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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토)
오아시스 호텔에서 맞은 아침.
조식을 먹고 투어를 나갔다.
우리는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무함마드 사든이 빅모 아저씨를 도와 가이드를 함께 해주었다.
사든은 버스에서 마이크를 잡고 우리가 갈 피라미드에 대해 설명해줬다.
작년에 가족들과 이탈리아 팩키지 여행을 했을 때처럼 우리는 가이드 아저씨의 막대를 따라 한무더기로 움직였다.
사실 나는 버스 타고 가이드를 따라 편하게만 다니는 팩키지 여행자들을 은근히 무시하며
다시는 팩키지 여행같은 건 안하리라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팩키지 여행자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전락하게 되니 다시 팩키지 여행자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역시 진정한 여행이란 무엇을 타고 돌아다니는지가 아니라 여행자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는 것 같다.
관광버스를 타더라도, 배우려는 자세와 여행에 대한 열정만 있으면 그것 역시 ‘진정한 여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팩키지 여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열심히 가이드 아저씨를 따라다녔다.
기자 지역에는 17개 이상의 피라미드들이 있다.
이 사진 속 피라미드는 피라미드들 중 가장 큰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다.
위성 사진으로도 보일 만큼 크다고 한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그 옛날에 약2.5톤의 돌을 옮겼다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원래 이 피라미드의 꼭대기는 순금, 나머지는 대리석으로 덮여 있었는데
지금은 다 털려서 전체가 돌 밖에 안남은 상태이다.
피라미드 중간에 보이는 구멍 같은 것은 과거에 아랍인들이 보물을 도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니 정식 입구가 아니다.
피라미드 속의 철저한 함정들 때문에 도굴을 시도했던 사람들 중 실제로 보물을 찾은 사람은 없었다.
보물로 가는 길은 오직 한가지 길 밖에 없다고 한다.
이 쿠푸왕 피라미드에 대한 미스테리가 두 개 있다.
하나는 피라미드 안에서 소리를 지르면 에코가 10배로 크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딘 칼 날을 피라미드에 넣고 하루밤을 자고 일어나면 칼 날이 뾰족해진다는 것이다.
이 미스테리가 제기된 후 피라미드 모양의 숯돌 칼보관함이 특허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피라미드는 이집트 고대어로 ‘집’을 뜻하는 ‘베터’, ‘태양의 신’을 뜻하는 ‘라’, ‘계단’을 뜻하는 ‘미드’를 합친 단어이다.
즉 ‘태양의 신의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피라미드 옆에는 건물들이 무너진 흔적들이 있다.
이 건물들은 죽은 왕을 숭배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왕이 신이 되어 그곳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기원전 27년에 지진 등의 자연재해로 무너져서 지금은 건물의 벽돌들만 남은 상태이다.
이 피라미드는 위의 피라미드와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피라미드다.
이것은 쿠푸왕의 아들의 피라미드다.
외관상으로 쿠푸왕의 피라미드보다 커보이지만 그것은 언덕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고,
실제로는 아버지 쿠푸왕에 대한 존경 때문에 더 크게는 못지었다고 한다.
주변에 나무로 만든 배가 있는데, 이것은 이집트 사람들이 피라미드 아래에 묻어두었던 것을
발굴해서 올려둔 것이다.
죽어서 강을 건널 때 왕이 사용하도록 묻어둔 ‘태양선(solar boat)’이라고 한다.
사자의 몸과 사람의 머리를 가진 스핑크스다.
사자의 몸은 힘을 뜻하고, 사람의 머리는 지혜를 뜻한다.
스핑크스는 피라미드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이 스핑크스는 언덕 하나를 아예 깎아서 만든 것이고,
쿠푸왕의 아들이 만든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아랍인들은 스핑크스를 ‘공포의 아버지(Father of Fear)’라는
뜻의 ’아보홀’이라고 부르며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들은 스핑크스의 코나 머리를 잘랐다.
스핑크스 안에 통로와 보물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나 정확한 증거는 없다.
유명한 스핑크스 퀴즈: 아침에는 네발, 점심에는 두발, 저녁에는 세발인것은?
