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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남쪽은 어디든 일본에 줄 테니 나를 살려내라”[박종인의 땅의 歷史]
305. 조선 대표 건달 권력자, 선조 아들 임해군
경기도 남양주에는 조선 14대 국왕 선조의 맏아들 임해군 무덤이 있다. 혼이 저승으로 무사히 가도록 인도해주는 장명등은 무덤 아래 지붕과 몸체가 떨어져나간 채 팽개쳐져 있다. 임해군은 막내 순화군과 함께 백성에게 악명을 떨친 건달이었다. 폭력으로 모은 재화가 많아서 임진왜란 개전 초기 임해군이 살던 집은 난민이 떼로 침입해 불태웠다. 전쟁 기간에도 멈추지 않은 악행에 질린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켜 임해군과 순화군을 가토 기요마사 부대에 넘겨버렸다. 임해군은 전쟁 후에도 악행을 일삼다 유배당한 뒤 살해됐다. 부서진 장명등은 그 악행에 대한 흔적이다. /박종인 기자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6.15 03:00
* 유튜브 https://youtu.be/zIGP6VsqFrc 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롱당한 선조와 그 아들
임진왜란 소강상태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정유재란이 임박한 1597년 가을이었다. 장소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서울 동작진 포구였다. 서대문에 있는 모화관에서 명나라 총사령관 양호가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남대문을 나가버렸다. 만류하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말을 몬 양호가 동작진에 도착했다.
양호를 붙잡으라는 신하들 성화에 선조는 가마를 타고 서둘러 남대문을 나섰다. 급한 걸음으로 성문을 나서는 왕을 보면서 길 위에 한성 주민들이 몰려나와 통곡을 했다. “명나라로 달아나겠다”며 북쪽으로 도주했던 왕이었던지라 이번에도 또 백성을 버리고 도망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 순진한 백성은 “중국 장수를 따라 강가까지 갔다 온다”는 선조 말에 ‘서로 조아리며 감격하여 울지 않은 백성이 없었다.’ 신뢰를 잃은 지도자는 그렇게 초라했지만, 순진한 백성이 기댈 언덕은 그 지도자밖에 없었다.
둔지산(현 대통령 집무실 북쪽)을 넘어 동작진에서 선조가 양호를 만났다. 양호는 강 건너 대기 중인 1000여 명군 기마부대를 지휘해 대규모 군사 훈련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 명나라 사령관은 조선 국왕을 이리 책망했다. “왜 활 잘 쏘는 조선이 한 방에 일본에 무너졌는가.” 선조는 “천군(天軍) 위력이면 왜적쯤이야 굳이 평정할 것도 없겠다”고 공치사를 하며 겨우겨우 양호를 한성으로 복귀시켰다.(1597년 9월 12일 ‘선조실록’)
그런데 선조와 양호 대화 도중 뒤쪽에서 누군가가 말 한 마리를 거칠게 몰고 달려와 양호를 가로막았다. 왕과 명나라 장수 대화를 끊어버린 이 용감무쌍한 사내는 선조 맏아들 임해군이다. 연산군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건달 권력, 그래서 조선 백성이 붙잡아 일본군에 넘겨줘버린 폭력의 상징 임해군 이야기.
경기도 남양주에는 조선 14대 국왕 선조의 맏아들 임해군 무덤이 있다. 혼이 저승으로 무사히 가도록 인도해주는 장명등은 무덤 아래 지붕과 몸체가 떨어져나간 채 팽개쳐져 있다. /박종인 기자
[박종인의 땅의 歷史] 305. 조선 대표 건달 권력자, 선조 아들 임해군
건달로 자라난 왕자들
1583년 가을날 왕자를 가르치는 사부 하낙(河洛)이 사표를 내며 이리 말했다. “임해군(臨海君)이 역사서 공부를 거의 마쳐 가는데도 아직 그 줄거리(강령·綱領)조차 알지 못합니다. 제 죄이옵니다.”(1583년 음 8월 5일 ‘선조실록’) 열한 살짜리 다 큰 사내아이가 글 읽을 줄을 모른다는 말이었다.
