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내산악회 A, B 코스를 버리고, 자유 산행으로 '상원사 주차장 → 수정암 → 비로봉 갈림길 → 호령봉 → 갈림길 → 비로봉 → 상왕봉 → 두로령 → 상원사 주차장'의 17.7km 환 중주를 6시간 안에 달릴 예정이나, 시간 내 도착이 어려우면 비로봉에서 하산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다.
1
오대산[五臺山]
높이: 1,565m
위치: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은 주봉인 비로봉(1,565m), 호령봉(1,566m), 상왕봉(1,493m), 두로봉(1,422m), 동대산(1,434m) 등이 원을 그리고 이어져 있다.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대산은 진고개를 지나는 국도를 사이에 두고 비로봉,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의 다섯 봉우리와 그 사이의 많은 사찰로 구성된 평창의 오대산지구(월정사지구), 그리고 노인봉(1,338m)를 중심으로 하는 강릉의 소금강지구로 나뉜다.
기암괴석의 소금강 지역을 제외한 오대산은 전형적인 흙산으로 사계절 언제나 오를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가을이면 단풍, 겨울이면 하얀 설화가 환상적이다.
장엄한 산세에 어울리게 오대산의 단풍은 중후한 세련미까지 느끼게 한다.
단풍 절정은 10월 중순께, 일시에 불타오르는 듯한 것이 일품이며 색상이 뚜렷하고 진한 점이 특징이다.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주 계곡(9km)과 비로봉 산행은 오대산 최고의 단풍 코스다. 상원사를 지나 왼쪽 계곡 길로 들어서면 걷는 이의 가슴까지 붉게 물들이는 단풍 천지다. 오대산의 겨울 설경은 주봉인 비로봉에서 상왕봉을 잇는 능선의 싸리나무와 고사목 군락에 핀 눈꽃이 절경이다.
오대산은 유서 깊은 명찰 월정사를 위시해 상원사, 적멸보궁, 등 불교문화 유적이 즐비하다. 오대산국립공원의 제1 관문 격인 월정사에는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가 있고 진입로 2㎞ 구간에 전개된 아름드리 전나무 숲길은 매우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한국의 산하
강원 평창 진부의 오대산은 해발 1,400m가 넘는 동대산(1,434m), 두로봉(1,422m), 상왕봉(1,493m), 비로봉(1,565m), 호령봉(1,566m)의 다섯 봉우리가 원을 그리고 있어, 환 종주 산행에 딱 맞다. 하지만, 해발 1,566m로 다섯 봉우리 중 가장 높은 호령봉은 국립공원공단에 의해 출입이 막혀, 다섯 봉우리 종주는 쉽지 않다. 덕분에 다른 네 봉우리를 두 번 이상 오르는 동안[산행기], 상봉인 호령봉은 오르지 못해 늘 아쉬웠다. 그렇게 공단에 의해 막혀 오르지 못한 봉우리가 여기저기 꽤 된다. 그러다, 더는 갈 만한 산이 없어, 국립공원 중 오르지 못한 봉우리, 또는 마음만 있었지 달리지 못한 종주를 하기로 하고, 하나씩 실천에 옮기는 중으로, 당연히 호령봉도 목록에 있다. 해서 시기만 보고 있었는데, 이번 주 목요 오지 산행 팀의 산행지가, 이미 2022년 2월 오지 전문 안내산악회를 따라 달린 충주의 천등산, 인등산, 지등산 연계 산행이라[산행기], 같은 산악회의 수요일 오대산행에 따라나서 호령봉에 오르기로 했다.
안내산악회의 오대산행은 인증꾼을 위한 1 일 2 산을 기본으로 버스로 이동하며 노인봉과 비로봉을 인증하는 산행에, 진고개에서 출발해 상원사에서 마감하는 오대산 종주 코스를 덧붙여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호령봉은 제외다. 그리고 호령봉에 갈 수 있다고 해도, 무박이 아니고는 한번에 돌기에는 무리가 있는 거리다. 어쨌든 노인봉 인증을 끝내고 돌아오면, 버스로 상원사로 이동해 비로봉에 올라 인증한다. 고로 노인봉 산행에 3시간, 비로봉 산행에 3시간 5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런데, 미지의 호령봉을 3시간 50분 내에 다녀올 자신이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를 계획을 세웠다. 그러다, 우연히 안내산악회의 오대산 계획을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고 있다가, 진고개에서 시작하는 종주 코스에 눈길이 갔다.