정답: 사람(아기일 때는 기어다니고, 커서는 두발로 걸어다니고, 나이가 들면 지팡이를 짚고 걸어다니기 때문)
그리스 신화에서 스핑크스가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이 퀴즈를 냈는데 아무도 맞추지 못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이 퀴즈를 맞춘 영웅이 바로 오이디푸스다.
이후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가 퀴즈를 맞췄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절벽에서 떨어져서 자살을 했다.
이 신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스핑크스가 ‘지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낙타도 탔다. (무서워서 아이패드를 못가지고 탔기 때문에, 사진은 못찍었다.)
낙타는 생각보다 안정적이고 탈 만했다.
냄새가 조금 나는 것 빼고는 괜찮았다.
다만 나는 낙타의 상태가 가장 걱정되었다.
무거운 사람 두 명을 등에 이고 무더위 속에 걸으려면 얼마나 허리가 아프고 힘들까.
짜증이나고 한탄스러울까.
그런 생각에 낙타에게 많이 미안했다.
반쯤 감긴 눈과 늠름한 표정으로 덤덤히 우리를 등에 태우긴 했으나
분명 그들에게도 말못할 아픔이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나와 지우는 우리가 탄 낙타에게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바로 ‘통통이’다.
발이 고무같이 생겨서 걸을 때마다 통통 튀기는 듯하여 그렇게 지어준 것이다.
지우는 낙타들이 화가 나서 다같이 힘을 합쳐 단체로 반란을 일으키거나 인간을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얘기했다.
‘동물농장’을 떠올리니, 나도 지우의 말에 공감이 됐다.
우리는 재미로 한번씩 낙타를 타는 것이지만,
낙타는 우리같은 사람들을 하루에 몇십명씩 등에 태우고 땡볕에 몇십번씩 같은 길을 걷는다.
앞으로 낙타 체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낙타라면 어떨지’를 먼저 생각해보길 바란다.
내가 낙타라도 즐겁고 기쁠 것 같다면 낙타를 열심히 타면 되는 것이지만,
힘들고 짜증날 것 같다면 낙타를 타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낙타들이 반란을 결정한 뒤에는 낙타들에게 사과를 할 수도,
낙타들을 진정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오늘 낙타를 탔기 때문에 누군가 낙타를 탄다고 해도 뭐라 할 순 없지만..)
책과 교과서에서만 봤던 피라미드를 직접 내 두 눈으로 보았다는 것은 엄청난 경험이었다.
학교에서 쿠푸왕 피라미드에 대해 배우는 그 순간에 나는
‘내가 직접 그 대단한 피라미드를 봤다’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할 것이다.
어쨌든 절대 못보고 죽을 수도 있는 피라미드를 오늘 내가 보았다는 것에 참 감사하다.
저녁으로는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인 코샤리를 먹었다.
토마토 베이스 소스에 마카로니, 콩, 옥수수, 양파튀김, 밥 등을 넣어먹는 것이다.
다합에서는 보통 한 컵 정도의 양을 먹었는데, 오늘은 양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모두들 처음에는 맛있다고 먹기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배를 움켜잡고 남은 몇 숟가락을 먹지 못해 쩔쩔맸다.
아이들이 얼마나 못먹었으면, 써니쌤께서 한 상자를 다 먹은 아이들에게는 1달러씩 리워드를 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유진이와 나눠먹었는데도 다 못먹어서 거의 3시간 동안 코샤리를 앞에 두고 씨름을 버렸다.
한 숟가락 먹고 잠시 쉬었다가 또 한 숟가락 먹고.
정말 배터지게 코샤리를 먹었다.
그래서 어렵게 한 상자를 다 먹었는데..
써니쌤께서 나와 유진이는 나눠먹은 것이기 때문에 리워드를 주실 수 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충격을 받아 그동안 먹은 것을 다 게워낼 뻔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오늘 나는 이집트를 떠나기 전에 이집트 음식을 정말 맘껏, 한없이 먹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탄불에서는 한없이 딜라이트를 못먹은 것 때문에 아직까지도 아쉬움이 남는데,
이곳에서는 위의 한계가 느껴질 때까지 이집트 음식을 열심히 먹었기 때문에 앞으로 절대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다.
8/12(일)
이집트 박물관에 다녀왔다.
이집트 박물관은 1902년에 남쪽 볼락에 지어졌던 박물관을 카이로로 옮긴 것이다.
