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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기 전에
잠언 6장 6-11절, 디모데후서 4장 5-22절
한 문 덕 목사
[월동(越冬) 준비]
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아침저녁으론 꽤나 쌀쌀하고, 이제 곧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올 것 같습니다. 이제 슬슬 겨울 날 준비를 할 때가 되었는데, 화초를 키우는 사람들은 베란다에 있는 화초들을 안으로 들여 놓을 것이고, 창문에 뽁뽁이(Air-cap)도 붙이고 외풍(外風)을 막아주는 문풍지도 준비합니다. 한겨울 먹을 김장도 담가야겠지요. 올해 우리교회는 22-23일에 김장을 합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함께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작년과 같이 이준일 장로님께서 농사지으신 배추를 절이고 운반해야 하니 손길이 좀 필요할 것입니다. 차량도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는, 하부를 깨끗이 세차하고, 워셔액도 어는점이 낮은 겨울용으로 교체하고, 바퀴 공기압도 잘 유지하도록 살피고, 부동액과 브레이크, 그리고 배터리도 점검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내복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특히 가스비가 만만치 않으니, 난방비라도 아끼려는 심정에서 내의류를 비롯해 단열용품들을 잘 준비합니다. 요즘에는 방안에 치는 텐트가 있어서, 저희도 몇 년 전에 구매해서 쓰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한편 겨울은 한해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해를 맞이하는 때이기도 하여서, 외적인 월동 준비만이 아니라, 마음의 월동 준비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은 10월의 할로윈 축제를 시작으로 하여 11월 넷째주 목요일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나면 12월 크리스마스와 연말까지 홀리데이 시즌이라고 하여, 축제 분위기로 보냅니다. 기업들은 이 시기에 할인판매 행사를 많이 열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의 행사와 같이 1년에 단 한 번 새벽 이른 시간에 개점하여 밤새 물건을 매우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국은 이 시기가 기업이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때이기도 하고, 미국인들은 이 시기에 한 달 내내 약간은 들뜬 감정으로 보낸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이 시기는 진정으로 한해를 마무리하고 주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력은 대림절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올해는 12월 1일 첫째주일부터가 새로운 한해의 시작이고, 그렇다면 우리에게 11월은 마지막 달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이 시기가 되면 가을 심방도 어느 정도 끝나가고, 다음 해를 준비하며 대림절 묵상에 대한 구상도 하면서 한 해를 잘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바울의 형편]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디모데서는 디도서, 빌레몬서와 더불어 바울 사도가 개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대체적으로 교회에 공적인 편지를 보내지만, 디모데서는 교회의 책임적 직무를 맡고 있는 목회자 디모데에게 주는 목회 상담을 겸한 일종의 개인적 사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 또한 믿는 사람들의 신앙을 굳게 하고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기에 성경으로 채택되었습니다.
특히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의 가장 마지막 편지입니다. 6절을 살펴보면 바울은 지금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은 로마로 호송되었고, 잠시 풀려났었지만 네로 황제의 박해가 시작되면서 다시 투옥된 상태였습니다(1:16-17). 바울 사도는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젊을 때의 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감옥에 있으니 예전 보다는 훨씬 힘든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 바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아들과 같았던 디모데에게 유언과 같은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는 죽은 다음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죽기 전까지는 이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죽음을 얼마 앞두고 감옥에 있는 바울의 형편을 보면 바울의 선교 사역이 과연 성공했는지 확신하기가 어렵습니다. 10절부터 진술되는 내용을 보면 바울 곁에 남은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가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가고, 바울에게 남은 사람은 누가밖에 없습니다.
교회 전통에서 바로 이 누가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짜인데, 누가는 그런 사람 같습니다. 데마는 아마도 처음에 바울을 따를 때부터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번영의 복음, 영광의 복음만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감옥에 갇히니까 도망가 버린 것이겠지요.
