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먼저 올려드리겠습니다.
오전 예배도 그렇고 오후 예배도 그렇고 찬양이 참 은혜가 돼요. 은혜가 되고 또 감사도 하고 연주자분들도 다 프로이기도 하지만 함께 찬양 인도하는 형제도 그렇고 또 단원들도 정말 은혜가 되게 이렇게 찬양의 힘이 있음을 요즘 많이 느껴요. 너무 감사하고 먼저 하나님께 영광 돌렸으니까 두 번째로는 수고한 찬양단한테 박수로 한번 격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8절을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이렇게 번역이 돼요.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제가 이 문장을 조금 집중하려고 해요.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긴 시간 예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게 두려움이 있어요. 저희가 이제 예배를 마치면 우리 50 목장이 저희 방에서 잠깐 모여서 대화하는 시간을 1시간 정도 가져요. 그냥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또 모유 모임도 갖기도 하고 하는데, 오늘도 이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이나 나눴어요. 우리가 긴 시간을 예수를 믿었는데도 두려움은 참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신앙의 문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도 두려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는 어둠이 되게 무서웠어요. 저희 동네는 빛이 없었기 때문에 어둠이 무섭고 그리고 동네 형들이 무서웠어요. 그래서 나이가 들면 두려움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까 두려움들이 더 많아져요. 죽음도 두렵고 운송 수단을 타는 것도 두렵고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는 것도 두렵고 때로는 사람도 두렵고 때로는 귀신도 두렵고
여러분 왜 그럴까요? 왜 이럴까요? 아니 긴 시간 예수님을 믿었는데도 왜 두려움이 아직 사라지고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두려움은 인간의 본연의 모습일 수도 있어서 그럴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저는 좀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요.
왜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두려움이 안 사라졌고, 심지어 저는 목사인데도 두려움이 안 사라지고 오히려 더 많아졌을까?
17절 말씀의 요지는 이겁니다. 사랑이 우리를 담대하게 한다. 이거 17절 말씀에 덧붙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면 또한 우리가 담대해진다. 그러니까 17절 말씀으로 근거로 봤을 때 왜 우리가 담대하지 못하고 두려움을 느끼며 사느냐 첫 번째로는 우리가 사랑이 없어서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거고 두 번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인 거예요.
17절의 말씀을 따르면 사랑을 하면 두려움은 적어지고 없어지고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면 두려움은 없어지거나 적어진다는 거예요. 18절 말씀의 요지도 똑같습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
그런데 우리가 이 17절과 18절에서 하는 말씀의 요지를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돼요.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좀 더 완성된 사랑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좀 더 완성된 사랑을 하게 되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인 거죠.
17절에 보면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18절에도 온전한 사랑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는 이 표현을 봤을 때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그랬는데 이 사랑은 조금 더 완성된 사랑이에요. 지금 내가 아직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다면 좀 더 완성된 완성된 사랑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가끔 어미 새나 동물들이 맹금류와 맹수들과 싸울 때가 있어요. 원래는 원래는 게임이 안 되는 싸움이에요. 원래는 새들과 맹금류와의 싸움은 게임이 안 되는 거고 동물들과 맹수들의 싸움도 게임이 안 되는 거예요. 일반적으로는 싸울 생각도 하지 않아요. 근데 가끔 새들이 맹금류를 때로는 동물들이 맹수들을 막 공격할 때가 있어요.
그때가 주로 언제냐 하면 새끼들을 구하려고 할 때, 그러니까 새끼를 구하려고 할 때 원래는 게임도 안 되는 싸움인데, 이 새들이나 그리고 동물들이 맹수나 맹금류와 싸워요. 그러니까 새들도 동물들도 새끼들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서 두려움을 이긴 거죠.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에요. 당연히 두려움이 있어야 정상이죠.
그런데 두려움을 이기고 그들과 싸워요. 왜 싸우냐 하면 새끼들에 대한 사랑 때문인 겁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이긴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기냐?