임해군은 성질이 거칠고 게을러 학문에 힘을 쓰지 않고 종들이 제 마음대로 하도록 놔두어 폐단을 더욱 심하게 일으키곤 했다. 반면 동생 광해는 행동이 조심스럽고 학문에 부지런해 백성들이 마음으로 따랐다.(1592년 음 4월 14일 ‘선조수정실록’) ‘선조수정실록’은 인조 때 반(反)광해파인 서인이 편집한 책이니, 광해군과 임해군에 대한 이 평가는 객관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589년 선조 슬하 왕자들이 결혼을 하고 궁 밖에 집을 짓는데 저마다 남의 논밭을 빼앗아 땅을 넓혔다. 임해군만 아니라 여러 왕자들이 땅을 빼앗았고 뇌물을 대놓고 받았는데, 임해군은 연장자로서 가장 횡포해 조야가 근심스럽게 여겼다.(1589년 음 4월 1일 ‘선조수정실록’)
여러 왕자 가운데 여섯째 순화군도 마찬가지였다. 순화군은 ‘임해군이나 정원군 행패보다는 덜했다 하더라도 도성 백성이 그를 호환(虎患) 피하듯 하였다.’(1607년 음 3월 18일 ‘선조실록’) 여기 나오는 ‘정원군’은 훗날 인조가 된 능양군의 아버지며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다. 이 세 왕자는 실록 도처에 백성을 괴롭히고 사욕을 취한 대표적인 건달 권력자로 묘사돼 있다.
백성이 일본군에 넘긴 건달 왕자들
정부 내에서는 근심거리요 백성에게는 두려움과 공포였던 장남 임해군은 결국 세자가 되지 못했다. 1592년 음력 4월 28일, 전쟁 개전 직후 선조는 맏아들 대신 둘째 광해군을 세자로 선택했다. 그리고 임해군과 순화군에게 전국 각지로 가서 근왕병을 모집하라고 명했다. 세자 광해군은 국정을 대리해 국내에 머물라고 명했다.(1592년 음6월 1일 ‘선조수정실록’ 등) 본인은 명나라를 목표로 의주를 향해 떠났다.
근왕병 모집을 위해 함경도로 떠난 임해군과 순화군은 ‘좋은 말이나 보화를 보면 반드시 이를 빼앗았고’ ‘적이 바로 보이는데도 백성을 흩어지게 할 생각밖에 없었다.’(이호민, ‘오봉선생집’24, ‘정문(呈文)’, 정례부대당(呈禮部大堂)) 또 ‘사나운 종들을 부려서 민간을 노략하고 어지럽히는가 하면’ ‘수령들을 몹시 핍박해 인심을 크게 잃었다.’(민인백, ‘태천집’ 2, ‘용사일록(龍蛇日錄)’ 계사년 10월) 전시(戰時)를 분간 않는 만행 행각 속에 두 왕자가 회령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회령 사람들은 이들을 밧줄로 꽁꽁 묶은 뒤 성문을 열고 일본군에게 넘겨줘버렸다.(이호민, 앞 책)
반란을 주도한 회령 아전 국경인과 그 무리는 두 왕자를 객사 방 안에 꽁꽁 묶어서 물건처럼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혼자 말을 타고 입성해 이를 본 가토 기요마사가 “이들은 너희 국왕 친자(親子)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곤욕을 가하는가?”라고 놀랄 정도였다.(1592년 음7월 1일 ‘선조수정실록’: 이긍익, ‘연려실기술’ 15, ‘선조조고사본말’, 북도의 함락과 정문부의 수복)
기이한 북관대첩
석 달 뒤 함경도 북평사 정문부가 의병을 모집해 일본군과 반란군을 제압했다. 두 왕자 구출은 실패했지만, 함경도를 회복한 이 전투를 ‘북관대첩’이라고 한다. 숙종 때인 1709년 이를 기념하는 북관대첩비를 함경도 길주에 세웠다. 비석은 1905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도쿄 야스쿠니신사로 가져갔다가 2005년 반환됐다. 실물은 원위치인 함북 김책시(옛 길주)로 돌려줬고 경기도 의정부 정문부 묘와 서울 경복궁에 복제비가 서 있다. 전투를 이끈 정문부는 인조 때인 1624년 역모 혐의로 고문받다가 시종 “원통하다”고 하며 죽었다.(1624년 음11월 8일 ‘인조실록’)
임해군을 일본군에 넘긴 국경인(鞠景仁) 반란 토벌과 기요마사 부대 퇴치를 기록한 ‘북관대첩비’ 복제본. 경기도 의정부 정문부 묘에 있다. 실물은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가 반환받고 원 위치인 북한에 돌려줬다. 북관대첩을 지휘한 정문부는 인조 때 모함으로 고문사했다. /박종인 기자
“삼남을 주고 나를 살려라”
여러 경로를 통해 조선에 전달된 강화 협상 조건은 대체로 ‘대동강을 경계로 한 명과 일본의 조선 분할 통치’였다. 일본군 수중에 떨어진 임해군과 순화군은 종전 무렵까지 전쟁 수행에 큰 장애가 됐다.
