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헤프닝 - 사흘만에 내 이빨 되찾기
<그냥 이대로>의 현상유지가 아주 쉬운 것 같아도 때로는 큰 우여곡절과 은혜가 작용해서야 가까스로 그 상태를 회복해 내는 경우도 있다.
내 오늘의 출국이 그렇다.
출국을 5일 앞둔 지난 수요일 야근때의 일이다....야식중에 단단한 음식을 얕잡아보고 그냥 힘을 줘서 깨물어 넘기려 했더니, 웬걸 깨진 것은 갈비에 숨겨진 뼈조각이 아니라 내가 여든해나 잘 사용해 오던 아까운 내 앞니였고,
아뿔사 거울을 보니 앞니 빠진 내 모습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세상에... 해외공연 그것도 우리 합창단이 13년 동안 갈고 닦아서 처음으로 도전하는 세계합창대회 경연부문 도전이 이제 출국 닷세 전인데....이게 웬 날벼락인가!?
이제 오클랜드 공연은 커녕 당장 이틀 앞으로 다가온 하늘비전교회 최종 리허설도 참여하지 못할 형편이 아닌가!!!
기가 막혔다. 이 꼴로는 해외공연은 커녕 국내 외출도 못할 형편이 된 것이다.
유일한 구세주가 있기는 있었다. 고교 절친 부부 치과의사 고&박 치과...
심야지만, 바로 문자 메시지로 내 긴급상황을 알리고 아침에 꼭 시간 내어달라 매달렸다.
다행히 고박사는 아침 퇴근길에 바로 자기에게 오라고 격려 전화를 해줬다.
고박사의 말투가 워낙 차분하고 안정적이어서 나도 덩달아 해결방안이 있는 모양이라며 위안이 됐다.
나는 부러진 내 앞니를 잘 간수해서 삼각지역 인근의 고&박 치과의원으로 가면서 제발 원상복구가 어렵다면 이 부러진 이빨을 임시로라도 제 자리에 공연날까지만이라도 견뎌낼 수 있도록 접착을 시켜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언제나처럼 차분하게 미소띈 얼굴로 나를 맞은 고박사 내외는 내 상태를 보고 바로 마취하며 필요한 조처를 취했다. 나는 부러진 이빨을 갖고 왔다고 했으나, 그것은 필요가 없다고 했다.
지금 이 단계에서 무슨 방안이 있을 것인지 어떤 선택이 있을 것인지 고박사내외는 알아서 최선의 방법으로 부지런히 처방을 해나갔다. 그리고 협력업체에 긴급을 요하는 사안인데, 월요일 출국할 고객 건인데 일요일까지 납품이 되겠는지 타진했고, 그쪽의 답이 오케이 인듯했다.
그리고 84번과 85번 81번의 색깔중에서 내 치아와 가장 닮은 색상의 재료를
비교선택하는 듯 둘이서 잠시 토의후 81번이 제일 가깝다며 결정하고, 내겐 임시 조치를 취해준 뒤 일요일 아침에 다시 들러서 매듭을 짓자 했다.
내 눈에는 그 임시 조처만으로도 나는 벌써 아주 말짱해 보였고, 바로 그 상태로 출국해도 될 듯했으나, 역시 고박사는 젼문가답게 완벽한 방안으로 매듭을 짓고 있었다.
덕분에 금요일 하늘비전교회 리허설은 임시 처방된 앞니로 무사히 마쳤고, 이제는 일요일 아침에 다시 들러서 완벽한 이빨로 부착할 일만 남았는데,
내가 출국준비에 쫒길 것을 걱정한 고박사는 더욱 악셀을 밟아 일정을 하루 더 앞당겨 토요일 아침에 매듭짓자 했다. 원 이렇게 고마울 수가...
수요일 본을 뜨고 토요일 완제품을 장착하다니... 세상에 이것이 한국인들이 아니면 이렇게 초스피드로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계획대로 이번 해외공연이 가능하도록 신속 완벽하게 내 앞니를 원상 회복시켜줄뿐만 아니라 치료비까지 대폭 낮춰준 친구 부부는 내게 영락 없는 구세주였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인이 아니었으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되돌아보게 됐다.
8학년이 넘도록 관록과 명성을 떨치며 멋지게 현역 박사 부부 치과의사로 활약하고 있는 친구 부부도 엄청 멋지고 고맙고, 우리가 한국인인 것도 자랑스럽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오클랜드 중심가를 누비게 될 11,000명 각국 합창단원들의 퍼레이드에서 입을 태극기가 부착된 우리의 단복도, 전통 부채 태극선도 아주 아주 자랑스럽다...
사단법인 남자의자격 청춘합창단 또한 그러하다...^^
2024.7.15(월)저녁 5시55분 인천공항발 오클랜드행 KAL기 기내에서 이륙을 기다리면서...(끝)
PS) 이번 장도에서 우리 합창단은 기어코 대망의 혼성시니어 분야 대상을 쟁취하며, 제14회 세계합창대회 챔피언경쟁부문 출전자격을 얻었다... 한국 합창계의 중심에서 세계합창계의 중심으로 성큼 다가서는 현장이 엔돌핀을 무한 뿜어낼 것이니 이 어찌 즐겁지 않으랴?
첫댓글 선생님!
큰 일 이셨네요?
긴장도감이 높은데 친구내외분도 선생님도 차분하게 마무리 하신 순간까지 감동입니다.저도13년되었네요. 청단샘들 덕분에 지금까지 함께합니다. 잘다녀 오시구요. 더깊은 노래 불러 주세요.지금보다 더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내손잡아줄수있니님...늘 지켜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방송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13년동안 꾸준히 격려해 주신 덕분에 이번 오클랜드 세계합창대회 공개경쟁부문 혼성시니어 분야 대상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ㅠ
이제서야 이글을 읽었네요...
합창제 일정을 쭉 함께했었는데 어떠신지 여쭙지도 못하고...😭
죄송해요 선생님ㅠ
정말 놀라셨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무사히 일정 마쳐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전혀 눈치를 못 챌만큼 표시가 안났어요
친구분들의 의술이 넘 훌륭하세요~
푹 쉬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뵐게요~🍀💕
수업일지에 작성에 항상 바쁘심에도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이 친구내외분 정말 좋은 의사들입니다. 늘 미소를 띄고 있어서 그들을 만나기만 해도 벌써 다 나은 듯하지요...마취주사도 어느틈,에 놨는지 모를 정도로 감쪽 같은 무통치료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아하, 대통령은 이렇게 치료 받는구나 싶더라니까요...^^
모두모두 잘 마무리 하시고 오셔서 정말 진심 감사드립니다.샘! 치과진료 가끔은 다녀오세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