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가는 길에 얻은 깨달음 – 모든 길은 평지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지내는 일상에 지친 친구들이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구하였다. 나 또한 지쳐있었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서 그들에게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권하였다. 그들이 솔깃하며 들었지만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쉽고 재미있고 화려한 여행이 아니고 또 돈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여행도 아니므로 그들과 함께 트레킹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함께 가면 좋고 아니면 네팔선교 현장과 인도 방문을 위해 혼자라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내년의 일을 계획하며 시간을 안배하며 네팔 행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는 판단이 서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였는데 갑자기 가지 않을 것 같았던 두 팀이 안나푸르나트레킹을 가겠다고 나섰다. 당혹한 나는 마음속으로 한 팀은 괜찮지만 두 팀과 동행하기에는 너무 벅찰 것 같아서 한 팀이 구성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다르게 두 팀이 다 구성되었다며 여행 일정표를 보내왔다. 나는 그들을 선동한 죄 값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나의 일정을 두 팀의 일정 속에 짜 맞추어야 하였다.
나는 첫 팀보다 20여 일 먼저 들어와서 네팔과 인도 현장을 돌아보는 중간에 첫 팀을 맞이하여 피곤한 몸으로 안나푸르나트레킹 길에 올랐다. 그러나 십여 년 전에 비전아카데미 학생들과 페디 • 담프스 • 란드룩 • 간드룩 • 고레파니 • 푼힐 코스로 트레킹을 서너 차례를 하였기 때문에 산골마을의 아름다운 길을 다시 간다는 설렘과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길이 너무 달랐다. 짚이 담프스와 란드룩을 훌쩍 뛰어넘어 위태하고 험악한 산길을 지나 우리를 뉴 브릿지 앞에 내려놓았다. 당나귀와 사람들이 얽히고 섞여서 함께 지나가는 출렁다리 뉴 브릿지 앞에 섰을 때 안나푸르나트레킹을 왜 하자고 말을 꺼냈는지 절로 후회가 되었다. 지누단다를 거쳐 촘롱까지 가는 길은 경사가 너무 심하고 계단이 많아 숨이 차고 무릎이 아파서 자신을 달래며 힘겹게 기어 올라갔다. 다음 날 촘롱에서 시누와 까지 가는 길이 급경사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반복되어 혼비백산하였다. 제대로 걷지 못하고 흐느적거리자 포터 크리슈나가 와서 배낭을 달라고 하였다. 자존심 때문에 배낭을 맡기지 않고 버텼지만 오후에는 배낭을 포기하였다. 뱀부에서 점심을 마치고 도반에서 히말라야까지 오르락내리락 걸어가면서 당장 힘들게 걷는 것보다 다음 팀과 함께 험난한 길을 또 다시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길을 모르고 얼결에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길의 상태를 알고 다시 온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므로 안나푸르나트레킹을 소개한 나 자신에 대하여 화가 났다. 아무튼 누구도 나 자신을 대신하여 걸어줄 수 없으므로 나 자신을 달래며 걸어야 했다. 고산증 증세가 나타나서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발이 휘청거려서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가이드를 해주시는 이선생님이 사흘째 되는 날은 산의 능선을 타고 걸으며 평지가 많다고 하였지만 길은 여전히 오르막 내리막이 힘겹게 반복되었고 고산증 증세로 숨이 가빠서 천천히 느리게 걸어야 하였다. 데우랄리에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가는 길도 오르막길이 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해발 3700m)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해 가는 길은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이어서 조금 쉽게 걸을 수가 있었다.
힘들어 허우적거리면서도 꽃을 보면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특별히 하얗게 핀 에델바이스와 노랗게 핀 빠띠 라는 꽃이 눈길을 끌었다. 갈색과 주황색의 나비도 가끔 눈에 띄었다. 원숭이와 다람쥐도 만났다. 날마다 맨 꼴찌로 걸으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외우며 기도하다보니 사흘째 되는 석양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였다. 바로 눈앞에서 바라보는 마차푸차레의 위용이 대단하였다.
마차푸차레 • 히운출리 • 안나푸르나 남봉 • 안나프르나 1봉 • 강가푸르나 • 안나푸르나 3봉을 두루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미를 돌리며 감탄사를 발하노라니 그간의 노고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3봉이 황금빛으로 물 드는 일몰을 바라보며 감동으로 울었다. 그러나 고산병 증세로 숨이 차고 속이 울렁거렸고 해가 넘어가자 추워서 조요한 보름달빛을 즐길 수가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보고서 작성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한국에 온지 보름정도 만에 두 번째 팀과 함께 출국하였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힘들다는 말 한 마디 안하고 연거푸 험난한 안나푸르나에 따라 가는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내가 먼저 제안을 하였기 때문에 도의적인 책임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 희생이 너무 많으므로 같은 산행을 반복하는 나의 행위가 바보 같아 보였다. 가지 않아도 되는데 왜 따라 가는가를 반복해서 생각하다 보니 어느 사이에 뉴 브릿지에 도착하였다.
동행하는 사람들은 다르지만 같은 길을 그대로 반복해서 가는 일정과 코스에 대하여 거부감이 커서인지 출렁다리 건너 첫 번째 마을인 지누단다에서 부터 헉헉거렸다. 체력이 갑자기 좋아질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면서 ‘시내산에 올라가는 모세와 동행하신 하나님, 변화산에 올라가는 예수님과 동행하신 하나님, 터키와 그리이스와 로마 선교여행에 바울과 동행하신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사 저에게 힘주시고 제가 왜 두 번이나 연거푸 이곳에 와야 했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해주십시오.’라고 부르짖었다.
