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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환경 문학상 ․ 신인작가 당선 ――――――――――
임 윤 성
생년월일 : 1995. 5. 24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인문과학대학
국어국문학과 2학년 2013년 제 4회 한국 여기회 애인상 독후감 공모 장려상
2014년 현진건 소설 독후감 공모
일반부 우수상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상인우방아파트 203동
■ 사람과 환경 문학상 신인작가/단편소설
火論
□ 사람과 환경 신인작가 문학상 ․ 당선작―――――――――
火論
―나에게 불이란 … 속이 매캐한, 그 이상.
불길이 거세진다. 무엇을 태울까 하며 날름거리는 혀가 꼭 장난꾸러기가 입안에서 사탕을 굴리는 움직임 같다. 사실 그러한 행위 뒤에 지독한 화상과 파멸의 고통은 필연적인 귀결이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산불 같은 거대한 화마의 일렁임도 사실 알고 보면 그 씨앗은 아주 사소하고 작은 불씨인 경우가 많다. 그 씨앗의 사소함은 서슴없이 지나가 버릴 시작점이지만, 그 결과는 매우 거대하니, 이러한 점 때문에 내가 불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작은 시도 뒤에 따라오는 거대한 영향력! 마치 권력 같은, 그 피를 들끓게 하는, 뜨거운 일렁임이 내 마음을 태운다.
난 방화범이다.
불을 지르는 사람은 불 그 자체와의 연동에서 꽤 다양한 싱크로를 맞춘다. 지독한 명줄의 그을림 속에서 생명은 움트고 거대한 파괴 뒤에 도사리고 있는 적지 않은 절망감이 나를 도취하게 한다. 불의 특성이 내 성욕을 이끈다. 파괴가 나의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듯 나는 파멸을 선도하는 하나의 영도자가 된다.
성스러운 불과 더러운 불의 차이는 무엇일까? 조로아스터교의 명확한 이분법적 교리를 바탕으로 한 성스러운 불의 출현은 세상을 모두 뒤엎어 버릴 거대한 열화의 구렁을 만들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잿가루의 세상이 그러한 꿈의 일면을 다가오게 한 것인가? 나는 작은 피조물의 삶에 관심이 없다. 어쩌면 신은 방화범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세상을 멈추게 하여 화염의 폭풍은 모든 것을 정지시키는 거대한 영력을 지녔다. 나의 흔적도 나의 행위도 나의 과거와 아픔 또한 모두 이 넘쳐흐르는 불길에 삼켜지고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불을 지른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상관치 않고.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어.”
선배는 그 한마디를 씹어 뱉는다. 짙은 다크서클이 감돌고 파리하고 푸석푸석한 피부의 평범하게 생긴 대학생의 얼굴에 비난이 서린다.
“여기, 여기에 뉴스를 봐라. 이게 뭐냐? 경찰의 정보차단도 적당히 허술해야 귀엽지. 방화로 수십 명을 태워 죽인 사람이 지금 영웅시되고 있다. 백주에 아파트 한 채를 다 태워버린 방화범의 지라시에 대중이 환호하는 거, 이게 제정신이냐?”
“뭐, 언론이란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불편한 것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데는 언론을 따를 자가 있습니까. 저는 그것보다 저 사람에 대해 꽤 흥미 있는데요?”
선배는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눈가의 주름을 만지작거린다.
“솔직히 과제를 쓰는 데 있어서 저런 특이한 정신병자의 말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방화를 직접 일으키는 사회적인 요인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접근하지는 못합니까?”
“야 너도 똑같은 놈이냐? 사회의 변혁과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귀결되는 건 파괴라는 것? 그건 가지지 못한 놈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마음대로 지껄이는 소리에 지나지 않아.”
“물론 제가 가진 자라면 그러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언제 가져보기라도 했습니까? 그러니 대중들이 파괴와 파멸이라는 행위에 집착하는 것도 거짓은 아닐 겁니다. 그것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노…였을 지라도.”
“옹호라는 건 시간과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하는 거야. 너 꽤 사상이 음험하다?”