프랑스 지리학자 어거스트가 발굴한 것들을 모아서 이 박물관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람을 기리는 동상과 상징적인 무덤이 박물관 앞에 있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나일강이 흘렀었는데, 댐을 지으면서 물이 끊겼고 땅을 올려서 박물간을 지은 것이다.
현재 호텔이 있는 자리에는 원래 영국 군인들이 쓰던 캠프가 있었다고 한다.
이 박물관 건물은 이집트식이 아닌 유럽식이다.
영국인이 만들고 이탈리아인이 일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1200개 정도의 유물이 있다.
우리는 이렇게 가이드의 마이크와 연결되는 이어폰을 끼고 박물관 내부를 관람했다.
사진을 찍으려면 기기당 돈을 내야 해서, 사진은 못찍었다.
1.로제타석 사본
프랑스 사람이 발견한 것이다.
세가지 다른 언어로 쓰여있는데 모두 같은 의미이다.
프랑스 사람이 처음 상형문자를 라틴어로 번역했다고 한다.
이것은 기원전 280년경에 만들어졌다.
그리스 왕인 프톨레마이오스 4세가 이집트를 점령하며 세금을 너무 많이 올려서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5세는 세금을 낮추고 종교적으로 이집트인들에게 접근하여, 인기도 얻었고 경제적 발전도 이룩할 수도 있었다.
그것을 감사하는 의미에서 지은 것이 이 로제타석이라고 한다.
원본은 대영제국박물관에 있다.
2.나르메르왕의 돌
나르메르왕이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첫번째 왕이다.
돌의 앞면에는 왕이 죄인을 몽둥이로 때리고 있는 그림이 있다.
이것은 북쪽 지역 사람들이 남쪽 왕에게 복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북쪽과 남쪽의 연합을 뜻한다.
돌의 뒷면에는 두마리의 소 사이에 물고기가 있는데 이것은 왕의 이름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minister’라는 문자가 여성에게 있는 것을 통해, 당시 여성들이 높은 직책의 자리에서 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 두마리의 목이 겹쳐진 그림은 남쪽과 북쪽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이집트의 남쪽과 북쪽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3.khasekhem왕의 조각상
왕은 왼손을 오른손 위에 올려두고 있다. 이것은 존경과 숭배를 뜻한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서 주먹을 쥐고 있는데, 이것은 왕의 힘을 뜻한다.
왕이 앉아있는 의자에는 북쪽 사람 46000명을 죽였다고 쓰여있다.
이는 북쪽 지역을 통치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음을 뜻한다.
->남과 북이 통일되긴 했으나 통치에 어려움이 있었다.
4.Djoser왕의 조각상
‘Djoser’는 ‘신성한 몸’이라는 뜻이다.
그는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의 주인이기도 하다.
이 조각상은 피라미드 앞의 사카라에서 발견되었고,
석회석으로 만들어졌다.
처음으로 진짜 사람의 몸의 크기와 같게 만들었기 때문에 부족함이 많다고 한다.
왕은 주먹을 쥐고 않고 손을 핀채 다리 위에 올려두고 있다.
이는 모든게 평화로웠다는 것을 뜻한다.
코브라는 남쪽, 대머리 독수리는 북쪽, 왕벌은 파라오를 뜻하는데,
이를 통해 왕이 남쪽과 북쪽을 모두 평화롭게 잘 지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라가 안정되었고 왕이 평화롭게 통치를 잘했다.
5.밍카오라왕의 조각상
밍카오라왕은 기자 지구의 세번째 피라미드의 주인이다.
그의 조각상은 선왕들의 조각상에 비해 완벽하다.
왕은 두명의 여신들과 팔짱을 끼고 있다.
왕은 신성한 존재로서 조각되었다.
->왕이 신격화되었다.
6.카노푸스 단지
미라를 만들때 장기를 넣어두었던 단지다.
콩팥과 내장을 이 네 단지에 나눠 넣은 후 상자에 넣었다고 한다.
뇌는 버리거나 고양이에게 먹이로 주었고,
심장은 방부처리를 한 후 붕대를 감아 다시 죽은자의 몸 안에 넣어두었다.
7.미라관
미라는 마스크를 씌운 뒤, 통에 넣고, 그 후에 나무관에 넣고, 그 후에 돌관에 넣어 보관했다.