안내산악회의 오대산 종주는 이미 2019년 2월 대학 동기와 달려, 잘 안다[산행기]. 그리고, 최근일 수 있는 2023년 5월 천고지인 응복산과 백두대간 연결을 위해 진고개부터 구룡령까지 달렸을 때[산행기], 동대산 직전 ‘동피골 입구’ 갈림길 이정표를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났다. 해서 바로 오대산 지도를 모니터에 띄웠다. 그렇다! 진고개에서 시작해, ‘동피골 입구’ 갈림길에서 동대산이 아닌 동피골 입구로 내려간 후, 동피골로 호령봉에 올라가면 된다. 그럼, 산꾼이 오대산 종주를 하는 7시간 20분 내에 호령봉을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당연히 날머리는 상원사 주차장으로 같다. 저절로 유레카가 나오는 순간이다. 당연히 주저할 이유가 없어 대중교통에서 안내산악회로 계획을 변경했다. 오대산이야 어느 산악회든 최소 한 달에 두 번은 버스가 출발하니, 적당한 일정에 산악회를 따라나서면 미지의 호령봉에 오를 수 있다.
그렇게 오대산 호령봉 산행에 관한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조율하던 중, 우연히 대기업 안내산악회 게시판을 구경하다가 오대산행이 인증꾼을 위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발견했다. 진고개에서 상원사까지 종주와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의 선재길이라 불리는 계곡을 따라 걷는 두 코스를 합쳐 놓은 계획을 발견했다. 물론 덤으로 초보를 위해 비로봉, 상왕봉 구간만 도는 6시간 코스도 있으나, 그거야 차라리 자유 산행이라는 게 정확하다. 이거다! 이 자유 산행으로 호령봉을 다녀오면 된다. 그럼, 쓸데없이 진고개에서 동피골 입구까지 5km가량을 달릴 이유가 없다. 물론 코스는 처음 계획과는 조금 달라졌다. 그렇지 않아도 등산로 유무가 명확하지 않아, 고민하고 있던 동피골 코스를 서대암 코스로 바꿨다. 해서, 바로 그 산행을 신청했는데, 성원 미달로 한 차례 연기 후 이번 주 수요일 출발한다.
성격이 급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신청하기는 했으나, 산행 일이 가까워지자, 날씨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른 계절도 아니고, 겨울에 인적이 없어야 하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게 잘하는 짓인지 계속 고민된다. 해서 취소하고 춘삼월이나 단풍철에 갈까? 생각해 봤으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일단 신청한 거 강행하기로 했다. 와중에 산행을 며칠 앞두고 한파에 앞서 강원도 지역에 폭설이 내려, 오대산은 대설경보 발령으로 전면 통제다. 그런데, 그 폭설이 토요일까지 내리고, 일요일부터는 맑은 날씨로 바뀐다. 비록 기온은 영하 18도를 오르내려, 한파라는 예보지만. 통제는 늦어도 월요일이면 해제될 거로 보인다. 그럼, 문제없는 거 아닌가 생각하겠지만, 법정 탐방로는 국립공원에서 러셀 하지만, 비법정 탐방로는 할 이유가 없다는 게 문제다!
수요일 호령봉은 눈 위에 짐승 발자국만 있을 확률이 높다. 말인즉 러셀 하며. 올라야 한다. 그것도 홀로! 눈이 얼마나 쌓여 있을지 모르나, 발목만 넘어도 등산에 평소보다 세 배 이상의 시간이 든다. 고로 시간 내 다녀오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아니 러셀 하느라 체력이 고갈돼 중간에서 되돌아올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취소하기에는 너무 늦어, 일단 오대산에 도착해 상황을 보고, 호령봉을 빼고 종주하든가, 유유자적 선재길이나 산책하든가 할 생각이다. 그럼, 호령봉은 춘삼월에…! 오대산 통제가 수요일까지 이어져 자연스럽게 산행이 연기되기를 빌 뿐이다. 어쨌든 철저한 겨울철 산행 준비에 점심은 컵라면으로 한다. 하산주를 하려면 월정사로 내려가야 하는데, 선재길을 걷게 되면, 인솔 대장에게 월정사에서 상원사가 아니라, 거꾸로 진행해도 픽업해 줄 건지 물어보고 결정한다.