“에이 과제가 과제인지라 한 번 그렇게 생각해 본 거예요. 수갑 찰 일 있습니까? 세상이 레드콤플렉스 때문에 난린데.”
“그렇긴 하지. 아, 망할! 언제쯤 내 인생의 날개가 돋으려나?”
고등학교도, 군대도 비슷한 시기에 나와 같이 복학 2년생을 보내고 있는 나와 한 살 많은 선배는 어쩌다가 교양필수를 심리학으로 사회현상을 파악하는 듣도 보도 못한 수업을 골라서 생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방화의 심리현상에 대한 과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쑥 튀어나온 불의 특성과 매혹, 아마도 그건 국어국문학이 전공인 나와 심리학을 전공하는 선배와의 의기투합이라 할 만한 주제다.
“흠, 애초에 넌 방화의 현상을 사회적인 관점으로만 파고들고 있어.”
“방화라는 행위가 사회적인 요소 빼고는 뭐가 남는데요? 범죄의 한 갈래인데.”
“음. 내가 생각하기에는 불이라는 특성과 개인의 본성을 연관시킬 수 있다고 보거든?”
“에이, 그런 단순한 주제로 써 내려가면 분량이 아주 줄어든다고요. 이 수업만큼은 좋은 학점 받아야죠.”
“당연, 그렇긴 하지만. 음….”
선배는 마음에 안 드는 듯 눈가의 주름을 만지작거린다. 기분이 복잡할 때 흔히 보이는 행동이다. 왠지 모르게 순수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식 노트북을 들고 딸깍거리며 선배의 설명을 기다린다. 사실 무엇인가를 성숙하게 생각하는 것은 같은 학년이지만 한 살 더 많은 선배를 따를 사람은 동기 중에는 없다. 그래서 이렇게 과제를 같이 하려는 것이기도 하고. 어쨌든 모호하게 풀어나가기 힘든 방화라는 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계기가 될지도 모르지.
선배는 물을 한 컵 들이킨다.
“음…. 야, 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불이요?”
“그래 불. 프로메테우스의 불, 조로아스터교의 불, 아후라 마즈다의 불 등등…. 솔직히 불이란 것은 인간을 시작하게 하였으면서도 또한 파멸로 이끄는 거대한 힘이라는 건 두말하면 입 아프고. 웃긴 게 이 불에 대한 기원이 전 세계에 존재하는데, 대부분 ‘누군가의 것을 훔친 것’에서 시작한 건 너도 아냐?”
“프로메테우스 일화는 알지요, 그런데요?”
“자, 그리스에서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는 어느 한 브라질의 원주민 부족 전설에 대해 말해주마. 고대에 불의 주인은 ‘쟈가’라는 초월적 존재였는데, 어느 한 소년이 우연히 그가 사는 곳, 근처 암벽을 오르다 크게 다쳤다. 가엾게 여긴 ‘쟈가’는 그 소년을 양자로 삼고, 그가 충분히 휴식할 수 있도록 도와줬지. 거기에서 몇 년을 살며 불의 편리함과 유용성에 대하여 알게 된 소년은 ‘쟈가’가 없는 틈을 타서 마을로 내려가 불에 대해서 떠벌렸고, 주민들은 ‘쟈가’가 사는 곳으로 숨어들어 가 불을 훔쳤다. 그렇게 세상에 불이 퍼졌다고들 한다.”
“꽤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그렇지? 그리스의 세계뿐만 아니라, 저 반대편 아마존 정글의 원주민들에게조차 불의 기원은 ‘훔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니, 불이란 놈은 시작할 때부터 ‘범죄’와 연관되어 있었다고,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의 손에서 ‘불’을 절도한 거지. 원래부터 초월적인 존재의 것이었으니, 인간은 본능에 따라 알았던 거야. 아! 이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이구나. 하고.”
선배는 잠시 어깨를 주물렀다.
