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 치과
김상영
영화 ‘명량’에 끌려 드라마 ‘징비록’을 보게 되었다.
내려받은 드라마를 심심풀이 땅콩처럼 한꺼번에 보다 보면 심드렁해질 때가 있기 마련이다. 화면 따로 생각 따로는 그럴 때인데, 분장한 모습들은 사실적이나 이빨은 하나같이 가지런하다. 틀니마저 없었을 옛날이었을진대, 임금인들 안 빠지고 백성인들 온전했을 손가. 예나 지금이나 고집불통 군주가 있기 마련인가 보다. 무능한 임금 선조가 이빨마저 썩었다면 볼썽사나웠을 것이며, 이빨 빠진 충무공이었다면 영구도 배꼽을 잡을 일이다. 드라마에서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뻐드렁니로 비하하였다면 우리 신하도 치아 한두 개쯤 빼서 형평을 맞출 일이다.
연세에 이르면 잇몸은 내려앉고, 이빨은 닳기 마련이다.
치 떨리는 병원이라 안 갔으면 좀 좋으랴 만 아내나 나는 연신 들락거리며 산다. 남쪽 소도시에서 시골로 귀향하자 적응할 게 많았다. 이발소를 정하고, 먹을 물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치과를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이빨 사이에 험난 곳을 메워 붙인 곳이 있다. 부위가 밋밋한 탓인지 잊을 만하면 딸가닥 떨어져서 애를 먹인다.
“여보, 치과 갔다 올게.”
“또 떨어졌나?”
떨어진 금니조각을 신주 모시듯 휴지에 싸들고 읍내 치과를 향한다. 땜질하려고 대구의 큰 병원까지 갈 수는 없다. 치과마다 주의를 환기한다.
“한번 떨어진 건 또 떨어질 수 있습니다. 다음번엔 다시 해야 하니데이.”
엉기 난 나는, 떨어질 때마다 서너 곳 읍내 치과를 골고루 돌았다. 중복되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마취 당하고 신경 끊기고 갈고 씌우는 과정에 치가 떨리는 것이다. 그게 싫어서 지만 이 병원 저 병원 장돌뱅이처럼 도는 건 도리가 아닐 것이며, 들키면 낯 뜨거운 짓이다.
그러나 아뿔싸!
생각이나 각오만으로 될 일이 따로 있지그래, 이빨은 또 떨어졌으며, 중복은 피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구면인 샘은 내기 바둑 초읽기처럼 압박한다.
“참말로 마지막이시더.”
눕혀진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불안하다. 속수무책으로 무장 해제된 내게 강도를 높힌다. 주눅이 든 나는 두 손을 모은 채 공손히 대답해 올렸다.
“예~ 미안합니더.”
떨어져 씹힌 탓일까, 까끌까끌한 부위가 혀끝에 걸린 채 다시 붙여졌다.
“샘요, 오돌토돌한 요 부분을 손 봐 줄 순 없습니까?”
“안 됩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은 군대만의 구호에 불과하였다.
세월에 장사 있을까, 어느 날 이빨은 또 떨어졌고, 나는 망연자실하였다. 아내는 대구에 갈 일정을 앞당겼으며, 금니 싼 휴지를 소중히 챙겨 함께 나섰다. 세시봉을 회상하는 방송에서 윤형주가 조영남을 보며 한 말이 있다. 자식과 손주 여럿을 거느린 조강지처를 아침마다 포옹할 수 있는 행복을 아느냐고. 그렇듯 백년해로를 바라는 부부라면 서로를 챙겨 수리해 가며 살아야 마땅하다.
“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읍이나 대구나 같은 말씀들이다. 떨어져도 모르겠다는 면죄부처럼 들린다.
“샘요, 깔깔한 요 부분을 손 좀봐 주십시오.”
“예, 어디 봅시다.”
사르르륵~ 사포질 몇 번에 밋밋해졌다.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읍내 치과 예쁜 샘은 왜 안 된다 했을까.