예상대로 오대산 국립공원공단에서 통제를 일요일 해제하는 바람에 수요일 산행은 정상 진행이다. 와중에 한파 경보가 내렸을 정도로 추운 날씨가 이어져 폭설이 그대로 얼었을 확률이 높다. 한파 경보에는 통제하지 않는 국립공원공단의 처사에 불만이 많으나, 현재는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성원을 채우지도 못했던 신청자가 폭설과 한파 소식에 만원을 넘어, 대기자가 3명이나 있다. 도대체 사람 심리를 모르겠다. 눈꽃? 이 추위에? 와중에 산행 당일 0시부터 4시까지 눈 소식이다. 눈꽃을 바라는 등산객에게는 최고의 소식이나, 호령봉이 목표인 산꾼에게는 최악의 소식이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고, 서대암 코스로 오르려던 기존 계획을 변경해 비로봉에 오른 후 호령봉 방향 한강기맥 상황을 보고, 강행 여부를 결정한다. 다른 준비는 예정대로!
2 – 1
6시 40분 사당역 1번 출구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하는 버스라, 평소보다 이른 4시 50분 알람을 맞춰놓고 자려고 누웠는데, 마누라가 밖을 나갔다 오더니, 눈이 쌓이고 있다고 한마디 한다. 응? 눈이 쌓여, 그럼, 아침에 누가 치우지? 해서 눈 치울 시간 확보를 위해 알람을 20분 더 당겨, 4시 30분으로 맞추고 잤다. 그리고 4시 30분 기상해 볼일을 보며, 오대산 산악날씨를 확인했다. 어제와 달라진 건 없다. 다음, 국립공원 사이트로 들어가 ‘탐방통제정보’를 확인했다. 오대산은 새벽 2시 50분에 ‘대설주의보’ 발효에 따라, 선재길 주변을 제외하고는 다 통제다. 선재길까지 통제라면, 취소 명분이라도 있는데, 선재길은 개방이라, 그것도 아니다. 와중에 당일 새벽 2시 50분에 공지한 거라, 안내산악회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고로 별 의미는 없으나,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인솔 대장에게 통제 중인데, 정상 진행하는지 문자로 물었다. 1시간 후에 돌아온 답은 일단 오라는 거다.
볼일 본 후, 집 주변 눈을 깨끗이 치우고 들어와,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준비한 배낭을 둘러메고, 5시 25분경 집을 나섰다. 그리고, 구산역에서 신내행 첫 열차를 탔다. 이후 사당에서 오이도행 4호선으로 갈아타고, 국립공원의 현재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찾았으나, 없다!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게, 삼각지에서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빠진 모양이다. 책을 보기 위해 패드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 무료 와이파이가 없으면, 저장된 걸 보는 거 외에는 무용지물이다. 열차 내 무료 와이파이를 자랑하나, 그건 통신사에 가입된 기기용이고, 그렇지 않은 기기는 해당 사항 없다. 고로 열차 내 무료 와이파이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들의 국뽕에 불과하다. 오히려 버스 와이파이는 진정한 무료다. 그나마, 지하철역에는 가끔 진정한 무료 와이파이가 잡힌다.
해서 패드의 텔레그램으로 마누라에게 현재 상황을 알려주고, 내 핸드폰으로 전화해 보라고 했다. 당연히 무료 와이파이 따위는 없는 열차에서는 글을 보내지 못하나, 열차가 역에 정차하는 잠깐, 무료 와이파이에 연결됐을 때, 텔레그램이 알아서 글을 보낸다. 이수역을 지나며, 텔레그램을 확인해 보니, 마누라의 답장이 있다. 예상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핸드폰이 빠졌고, 그걸 주운 분이 나를 불렀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계단으로 올라갔다는 거다. 당연히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으니, 못 들었다. 해서 내리는 역 사무소에 맡겨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미 이태원역을 나온 후라, 퇴근 때 맡기기로 했다는 거다. 핸드폰이야 산행 후 귀가할 때 이태원역에서 찾으면 되니 문제가 없으나, 산악회 버스에 타는 순간부터 세상과 연결이 끊긴다.
