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 산다는 것의 의미
성파
핵자기공명단층촬영
며칠 전 갑자기 가족이 무릎 뒤 오금에 혹이 생겨서 시내에서 제법 큰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보였다. 의사는 무릎을 살펴본 뒤 바로 MRI를 찍어보고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며 입원 날짜를 예약하여 주었다.
집에 와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릎에다 대고 핵자기공명단층촬영을 해야겠다는 의사의 판단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미 삼십 년 전에 모친이 뇌출혈로 쓰러져서 그 시절에 최첨단의 장비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창원경상대학교병원에 예약하고 정형외과에 가니 무릎을 보더니 담당교수는 시티도 아니고 단순히 엑스레이 사진 세 판을 찍어 보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냥 두면 된다고 하였다. 진단비용은 단돈 육만 원 정도였다.
밀양의 그 병원의 의사가 처방한 대로 입원하고 이 더위에 칼을 대어 수술을 했더라면 또 얼마나 고생을 하고 두 주일 정도는 족히 입원했을 것을 생각하니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두어 해 전의 일
평소 존경하는 시인인 선배님을 모시고 낙동강 종주 자전거여행 도중 그날 구간은 출발하자마자 오르막인 산길을 올라가다가 형님이 낙마하여 움직이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119를 불러야 했지만 나의 차가 바로 지척에 있어서 차에 모시고 밀양시내의 그 병원으로 갔다.
응급실에 들어가서 엑스레이와 시티를 촬영하고 잠시 후 나타난 의사가 하는 말이
“고관절이 완전히 골절되어 그 부러진 단면의 날카로운 부분이 혈관이나 신경을 자를 수가 있어서 아주 위험한 상황이고, 연세가 많아서 접골은 기대하기 어려우니 인공관절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몹시 놀란 상황에서 나는 의사에게 이 분의 두 아들이 의사인데 큰아들은 개업의이고 작은 아들은 부산대 교수라고 하며 더 말하려는데 이 의사 갑자기 나의 말을 듣다말고 돌아서서 줄행랑을 치는 것이 아닌가?
곁에서 보고 있던 응급실 간호사는 내게 그럼 부산대학교병원으로 가시라고 하여 마침 눈앞에 보이는 앰뷸런스 기사에게 부탁하여 부산으로 달려갔다.
놀라운 것은 부산대학교병원에서의 수술결과였다. 밀양에서의 그 병원의 의사가 말한 것과 달리 실제로 고관절은 완전 골절이 아니고 세로로 실금이 한 줄 나간 것이라 나사 두 개를 박고 간단히 끝난 것이었다. 물론 수술비용도 인공관절에 비하면 극히 적은 비용이었다.
다른 이야기
경북 경산에 거주하던 조부가 왜정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가서 정착하는 바람에 중국에서 살던 조선족 부부가 이웃에 살았는데 나와 성이 같아서 우연히 알고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귀국하여 포클레인 기사 면허증을 따서 월 사백 더 번다며 몹시 자랑스러워했고, 내게 자주 탁주와 삼겹살을 대접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그의 아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택시에 부딪혀서 역시 시내의 새로 생긴 모 병원에 입원했고 (이 병원은 앞서 언급한 병원과 조금 떨어진 신설된 병원이다) 허벅지 골절이라고 수술을 받았는데 부산에 있는 심사평가원에서 국민건강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병원에서 수술비를 수백을 내라고 한다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에게 심평원에 가서 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지 알아보라 하였고, 이유는 실제로는 골절이 없는데 멀쩡한 허벅지를 가르고 뼈를 쇠로 덧씌우고 나사를 박아서 수술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 천인공노할 사실을 신문사와 방송국에 제보하고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병원에 단호히 말하라고 시켜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병원에서 입막음으로 이천을 주더라고 하였다.
더 이전의 일
아이가 돌이 갓 지난 시절의 이야기이니 아주 오래 전의 옛날이야기인데 큰 애가 갑자기 아파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열이 나서 시내 유일의 모 소아과에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였다.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부부는 젖먹이를 업고 마산에서 가장 큰 모 병원에 갔다.
그곳 소아과 과장이라는 젊은 여자는 아이가 중병에 걸린 것 같다면서 일단은 아이가 사망해도 좋다는 각서를 쓰라고 하였다. 검사할 것은 뇌가 잘못 되었을 수가 있으니 머리를 MRI촬영을 해야 하고, 심장이 또 어떤지 봐야 하니 아이의 허벅지 안쪽에 혈관을 잘라서 그 혈관 속으로 내시경을 넣어서 심장조영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사에 아무 경험이 없었던 나는 주저 없이 각서를 읽고 그 아래에 이름을 쓰고 서명하고 제출하려는데 어머님이 옆에서 하시는 말씀이 그 여자가 소아과 과장이라고 해도 미덥지가 않다면서 다른 병원으로 가자고 하셨다. 나는 어머님의 그 총명함을 믿었기에 각서를 찢어서 휴지통에 넣고 병원을 나서서 시내 창동의 유명하다는 소아과에 갔다.