신분이 높을수록 보관하는 방식이 더 복잡하다.
마스크는 내세에 도착했을 때 죽은 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씌운 것이다.
자신이 누군지를 몰라서 편히 쉬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8.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투탕카멘은 17살에 의문사했다.
당시 피라미드는 도굴이 너무 잦았기 때문에, 그는 왕가의 협곡에 묻혔다.
(이후 다른 왕들도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고 협곡이나 계곡에 묻혔다)
투탕카멘의 마스크는 현재까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마스크이다.
*이집트 왕들은 한 손에는 헤카, 한 손에는 오시리스 지팡이를 쥐고 있는데,
이것들은 왕의 권능을 상징한다.
*오시리스는 처음으로 미라로 만들어진 왕이다. 그는 저승의 왕이기도 하다.
그는 죽은 사람들의 깃털(죄)의 무게와 심장의 무게를 비교해서,
깃털이 더 무거우면 심장을 악어에게 던져주었다고 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을 그리는 방식이 매우 특이한데, 얼굴은 옆을 보도록,
상체는 앞을 보도록, 다리는 옆을 보도록, 발은 앞을 보도록 그렸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사람의 전신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한 자세이다.
보통 박물관들은 에어컨을 틀어놔서 아주 시원한데, 이집트 박물관은 유난히 덥고 답답했다.
미라를 잘 보존하려면 급격한 온도 변화를 주면 안되어서 일부러 에어컨을 안튼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제와 오늘 나의 가이드가 되어준 민수다.
민수는 모르는 것이 없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자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유물들을 민수 덕분에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고 넘어갈 수 있었다.
평소엔 소심한 민수지만, 어제 피라미드와 오늘 박물관에서 만큼은 가장 자신감 넘치는 민수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가이드해줘서 고마웠어 민수야!!
오아시스 호텔 뷔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요즘은 호의호식하며 지내고 있다.
8/13(월)
새벽 1시에 버스를 타고 시와 사막으로 떠났다.
8시간 정도를 자고 버스에서 아침을 맞았다.
이렇게 아점으로 각자 피자 한판씩을 먹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숙소 가까이에 오니 주변이 온통 메마른 황무지였다.
건물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차 한대가 지나갈 수 있는 한 갈래의 좁은 길 뿐이었다.
우리 숙소는 사막의 오아시스라 불리는, 사막에서 유일하게 물이 있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시와 사막 호텔.
풀과 나무가 많은 호텔이었다.
방이 아주 깨끗하고 쾌적했다.
우리방은 에어컨이 망가진 것 빼고는 완벽했다.
에어컨을 고치러 온 아저씨께서 분명 조금만 기다리면 시원해질거라고 했는데
에어컨에서 점점 뜨거운 바람이 나왔다.
에어컨을 고치기 위해 몇번이나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우리방 멤버들은 각자 에어컨이 정상인 다른 방으로 흩어져서 잠을 잤다.
8/14(화)
시와 사막에 가기 전에 이곳에서 점심으로 참치 샐러드와 빵을 먹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인상이 너무 좋으시고 상냥하셨다.
요리사 아저씨께서는 소리를 잘 못들으시는 청각 장애를 갖고 계신 듯했지만,
웃으며 요리를 정말 열심히 하셨다.
우리는 밥을 먹고 두분을 위해 러브송과 아름다운 세상을 불러드렸는데,
두분 다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하셨다.
잠깐 들렀던 식당이었지만, 음식도 주인도 참 좋은 곳이었다.
여행하며 세상엔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식당 앞에 ‘클레오파트라 목욕탕’이라 불리는 이런 물웅덩이(?)가 있었다.
진짜 클레오파트라가 이곳에서 목욕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빅모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이 물이 뼈에 매우 좋다고 했다.
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안들어갔지만, 이 물에 뛰어들었던 호근이, 호준이, 민수, 동군이
그리고 몇몇 아이들은 아마 뼈가 많이 튼튼해졌을 것이다.
드디어 진정한 사막투어를 했다.
다합에서 사막에 다녀왔던 것이 체험판이었다면, 이번에야 말로 정말 ‘지대로’였다.
