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과 우리말 / 서울 서대문구의 가재울 등
가재울과 갖
‘갖’에서 나온 말 친척말 무척 많아
“가재가 눈이 멀었나요?”
경기도 안성시에서 용인시의 원삼면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가좌가 어디쯤이냐고 물었다.
“가재울말유? 한창 가야 해유. 안내 드릴께유.”
버스가 20분쯤 달렸다.
“저 동네가 가재울이유. 버스가 스거들랑 내리시우.”
내려서 마을 앞 표석을 보았다. 가율리(加栗里).
동네 사람 말을 들었다. 가율리는 가재울, 밤골, 분토(분톳골)의 세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이 가재울이 40여 호로 가장 크다고 했다.
이곳의 가율리(加栗里)는 본래 안성군 율동면의 지역이었다. 일제 강점기인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여러 동네를 합하여 가율리라 했는데, 이 이름은 가좌동(가재울)과 율동(밤골)을 병합하여 가좌와 율동의 이름을 따서 가율리라 하여 보개면에 편입된 곳이다.
한 노인에게 가재가 여기 많이 사느냐고 물렀다.
“가재가 눈이 멀었나요?”
마을 앞의 작은 내를 찾았다. 논에 물을 대는 작은 수로 하나가 논 가장 자리를 지날 뿐이었는데, 가재가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다른 쪽 개울을 찾아가 한 촌로에게 물었다.
“가재라뇨? 무슨누무 가재가 눈이 멀었다고 이런 개흙바닥 개굴창에서 산디여?”
가재와는 관계 없음에도
땅이름들을 보면 무엇이 많다고 해서 ‘□□골’ ‘□□울’ ‘□□말’ 식으로 붙은 것이 많다. 돌이 많다고 돌골, 모래가 많다고 모랫골, 갈나무가 많다고 갈골, 밤나무가 많다고 밤골, 뱀이 많다고 뱀골....
그런데, 이러한 땅이름들 중에는 전혀 그와는 관계가 없는 곳도 무척 많다.
가잿골, 가재울과 같이 ‘가재’가 들어간 땅이름도 그 한 예인데, 이런 곳을 실지로 답사해 보면 정말로 이를 실감하게 된다. 대충 보건대, 한 시-군에 보통 10개 이상씩은 가재울, 가잿골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로 가재가 그렇게 많아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일까?
가재는 주로 어디에서 살까? 사전 등에서는 주로 하천 상류의 돌 밑에 산다고 했다.
<백과 사전에 나온 ‘가재’에 대한 내용>
‘가재石蟹(Cambaroides similis) : 가재과의 게. 민물에서 산다. ---개울 상류의 돌 밑에 산다.’
‘가재(동물) : 가재과의 민물 게. 게와 새우의 중간 형상. 개울 상류의 돌 밑에 산다.’
<행정지명으로 가재 이름이 붙은 곳>
경기 화성시 팔탄면의 가재리(佳才里)
경기 용인시 원삼면의 가재월리(加在月里)
인천시 서구의 가좌동(佳佐洞)
어렸을 때 냇가에서 물 밑의 돌을 들춰 가며 가재를 잡던 생각이 난다. 가재는 아무 데나 있지 않았다. 대개는 물이 그리 많지 않은 작은 골짜기 냇바닥 돌 틈에 숨어 살고 있었다. 그러기에 가재를 잡으려면 돌이 많은 좁은 냇가로 가지, 모래나 개흙이 깔린 넓은 시내로 가지 않는다.
가잿골 마을이 가재가 많아 붙은 것이라면, 이런 마을은 산골 돌 많은 냇가에 있어야 옳다. 그런데, 가잿골 분포 상태를 지역적으로 보면 가잿골은 그런 냇가에는 별로 없었다.
서울 서대문구의 가재울
서울의 가좌동(서울의 북가좌동․남가좌동)에도 가재울이 있는데, ‘가재울’을 ‘가재’와 관련지어 설명해 놓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 내용>(한국지명총람)
‘가재울加佐里’(이계말)(마을) : 경티말 너머에 있는 마을. 가재가 있고 산이 둘러 쌌으므로 ‘가재울’ 또는 한자명으로 가좌리加佐里라고 하며 ‘이계말’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금 서울 사람들이 ‘모래내’라고 부르는 이곳 근처의 동네가 과연 ‘가재’ 때문에 ‘가재울’ 이름이 붙었을까?