사당역에 내리기는 했으나, 핸드폰이 없으니, 정상적으로 개찰구를 나갈 수 없어, 경고음을 무시하고 통과했다. 이 시간에 직원을 찾아봐야, 피차 피곤하기만 하다. 이후 1번 출구로 나가, 공영주차장으로 갔다. 그리고 산악회 버스가 대기하는 구역으로 가 보니, 내가 타야 할 차는 안 보인다. 정확히는 사각지대라, 더 가야 보인다. 그리고 발견한 버스 LED에는 대놓고, '오대산 선재길'이 번쩍이고 있다. 배낭을 버스 짐칸에 넣고, 버스에 타며, 제일 앞에 앉은 인솔 대장에게 새벽에 문자 보낸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상황이 어떤지 물었다. 그러자, 어느 코스를 생각하고 있는지 되묻는다. 호령봉이라 할 수는 없어, 종주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자, 지난주 내린 폭설을 치우지 않아, 월요일 종주에 나섰던 산꾼 넷이 러셀 하며 가다가 동대산에서 포기하고 돌아왔다며, 개방 여부와는 상관없이 못 간단다.
그건 그 사람들 얘기고, 내 반응이 싸늘해 보이자, 오대산국립공원에 전화해 봤으나, 받지 않아, 출근 시간 이후 다시 전화해 보겠다는 대장의 말을 듣고, 내 자리로 가 자리를 잡고 앉은 후 무겁고, 답답한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그리고 열차에서 읽던 책을 보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 깨어보니, 평창 휴게소다. 휴게소에서 볼일을 보고, 국립공원 상황이 어떤지 보기 위해, 무료 와이파이 연결을 시도했으나, 쉽지 않아, 포기했다. 어차피 휴식이 끝나고 차가 출발하면, 대장이 얘기할 거다. 예상대로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코스 소개와 주의 사항에 관행 설명을 시작한다. 오대산은 8시 발로 전면 개방으로 바뀌었단다. 2시 50분 통제, 8시 정각 개방이다. 뭐 하는 짓들인지! 어쨌든 내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눈이 내리다 말았다는 얘기다.
이어 종주할 사람 손을 들어보라고 하자, 70% 이상이다. 그러자, 버스 탈 때 둘이 나눴던 똑같은 얘기를 한다. 눈을 치우지 않아 종주는 힘들다는 거다. 물론 러셀 하며, 종주해도 되지만, 마감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을 거라고 협박한다. 그리고 다시 손을 들어보라고 하니, 한 명도 없다! 종주하는 산꾼을 위해 진고개로 갈 필요가 없어, 바로 월정사로 가면 된다. 말인즉 시간을 절약했으니, 모두가 대환영이다. 이후 선재길 탐방할 사람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선재길 시작 지점에서 내려주기 위해서다. 몇 사람 안 된다. 고로 나머지는 월정사를 기준으로 비로봉, 상왕봉을 도는 환 종주다. 물론 나 같은 자유 산행도 있을 거다. 그러자, 대장이 원래 그 코스에 5시간을 책정하나, 현재 눈발이 날리고 있어, 6시간을 주겠단다. 진고개에 들르지 않아 절약한 시간과 종주에 주어진 7시간에서 선심을 쓰는 거다.
어쨌든 모든 상황이 나를 위해 짜인 판처럼 느껴진다. 눈이 내린 직후는 당연히 그걸 치우며 가야 하나, 며칠간 한파가 몰아 닥친 이후는 쌓인 눈이 빙판으로 변해, 진행에 전혀 방해가 안 된다. 호령봉 코스 또한 마찬가지다. 와중에 새벽부터 내린 눈 또한 쌓일 정도가 아니라, 산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신이 나서 호령봉 산행을 비로봉에서 시작할지, 서대암에서 시작할지 고민하다가, 현재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지의 호령봉으로 향하다가, 길을 잃었을 때 봐야 하는 지도가 있는 핸드폰이 없다. 최악의 상황에서 구조를 요청해야 할 핸드폰이 없는 거다! 이건 오대산신이 호령봉에 가지 말라는 계시다! 그렇다고, 이 추위에 몇 번씩이나 오른 비로봉, 상왕봉, 두로령 산행을 할 생각은 없어, 선재길 탐방에 나서기로 했다.
물론 월정사에서 시작해 상원사로 올라가는 정규 코스가 아니라, 거꾸로인 상원사에서 시작해 먹거리 마을이 있는 하류로 내려오기로 했다. 문제는 예정에 없던 먹거리 마을에서 픽업해 줄지다. 귀경하는 길목에서 픽업하는 거라, 인솔 대장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어, 많은 산꾼이 자유 산행 후 이 방식을 택한다. 물론 인솔 대장이 거절해도 할 말은 없다. 그렇게 결론짓고, 다시 잠이 들었다가, 실내등이 들어와 밖을 보니, 진부를 지나고 있다. 해서, 슬리퍼를 벗고, 등산화로 갈아 신은 후 끈을 조이고, 스패츠도 착용하는 거로 선재길 탐방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조금 있자, 대장이 선재길 탐방할 사람 내릴 준비하라며, 근처에 먹거리 마을이 있으니, 거기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했다.