협상을 담당한 사람은 명에서 파견된 심유경이었다. 1593년 음력 3월 15일 심유경이 고니시 부대가 주둔한 한성 용산(현 서울 원효로 부근)에서 회담을 가졌다. 심유경은 선상(船上)에서 뭍에 있는 고니시와 담판을 벌인 뒤 조선군 사령관 김명원에게 편지를 보냈다. ‘임해군이 사람을 시켜 이렇게 전했다. “우리를 돌아가게 해준다면 한강 남쪽 땅은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일본에 다 줄 것이다(倘得歸國 漢江以南 不拘何地 任意與之·당득귀국 한강이남 불구하지 임의여지).”'(류성룡, ‘징비록’, 김시덕 역, 아카넷, 2013, p649) 영토를 줘서라도 자기를 살려내라는 것이다.
심유경은 명-일본 사이에서 문서 조작을 해가며 협상을 이끌던 모사꾼이었으니, 이 말의 신빙성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바로 며칠 전 임해군은 평안도 안변에서 “지금 휴전이 안 이루어지면 우리는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게 된다”며 조선 정부 관리에게 경비 조달을 요구한 적이 있으니(1593년 음3월 4일 ‘선조실록’), 땅과 자기 목숨을 바꿔달라는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전후 막장으로 치달은 악행
전쟁이 끝났다. 정유재란이 터지기 전 가까스로 풀려나 목숨을 건진 임해군 행태는 막장으로 치달았다. 1600년 임해군은 인질 억류 시절 자기를 도와줬던 홍산군 이득의 노비 4명을 강탈해갔다. 1603년에는 특진관 유희서의 첩과 간통한 뒤 유희서를 청부 살해했다. 이듬해 수사 결과 임해군이 진범으로 밝혀지자 선조는 수사반장인 포도대장 변양걸을 고문하라 명했다.(1604년 음1월 1일 ‘선조수정실록’) 남의 남편을 죽이고 그 아내를 하인을 시켜 끌고온 뒤 그 하인에게 짝을 지어 입을 틀어막고(1603년 음3월 9일 ‘선조실록’) 민가에 들어가 사람을 구타한 뒤 노비를 빼앗는가 하면 기생을 몇 년씩 불법으로 데리고 살며 사람 죽이기를 초개(草芥)와 같이 하였다.(1606년 8월 23일 ‘선조실록’) 동생 순화군은 의인왕후 상중에 빈전 뒤에서 궁녀를 강간하고(1600년 음7월 16일 ‘선조실록’) 술을 가지고 온 아낙을 옷을 벗겨 구타하고 눈먼 여자 생니를 뽑고 장석을시라는 여자 생니 9개를 쇠망치로 부수는 변태 행각을 벌였다.(1601년 음2월 23일 ‘선조실록’)
두 아들을 비호하던 선조는 결국 순화군의 군호를 삭제하고 유배 보내는 데 동의했다. 순화군은 1607년 음력 3월 18일 가택 연금 상황에서 죽었다.
임해군은 선조가 죽자마자 동생 광해군 정권에 의해 역모 혐의를 쓰고 1608년 전남 진도를 거쳐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 됐다가 살해됐다. 유배소를 지키는 군관 이정표가 윽박질러 독을 먹게 했으나 거부하다가 목이 졸려 죽었다.(1609년 음4월 29일 ‘광해군일기’)
건달에 걸맞은 무덤 풍경
경기도 남양주에는 그 임해군 무덤이 있다. 자식 없이 죽은 탓에 입적시켜준 양자 후손들이 무덤에 비석을 세워놓았다. 하지만 혼이 저승으로 무사히 가도록 인도해주는 장명등은 무덤 아래 지붕과 몸체가 떨어져나간 채 팽개쳐져 있다. 419년 전 실록 사관은 이렇게 평했다. “백성에 의해 포박돼 적에게 보내졌으니 극도로 사무친 원망이 아니면 어찌 이렇게 하였겠는가.”(1603년 음8월 6일 ‘선조실록’)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임해군 묘. 후손이 묘를 정비해놓았다. /박종인 기자
박종인 선임기자
기억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역사가 됩니다. 땅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그게 역삽니다 역사.