“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방화는 하나의 과정이야. 개인의 욕망을 분출하는 배출구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자신이 해결하지 못할 어떠한 문제에 의해 쫓기고 있다 치자. 우리는 거기에서 스트레스를 받겠지?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평범한 인간들은 다른 행위를 통해 배출하지. 예를 들어 취미를 즐긴다거나, 섹스를 통하거나, 기타 등등을 통해서 말이야. 그런데 그중 위험한 몇몇은 자신을 괴롭게 여기는 스트레스의 원인 자체를 없애려고 하지. 해결이 아니라 파괴의 방법으로.”
“그건 알죠. 저도 가끔 때려치우고 싶은 일들이 많을 때 선배가 말한 ‘때려 부수는’ 것과 비슷한 게임을 하거든요.”
“그걸 그놈들은 현실에 옮긴다는 게 문제지. 그거 아냐?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 살인범들의 초범은 우선 방화에서 시작한다. 야뇨증을 통해 무의식에서 존재하는 원인 모를 스트레스에 대한 증상을 보이다가 점점 자신도 모르게 부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게 되지. 비밀스럽게 주위의 고양이나 개 같은 애완동물을 학대하거나 죽이기 시작하면서 폭력성을 배출하다가 딱!”
유리컵을 손가락으로 튕긴다.
“그리고 방화를 시작하는 거야. 이 불이란 놈이 가진 특성에 이끌려서, 범법자는 단지 재료를 준비하고, 작은 불씨라는 시작점을 준비하면 돼. 그리고는 시간에 맡기는 거지. 그러면 불이 다 알아서 해. 다 태워주는 거지. 불이란 놈도 자신이 답답해하는걸. 뭐, 그리고 더 나아가면 쾌락을 위해 사람도 죽이고, 그런 거고.”
“흥미롭네요.”
그리고는 선배는 목이 타는지 목을 살짝 축이고는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근데 말이야. 굳이 범법자가 아니더라도 불이라는 놈은 평범한 사람조차 매혹하는 매력을 지녔다고는 생각 안 하냐? ‘작은 노력으로 거대한 결과를.’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 같지 않냐? 그리고 그 결과가 실망스럽지도 않아? 다 타버리고 상한 구조물만을 남긴 집을 볼 때 우리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서늘하지 않냐? 불길 앞에서는 거대한 힘도 권력도 사회적 위치도 없어. 대기업 회장이라고 해서 불에 타지 않는 건 아니잖아. 모든 것이 불 앞에서 평등해. 화염에 장사 없지. 그래서 인간은 불에 이끌리고 또 무의식적으로 숭배하고, 이용하는 거야.”
“잠시만요. 선배, 선배는 지금 방화를 옹호하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내가 말하는 것은 불이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거지. 솔직히 생각해 봐라. 우연히 얻어진 불이라는 에너지 체가 인간의 손에 들어온 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생겨났는지를. 불 덕분에 살아난 인간의 수만큼 거둬간 생명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는 거야. 결국, 불이라는 것이 물질적으로는 우리의 DNA에 영향을 주었고, 사상적으로는 빛과 어둠이라는 거대한 이분법을 생성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거지. 너무나 멀고 모호했던 태양의 힘이 약간의 노력과 준비물에 의해서 인간의 손아귀에 들어오고,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아주 고대에 있었던 선조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거야.”
“흠, 그러면 방화라는 건 인간의 마음에 내재하여 있는 아주 당연한 일부라는 소립니까?”
선배는 답답하다는 표정의 어투로 핀잔을 주었다.
“내가 말하는 건 단순히 방화의 문제가 아니야. 왜 인간이 강력범죄를 저지르기 전 중간 과정으로 불을 사용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아주 깊게 들어가야 한다는 거지. 왜 하필 불이지? 흉기나 날붙이로 상대를 괴롭히고, 독이나 치사량을 훌쩍 넘기는 약품을 통해서 타인을 해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 왜 방화만이 중간과정으로 선택되었는지? 그걸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불이 가진 특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이다. 야, 한 번 물어보자. 불장난할 때 넌 무슨 생각을 하냐?”
“음, 왠지 즐겁죠? 비밀스러운 느낌도 나고. 뭔가를 태운다는 재미도 있고.”
“그런데 만약에 그 불장난의 대상이 장작이나 종이가 아닌 바로 너라면, 넌 그때도 즐겁겠냐?”