김소아과라고 기억되는 그 의원의 원장이 아이를 보더니 청진기를 한 번 대어보고는 아무 말도 없이 간호사에게 처방한 것은 관장주사약과 해열제였다. 아이는 관장하고 잠시 있으니 화장실에 가려했고 금방 열도 내리고 아픈 것도 씻은 듯 나아서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도 놀랍고 고마운지라 의원님께 어떻게 그리 쉽게 아이가 괜찮을 수 있냐고 물으니 오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노련한 의사의 대답은 아이가 감기가 걸렸고, 감기가 걸려 열이 오르니 탈수증상이 생겨서 변비가 생겼고, 변비가 생겨 통하지가 않으니 먹지를 못한 것이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설명해 주었다.
마지막 이야기.
아마도 칠팔 년 혹은 더 이전의 일이라 기억된다. 평소 지극히 친하게 지내던 지인의 부인이 밤중에 도로에서 택시에 부딪혀서 두 다리가 골절되고 턱뼈와 이를 크게 다쳐서 양산의 모 대학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때가 전국적인 사대강 자전거도로가 생기면서 자전거 붐이 일던 때라 나도 자전거를 타고 40킬로 거리를 달려서 밀양에서 양산까지 문병을 갔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미안한 일로 현금을 마련하여 봉투를 건넸어야 하는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병원 매점에 가서 음료수를 한 박스 사서 병실을 찾았다.
거기서 들은 내용은 수술하기 전에 집도의라는 교수가 만나자고 하여 가니 수술 팀에게 성의를 표시해달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병실에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물으니 성의란 것은 현금 삼백을 만들어서 건네주면 된다고 하여 그도 그렇게 하였다고 했다.
어쩔 것인가? 사랑하는 아내가 볼모잡혀 있는데 수술하다가 잘못될 수도 있는데 어느 장사가 있어서 돈 삼백을 아끼겠는가? 그 병원에서 수술하는 모든 사람이 다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생각하니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병원과 의료계의 실태
중급 정도 크기의 병원의 의사는 월급이 월 이천만 원이 보통이고 대학병원의 의사는 월 천만 원 남짓하다고 들었다. 시내의 중급 정도의 병원 중에서도 몇몇 병원이 과잉진료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월 이천을 받으려면 그 정도의 매상을 올려야 하니 멀쩡한 다리도 사경을 헤매는 뇌출혈환자 급의 핵자기공명단층촬영을 하고 입원 수술을 하자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저들 병원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아무도 처벌할 수 없다는 현실이다.
의료법에 따르면 간호사는 환자 5명당 1명을 고용해야 하고, 입원환자 20명에 의사 1명을 고용해야 하며, 요양병원은 입원환자 60명당 의사 1명을 고용해야 하고, 의사 한 명이 외래진료환자 받을 수 있는 최대 환자 수도 60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어떤 병원도 이 법을 지키지 않는데, 그것은 이 법을 위반해도 최대 부과되는 과징금 한도가 오천이라 의사 1명을 고용하면 연간 2억이 넘게 들어가지만 고용하지 않고 과징금을 낼 경우 훨씬 이득이 되니 처벌해달라고 하는 것이고, 병원을 감독해야 하는 보건소장이 역시 의사이고 같은 지역의사협회 회원이니 처벌할 경우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의사는 그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가령 산부인과 의사가 환자를 마취시키고 이상한 짓을 해도 처벌받고 나오면 또 의업을 계속할 수 있다. 유명한 신모 가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의사도 그 이후에도 계속 환자를 사망시키고도 의업을 유지하고 면허가 박탈되지 않는 것이 현재의 의료상황이다.
타인의 생명과 연관된 불행을 이용하여 돈을 취하는 것이 옳지 않기 때문에 우리 법은 의료행위를 가지고 영리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때문에 의사만이 병의원을 개설할 수 있으며, 의료인이 아닌 자가 병원을 차리고 영리행위를 하는 사무장병원을 엄벌에 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손가락 절단 사고가 나더라도 봉합수술비가 수천을 넘기 때문에 그냥 버린다고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서 병원의 영리행위를 허가하고 세계에서 가장 좋은 국민건강보험을 놓아두고 사적의료보험을 허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두고 볼 일이다. 끝.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더욱 조심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소개하여 주신 몇 편의 예화와 함께.....
우리에겐 의료지식이 전무하기에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모두 믿고 신뢰할 수밖에 없죠.
실력있는 의사선생님.
그리고 양심있는 의사선생님.
그 두가지를 갖추신 분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르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