영국의 한 출판사에서 ‘친구’라는 단어의 정의를 공모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당선자에게는 두둑한 상금까지 걸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응모작들이 있었고, 그 중 일등에 당선된 정의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친구란 온 세상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다.” 공자 선생이 “날씨가 추워져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드는 것을 알게 되는 법.”(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 논어 자한편에서)이라고 하셨는데, 어려울 때에 함께 있어야 진짜 친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신앙도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 믿고 복 받고 좋을 때가 있는가 하면, 예수님을 믿어도 일이 잘 안 풀리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외적 환경의 좋고 나쁨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신앙은 좋은 신앙이 아닙니다. 주님과 좋은 때를 잘 보냈다면, 고난과 박해, 무력감과 절망이 찾아 올 때도 주님을 지켜야 합니다. 제가 담임목사 취임식에서 말씀 드렸듯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고난당하실 때도 주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사도들은 주님을 위하여 당하는 모욕과 고난은 기쁨으로 여겼습니다(5:41). 특히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다가 당한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고난을 받을수록 더욱 힘차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누가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하고, 자신을 위한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부탁 1: 마가를 데려오라]
지금 형편으로는 누가만 곁을 지키고 있지만,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는 바울은 전혀 외롭지 않습니다. 원망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처럼 여기는 디모데에게 부탁을 합니다. 아마 디모데는 바울의 편지를 받는 즉시 실행할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 둘도 없는 동역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바울은 디모데가 속히 와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겨울이 되기 전에 서둘러 와 달라고 합니다(21절). 이 말은 자신이 보고 싶기도 하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디모데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겨울이 되면 에베소에서 로마로 가는 뱃길에는 예측할 수 없는 강풍이 불기 때문입니다. 바울 자신이 겪은 것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27장에 의하면 로마로 압송되던 바울이 유라굴로라는 폭풍을 만나 거의 죽을 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겨울 전에 오라는 것은 혹시 디모데가 오는 길에 자신이 겪은 위험에 노출될까 염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바울에게 오는 길은 만만한 길은 아닙니다. 오늘날처럼 교통이 발달한 때도 아니고, 또 바다를 건너야하기에 정말 목숨을 잃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올 것입니다. 왜냐면 디모데에게 바울 사도는 자신을 영원한 생명, 삶의 진정한 의미를 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대를 마치고 뒤늦게 다시 수능 시험을 보려고 마음 먹었을 때, 저는 매우 절박했습니다. 지방에서의 생활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내 자신의 앞길이 막막했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별로였지만, 전공은 국어교육이었기에 나만 잘하면 교사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과감하게 학교를 그만 두고, 20대 중후반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입시를 준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학원에서 만난 수학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강의를 한다면 여러분은 며칠이 걸리더라도 그곳으로 날 찾아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게 배워야 여러분의 실력이 늘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 말에 100%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초중고 12년 동안 배워야 할 수학의 모든 것을 단 3개월의 시간동안에 완벽하게 가르치시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다닌 그 학원은 없어졌지만 그 선생님의 이름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을 신앙으로 이끌어 주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잊어선 안 됩니다. 우리 영혼의 은인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바울 사도는 자신이 사랑한 디모데를 오라고 하면서 몇 가지 부탁을 합니다.
첫째는 마가를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마가일까요?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고 히브리식 이름은 요한인데, 그래서 성경은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행 12:12)이라고 부릅니다만 아무튼 마가는 바울이 모교회인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함께 선교사로 파송 받고 1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함께 했던 젊은 동역자였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보면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첫 교인들 120명이 모여 기도하였으니, 마가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인들의 주요 집회장소가 바로 마가의 어머니 집이었으니,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을 접했고, 베드로가 아들처럼 여긴 이였으니(벧전 5:13), 그는 신앙적 열정이 넘쳤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여행에서 조수로(행 13:5) 일했는데, 그만 선교여행 도중에 하차하고 맙니다(행 13:13).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모릅니다.
어떤 주석가는 이방 선교가 마가 요한과 맞지 않았다고도 하고, 또 다른 주석가는 젊고 고생을 모르고 자란 마가에게 선교여행이 힘들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아무튼 바울처럼 의지가 확고하고 신념이 투철한 사람에게 마가는 연약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2차 선교여행에 마가가 다시 함께 하겠다고 했을 때, 바울은 단호하게 반대했고, 그 일로 바나바와 싸워 결국 바나바와도 헤어지게 됩니다. 마가는 바나바와 친척간이었기에 바울이 너무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난 번 1차 선교여행에서 본 모습이 영 못 미더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그런 마가를 데려와 달라고 디모데에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아마 바나바와 헤어지고서 마가가 바나바와 함께 선교여행을 잘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 스스로 너무 섣부르게 일방적으로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었겠지요. 그래서 어쩌면 마가를 만나 자신이 잘못 판단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마가가 자기 일에 요긴한 사람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만약 마가가 마가복음서의 저자라면 마가는 헬라어에 능통했을 것이고, 그런 마가의 학식이나 능력이 뭔가 바울 사도에게 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의 첫째 부탁을 보면서 우리 또한 올해가 가기 전에, 겨울이 오기 전에 화해할 것은 화해하고, 용서할 것은 용서해야 합니다. 내년까지 어떤 마음의 앙금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모든 것을 훨훨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아무리 좋지 않은 모습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와의 1차 선교여행의 실패를 발판 삼아 더 나은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실패했다고 너무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됩니다.
[바울의 부탁 2: 외투를 가져 오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두 번째로 한 부탁은 외투를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지만 지금 바울 사도는 어둡고 습기가 많아 으스스한 로마의 감옥에 있습니다. 거기에서 겨울을 나야 합니다. 그래서 외투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 외투는 바울이 평소에 입었던 것으로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두고 왔던 것입니다.