조금 지나자, 버스가 멈춰, 앞창으로 밖을 보니, 차단봉이다. 그리고 인솔 대장이 내리는 게 주차 요금을 내는 거다. 물론 선재길 탐방객 3명도 내리는 걸 보고, 당연히 여기가 선재길 시작 지점이라 생각했다. 나야 거꾸로 진행할 거라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비좁은 도로를 덜컹거리며 올라간 버스가, 9시 54분경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하자, 인솔 대장이 4시 마감이라고 공지했다. 이후 거의 모든 승객이 내리고 조금 한가해진 틈을 타, 버스에서 내리며 인솔 대장에게 선재길을 거꾸로 진행해 월정사로 내려갈 건데, 픽업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이미 올라왔으니, 픽업 못 한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정확한 위치를 알려달라고 해, 3시 50분부터 아래 차단봉이 있는 곳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버스가 공영주차장에서 승객을 기다리는 동안, 대장에게 선재길을 제외한 다른 구간이 계속 통제면, 선재길을 정규 코스가 아니라,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거꾸로 내려가자고 제안했었다. 그러자, 대장이 식당이 아래에 있어, 그럴 예정이라고 답했다. 선재길 탐방으로 남아 넘치는 시간을 식당에 데려다줘야 그나마, 승객의 불만을 달랠 수 있으니 당연하다. 물론 식당에 갈 생각이 없는 승객도 있으니, 식사 시간이라고 언급할 필요 없이, 선재길 탐방 소요 시간을 넉넉하게 주면 된다. 당시 버스에 있던 승객도 그 얘기를 다 들었다. 해서 내가 월정사 부근에서 픽업해 달라는 걸 당연히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선재길의 정확한 거리는 모르나, 대략 12~3km 정도로 알고 있어, 6시간을 그 구간에 보내야 하는 건 새로운 숙제이자 고민이다! 그나마 나는 따듯한 식당이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면 되는데, 정규 코스로 선재길을 탐방한 탐방객은 월정사에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2 – 2
버스에서 내려, 먼저 짐칸에서 배낭을 꺼냈다. 상원사 주차장으로 올라오며, 산행하는 것도 아니고, 하류에서 오대천으로 불리는 상류 계곡을 따라 난 산책로로 하류로 내려가는 도보 여행이라, 굳이 무겁기만 한 배낭을 짊어지고 갈 이유가 없어, 버스 짐칸에 두고 갈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비록 산책로라고 해도, 한파경보가 발효 중이고, 눈발까지 날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몰라, 일단은 배낭을 짊어지고 가기로 한 거다. 배낭을 짊어지고 먼저, 탐방센터로 가며 보니, 요원은 밤새 내리 눈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다. 뭐, 딱히 탐방센터에서 할 일도 없고 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다음 산행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이후, 선재길 입구를 찾아, 포장도로로 하류로 내려가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온 기념으로, '오대산 국립공원 안내도'와 '상원사' 표지석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들 비로봉을 향해 올라가는 걸 잠깐 지켜보다가, 계곡으로 붙어갔다. 그런데, 내려가며 보니, 계곡과 도로 사이에 갑판 산책로가 있다. 하지만, 눈이 쌓여 접근이 쉽지 않아, 일단 계속 내려가, 10시 2분 선재길 입구에 도착했다. 정상적으로 진행하면, 선재길 종점이다. 물론, 나야 거꾸로 진행하는 거라, 기점이지만. 결과적인 얘기나, 선재길을 따라 내려가다, 길이 다섯 구간으로 나뉘었다는 걸 알았다. 시작부터, 1 산림철길, 2 조선사고길, 3 거제수나무길, 4 화전민길, 5 왕의 길 순이다. 거꾸로 갔으니. 당연히 5번부터다. 그것도 5번 구간이 끝나고, 일주문을 형상화한 건지, 궁궐의 문을 형상화한 건지 모르는 문을 발견하고 서야 5개 구간이라는 걸 알았다. 모든 문을 기록으로 남기기는 했으나, 역순이다.