겨우 겨우 촘롱에 도착해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가이드 모한이 촘롱에 방이 없으므로 아래 시누와까지 가야한다고 하였다. 순간 너무 실망스러워 쓰러지고 싶었다. 우리 일행 모두가 나와 같은 심정이었으나 가이드의 지시를 따라 발길을 재촉하였다. 두 번째 팀은 팀워크가 잘 되어서 서로 도우며 밤길을 걸었으나 나의 발이 술 취한 사람처럼 풀렸다. 배낭이 바위처럼 무거워지고 있을 때 조총장이 구세주처럼 나타나 배낭을 가져갔다.
다음날 점심 식사 후 도반에서 히말라야로 향할 때 왼쪽 다리가 마비되었다. 돌덩이처럼 굳어져서 풀리지 않았다.
너무 무리하다며 두 번째 안나푸르나행을 말렸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뒤로 돌아 도반으로 가는 것도 어렵고 앞으로 전진해서 히말라야롯지로 가는 것도 어려웠다.
다들 멀리 있어서 앞서가는 사람을 부르거나 포터를 불러서 도움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일행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되므로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하나님! 당신께서 저와 동행한다는 징표를 보여주십시오. 천사를 보내 저를 업어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날라주시든지 아니면 다리에 힘을 주셔서 산을 평지처럼 걷게 해주십시오.”라고 반복하여 간청하였다.
순간 거대한 산이 낮아지면서 평지처럼 보였다. 산이 펼쳐져서 평지가 되었다. 뜻밖의 신비로운 광경, 황홀경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으나 곧장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쁨이 충만해졌다. 우와! 탄성을 지르며 눈을 크게 뜨고 두 손을 높이 들고 ‘할렐루야!’를 연발하니 산들이 다시 정상으로 보였다. 그러나 산이 이전처럼 험악하고 고되거나 힘들어 보이지 않고 평지처럼 가볍고 평화롭고 친근하고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모든 길이 ‘조금 높은 평지’와 ‘평지’ 그리고 ‘조금 낮은 평지’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조금 높은 평지’에서는 보폭과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걸으면 된다.
‘평지’에서는 보폭을 늘리고 속도를 높이면 된다.
‘조금 낮은 평지’에서는 길의 상황에 따라 보폭과 속도를 늘이거나 줄이며 걷는다.
모든 길이 평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고행(苦行)이었던 산행이 즐거운 산보가 되었다.
산이 동무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길이 친구가 되어 동행하며 나를 이끌어 주었다.
힘든 길을 계속 올라가야한다는 걱정과 염려, 피로와 불편감이 사라졌고 몸이 평지를 걷는 것처럼 편하고 자유로워졌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보였다.
내 걸음의 모양새도 달라졌다.
급경사 계단을 올라갈 때는 게걸음으로 올라가며 지그재그로 걷는다.
폭이 넓은 계단에서는 오리걸음으로 제자리걸음을 걸어서 안정감을 회복하고 숨을 고른다.
경사가 조금 높은 계단을 올라갈 때는 8자 걸음으로 걷는다.
평지는 학 다리 걸음으로 성큼성큼 걷는다.
급경사 계단을 내려갈 때는 스틱을 먼저 내려 짚고 앞부리를 들어서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조심스럽게 걷는다. 상황에 따라 게걸음과 8자 걸음을 적용해서 걷는다.
경사가 조금 낮은 계단을 내려갈 때는 앞부리로 경쾌하게 걷는다.
산길을 걸을 때 주의해야할 몇 가지가 떠올랐다.
앞 사람을 따라 잡으려는 경쟁은 금물이다.
아무리 힘이 넘쳐도 달리거나 뛰어서는 안된다.
천천히 느리게 걷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자기 컨디션에 따라 잠간씩 쉬면서 반드시 따뜻한 물을 마셔야 한다.
약간의 땀을 흘리는 것은 괜찮지만 많은 땀을 흘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땀을 많이 흘렸을 경우에는 스포츠 타월로 닦아내고 양지에서 쉬도록 한다.
독초가 있으므로 모르는 풀에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혼자서 길을 걷는 것보다 두 명이 1조를 이루어 동반하는 것이 안전하다.
해발 2500미터부터는 고산증을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한다.
고산증 증세가 심하면 등산 가이드에게 반드시 보고하고 증세가 호전되지 않을 경우 하산해야 한다.
도반에서 히말라야로 가는 오르막, 내리막 갈에서 감동과 감격에 빠져 사방을 향하여 합장하며 감사와 찬미를 바쳤다. 더 이상 험한 산도 보이지 않았고 험한 길도 없었다. 모든 것이 조금 높은 평지와 평지, 조금 낮은 평지로 보였다. 어디를 가나 산이 나를 받쳐주고 길이 나를 반가이 맞아 에스코트해주어서 마법의 세계에 빠진 듯하였다.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두 팀과 함께 두번이나 4,20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동행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부름이고 은총이고 축복이었다. 두 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가 아주 각별한데 이는 나의 갈 길이 쉬운 길이 아니라는 뜻 일게다. 그러나 아무리 험난한 길이라 해도 주님과 동행하면 평지가 될 것이었다.
나의 권면과 제안을 받아서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참여한 두 팀의 모든 멤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산에서 모두가 나의 스승이요, 좋은 동무였음을 고백한다.
2022. 12월 22일. 목요일 새벽에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