마을의 지주인 후작 부인의 담배 농장에서 일하는 순박한 청년이다. 요양을 위해 돌아온 후작 부인의 아들 탄크레디와 둘만의 우정을 쌓는다. 라짜로는 악명 높은 후작부인의 담배 농장에서 일하는 순박한 청년. 둘도 없이 가까이 지내던 탄크레디의 부탁으로 그의 가짜 유괴연극에 동참한다. 자유를 갈망하는 탄크레디는 자신의 납치극을 꾸며 마을을 벗어나려고 결심하고 라짜로는 그런 그를 돕다 납치 신고로 마을을 찾아온 경찰에 의해 마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라짜로는 예수가 부활시킨 나사로를 상징한다.
영화 속에서 나무 밑에 앉아있던 라짜로가 갑자기 한 줄기 눈물을 흘리며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장면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면서 고뇌한 끝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 사역을 감당하기로 결심하는 예수를 연상시킨다. 그러던 어느 날 후작 부인 아들인 '탄크레디'는 라짜로에게 노동 착취 사실을 알리고 자신과 라짜로가 배 다른 형제라는 구실로 접근한다. 선하기 짝이 없는 라짜로는 탄그레디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빵 한쪽도 나눠 먹으려는 착한 심성을 가진 라짜로는 자신의 살점을 찔러 흘러내리는 피로 대리 낙인을 찍어주는 등 '이 세상에 저런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라는 의구심이 들만큼 라짜로의 선한 행동이 시선을 모은다. 라짜로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서 1부가 끝나고 2부에서 부활한다. 주민들은 늙지 않고 옛모습 그대로 유지한 라짜로를 악마, 괴물로 취급한다. 그럼에도 라짜로의 선심과 이타적인 행동은 흔들림이 없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라짜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웃을 도우려고 나선다.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인물을 좇는 영화는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리얼리즘 영화다. 라짜로는 순수한 자체로 세상 구경을 나선 느낌을 준다. 라짜로 외의 모든 것은 변해버렸다. 그렇다면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라짜로는 존경받을 수 있을까. 영화는 '아니다'라고 강변한다. 신성한 라짜로는 은행 로비에서 군중들로부터 발길질 당하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성스러움이 악으로 취급당하는 현실. 선함과 이타심을 권하는 사회이지만, 정작 그것을 몸에 입은 자를 짓밟는다. 선함이 폭력으로 되돌아오는 이 몹쓸 현실의 라짜로가 비공개 의례와 임금착취, 늑대와 은행, 새총과 선한 이미지로 나타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올 하반기 들어 다큐멘터리 수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는 <디터 람스>와 함께 <블루노트 레코드>, <호크니>, <바우하우스> 등 대중의 눈에 뜨인 작품들이 많았다. 디터 람스(Dieter Rams, 1932년 5월 20일 ~ )는 독일의 비스바덴에서 태어나, 독일의 브라운 가전회사의 수석 디자이너로 독일의 대표적인 산업 디자이너의 자리를 굳혔다. 건축 공부를 마치고 건축가가 된 그는 우연한 기회에 브라운사에서 일하게 되고 이 때 그는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길을 들어선다. 이후 30년 넘도록 브라운사의 디자이너로 일한다. 1997년 브라운사를 퇴사한 그는 1960년대부터 함께 일을 해온 비초에와 그의 디자인의 지평을 넓힌다. 이미 1960년대 초, 601체어로 가구 디자이너로서도 충분히 자신을 알려온 그이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이후의 시간은 람스 자신에게는 또 다른 활력이 되었다.
“Less, but better(최소한의, 그러나 더 나은)”이라는 말은 람스의 철학을 요약한다. 영화 <디터 람스>는 20세기 산업디자인의 역사를 새로 쓴 독일 디자이너 디터 람스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디터 람스가 1961년부터 1995년까지 가전회사 브라운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는 동안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디터 람스의 디자인을 참고로 아이폰과 아이팟을 만들었다고 밝혔듯이 그가 만든 레코드 플레이어, 계산기, 면도기 그리고 가구 디자인 업체 비초에에서 만든 선반과 의자 등은 여전히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50년 동안 줄곧 한집에서 살고, 취미가 없는 그에게 일은 곧 삶이고, 디자인은 삶을 더욱 나은 것으로 만드는 도구였다. 가전제품과 가구디자인에는 관심을 뻗쳤지만 자동차 디자인에는 손을 대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더 빠른 것을 추구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10대 때 종전을 경험한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세상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세기 산업 디자인의 독보적인 존재가 된 람스는 ‘좋은 디자인의 10가지 원칙’을 내세웠다.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다(Good design is innovative),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Good design makes a product useful), 좋은 디자인은 아름답다(Good design is aesthetic),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한다(Good design makes a product understandable),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Good design is honest), 좋은 디자인은 불필요한 관심을 끌지 않는다(Good design is unobtrusive),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된다(Good design is long-lasting), 좋은 디자인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Good design is thorough down to the last detail), 좋은 디자인은 환경 친화적이다(Good design is environmentally friendly), 끝으로 좋은 디자인은 단순한 게 아름답다(Good design is as little design as possible)는 그의 디자인을 향한 철학과 삶을 보여준다. 그의 말처럼 디자인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배우고 경험한 것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첫댓글 "행복한 나자로" 보고싶네요... 저도 영화를 좋아하는데 야간에 근무하다보니 시간 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인터넷에서 영화의 전당 상영 스케듈을 확인하시는 게 좋을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