“어…. 그럼 또 다르겠죠.”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흠.”
선배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킥킥거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왠지 선배가 하려는 말이 예상된다.
“불이란 건 말이다. 불은 적당할 때는 온기와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원동력을 주지만, 이것을 무기로 휘두른다면 대상에게 작열이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 중에 가장 거대한 것을 선사하지. 불이 인간에게 내려오면서 인간은 약자가 강자와 겨룰 수 있는 평등함을 얻었다. 괜히 적벽에서 5만의 군대의 불이 100만을 몰살시킨 게 단지 운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네가 만일 이 거대한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치자, 그러면 너의 마음에서 가장 먼저 싹트는 건 뭘까?”
“아마도 그 힘을 지켜야 하니까, 이기심이 먼저겠죠?”
“그 이기심이 더욱 더 발전하면 어떻게 될까?”
“음…. 글쎄요.”
“오만이다.”
선배의 한마디는 매우 깊고 날카로웠다. 어느새 나는 노트북의 입력을 멈추고 선배의 말을 듣고 있다. 오만이라. 왜 오만일까? 선배는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인간이 초월에서 훔친 힘은 거대하다. 그건 인간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지. 그것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면 엄청난 힘이 되고, 타인에게 휘두르면 크나큰 고통을 준다는 것 또한 알았지. 자, 그러면서 인간은 자신에게 간접적으로 건네준 초월적인 존재를 잊기 시작한 거야. 그 초월적인 존재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지. ‘자연’이라고. 불은 자연조차 태운다. 조금의 시도만으로도 세상을 달리 변화시킬 수 있고, 강자가 될 수도 있지. 더욱더 강한 힘을 위해서라면 불은 절대로 인간에게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지. 태우고, 또 태워서 인간은 태울 대상을 찾던 중에 기막힌 상대를 찾았어. 바로 자신의 건너편에 있는 또 다른 ‘인간’을 말이다.”
“좀 오싹하네요.”
“내가 다루는 불은 단지, 따뜻하고 이로움만을 준다. 그러니 적으로 변한 불이 주는 고통을 행위자는 절대로 모르는 거야. 그러니 쓰는 거다. 나는 아프지 않으니까. 이 행동이 나에게 이로움을 주니까. 나는 강하니까. 상대는 불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니까. 자신이 가진 이기심과 그로 인한 자만심이 점점 오만으로 넘어간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 불을 쓰게 되면서 생긴 마음이다. 살인을 자주 저지르거나, 폭행전과가 지나치게 많은 강력범은 모두 이기적이면서도 오만하다. 자신이 특별한 위치에 서 있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의 고통에 무관심하지. 단지, 자신의 마음이 안락하면 끝난다. 그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불, 그걸 오만이라고 하지 않으면 또 뭘까?”
“그래도 비약적인 말처럼 들리는데요. 세상 어느 천지에 불 쓰지 않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 마음이 오만하다면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조금 과장된 말처럼 들리는 데요.”
“흠.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너희 국어국문과의 체육부장 선배 잘 알지?”
“매일 헬스장에 박혀 사는 선배 말씀이십니까? 잘 알죠.”
“그 선배 성격이 어떻든?”
“어, 자신감이 넘치시고, 자기주장이 뚜렷하시고, 운동해서 그런가? 고집이 세시죠. 조금 다혈질인 면도 있고요.”
“그런 성격을 세 글자로 줄여본다면?”
“음…. 잘 모르겠습니다.”
“불같다.’ 라고 하지.”
말문이 막힌다.
“뭐, 요약하자면 그런 거지. 사실 불이 뭔 죄냐. 그것을 보고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지. 이롭게 사용하면 불 만한 게 없어. 불만 있으면 추운 날 온기도 주고, 날고기를 소화하기 쉽게 익힐 수도 있고, 도구를 개량하게도 해 주고, 발전에, 개발…. 아이고 더 말하면 입만 아프지. 인간에게 불이 없었다면, 우리 이런 곳에 앉아서 대화는커녕 돌이나 갈고 있었을걸?”
“뭐 그렇긴 하죠.”