5 왕의 길
선재길을 알리는 아치문을 통과해 다리를 건너, 건너편으로 가니, 길이 보이지 않아 잠깐 당황했다. 밤새 내린 눈이 길을 덮은 거다, 해서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다가, 비록 새로운 눈이 쌓여, 앞선 탐방객의 발자국을 가리기는 했으나, 길의 흔적까지는 지우지 못한 선재길을 발견하고, 그 흔적을 따라 본격적인 선재길 탐방에 나섰다. 새롭게 내린 눈이 쌓인 선재길을 따라, 7분가량 가자, 길목에 무언가 누워 있다. 고라니 사체다. '나무관세음보살' 정황상 밤새 저세상으로 갔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주검으로 발견된 게 이상해 사인이 뭔지 유심히 살펴봤으나, 모르겠다. 다만 주변 눈으로 봐서는 고통에 발버둥 친 거는 알겠다. 일단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극락왕생을 빌어준 후, 가던 길을 계속 가는데, 저 아래로 이상한 철판 두 개가 문처럼 서 있다. 그 문을 통과해 반대편에서 보니, '5 왕의 길'이다. 문의 기둥 중 왼쪽에는 1번부터 5번까지 문의 이름과 각 구간의 거리가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주어진 시간은 6시간, 하산주를 2시간 동안 마신다고 해도, 선재길에서 4시간을 보내야 해,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었다. 10km! 먹거리마을 도착 목표를 2시로 해, 4시간을 채우려면, 중간중간 볼 만한 게 있으면 다 보고 가야 한다.
4 화전민길
여기서부터는 '4 화전민길'이다. 입구를 향해 내려가는데, 계곡을 건너는 다리 끝에 철문이 보인다. 이건 뭔가 하고 보니, 수행 전문 암자라, 수행을 방해하는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거다. 그 앞 이정표에 의하면, 월정사까지 7.2km 남았다. 현재 시각, 10시 29분, 빠르다! 그 바로 아래는 동대산 방향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오대천으로 합류한다.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내려가자, 원형의 돌담이 있고, 그 가운데, 어설프게 만든 안내문이 있어 가봤다. 화전민의 너와집이다. 그런데, 플라스틱 기와에, 플라스틱 목재 벽이다. 너와집의 핵심이 지붕인데, 비록 플라스틱이지만 기와라니, 그럼, 너와집이 아니라 기와집이지!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지 뭐 하는 짓인지! 그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계곡을 따라 하류로 가, 출렁다리를 건너자, 이정표다. 오대산장까지 07km. 잘 됐다. 지난 산행부터 계속 들고 다니는 컵라면을 먹고 가기로 했다.
계곡을 따라 난, 갑판 산책로로 왼쪽의 계곡을 감상하며 내려가, 다시 작은 다리를 건너자, 임도 다. 오른쪽 위로 가는 길은 철책으로 출입을 차단했고, 왼쪽이 허가된 통행로 갈림길로 임도로 계속 가되 되나, 산책로는 짧은 급경사 직진이다. 아무 생각 없이 급경사를 올라가자, 저 앞으로 산장이라 생각되는 건물이 보이다. 그걸 보는 순간, 아! 했다. 조금 전, 건넌 작은 다리가 놓인 계곡이 동피골이다. 유레카를 외치고, 다시 그 다리로 가서, 동피골 상류를 유심히 관찰했다. 앙상하나 울창한 숲 사이로 보이는 봉우리가 호령봉일 확률이 높다. 산행 후 동피골로 하사해도 되는지 망설였는데, 내려와도 된다는 걸 확신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다시 위로 올라오자, 저쪽에 나무로 만든 무언가가 보여 가봤다. 부처다! 그리고 그 뒤로 길의 흔적이 보인다. 사실 선재길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호령봉 등산 후 하산 코스로 고려 중인 동피골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동피골 점검이 끝나고, 오대산 산장이라 생각한 건물로 가서 보니, 산장이 아니라 온실이다. 그 문 앞에는 '뱀이 나올 수 있으니, 놀라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이 서 있다. 여기도 치악산처럼, 구렁이 사육하는 곳인가? 단순한 온실이라 생각했을 때는 문을 열고 들어가 볼 생각이었으나, 구렁이 사육장이라면, 겨울잠 자는 애들을 깨우는 건 실레다. 해서, 밖에서 유리 너머로 내부를 대충 훑어보고 걸음을 돌려, 저 앞 진정한 산장으로 보이는 건물로 향했다. 그런데, 길목 왼쪽으로 널찍한 공터에 낮은 목채 담을 두르고, 연화탑(蓮花塔)과 비석이 있어, 비문을 읽어봤다. 고려대 불교학생회 10명이 폭우로 사망한, 불자를 기리는 추모탑과 비다. 내가 태어난 해 7월이니, 58년 전이다. 해서 탑으로 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확인했다. 이름으로 성별을 구분하는 게 정확한 건 아니나, 대략 남학생 셋에, 여학생 일곱 명으로 생각된다. 그들의 극락왕생을 빈 후, 추모탑을 터나 산장으로 갔다.