Samuel Sang Han
2022.06.15 06:39:19
문재인과 선조... 묘하게 겹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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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의
2022.06.15 06:29:00
임금이 잘한거 한개도 없지. 밑에 참모들이 둘로 나뉘어 정파싸움하기 바빳고 지덜 인맥을 조정에 더 앉히려고 민생이나 국가의 안녕은 나몰라라 했으니까.... 지금도 별 차이 없지.... 십만양병설을 중국이 싫어한다고 뭉게다 저런 꼴 당한 거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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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상
2022.06.15 06:55:27
실기를 읽는 내내 혹시 소서행장이나 가등청정이 조선조정에게 무슨 정치적인 압박을 가하고 그것을 선조가 수행한 일이 있는지 없는지를 유념하며 살폈다. 없다. 순화군임화군이 백성을 개돼지로 알고 분탕질을 치고 돌아다녔어도 주적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 주고 볼품은 없어도 엄연한 자기 나라를 배신 했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다. 저 왜군이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아서 없는지, 요구를 했는데도 선조 임금님께서 단호하게 거절을 해서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임진왜란 그 극도의 혼란중에도 그나마 내통이나 굴종은 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지금은 21세기다. 나라는 자유대한민국이다. 그 나라에서 주적 호통 한 마디에 집권여당이는 무리들이 일제히 나서서 그 이름도 찬란 지극한 '김여정 하명법'을 발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꼬라지를 후세 사서에는 뭐라고 기술할지 궁금하다. 선조치하 조정은 완전 개판이었다 그러나 근현대사 마지막 부분인 문재인정부만큼은 아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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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서
2022.06.15 09:12:35
지당하신 얘기네요
김순철
2022.06.15 07:16:13
역대최악의 선조와,역대최악의 문재인은 교과서에 실어서 다시는이땅에 문재인같은 저질이 지도자가되지않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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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수
2022.06.15 07:38:25
조선 저건 나라도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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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연
2022.06.15 08:10:03
OO들이 나라를 통치하다가 결국은 나라를 왜놈에게 팔아먹었지, 부관참시해야할 놈들
신재삼
2022.06.15 08:10:28
큰 문제는 이러한 역사를 지금까지 왜 학교에 안 가르쳐 는지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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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열
2022.06.15 06:56:24
이런 이씨 정권에 머리 조아리며 어쩌구 국뽕에 빠져있는 놈들 보면 한심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홍경래 난 당시 정주성을 함락후 그 백성 전부를 목을 베서 평양에서 정주까지 길가에 말뚝을 박아 다 걸었다'' 그 잔인함이 이씨정권의 본질이다. 민자영이 이명복이가 나라 팔아 처먹고 구국의 영웅소리는 듣는 똥한민국 역사관아닌가? 매국노가 불우한 국왕이 돠다니 역시 똥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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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
2022.06.15 07:55:24
자기도 모르게 누구들을 연상케 하는 매력있는 기사 잘 보았습니다. 현대판 선조의 사저앞이 엄청 시끄러운가 봅니다. 하졸들이 맞불을 놓고 있다니 진정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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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2022.06.15 07:22:05
역사를 교훈삼아 국력과 국방력과 애국충정심을 길러 대한민국을 지키고 발전 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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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린
2022.06.15 08:24:09
어떤 가치관도 내 국가와 국민을 위하지 않는 것은 반역이고 매국이다. 다시는 선조뿐 아니라, 문재인과 주사파 일당 같은 자들이 권력을 손에 넣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진보 보수를 떠나서 국가 중심의 바른 신념으로 국민이 깨어야 한다. 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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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2022.06.15 08:05:33
선조 보다 못한 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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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2022.06.15 10:41:46
문해군. 文害君
윤형준
2022.06.15 10:28:12
세종의 아들 문종은 나름 국방을 강화했죠.