허나 석연치 않다. 선배가 말한 불에 대한 관점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불의 특성이 방화라는 기점으로 넘어서는데 있어서 뭔가가 빠진 것이 있다. 단순히 불이 가진 특성 때문에 사람은 불을 지르는 걸까? 조금 더, 조금 더 뭔가가 필요하다.
“선배, 그러면 불에 유혹을 당한 인간이 타인에게 불을 사용하게 된 걸까요? 방화라는 건 단순히 이기심의 발로인가요?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냐?”
“음, 그러니까….”
살짝, 망설였다. 내 눈 앞에 있는 선배는 생각이 깊지만, 동시에 자존심도 강한 면을 보이기 때문에 후배인 내 입장에서 정면으로 반박해 오는 것에 조금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잠시 고민을 했다. 다행히 선배는 자존심보다는 내 의견에 흥미가 있는 듯했다. 커피를 새로 주문하고 다시 앉아 우리는 논박을 계속했다.
“선배, 선배는 ‘불의 특성’에 대해서만 말씀하셨는데 ‘불의 역할’에 관해서 논박해 보면 어떨까요?”
“불의 역할? 불의 역할을 일일이 따지면 뭐, 더는 말할 게 있나? 너무 많아서 탈이고. 다 아는 이야기를 하자는 건데?”
“제가 예전에 시골 할머니 댁에 가서 일손을 도와 드리던 중에 할머니께서 경운기 엔진이 고장 났다고 수리를 부탁한 적이 있었어요. 한참을 뜯어서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던 중에 엔진의 냉각기에 구멍이 나서 엔진 실린더의 점화구를 적셔서 고장 난 것처럼 보였던 걸 알게 됐죠. 신기하지 않으세요? 그 큰 엔진이 티끌만 한 점화 플러그가 물에 젖었다고 멈추는 게 말이에요. 선배가 말한 불의 부정적인 부분은 맞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그런 태우고 폭발하는 작은 불의 힘으로 거대한 기관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또한 불의 경이로움의 특성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우리의 사회도 마찬가지겠죠.”
“사회? 사회에서의 불이라. 살짝 감이 안 잡히는데?”
나는 잠시 자료를 뒤적였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생각했던 지식이 담긴 책을 찾기 위해서였다. 오행과 신체 내에 존재하는 장기 구조에 관한 책이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방화와 불의 연관을 지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선배, 그거 아세요? 인간의 장기는 다섯 가지 속성에 속해 있데요. 나무처럼 위로 올라가는 기운은 간이 담고 있고, 땅의 기운은 위장과 비장이, 단단한 금속의 기운은 폐가, 흐르는 물의 기운은 신장이 담고 있다고 그래요. 이중 불의 기운은 어느 장기가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음…. 불타고 활력 있는 이미지라, 뇌는 아닐 테고. 그렇다면 심장?”
“네, 심장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절대로 쉬지 않는 장기가 바로 심장이죠. 동맥과 정맥뿐만 아니라, 신체 부위 곳곳에 존재하는 모세혈관의 혈액을 모두 순환시키는 심장은 지금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왠지 빠르게 움직이는 불의 이미지랑 비슷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네. 그런 심장이든 불이든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흠, 이건 어떨까요?”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내가 생각한 바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것은 단지 나의 상상력에 의해서 태어났고, 그 이미지를 이끌어 내는 것 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왠지 후련해지는 느낌이 든다.
“선배, 이 심장에 존재하는 불이라는 놈은요. 우리 몸의 엔진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저희한테 판별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합니다. 대중가요나 매체에서도 그런 말 하지 않습니까? 열혈남아! 피 끓는 청춘, 이 시기의 사람은 뭔가를 가려내고, 구분 짓는 걸 좋아하죠. 대표적인 게 바로 삶은 한순간이라는 표현이지 않습니까? 젊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순간을 즐겨라. 물론 나이 든 오십 대, 육십 대의 정년 층이 보기에는 아주 오만하고, 부모 품에 쌓여서 도무지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치기로 들리겠지 만요.”