산 속도 아니고 내(개)의 상류도 아니다. 북한산쪽에서 홍제동을 거쳐 흘러오는 모래내(홍제천)가 한강으로 흘러드는 곳이니, 내의 위치로 보아서는 도리어 하류인데 가재 서식지와는 먼 것 같다. 그리고, 가재울이란 이름이 가재 때문이라면 ‘모래내’란 이름과도 거리가 멀어진다. 모래가 많은 내라고 해서 ‘모래내’라고 했다는데, 모래 많은 하류에 가재가 그리 많이 살 리도 없다.
"이 너머 개울에 가재가 많았대지, 아마."
가재울 마을 이름의 내력을 물으면 대개 비슷한 대답이다. 그러나, 대개 '가재울'과 가재는 별 관계가 없다. ‘가재울’은 주로 ‘가장자리’의 뜻인 '갓(갖)'에서 나온 것인데, 이런 이름은 수도권만 해도 여러 곳이다.
갖+(의)+울 >갖애울 >가재울
그렇다면 서울 서대문구 가좌동의 본래 이름 ‘가재울’은 어떻게 해서 나왔을까? 북가좌동 일대는 옛날 고양군 연희면 지역으로, 그 남쪽에는 잔들(잔다리)이라는 벌이 펼쳐져 있다. 언덕쪽에 있는 이 마을이 벌 가장자리에 있어 가재울(갖의울)이란 이름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 벌 남쪽에 궁말(궁동.宮洞)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궁동근린공원이 있다. 남쪽의 홍제천(弘濟川) 건너쪽이 동교동-서교동이고 다시 그 남쪽이 노고산과 와우산이다. 즉 홍제천이 모래내인데, 서울 사람들은 지금도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전통 깊은 모래내시장도 있다. 이 모래내 물줄기가 한강으로 합류입하는 부분에 사천교(沙川橋)가 있다. 여기서의 사천(沙川)은 ‘모래내’의 의역 표기이다.
모래내의 중-상류, 지금의 서대문구청 부근에는 응달말(음월리.陰月里)이 있었다. 그 남쪽이 궁말(궁뜰)이고, 여기서 동교동쪽으로 넘는 고개가 기레미고개이다. 기레미고개는 질러 넘는 고개, 즉 지레미고개(지름이고개)가 변한 이름이다. 지금의 동교동-서교동 지역은 고양군 시절이었을 때에 잔다리(세교.細橋)였는데, 그 중 위쪽의 웃잔다리는 서교동, 아래쪽 아랫잔다리는 동교동이 되었다. 모래내 하류쪽으로는 벌판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로는 성미(성산.城山)라는 작은 산이 솟아 있다.
땅이름에서의 가재는 보통 ‘가장자리’의 사투리인 가새나 가쟁이를 뜻한다.
가장자리란 뜻의 옛말은 원래 ‘ᄀᆞᆺ(ᄀᆞᇫ)’이었다.
이 ‘ᄀᆞᆺ’은 오늘날 ‘물가’, ‘냇가’와 같은 복합어에만 남고, 단일어로선 여러 가지 접미사를 붙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표준말로 쓰고 있는 ‘가장자리’란 말도 ‘ᄀᆞᇫ’과 ‘자리’가 합쳐진 복합어 형태의 말이다.
․ᄀᆞᇫ+자리 = ᄀᆞᇫᄋᆞ자리(ᄀᆞᇫ의 자리)
․ᄀᆞᇫᄋᆞ자리 > ᄀᆞᅀᆞ자리 > 가사자리 > 가상자리 > 가장자리
‘가재’가 들어간 땅이름에서는 주로 ‘ᄀᆞᆺ’에서 나온 것이 많다. 가장자리란 뜻의 ‘ᄀᆞᆺ’은 가사, 가자, 가재 등으로 전음되어 전국에 무척 많은 관련 지명을 이루게 했다.
‘ᄀᆞᆽ은 가장자리나 구석 겉의 뿌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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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말
가(邊) 가장자리 가생이 가죽 살갗 거죽 겉 겉질(껍질)
* 친척 땅이름
충남 서산시 운산면 가좌리의 가재울
충북 청주시 남이면 가좌리의 가재울
대구 동구 지묘동의 가사골
경기 고양시 원흥동의 가시골
경남 진주시 금곡면 가봉리의 가시골
전남 영광군 군서면 가사리의 가재골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가재골
경기 강화 선원면 금월리의 가재말
대구 수성구 만촌동의 각골(각동.覺洞) 외
2022년 8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