이 사랑은 좀 더 완성된 사랑이에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사랑보다는 더 성숙한 좀 더 완성된 사랑을 할 때 우리가 두려움을 이길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우리의 사랑의 크기가 커지고 우리의 사랑의 깊이가 깊어지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크기와 깊이를 알면 알수록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사랑이 커지고 깊어지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랑이 커지고 더 깊어지고 완성이 되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구체적이 될수록 두려움은 점점 더 약해지는 거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사랑이 점점 구체적일수록 두려움은 점점 약해져요. 교회에 대한 사랑이 구체적일수록 두려움은 약해져요. 영혼에 대한 사랑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일수록 두려움은 약해지는 거죠. 그래서 두려움이 사랑을 이긴다. 사랑이 두려움을 이긴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사랑이 형이상학적일수록 두려움은 더 강해지고요. 사랑이 실제적일수록 두려움은 더 약해집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고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깨닫는 것이 많아지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온전해질수록 두려움은 사라져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여러분의 삶에 있는 어떤 종류의 두려움이든 이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완성이 된 사랑을 해야 돼요. 그게 가족의 대하든 그것이 교회에 대하든 영혼의 대하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이든 간에 조금 더 완성된 사랑을 해야 우리가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78개국에서 3억 8천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여러분 박해받는 것이 엄청난 두려움이잖아요. 불에 태워지기도 하니까 고문을 받으니까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인해서 당하는 이 박해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낼까요?
사랑이 두려움을 이겨내게 한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 박해 받으면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거죠. 박해를 받지만 두려움을 이겼기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거죠.
두려움에게 지면 신앙이 포기가 돼요. 세상이 두려우면 신앙을 내려놓게 돼요. 열정을 내려놓게 돼요.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세상이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신앙을 좀 이렇게 내려놔요. 근데 이 사랑이 두려움을 이기는데 이 사랑은 지금보다는 좀 더 완성되고 좀 더 성숙한 사랑인 겁니다.
박해를 받는 3억이 넘는 총 4억 정도 되겠죠. 4억 대 되는 크리스찬들이 계속해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두려움을 이겼기 때문인 거예요. 그래서 믿음의 자리에 특별히 박해를 받는 믿음의 자리에 그들이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두려움이 본질적인 사람이에요. 누구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그렇지만 두려움을 이겨야 우리가 이 땅의 삶을 좀 더 평안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두려움을 이기는 비결은 지금보다 우리의 사랑을 조금 더 완성시키는 거예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조금 더 완성시키고 교회에 대한 사랑을 좀 더 완성시키고 영혼에 대한 사랑을 좀 더 완성시키면 두려움은 점점 작아지고 약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우리 목장 교회의 사랑이 좀 더 성숙하고 좀 더 완전하게 되어서 두려움을 이기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사랑을 조금 더 성숙시키십시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두려움이든 죽음이든 두려움이든 극복해내고 이 땅을 믿음으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학생부도 철 때는 두려움이 없을 것 같잖아요. 저도 보면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과잉 행동의 중심에는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돌아보니까 저도 학창 시절 조금은 나가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 선생님한테 좀 덤벼든 적도 있고 이런 말을 강단해도 될지 모르지만 친구들과 학교를 좀 달아난 적도 있고 학교에 기물을 좀 파손한 적도 있고 그런 적이 있었어요. 한 때인데 한 때 돌아보면 내가 왜 그때 가격했을까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두려워서인 거예요.
우리 아이들의 행동이 과격하고 예측이 안 되는 그 중심에는 진짜 그 중심에는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이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요?
우리의 사랑이 좀 더 성숙해지면 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생각도 안정적이 될 수 있어요. 우리 학생부 친구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많아져서 좀 더 성숙해져서 두려움을 잘 이겨내고 멋진 이 학창 시절을 보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