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엘리바스의 질책성 변론이 끝나자, 욥은 입을 열어 자신의 순수함을 변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6장에서 욥은 비록 신앙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받는 자는 하나님의 징계에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엘리바스의 비난은 합당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게다가 자신을 정죄하고 비방하는 친구들의 냉정함에 대해 책망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1.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욥
1) 욥이 당하는 고난의 무게
욥은 자기의 고난과 모든 재앙을 저울에 달 수 있다면 바다 모래보다도 더 무거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다 모래'는 무수하고 측량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바다 모래보다도 무거운 고난이란 어떠한 아픔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난을 가리킵니다(참조, 잠27:3). 자신의 고난이 매우 큼을 고백한 욥은 이어서 자신의 말이 경솔했음을 표현합니다.
a.심히 조급해 하는 욥(욥21:4)
b.원통함을 발설함(욥10:1)
2) 몸에 박힌 전능자의 살
전능자의 살이 내 몸에 박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욥에게 고난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전능자의 살이란 일반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재난이나 고통을 통틀어 표현할 말입니다(참조, 시7:13). 욥은 전능자의 살에 묻혀 있던 독이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생활이 너무나 염증 난다는 의미에서 싱겁고 맛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의 인생에 있어서는 욥의 경우처럼 이유 없는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a.하나님이 살을 쏘심(신32:23)
b.심령이 상함(잠18:14)
3) 당하고 싶지 않은 고난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경우를 당하게 될 때입니다. 욥이 표현한 소금 없는 싱거운 음식과 닭의 알 흰자위는 모두 이러한 것을 말합니다. 욥이 표현한 대로 인간은 항상 입에 단 음식을 즐겨 할 뿐 싱겁고 맛없는 음식 먹기를 싫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욥은 현재 삶중에 가장 쓰고 맛없는 음식을 입에 넣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그 이유가 자신의 병 때문이거나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런 연고 없이 맛없는 음식을 먹고 있다는 데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a.폭풍으로 꺾으심(욥9:17)
b.낙담(삼상17:32)
2. 오히려 죽음을 원하는 욥
1) 욥이 구하고 사모하는 것
욥이 구하고 사모한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사람은 모두 살기를 원합니다. 생의 욕망은 강하기 그지없어서 다른 사람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습니다. 여기서 욥이 죽고자 하는 마음은 결코 자살 심리가 아니라 그에게 닥친 고통이 너무나 극심했으며, 풀 길 없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신앙적 혼란에 대한 표현입니다. 욥은 죽음을 갈구하면서도 그 죽음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명백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a.음부에 감추시기를 원함(욥14:13)
b.생명을 취하시도록 간구한 엘리야(왕상19:4)
2) 거룩하신 분을 거역하지 아니한 기쁨
욥이 죽음과 고통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거룩하신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삶이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왔음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를 가진 성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소망을 삼습니다. 욥은 고난 중이지만 하나님 말씀 성취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고통 앞에서 욥이 위로를 받고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죽음 후의 세계 곧, 내세에 있을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a.하나님은 거룩하심(레19:2)
b.청백리의 표상인 사무엘(삼상12:3)
3) 기력을 상실한 욥
욥은 자기가 바위처럼 강하지도 못하며 그의 몸이 놋쇠가 아니기 때문에 기력이 쇠하여졌고 지혜가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기 때문에 끝까지 견딜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미 욥의 온 몸은 악창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지경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육체의 고통 가운데 최고의 고통을 욥으로 하여금 겪게 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욥의 고통을 한 층씩 거르는 것은 재난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자신의 지혜로 찾을 수 없는 인간 능력의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a.기운이 쇠함(욥17:1)
b.힘이 중도에 쇠약케 됨(시102:23)
3. 친구들의 책망에 대한 욥의 비판
1) 친구들에게 실망하는 욥
욥은 친구들의 책망에 대하여 반박하며 진정한 경건과 형제애가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욥은 엘리바스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형제의 불쌍한 형편을 동정하지 않는 사실에 대하여 사막 지방의 시냇물과 개울로 비유하였습니다. 이것은 '와디'를 가리키는데, 와디는 농부에게는 전혀 쓸모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욥에게 친구들은 자기 중심적인 변론과 주장으로 자신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므로 욥에게는 일종의 배신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a.지체 의식을 가져야 함(고전12:26)
b.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음(창20:11)
2) 친구들을 책망함
친구들에게서 실망한 욥은 자신을 위로하러 온 친구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꿰뚫어 보고 그들의 이기주의적 성향을 비난합니다. 그는 계속하여 자신을 찾아 정신을 차리도록 꾸짖는 친구들에게 언제 구원을 요청했느냐고 반문합니다. 사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항변에 등장하는 말처럼 물질적 공급이나 대적자들에게서 구원해 준 바는 없었습니다. 오직 입으로만 도움을 주는 척했습니다.
a.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욥13:4)
b.거짓된 자(시62:9)
3) 돌이키라
욥은 친구들이 자기의 허물 된 것을 깨닫게 해줄 때에 잠잠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이러한 태도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친구들이 죄인으로 취급한 데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이어서 욥은 친구들의 무자비함에 대하여 책망합니다. 그 비유로 고아를 제비뽑고친구를 매매할 자로 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욥의 말은 그 친구들이 그러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친구들이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라는 생각에서 했던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욥은 친구들이 불의한 일을 행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돌이키라고 권하였습니다. 이 말은 방법을 바꾸라, 내가 죄가 있다는 잘못된 전제보다는 나의 고통을 설명하는 다른 길을 찾으라는 의미입니다.
a.갈 길을 가르쳐 보임(시32:8)
b.의를 굳게 잡음(욥27:6)
결론
우리는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1차 답변을 통해 대인 관계에 있어 우리가 취할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비록 자신의 비위를 거스르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할지라도 쉽게 분을 발하기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