우리는 모두 Jeep차를 타고 사막을 내달렸다. 차에서는 모로코 노래인 ‘얄릴리’가 흘러나왔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펑크가 날까봐 출발전에 타이어에 바람까지 빼셨다.
Jeep차는 말 그대로 분노의 질주를 했다.
잔나가 차를 타기 전부터 하도 이게 재밌다고 하길래 얼마나 대단한건가 했더니 진짜 대박이었다.
우리 차는 체감 45도 정도 기울었다. 거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언덕을 올라갈 때는 심장이 쪼그라들었다가, 내려갈때는 심장까지 같이 내려앉았다.
63빌딩에서 심장이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모래 알갱이들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얼굴에 닿고,
머리에 뒤엉켰다. 모래 알갱이들은 내 두 앞니빨에도 짝 달라붙었다.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힐때마다 아그작 아그작하는 소리가 머리에 울렸다.
우리는 언덕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모를 소리를 목청껏 질렀다.
우리는 절벽보다 서로의 목소리에 더 깜짝깜짝 놀랐다.
운전 기사 아저씨는 우리의 비명 소리를 즐기시는 듯 했다.
백미러로 질겁해 있는 우리를 보더니 한번 씨익 웃으시고는 속도를 더 높이셨다.
몸이 양옆으로 쏠렸다. 나는 자동차가 전복될까봐 무서웠다.
다행히도 차는 전복되지 않고 무사히 우리를 잘 운반했지만,
우리 차가 전복되기 직전의 매우 아슬아슬한 상태를 지나쳤다는 것은 분명했다.
광활한 사막에는 우리의 Jeep차 7대뿐이 없었다. 완전 우리 세상이었다.
Jeep차 7대가 모래를 흩뿌리며 사막을 가로질러 달리는 모습은
쓰릴 영화에 나올법한 장면이었다.
모래에 빠진 차를 함께 미는 아이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사막에 발을 내디뎠다.
모래가 피부에 닿는 감촉이 정말 보드러웠다.
모래를 손에 가득 움켜쥔 뒤 조금씩 손에 힘을 풀어 흘려보내면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사막 꼭대기로 올라갔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발이 푹푹 모래 속으로 가라 앉았다.
발을 디딘 자리에 있던 모래는 마치 파도처럼 아래쪽으로 흘러내려갔다.
새 발을 내디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뒤에 있던 발이 모래를 따라 자구 아래로 쓸려내려가
나는 제자리에서 런닝머신을 타고 있는 모양새였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발이 쓸려내려갈 틈 없이 곧바로 다음 발을 내디뎌야만 했다.
나는 두더지가 땅굴 파듯 힘차게 모래를 걷어차며 사막에 올랐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사막은 진짜라고 믿기엔 너무 그림같았다.
모래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만들어낸 모양은 한치의 덧나감도 없이 매끈했다.
작렬하는 태양이 만들어낸 사막의 그림자는 어둡고, 너무나 선명해서
화가가 의도적으로 서로 다른 색의 색연필로 명암을 넣은 것 같았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텅 비었다.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수영하는 아이들.
나는 모래 속에 내 몸을 묻었다.
모래는 전혀 급하지 않게, 세지도 않게 마치 갓난아기에게 담요를 덮어주듯
살포시 나를 덮어주었다. 포근하고 따뜻했다.
태양이 천천히 사막 아래로 자취를 감추었다. 하늘은 태양이 남긴 노을로 붉게 물들었다.
붉은 노을 위로는 연한 무지개빛이 보였다.
태양이 차지하던 자리에는 금새 달이 자리를 잡았다. 별도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언덕 아래에 홀로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흥얼거리는 소리가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마냥 작게 들려왔다.
나는 먼곳을 내다보았다. 그동안 마음을 썼던 일들과 걱정했던 일들이 이 드넓은 사막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만큼 작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행복했다. 모든 것이 너무 아름답고 감사했다.
우리는 저녁으로 구운 통닭과 감자요리와 야채와 밥을 먹었다.
별빛과 작은 램프의 빛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나마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황폐한 사막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히 배를 채우고, 물로 목을 축였다.
위를 올려다보니 그새 하늘은 별들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달은 별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인지 저 멀리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하늘에는 수천개, 아니 어쩌면 수억개의 별들이 있었다.