김재민
2022.06.15 08:55:28
문조
변희석
2022.06.15 07:13:26
조선. 역대왕. 모두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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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룡
2022.06.15 08:52:45
선조 때 조정 관리들은 사리사욕과 당파 싸움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장관들과 민주당 의원들 보다는 덜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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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남민
2022.06.15 07:58:44
'전후 막장으로 치달은 악행''임해군 행태는 막장으로 치달았다'(?) '힘차고 빠르게 나아가다'는 '치닫다'이다. ‘치닫다’의 의미로 ‘치달다’를 쓰는 경우가 있으나 ‘치닫다’만 표준어로 삼는다. 즉 '치달은''치달았다'가 아니라 '치닫은 악행''막장으로 치닫았다'. <우리말샘>치달다 2.[동사][북한어]높이 세게 달다. <표준국어대사전>치닫다 2.[동사]힘차고 빠르게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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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래
2022.06.15 08:17:54
생각하기 조차도 싫은 선조와 인조, 뺏지 꿰차고 자기 배떼지만 불리는 흡혈귀 암귀신 같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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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2022.06.15 09:06:58
선조같은 걸 임금이라고 한 백성이 불쌍하고 문재인을 대통령이라 믿은 국민이 한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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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경
2022.06.15 09:13:55
조선이라는 나라는 지옥 그 자체였다. 고대 그리스, 로마도 있었던 변호사 제도도 없어서 갑오경장 전까지 원님 재판이나 하던 나라다. 그러니 왕족이나 양반이 치면 맞고 죽이면 죽는 그런 나라였어. 공의가 땅에 떨어져 있는 부패한 나라가 500년을 버틴것도 어찌보면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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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정
2022.06.15 10:19:32
이게 조선이다. 문정권의 적폐청산이니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 당쟁이나 사화의 악습이 이어진 것이다. 정의구현은 무슨 얼어죽을, 오로지 상대를 죽이고 내 편이 부귀영화를 지속토록하는 방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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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종
2022.06.15 08:20:38
이씨조선의 부관참시 대상에 고종에 더해 선조를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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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연
2022.06.15 10:56:29
이 땅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진짜 길이길이 숭배해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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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철
2022.06.15 09:29:33
어떤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는 임금인가를 제대로 알려면 국난중에 임금의 처신을 보면 알 수 있다. 국가와 국민을 버리고 자신만이 살겠다고 도망치는 임금이 있는가 하면 백성과 함께 살고 백성과 함께 죽겠다는 어진 임금도 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런 지도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과연 우리나라 역사에 이런 지도자가 있었던가?? 그리고 앞으로 이런 지도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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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희
2022.06.15 10:31:22
임해군=문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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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국
2022.06.15 09:42:42
그때나 지금이나 어설픈 리더 한번 잘못 만나면 죽어나는건 조조군사라 했듯이 춥고 배고프고 불쌍해지는건 서민들뿐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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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출
2022.06.15 09:31:14
조선이 망함으로써 노예해방이 된 것이다. 그게 누구더라? 토착왜구 친일파로 매도하는 좌파 자칭 진보세력이 그러고도 인민을 위한다고 사기질도 적당히 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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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언
2022.06.15 09:53:39
평생 조선같은 나라에서 같은 나라 백성을 종부리며 살길 바라는 족속들
조정래
2022.06.15 09:29:57
나라가 이러니....조선정벌은 딱 한명의 왜군이 부산으로 출발하여 조선 도착전에 자기들 끼리 싸워서 조선은 일본에 넘어 온다는 우스개가 돌았던 참담한 지도자 시절이였다고 본다. 친중에 굽신거리던 조선 왕이나 문재인씨나, 나라 지도자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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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2022.06.15 10:04:02
조선 역사는 전부 다시 써야한다. 조선의 부끄러운 부분은 전부 덮어놓고 자화자찬만 일삼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 가공된 드라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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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원
2022.06.15 09:24:26
역사를 똑바로 알아야 돼. 조선은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후진적이고 탄압적인 왕조였다. 신라 고려로 이어지며 꽃피던 민조키상이 조선에서 와해되고 중국모방과 사대로 완전히 기울었지. 백성 착취 기술만 고도로 발달했고 지배계층 머리속에는 쓸데없는 먹물만 그득했지. 그 폐습이 아직도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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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2022.06.15 10:30:34
선조 또는 고종의 환생이 문재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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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선