“하긴 그렇지. 내 동생이 자기 꿈을 찾겠다고 공부 때려치우고, 요리학원 다닌다고 했을 때 정말 답답했지.”
“네, 그러게 말입니다. 단지 세상을 볼 줄 모르는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들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은 사실 팔 할은 거의 틀린 말이겠지만, 그중 정말 이 할 정도는 세상의 때를 타고, 남에게 해를 입히기도, 입기도 하면서 세상을 살아온 이들보다 훨씬 통찰력 있고, 정도에 바른 결단력 있는 말도 있습니다. 이 심장의 불이 가장 끓어오를 때 명확하게 세상을 구분할 수 있는 이분법의 능력을 준다니, 조금 신기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걸 다르게 표현해 보렵니다. 바로 ‘용기’로요.”
“용기?”
“네, 현상에 대한 선과 악을 뚜렷하게 판별하고, 세상을 자기 뜻대로 구분 지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 패기일 수도 있겠고, 자만심일 수도 있겠지만, 수많은 현실에 굴복하고, 모든 사람이 ‘옳다’고 말할 때 혼자 ‘나는 다르게 생각해’라고 말할 힘. 세상이라는 것을 한 단계 높게 설정하고, 우리를 발전하게 하는 불의 힘. 그것은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잠깐만. 그렇다면 방화는 왜 일어나는 거냐? 너 말대로 사람의 마음 안에서 불이 들끓을 때 선과 악을 판별할 수 있다면 그런 범죄자들은 애초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어야지!”
“그건 반대로, 그 사람들이 내면의 원동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불타지 않고, 어떤 것을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다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작아지고 외로워집니다. 세상에 자신이 가진 것이 없다고 해도 자신의 마음 안에 충만함과 열정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남의 것을 탐하거나 질시하지 않습니다. 범죄자들은 남의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는 뜻은 자신의 것 또한 없다는 것입니다. 가슴에 불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외적인 화려한 부분들을 갈망합니다. 그렇기에 그 사람들은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 불을 찾기 위해 다른 불을 가져온 겁니다. 바로 방화라는 형태로 말입니다.”
목이 건조해서 커피를 마신다.
“날이 갈수록 방화의 범죄 수가 늘어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겁니다. 사람은 많아졌고 세상에 존재하는 물품은 많은데, 정작 자신의 것은 없습니다. 타인과의 관계는 늘어나는데, 소통은 점점 힘들어집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무엇을 하고 싶지도 않은데, 세상은 변하라고 재촉하고, 레이스에 맞춘 비슷한 수준의 이들과 더 높은 것을 얻기 위해 경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의 불을 찾을 수 있습니까? 불만은 불안이 되고, 불안은 곧 해소할 수 없는 스트레스로 변하게 되는 겁니다. 아까 선배께서 말씀하셨죠? DNA 수준으로 각인된 불에 대한 경외와 다다르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그 사람들. 아니,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사회에 불을 질러 버리고 싶다는 절규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으음.”
“원동력이 없는 사회의 사람들은 의기소침합니다. 의기소침하기에 용기가 부족하죠. 용기가 부족하기에 선과 악을 구분할 줄 모릅니다. 모르시겠습니까? 우리는 가난했던 시절에도 끊임없이 타오르던 그 불을 꺼트렸습니다. 학생들은 스냅백과 비싼 브랜드의 옷에 열광하고, 청년들은 돈에 열광하며, 중년들은 지위와 명성에 열광합니다. 이 중, 어느 것이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입니까? 그러니 소외된, 어두운 부분에서 불씨가 피어오르겠습니까? 마음에 존재하는 ‘긍정적인 불’이 아닌, 세상을 불태우는 ‘부정적인 불’로서 말입니다.”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선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내 얼굴을 보며 침묵할 뿐이다. 커피는 식어가고 있다. 아무런 질문도 대답도 존재치 않는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사람이 없다. 카페가 닫을 시간이 되어 가는 듯 점원들이 분주히 자리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린다. 우리도 어질러 놓은 자료와 책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설 준비를 한다. 허리가 아프다. 목도 뻐근하다. 하지만 마음만은 후련하다. 카페를 나서니 어둠이 짙게 깔렸다.
