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치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님 같으신 어머니가 몇천 분이요 몇 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님께서도 이 땅에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 분이시고 저는 어머님보다도 더 크신 어머님을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콩밥을 먹는다고 끼니때마다 눈물겨워하지도 마십시오. 어머님이 마당에서 절구에 메주를 찧으실 때면 그 곁에서 한 주먹씩 주워 먹고 배탈이 나던, 그렇게도 삶은 콩을 좋아하던 제가 아닙니까? 한 알만 마루 위에 떨어지면 흘금흘금 쳐다보고 다른 사람이 먹을세라 주워 먹기 한 버릇이 되었습니다.
어머님!
오늘 아침에는 목사님한테 사식이 들어왔는데 첫술을 뜨다가 목이 메어 넘기지를 못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외다. 아내는 태중에 놀라서 병들어 눕고 열두 살 먹은 어린 딸이 아침마다 옥문 밖으로 쌀을 날라다가 지어드리는 밥이라 합니다. 저도 돌아앉으며 남모르게 소매를 적셨습니다.
어머님! 며칠 전에는 생후 처음으로 감방 속에서 죽는 사람의 임종을 같이하였습니다. 돌아간 사람은 먼 시골의 무슨 교를 믿는 노인이었는데 경찰서에서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되어 나와서 이곳에 온 뒤에도 밤이면 몹시 앓았습니다. 병감은 만원이라고 옮겨 주지도 않고 쇠잔한 몸에 그 독은 나날이 뼈에 사무처 어제는 아침부터 신음하는 소리가 더 높았습니다.
밤은 깊어 악박골 약물터에서 단소 부는 소리도 그쳤을 때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가쁜 숨을 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어나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가쁜 숨을 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어나 그의 머리 말을 에워싸고 앉아서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으로 덮어 오는 그의 얼굴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희미한 눈초리로 오촉 밖에 안 되는 전등을 멀거니 쳐다보면서 무슨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추억의 날개를 펴서 기구한 일생을 더듬는 듯 합니다. 그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는 것을 본 저는 제 무릎을 베개 잡아 그의 머리를 괴었더니 그는 떨리는 손을 더듬더듬하여 제 손을 찾아 쥐더이다. 금세 운명할 노인의 손아귀 힘이 어쩌면 그다지도 굳셀까요? 전기나 통한 듯이 뜨거울까요?
어머님!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몸을 벌떡 솟치더니 여러분!. 하고 큰 목소리로 무거이 입을 열었습니다. 찢어질 듯이 긴장된 얼굴의 힘줄과 표정이 그날 수천 명 교도 앞에서 연설을 할 때의 그 목소리가 이와 같이 우렁찼을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침내 그의 연설을 듣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하고는 뒤미쳐 몸에 가래가 끓어오르기 때문에ᆢ.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 같아서 어느 한 분이 유언 할 것이 없느냐 물으매 그는 조용히 머리를 흔들어 보이나 그래도 흐려가는 눈은 꼭 무엇을 애원하는 듯합니다마는 그의 마지막 소청을 들어줄 그 무엇이나 우리가 가졌겠습니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그 날에 여럿이 떼 지어 부르던 노래를 일제히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첫 절도 다 부르기 전에 설움이 북받쳐서 그와 같은 신도인 상투 달린 사람은 목을 놓고 울더이다.
어머님! 그가 애원하던 것은 그 노래인 것이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최후의 일각의 원혼을 위로하기에는 가슴 한복판을 울리는 노래밖에 없었습니다. 후렴이 끝나자 그는 한 덩이 시뻘건 선지피를 제 옷자락에 토하고는 영영 숨이 끊어지고 말더이다. 그러나 야릇한 미소를 띤 그의 영혼은 우리가 부른 노래에 고이고이 쌓이고 받들러 쇠창살을 새어서 새벽하늘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저는 감지 못한 그의 두눈을 쓰다듬어 내리고 날이 밝도록 그의 머리를 제 무릎에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어머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새록새록 아프고 쓰라렸던 지난날의 모든 일을 큰 모험 삼아 몰래몰래 적어두는 이 글월에 어찌 다 시원스러이 사뢰올 수 있사오리까? 이제야 겨우 가시밭을 밟기 시작한 저로서 어느새부터 이만 고생을 호소할 것이오리까?
오늘은 아침부터 장대같이 쏟아지는 비에 더위가 씻겨 내리고 높은 담 안에 시원한 바람이 휘돕니다. 병든 누에같이 늘어졌던 감방 속의 여러 사람도 하나 둘 생기가 나서 목침돌림 이야기에 꽃이 핍니다.
어머님! 며칠 동안이나 비밀히 적은 이 글월을 들키지 않고 내보낼 궁리를 하는 동안에 비는 어느덧 멈추고 날은 오늘도 저물어갑니다. 구름 걷힌 하늘을 우러러 어머님의 건강을 비 올 때, 비 뒤의 신록은 담 밖에 더욱 아름답사 온 듯 먼촌의 개구리 소리만 철창에 들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