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777
천수경 강의023
동봉
십원十願(제7원)
크신사랑 관세음께 귀의하여 원하오니
무명벗는 계족도를 어서빨리 얻으옵고
크신사랑 관세음께 귀의하여 원하오니
고뇌여읜 원적산에 어서빨리 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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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신 사랑 관세음보살이시여
당신께 귀의한지 무릇 43년이나이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접한 경전이
이른바《장수멸죄경長壽滅罪經》이었고
이어《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었사오며
방등부 경전의 꽃《유마경》이었나이다
한 해 가까이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경은 읽되 절을 찾은 적은 없었사오나
이듬해 75년 3월, 출가의 길을 택하였나이다
크신 사랑 관세음보살이시여
인연을 만들어가시는 보살 관세음이시여
출가하여 가장 처음 접한 경전이
다름 아닌《천수경千手經》이었나이다
천수경은 읽는 경전이 아니었나이다
천수경은 내용을 읽는 뜻 경전이 아니라
목청을 돋구어 읽는 소리 경전이었나이다
내용과 상관 없이 외고 치는 경이었나이다
삭발사 삼현 스님이 제게 던진 말씀이나이다
"이 행자님, 먼저 천수 치는 법부터 배워요."
그러면서《불자지송》을 내게 주었사옵니다
그 책에는 금강경, 반야심경 따위가 있었고
관음경, 아미타경이 들어있었나이다
이들은 경전류로 묶여 뒷편에 실렸사온데
오직 천수경만큼은 맨 앞쪽에 실려있었나이다
크신 사랑 관세음보살이시여
저는 처음
목탁을 두드리고
북을 치고
쇠북을 치고
바라를 치고
징을 울려가며
함께 경전을 외워나가는 까닭에
두드리는 경전, 곧 치는 경으로 알았나이다
이 말씀이 그른 것은 아니오나
나중에 가서야 양 치牧고 소 치畜듯
천수경은 마음 치養育는 경으로 알았나이다
크신 사랑 관세음보살이시여
그러다가 낡은 책 한 권을 얻었사옵니다
42년 전 처음으로 접한 낡은 책은
의식집《석문의범釋門儀範》이었나이다
초판본인 '쇼와본昭和夲'이었나이다
아! 이토록 소중한 의식집을 얻다니
저는 감격하여 스님께 삼배를 올렸나이다
제게 이 《석문의범》을 선물하고
고작 석 달 뒤 사라진 스님이었나이다
온 길을 되짚어 간 법진法眞스님이었나이다
부처님께서 춘다의 공양을 받으신 뒤
석 달 뒤 대열반에 드셨사온데
그는 제게 소중한 책 한 권을 전한 뒤
개인 날씨와 함께 사라져 간 구름이었나이다
크신 사랑 관세음보살이시여
제가 평소 지송하는《천수경》은
일본《신수대장경》제20권 밀교부4의
경전 내용을 가져온 것이 아니었나이다
법진 스님이 주고 간《석문의범》이나이다
이《석문의범》<송주편>에 따른 것이나이다
크신 사랑 관세음보살이시여
제가 소장한《석문의범》은 2가지이온데
쇼와昭和10년(1935) 11월 10일 발행본과
단기 4299년(1966) 4월 20일 6판본이나이다
단기본의 '원아속득계정도願我速得戒定道'가
쇼와본에는 '계족도戒足道'로 되어 있사옵니다
처음에 '계족도'로 익힌 천수경 이 대목을
40년이 넘었건만 아직 고쳐 읽지 않사옵니다
법진 스님이 남긴 정情 때문일 것이나이다
크신 사랑 관세음보살이시여
경전과 수정본에는 '계정도'로 표기되었사온데
상기 계족도戒足道를 고집하고 있사옵니다
알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죄라 하시오면
크신 사랑 관세음보살이시여
아! 거룩하신 서가모니 부처님이시여
두고 두고 그 죄는 제가 달게 받겠나이다
눈 밝은 후배들이 지적해주었나이다
제가 읽는 '계족도'는 '계정도'가 맞다고요
계율戒과 선정定을 함께 얻어야
바야흐로 원적산/열반산에 오를 수 있다고요
논리의 적합성과 부적합성을 떠나
경전에 기록된대로 읽어감이 옳사옵니다
계와 정을 얻어 원적산에 오름이 맞사옵니다
하오나 계율戒의 다리足가 튼튼할 때
선정산圓寂山에 오를 수도 있지 않겠나이까
크신 사랑 관세음보살이시여
몇년 전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로르샤흐 잉크 반점 검사를 받았나이다
로르샤흐 그림 중 어떤 것을 펼쳤을 때
어찌 보면 박쥐 그림 같기도 하였고
나비나 나방 같기도 하였나이다
특히 여성의 골반처럼 보였사옵니다
그림 정체를 정확하게 답할 수 없었던 것은
그림 가장자리 잉크 번짐 현상 때문이었나이다
크신 사랑 관세음보살이시여
데칼코마니아decalcomanie 기법으로 찍어낸
로르샤흐 검사Rorschach test 그림들은
묽은 잉크라 번져나갈 수 밖에 없사옵니다
바로 이 번짐 현상으로 인하여
생각을 틀 속에 가두지 않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할 것이나이다
이른바 프랙털fractal 구조와의 연결이나이다
어찌 보면 애매모호한 구조가 프랙털이나이다
'계정도'에는 없는 프랙털 구조가
'계족도'에서는 넓게 넓게 번지고 있나이다
계율과 선정이 갖추어질 때
원적산에 오를 수 있다는 논리는
고화질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낸 사진처럼
실로 명확하기가 그지없사옵니다
하오나 계율 다리가 튼튼할 때
곧 원적산禪定山에 오를 수 있다는 논리는
묽은 잉크로 찍어낸 그림처럼 번져 가나이다
프랙털 구조는 애매가 아니오나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정형화된 틀을 깨뜨리는 까닭에
무유정법無有定法에서 노닐 수 있게 하나이다
앞으로 4차산업이 필요한 시기에
발목을 잡는 것은 바로 고정관념이나이다
학벌이 높으면 필히 직장은 대기업이어야 하고
사업을 하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실패의 아픔을 가져오나이다
정형화된 틀을 깨뜨릴 필요가 있사옵니다
동일한 구조가 끊임없이 번지는 프랙털 세계
모든 책들이 '계정도戒定道를 얻어
원적산에 오르다'로 기록되어 있다 하더라도
저는 그 틀 속에 갇히고 싶지 않나이다
계족戒足의 길道을 뚜벅뚜벅 걸어서
조화로운 깨달음圓寂 세계로 나아가겠나이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사진은 동東아프리카 탄자니아 '셀루스'에서
계족도를 생각하면서 구입한 등산화입니다
신발이 튼튼하면 생명을 보호할 수 있지요
현지에서 50불 주고 산 중고 '젬버랜'입니다]
02/23/2017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