한참을 묵묵히 걷던 선배가 묻는다.
“그래서 대체 불이라는 놈은 뭘까?
“선배는 아십니까?”
선배는 빙긋이 웃었다.
“나도 모르겠다. 근데 분명한 건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아니라는 거지.”
“오만이든, 용기든 어떻게 보면 같은 말 같지 않습니까?”
“그래, 그런데 그것만은 알 거 같다.”
“네?”
“불은 우리에게서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놈이라는 거.”
하늘이 차게 느껴졌다.
(끝)
□ 당선소감 ․ 임윤성 ――――――――――――――――――――――
막막함이란 자유로움일까?
군대에 갈 날을 한 달 남겨둔 오늘, 아무 생각 없이 내 이야기를 쓰자고 한다.
사람들의 삶이란 꽤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나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대학을 휴학하고 나서 공모전이나 장학금으로 받은 약 300만 원 정도를 가지고 평소에 가보고 싶던 티베트의 차마고원으로 떠났다. 지대가 높아서 평생 걸을 오르막을 오른 것 같다. 고원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작은 샛길 사이로 당나귀에 짐을 싣고 가던 사람들. 그들이 날 보고 인사했다.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고도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었다. 밥은 푸석푸석하고 맛이 없었지만, 밤하늘의 별만큼은 아름다워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집집이 향냄새가 났다.
돈이 남아서 바로 몽골로 갔다. 살면서 아무것도 없이 넓은 지평선은 처음 봤다. 외몽골 러시아 국경지대 근처 황무지에서 타고 가던 차가 펑크 났다. 나는 멍하니 앉아서 지평선만을 보았다. 마치 또 다른 바다 같은 지평선의 모래먼지와 신기루 같은 흐릿함이 대지와 하늘의 경계선을 겨우 지어줄 뿐이었다.
내몽골 초원의 전경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티베트에서 맡았던 향냄새가 다시 났다. 가이드가 여행 마지막 날 말 젖으로 만든 술을 구해줬는데, 맛은 없었으나 독특한 맛 때문에 들이키다가 토하고 난리를 쳤다.
가이드와 일행은 웃으면서 발효된 젖을 권했다. 냄새는 독했지만 숙취와 술기운이 금세 가라앉아 신기했다.
몽골의 밤하늘도 맑아서 별들이 선명했다. 그렇게 여행을 하면서 나는 밤하늘만을 본 것 같다. 돌아오는 공항에서 찍어놨던 수백 장의 사진들을 다 지웠다.
티베트는 고요해서 진리를 추구하는 인생의 또 다른 형태 같았고, 외몽골의 황무지에 섰을 때, 멍하니 지평선을 보는 나를 향해 한참을 차와 씨름하던 가이드가 다가와 물었다.
“자유롭지 않습니까?”
나는 왠지 모를 막막함이 느껴진다고 대답했다. 가이드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자유로운 겁니다.”
막막함이란 자유로움일까?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심사평 ․ 사람과 환경 ―――――――――――――――――――――
완전한 작품언어로 말하는 방법 터득하기 위해 더욱 정진하기를!
이번 창간 10주년 특별기획 공모에는 두각을 보인 임윤성의 단편 화론(火論)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소설은 시대의 그림자이며 사회 현상의 거울이다. 단편 화론(火論)은 화자와 선배가 불이라는 매개체로, 사회 현상을 대화체로 풀어가고 있다. 화자는 세상은 변혁과 분배 때문에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기술한다. 인간의 심장은 불을 품고 있다.
화자는 불은 아주 작은 인(原因)이 가장 큰 결과(結果)를 만들어 낸다고 서술한다. 작금에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옳고 그름이 없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장대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주관적인 분별력이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소설은 다른 장르와 달리 자기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는 에너지를 풀어내는 작업이며 그 결과물이 작품이다. 모처럼 좋은 작품을 만났다. 심장의 에너지가 불이 되기 위해선 끊임없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음성언어가 아닌 완전한 작품언어로 말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더욱 정진하기 바란다.
김범선(소설가/경제논설위원) 권기훈(시인/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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