어떤 별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일려는 양 밝게 빛났고, 어떤 별들은 희미한 빛으로 수줍게 얼굴만 빛춰 보였다.
나는 민수의 별자리 강의를 들으며 카시오페이아 자리며, 전갈 자리를 찾기 위해 애썼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잘보이는 것이 내 눈에는 안보여서, 정말 답답했다.
나는 민수가 10번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준 후에야 겨우 물음표 모양의 별자리를 찾아냈다.
(사실 이것도 정확히 찾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밥을 먹은 후 피곤해서 하늘을 보다말고 꾸벅꾸벅 졸았다.
아이들이 ‘우와-‘하는 소리를 지를 때마다 깨었지만, 그때는 이미 별똥별이 떨어진 후였다.
나는 그렇게 세네번은 똑같이 별똥별을 놓쳤다.
별똥별을 보면 빌 소원까지 1번부터 6번까지 정해두고 있었는데,
나는 끝내 별똥별을 못보고 잠들었다.
8/15(수)
사막의 일출.
해가 뜨면서 밤 사이 차가워졌던 모래가 서서히 다시 데워졌다.
계란 한 개, 빵 한 조각, 치즈, 초콜릿이 우리의 아침이었다.
소박했지만 감사한 식사였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시와사막 호텔로 돌아왔다.
나는 호텔에 돌아와서야 내 몸에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사실 오아시스에서 진흙을 던지며 수영을 하고, 모래에서 그렇게 뒹군 뒤에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그대로 잤었다.
사막에 있었을 때는 사막의 경이로운 풍경에 심취해
내 몸이 더럽다는 것도, 다른 아이들의 몸이 더럽다는 것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그제서야 나는 몸이 끈적끈적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하루만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사막도 아주 좋았지만, 역시 침대가 제일 편하다는 걸 알았다.
멋진 사막도 하루면 족한 것 같다ㅋ
8/16(목)
다시 시와사막에서 카이로로 10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이동 전에 마니또에게 시원한 물 한 병과 쪽지 한 장을 받았다.
마침 사막에서 물병을 잃어버려서 물을 못마시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마니또가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을 딱 선물해주었다.
이 센스 있는 마니또는 누구일까?
너무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뽑은 마니또에게 아직 아무것도 안해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동하는 길에 웨하스 과자를 2개 샀다.
하나는 내가 뽑은 마니또를 위해, 하나는 나를 뽑아준 마니또를 위해.
작은 행동 하나가 사람을 참 기쁘게 한다.
나도 얼른 내 마니또를 기쁘게해 줄 방안을 모색해 봐야겠다.
<잔나에 대해>
이름: 잔나
풀네임: Jannah(이름) mahamed(아버지 이름) gaber(할아버지 이름) abd el mohsen(증조 할아버지 이름) osman(고조 할아버지 이름) mohmed(고조 할아버지의 아버지 이름)
(똑똑하지 않으면 자기 이름 외우는 것도 정말 벅찰 듯 하다)
나이: 13살
생일: 12월 27일
가족: 엄마, 아빠(빅모), 여동생(자이다)
엄마와 아빠는 현재 별거(이혼?) 중이심. 아빠는 두번째 부인(에이스)과 동거 중이시고,
이번 여행에도 두번째 부인과 잔나와 자이다를 데리고 오심. 빅모 아저씨와 에이스 사이에는 자녀가 따로 없는 듯 함.
잔나와 자이다는 에이스와 사이가 매우 좋음. (그래서 나는 사실 에이스가 친엄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음)
잔나의 진짜 엄마는 카이로에 사신다고 함.
좋아하는 운동: 수영, 스쿠버다이빙-어드벤스드까지 땀.(오픈 워터는 다른 다이빙센터에서 땄고, 어드벤스드는 세븐 헤븐에서 땄음.)