지난 산행 때부터 무겁게 배낭에 넣어 들고 다닌 컵라면을 이제야 해치울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산장으로 접근해 보니, 낮은 철책 담장의 문이 잠겨 있다. 그리고 대피소가 아니라, 카페다! 분명 과거에는 대피소였을 텐데, 카페로 변신했다. 실망하고, 좌회전하려다가, 직진 방향 좌우로 건물이 보인다. 그 정체가 궁금해, 선재길에서 벗어난다는 걸 알면서도 직진했다. 동피골 주차장 화장실과 쉼터 정자다. 다른 건 몰라도 주차장은 안내산악회에서 상원사 주차장에 버스를 세울 수 없어, 동피골 주차장에서 대기하다가, 산행 종료 30분 전쯤 상원사 주차장으로 이동하겠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포장도로로 거꾸로 위로 올라가, 다시 선재길로 들어서,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가다 보니, 왼쪽으로 '명상 쉼터'라는 게 보인다. 남는 게 시간이고, 그 시간을 어떻게 든 채워야 해, 그리로 가서 치우지 않아, 쌓인 눈 위에 그대로 앉아 잠깐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다시 길을 재촉해, 꽤 넓은 밭 건너편에 있는 집이 신기해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11시 39분 4구간 '화전민길' 문에 도착했다.
3 거제수나무길
4구간 '화전민길' 문 왼쪽 기둥에 있는 선재길 안내도를 보고, 3구간 '거제수나무길'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거제수? 보면 알겠지! 왼쪽의 동대산 방향의 작은 계곡을 감상하며 아래로 내려가며 보니, 이상한 안내문이 서 있다. 처음에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계속 가, 11시 52분 거제수나무 군락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당연히 나무 소개가 있어 읽어보니, 자작나뭇과다. 따로 소개문과 다섯 구간 중 하나의 구간으로 만들 정도인 거 보면, 구경하기 힘든 나무라는 생각이 들어, 기록을 위해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월정사를 향해 내려가자, 위에서 본 것과 비슷하나, 조금 다른 안내문이다. 두 번째 안내문을 보고, 의미를 알았다. 첫 번째는 갈림길 안내로, 완전히 갈라지는 게 아니라, 얼마 가지 않아 다시 합류하지만, 왼쪽은 계곡을 따라, 오른쪽은 그 위 산책로를 의미한다. 두 번째는 계곡을 건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어, 당연히 징검다리로 건너기 위해 내려갔으나, 건널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포기하고 올라와, 3번째 문을 통과했다. 당연히 거꾸로!
2 조선사고길
여기서부터는 2구간 '조선사고길'이다. 조선 사고니 오대산 사고가 중간 어디에 있을 거다. 사고를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내려가, 11시 59분 이정표를 통과했다. 그 이정표에 의하면 '섶다리 0.7km', 월정사 3.9m 거리다.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남은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월정사에 생각이 미쳤다. 맞다! 월정사를 자세히 구경하면 된다. 그렇게 결정하고, 섶다리로 향하다가, 길목에 서낭당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오대산 사고 안내문이다. 그럼 사고가 근처에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도 이정표나 안내가 없다. 해서 일단 안내문만 기록으로 남기고, 오대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계속 내려가자, 저 아래 또 다리다. 이번에는 다른 다리와는 다른 섶다리다. 아주 당연히 섶다리로 건너편으로 가니, 버스정류장으로, 사고는 1km 상류로 가야 한다는 이정표가 있다. 사고를 다녀올지 잠깐 고민하다가,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섶다리로 오대천을 건너 선재길로 돌아갔다. 그리고 조금 아래에 있는 문을 통과했다. 결과적으로 2구간 '조선사고길'에서 오대산 사고는 코빼기도 못 봤다!