로마의 교인들에게 부탁을 하여 더 질 좋은 외투를 사서 넣어달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왜 굳이 자기가 입었던 외투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 외투와 함께 겪었던 지난날의 선교 여행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 외투는 누군가가 선물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또 겉옷은 어떤 사람의 스타일과 관련되니 바울에게 꼭 알맞은 어떤 상징이 그 외투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면, 그 외투는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다마스커스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입고 있었던 외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은 소비의 시대라서 쉽게 사고 쉽게 버리기도 하지만, 바로 그렇게 넘쳐나는 풍요 속에서 오히려 많은 추억과 좋은 기억들까지도 날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20대 초반에 <몬트리올 예수>라고 하는 영화를 매우 감명 깊게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인 로세어 블루토(Lothaire Bluteau)가 입고 다니는 약간 치렁치렁한 옷이 마음에 들어서 마침 그 비슷한 옷을 구해서 즐겨 입고 다녔는데, 그 옷이 거의 다 헤지도록 입고 다녀서 결국은 엄마가 아궁이에 던져 태워 버렸습니다. 그 때 무척이나 마음이 서글펐던 기억이 납니다.
추억이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합니다. 100세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여러분 또한 추억을 많이 만드시고, 외투 하나에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부탁 3: 양피지에 쓴 책들을 가져 오라]
디모데에게 한 마지막 부탁은 책을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특별히 양피지에 쓴 것들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외투가 사람의 외적인 것을 상징한다면 책은 아마도 인간의 내면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져오라고 한 책이 구약성서 중 하나일지, 아니면 자신이 교회들에게 썼던 편지들 중 일부였을지, 그것도 아니면 베드로나 첫 제자들로부터 들었던 예수님의 이야기를 적어 놓은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마가를 데려오라고 하면서 비싼 양피지에 기록한 책을 함께 가져 오라고 한 것을 보면, 이것은 분명 초대 교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어떤 문서였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아끼던 후배 목회자였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로 일컬어지고, 마가는 바로 마가복음서의 저자로 교회 전통에서는 인정받던 사람입니다. 어쩌면 이 복음서들과 바울 서신들이 양피지에 기록된 것들을 기본 자료로 하여 만들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후배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첫 사도들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전해들은 것, 자신이 선교여행을 하며 겪었던 것 등등을 이제 기록하고 정리하려 합니다. 감옥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이런 작업들은 더욱 더 절실했을 것입니다. 복음을 간직하는 것, 복음을 기록하고 전하고 살아내도록 하는 것, 그것만큼 바울이 열망하던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개미에게 배우라]
사랑하는 생명사랑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겨울이 오기 전에 무엇을 준비하시렵니까? 겨울은 인생의 마지막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머리에 흰 눈이 가득 내리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어나고, 팽팽하던 몸이 움츠러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잠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아, 개미에게 가서, 그들이 사는 것을 살펴보고 지혜를 얻어라. 개미는 우두머리도 없고 지휘관도 없고 통치자도 없지만, 여름 동안 양식을 마련하고, 추수 때에 먹이를 모아 둔다. 게으른 사람아, 언제까지 누워 있으려느냐? 언제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느냐? "조금만 더 자야지, 조금만 더 눈을 붙여야지, 조금만 더 팔을 베고 누워 있어야지"하면, 네게 가난이 강도처럼 들이닥치고, 빈곤이 방패로 무장한 용사처럼 달려들 것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도 빨리 준비합시다.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라는 올해의 표어를 담은 현수막도 이제 내릴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렇게 올 한 해도 어김없이 갈 것입니다. 올 한 해만 그렇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속절없이 가고야 마는 것입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저와 여러분! 우리들의 신앙이 한결 높아지고, 깊어지고, 넓어지도록,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좀 더 아름답고 행복해지도록 겨울이 오기 전에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허락하시고, 우리에게 가족과 친구를 주시고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생명사랑 신앙공동체가 부푼 마음을 안고 2019년을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다가 왔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월동준비를 하듯 우리 또한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신앙의 월동 준비를 하게 하소서. 준비된 인생만이 혹독한 시련을 이겨낼 뿐만 아니라, 주어진 삶을 후회 없이 살 게 될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오겠지만 잘 준비한 생명사랑 신앙공동체를 통하여 우리의 매 순간이 의미 있고 따뜻한 나날이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거룩하시고 좋으신 하나님! 말씀으로 생명의 세상을 창조하시고, 부활로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날에 우리를 한 자리에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만나고자 나온 생명사랑 믿음의 식구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허락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 삶에 일렁이는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님의 평화와 위로가 우리를 감싸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지금 이 시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옵니다. 우리들의 삶과 생각과 진실한 마음을 드리려고 나옵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그 사랑의 징표로 드리는 이 예물을 온전히 받아 주시옵소서. 가난으로 하루가 고단한 이들을 위로하시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힘을 주소서. 그 때 우리가 드린 예물을 사용하여 주소서. 우리가 온전히 주님만을 섬기고 맘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여 주소서. 생명이 온전히 주님께 달려 있음을 믿으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개미에게서 배웁시다. 겨울이 오기 전에 미리 미리 준비합시다. 시간은 늘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 축도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과 사랑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이제는 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과 은총과 능력이 올 한해 모든 면에서 자라나며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에 이르도록 애쓰고 수고한 생명사랑 성도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