(빅모는 다이브 마스터 자격증까지 있음-18살부터 세븐 헤븐에서 다이빙하고 거기서 일했다고 함)
좋아하는 것: 낙타 타기
좋아하는 가수: 저스틴 비버(이집트 노래는 안좋아함)
유명한 이집트 가수: asala(아살라), amr diab(암레 디압)
좋아하는 노래: 저스틴 비버 노래-sorry, cold water, despacito
좋아하는 음식: 막시-밥이 안에 든 롤 같은 것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오레오 아이스크림(나랑 똑같음ㅎㅎ)
좋아하는 과자: 칩(Layer)
장래희망: 의사
집: 기자 지구(카이로와 가까움. 1시간 거리)
종교: 이슬람(가족 모두 무슬림, 얼굴에 쓰는 것은 안해도 된다고 함-잔나도 히잡을 따로 쓰거나 하지 않음, 모스크는 가고 싶을 때 감-주기적으로 가지는 않음)
구사 가능한 언어: 아랍어, 영어, 프랑스어(프랑스어를 제일 좋아함. 길러주신 보모가 프랑스 사람이었음/엄마는 독일어도 하심)
가본 나라: 사우디 아라비아, 아랍 에미리트
핸드폰: 샤오미(삼성, 애플도 다 써봤지만 샤오미가 가장 좋다고함)
학교: -Primary, Prep, High school-이렇게 세단계임.
-5월부터 9월 말까지 여름 방학(5개월), 겨울 방학(1개월)-방학이 총 6개월임.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학교에 가고 금요일, 토요일에는 학교를 쉼.
-새벽 5시에 학교에 등교해서 오후 2시에 하교함.
-과목: 프랑스어, 아랍어, 종교(대부분 이슬람에 대해 배우고, 나머지 시간은 다른 종교에 대해 배움) 수학, 과학, 사회, 역사 등
-학교가 끝나면 집에서 1시간 정도 낮잠을 잔다고 함.
-저녁에는 swimming club에 감.
-친구들이랑 놀 때는 위험해서 부모님이랑 같이 외출해야 한다고 함.
잔나는 알고보니 수영 선수였다.
물에서 너무 잘 논다 했더니 역시나.
잔나는 국가대표가 될 만큼 유망한 선수인 것 같다(현재 국가대표인지도 모르겠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10월에 수영대회가 있어서 매일 수영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티비에서 이름이 ‘잔나’인 이집트 수영 선수를 본다면 그게 바로 내 친구일 것이다.
<잔나에게 들은 이집트>
-이집트 날씨: 여름에는 덥지만 겨울에는 딱 좋음-겨울에는 10~19도임, 긴팔입음
-간단한 아랍어: 왜헤트(1), 넨(2), 달레타(3), 아르바(4), 함사(5), 세타(6), 사바(7), 타마니안(8), 데사(9), 아샤라(10),
암레이(how are you?), 콰이어사(좋다-여성일 경우), 콰이어(좋다-남성일 경우), 얄라(와라), 따맘(오케이), 메쉬(오케이-따맘보다 더 많이 씀)
-이집트 여자들은 모두 태어나고 바로 다음날 귀를 뚫는다고 함.
-이집트에서는 엄지를 올린 후 엄지를 흔들면 ‘나쁘다’는 뜻이 됨.
-이집트 사람들은 키 작은 여자를 좋아한다고 함-귀엽기 때문(내가 키가 크고 싶다고 얘기하니 잔나가 내게 말해줌)
잔나에게 아랍어를 배우다가 매우 황당한 일이 있었다.
‘콰이어’와 ‘콰이어사’에 대해서 배우는데,
내가 나는 ‘콰이어사’를 쓰면 되냐고 했더니
잔나가 너는 남자아이니까 ‘콰이어’라고 말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할 말을 잊었다.
우리가 만난지 거의 일주일이 다되었는데, 잔나는 그동안 나를 남자 아이로 착각했던 것이다.
나는 얘기할까 말까 잠깐 망설이다가, 잔나에게 사실대로 내가 여자라는 것을 고백했다.
솔직히 나는 잔나가 너무 큰 충격을 받을까봐 더 걱정이 됐다.
그런데 다행히 잔나가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해주어서 우리는 다시 사이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오늘 ‘콰이어’와 ‘콰이어사’에 대해 배우지 않았다면,
헤어질 때까지 나는 잔나의 남자 친구일 뻔했다.
오늘이라도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다.
잔나가 내게 팔찌를 주었다.
팔찌에는 상형문자로 ‘조조’라고 쓰여있는데,
‘조조’는 잔나의 별명이다.
잔나에게는 똑같은 상형문자가 쓰여진 목걸이가 있어서
우리는 우정의 증표로 각자 팔찌와 목걸이를 차고 있기로 했다.