2022.06.15 09:53:22
더듬어만진강간당 쓰레기들이 임해군같은 놈들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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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언
2022.06.15 09:52:04
대한민국국민이 이런 조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돈이며 군함이며 도로에 까지 죄다 조선인 이름을 갖다 붙이고 심지어는 다수의 정치꾼들이 중국에 조아리는 조선양반같은 짓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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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준
2022.06.15 10:18:32
얼핏 책을 넘겨봐도 엄청난 자료 조사와 연구가 수북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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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섭
2022.06.15 09:32:36
조선..최악의 군주 중 ..하나..선조.. 자식들도.. 지랑..똑 같은 인간들을.. 총명한 광해군 제외하고.. 선조는 살기도 오래 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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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수
2022.06.15 11:44:14
역사란 부끄러울 것도 자랑스러울 것도 없는 이미 지나간 옛 일이다. 문제는 역사를 왜곡하고 국민들을 선동하여 정권 탈취에 이용해 온 불순분자들이 나쁘다. 문재인 등은 일본이 조선을 청나라로부터 독립시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독립문 앞에서 반일의 상징인 3.1절 행사를 해왔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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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연
2022.06.15 11:19:29
중이 망친 고려, 양반이 망친 조선, 좌파 이념가가 망치고 있는 한국. 좀 배웠단 것들이 오히려 나라를 분란에 빠뜨리고 사리사욕에 몰두한다. 오히려 단순무식하지만 통솔력이 있었고 백성의 실정을 잘 알아서 실용적이었던 일본 사무라이들이 백배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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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현
2022.06.15 10:27:36
작금의 시대에 아주 귀감이 되는 역사이다.역사는 결국 진실을 말할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현세 정치인들도 고민을 좀 해봐야 할것이다.백성을 위한 민초의 뜻을 거스리는 자는 결국 역사의 죄인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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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문
2022.06.15 11:11:02
조선 백성 40%를 동족노비로 삼은 흡혈귀 치욕적인 조선 왕릉 싹 없애고 서민을 위해 아파트 공급하고 공원 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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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열
2022.06.15 11:55:53
이승만대통령 덕분에 자유민주주의의 나라가 되고 박정희대통령덕분에 산업 근대화에 성공한 대한민국을 보면 지도자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수있다. 그런 같은 국민이라도 문재인같은 사악한 전체주의 지도자에 의해 나락으로 빠졌다가 간신히 살아돌아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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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택
2022.06.15 12:38:02
잘 봤습니다.조선의 숨겨진 역사를 밝혀주는 기사입니다.박종인 기자의 명쾌하고 해박한 설명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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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2022.06.15 12:33:19
다시는 이 한반도 아름다운 땅에 선조와 그 손자 인조 그리고 매국의 상징 고종과 정신박약아 순종과 그 어미 민비같은 자들이 통치자가 될 일은 없겠지만(민주공화국이니까), 文가와 같이 국민 하급 수준에도 미달하는 자와 그 푼수 마누라 같은 것들이 나라를 분탕질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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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훈
2022.06.15 10:23:42
혹시 본문 중 '평안도 안변'은 '함경도 안변(安邊)'의 오기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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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준
2022.06.15 10:12:50
그러나 역시 비판적 관점에서 읽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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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준
2022.06.15 10:10:08
저 박 선생님의 <땅의 역사> 제4권 "진실과 비밀"을 구입했습니다. 차근차근 읽겠습니다. 이걸 제일 먼저 읽어야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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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숙
2022.06.15 12:54:05
어디 이것뿐이랴. 일제시대 직전, 조선왕실이 나라 내놓은 조건으로 <기존 조선왕실이 누리던 혜택은 그대로 보존해달라> 그랬음. 헬조선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나. 아직도 정권 권력 잡으면 장땡이라는 거지들때문에 맨날 정권 바뀌어봤자 쳇바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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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화
2022.06.15 12:48:33
조선 27대 왕중 가장 무능력하고 왕노릇 못 이가 바로 선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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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범
2022.06.15 12:32:44
사대주의에 물든 이씨조선을 그래도 선조랍시고 지금도 떠 받들고 있다, 그 들이 이 땅에서 한것이 무엇일까, 차라리 일지매, 임꺽정, 홍경래를 떠 받드는것이 국민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이땅위에 살면서 정치꾼이라면서 으쓱이고 갑질떠는것들은 모가지를 짜르던가, 정은이처럼 고사포로 쏴 버려야돼.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입바름 뒤에 저것들의 뒷주머니니 챙기는 벌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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