아래 잇몸이 솟아 오른 적이 있었다.
벌어진 칫솔모에 찔렸을까, 좀체 가라앉지 않는다. 대구에 또 갔다. 독사진 한판을 찍고, 마취를 당한다.
“따끔합니다.”
읍내 치과 주사를 떠올리며 일순 긴장하였지만, 아프지 않다.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윽고 올 것이 왔다.
“으드득~ 드득”
공사판이 따로 없다. 우뢰 같은 소리다. 썩어 고름 찬 밑 둥을 긁개로 벅벅 긁어서 매끈하게 하는 것일 게다. 다시 아프면 빼야하고, 없는 채로 살아야 한단다. 요상한 느낌이 가끔 있지만, 아직까지 멀쩡하니 홍복이다. 고맙기 그지없다.
시골집을 지은 지 제법 되었다.
인터넷으로 맺은 충청도 송 목수네와는 이날 이때껏 인연을 이어온다. 솜씨 좋고, 성실한 알음알음으로 고향 부근에 여러 채의 집을 짓기도 하였다. 오가는 길에 가끔 들려서 낡은 곳을 손봐주기도 한다. 우리는 그를 주치 목수라 칭한다. 주치란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공사의 성패가 목수의 솜씨에 달렸듯이 이빨 또한 공사의 범주에 속한다면, 샘의 솜씨가 좌지우지 할 것이다. 작가 유안진은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를 원했다. 치 떨지 않게 해주는 이웃 또한 그런 친구에 못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대구의 치과를 주치의로 정하였다. 내 맘이니까.
첫댓글 주치의에 주치 목수님에 참 좋습니다 회장님.
오실 땐 단골손님 안 오실 땐 남이랍니다. 주치 참 좋습니다.
저도 몇달째 인플란트 신경치료해서 때우기 등등 보수공사 중입니다
이제 무서움도 없고 백세시대에 잘먹고살려면 견뎌야지 하고눈딱감고
애도 넷이나 낳았는데 이정도야 하고 뒤로 휙 눕혀져있지요
에제는 하도몸이 안좋아서 왜이러나싶었는데 피해갈수없는지 갱년기
증세가 왔나봐요 . 슬프기도하면서 드는생각이 운전면허 갱신처럼 나도 갱신되나 싶어지데요 갱신이라도해서
남은46년 잘 살았으면 하는생각도 들었어요 나도 주치의 있어요
티브이 볼때 그런건그릅회장님들 전유물인줄 알았는데 ㅋㅋㅋㅋㅋ
저녁 손님 준비에 짬이 없으실 터인데, 장문의 답글을 주셨네요. 늘 좋아요.
회장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구수 하면서도 맛깔 스러워요.
우리 마을 광암상회 할매 성함이 계순입니다. 성함이 같아서 저는 이웃 같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
안평에 광바우란 마을이 있다면서요. 혹 그마을에 사시나 보죠?
넓을 廣 바위 巖입니다. 지반이 온통 바위라서 광암이랍니다. 제가 그 광바우에 삽니다요.
광바우님의 카페활약상에 우리 카페가 더 활기를 찾는 것 산습니다. 고맙습니다.
활력 넘치는 희망 의성!
활기찬 의성 시낭송회!
시를 낭송하기 위한 수고와 긴장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또한 낭송회와 문협의 유대를 돈독히 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카페를 찾습니다. 화면 배경 색상이 따뜻해서 좋습니다.
이 글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조회 수 897회를 돌파하고 있으니 희한한 일이다. 컴이 더위 먹은 것 같다.
손용주 댓글때문아닐까요 ㅋㅋㅋ ㅎㅎㅎ 농담입니다
회장님 글솜씨는 전국방송 탄 글솜씨잖아요
재미있는 좋은글 많이부탁해요
저는 읽는데는 자신있어요 ~~♥
그래도 와 이케요? 1,600회가 넘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