잔나가 올해 겨울이나 내년 봄 쯤에 한국에 놀러오기로 했다.
잔나가 오면 꼭 우리집에 초대해서 관광지 구경도 시켜주고, 맛있는 음식도 요리해주고 싶다.
8/17(금)
카이로에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national park로 이동했다.
버스를 연이어 20시간 넘게 탄 것이다.
요즘은 장시간 이동이 잦다.
볼거리들이 다 멀리멀리 따로따로 떨어져 있어서 그렇다.
나는 점점 버스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
버스 에어컨의 찬바람에 떨지 않는 것도, 몸을 구부려 새우잠을 자는 것도,
흔들리는 버스에서 균형을 잡고 일기를 쓰는 것도 이제는 능숙하다.
<버스에서 잘 자는 꿀팁>
-뒷 사람의 눈치가 보이더라도 꼭 좌석 등받이를 뒤로 하고 잔다.
(만약 옆사람이 좌석을 안눞힌다면, 머리를 옆사람 좌석에 기대고 자면 정말 편하다-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거다)
-복도쪽 자리보다는 창문쪽 자리가 머리를 기대고 자기에 훨신 편하다.
-목 베개를 꼭 하고 잔다.(지난번에 귀찮아서 그냥 잤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목이 무척 당겼다. 그러니 귀찮더라도 목베개를 하는 것을 추천한다)
-처음에는 별로 안추울 수 있지만, 계속 에어컨 바람을 쐬이다 보면 새벽에 추우니 가까운 곳에 걸칠 옷이나 침낭을 준비해둔다.
(당연히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좌석 위에서 에어컨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추운데도 덜덜 떨며 자지 말고, 바람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바꾸도록 한다)
나는 이번 장시간 버스 이동 경험을 통해 어디서나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생존력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배낭 메고 몇키로씩 걷지 않는다는 것에 정말 정말 감사하다.
만약 이 날씨에 걸었으면 쩌죽었을 뻔했다.
지금은 잠만 자고 일어나면 도착이니, 이 얼마나 편한가!
사실 나는 national park라고 해서, 원숭이나 뱀 같은 야생동물들과 풀 숲에서 잘 것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다행히도 그런 곳과는 전혀 상관 없는 아주 넓고 깨끗한 호텔이었다.
나는 우리가 이 호텔에서 잔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되었다.
나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이 사막 한가운데에 누가 이런 대형 리조트를 지었을지 궁금해졌다.
리조트가 지어지기 전에는 분명 허허벌판이었을텐데.
물도 없고, 음식도 없는 황무지에 호텔을 지어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은 분명 대단한 몽상가였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큰 꿈을 꿀 수 있었겠는가.
어쨌든 빅픽쳐를 아주 잘 그린 것 같다.
슬라이드까지 있는 대박인 수영장.
우리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호텔 뷔페였다.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너무 큰 감동을 받아 눈물이 나올뻔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아침 점심 저녁 간식까지 호텔에서 먹는다고 한다.
너무 말도 안되게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어서 하반하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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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은재의 성실함과 꼼꼼함과 풍부한 감수성에 웃음이 실실실 흘러 나온다...ㅋㅋㅋ. 한박자 늦어도 양질의 보고서를 잊지 않고 올리고 있구나, 세상에나 -!!!! 사막에서의 감탄과 행복감이 팍팍 전해져오네..모로코, 2019년 1월말 나의 여행 계획지이다. 아틀라스 산맥과 사하라가 있는 그곳. 아부다비를 거쳐 모로코 카사블랑카로 날아가 메르주가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리라 예정하고 있다. ^^ 앞의 보고서에서 호화로움을 감탄하고 즐기면서도 마음 불편해하고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네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그리고 은재는 어디서 이런 마인드가 생겼지? 금욕적인 마인드도 생래적인가? 천성?? ㅎㅎㅎ. 하고 웃었다.
"멋진 사막도 하루면 족한 것 같다ㅋ" --이대목에서 다시 빵 -!!!! ㅋㅋㅋㅋ. 은재 너, 영혼에 웃음의 공기방울이 바게트 빵의 공기구멍처럼 빵, 빵, 나 있는 것 같구나...푸 하 하. 발상이 지나가면서 슥 -웃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