1 산림철길
1구간 산림철길 종점에서 섶다리를 기록으로 남기고, 1구간 기점으로 내려가며, 산림철길? 뭘 의미하는 거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모르겠다. 혹시 한자를 첨부했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그 정도로 친절하지는 않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오대천과 그 상류의 오대산을 감상하면, 장갑을 꼈음에도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갑자기 미끄러져 ‘꽈당’했다. 당연히, 눈이라 생각했던 곳이 두꺼운 빙판이다. 왼쪽 무릎을 빙판에 세게 부딪혀, 그 고통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한 30초가량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왼발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마냥 빙판에 앉아 있을 수는 없어 억지로 일어나, 스트레칭과 주무르는 거로 왼발을 진정시켰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상원사로 올라가는 몇 팀을 만났는데, 같은 산악회로 와 선재길 탐방을 선택한 한 쌍과 교행할 때, 여성이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는 걸 보고, 과잉 대응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왼쪽 무릎에는 상처가 있고, 지금까지 아프다! 주변에 잔뜩 매달린 고드름을 보고, 선재길 상황을 예측해어야 했는데, 실수다!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아래로 내려가며 보니, 상류와는 달리 하류로 갈수록 선재길 상태가 좋지 않다. 거의 모든 길이 빙판이나, 밤새 내린 눈이 덮여 있어, 빙판이 보이지 않아, 아차 하면 꽝이다. 당연히,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야 하나, 이미 크게 한 번 당하고 난 뒤라, 오기로 그냥 갔다. 물론 귀차니즘도 있고. 왼쪽으로 보이는 오대천을 감상하며, 10분가량 가자, 선재길의 마지막이라, 아니, 처음이라 생각되는 다리다. 해서 동영상으로 촬영하며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자, 널찍한 공터에 표지석이 있고, 왼쪽으로는 '뱃살 탈출구'가 보여, 배낭을 내려놓고 20대에 도전해 통과했다. 그리고 표지석의 내용이 궁금해, 앞으로 돌아가 봤다. 표지석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길 가치도 없어 보이는 시비라 무시하고, 뒤로 돌아보니, 도로를 건너 선재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어지는 선재길 입구에는 철판을 뚫어 만든 상징물이 나란히 서 있다. 당연히 가까이 다가가 확인했다. 저 뒤 널찍한 공터에 있는 담장이 오대산 목재를 수탈하던 '일제강점기 제재소 터'다! 평지 수준의 길을 따라 내려가자, 갈림길 이정표다. 우회전은 '지장암', 직진이 월정사로 0.3km 남았다. 현재 시각 1시 5분! 먹거리마을이 월정사에 바로 붙어 있지는 않겠지만, 아침에 선재길 탐방객을 내려준 위치로 봐서 과히 멀어 보이지는 않는다. 고로 많은 시간을 월정사에서 보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가, 1시 8분 1구간 시작인 산림철길 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바로 뒤로 돌아, 소개 글을 봤다. 목재 수탈을 위한 협궤 철도가 있던 길이란다. 이제야 산림철(山林鐵)길의 뜻을 알았다. 그런데, 소개를 보면, 협궤 철길이 상원사까지 이어졌다는데, 그럼, 선재길이 과거 철길?!
어쨌든 1구간 문을 통과하는 거로, 사실상 역으로 진행한 선재길 탐방은 끝났으나, 바로 앞에 다리가 하나 더 있고, 그 너머가 월정사다. 분위기로 봐서 진정한 선재길의 시작은 저 다리 입구다! 당연히 다리를 건넌 후 입구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고로 선재길은 월정사 후문 다리에서 시작해, 상원사 정문 다리에서 끝난다!
월정사
선재길이 끝나고, 후문으로 월정사로 들어가는데, 등산지팡이를 든 노부부가 선재길 상태를 물어, 아래를 보니, 등산화는 맞지만, 아이젠이 없어, '아이젠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답하자, 바로 이해하는 분위기로, 도로는 어떤지 다시 묻는다. 도로는 아이젠 없어도 갈만하다고 알려주고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을 갔다. 월정사는 두 번째 방문으로 첫 방문이 1990년대라, 전혀 기억이 안 나, 모든 게 생소하다. 그런데, 온실 같은 게 적광전 앞에 있어, 처음에는 거대한 부처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국보인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을 해체 후 복원하는 중으로 보인다. 석탑의 실물을 보지 못해 아쉬웠으나, 그 대산 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물론, 시간을 보내기 위한 목적도 있다. 와중에 삼성각의 산신에게는 무사 산행에 감사하고, 본존불을 안치한 적광전은 많은 신도가 예불 중이라, 들어가지 못해 본존불 신고는 다음으로 미뤘다. 월정사 구경을 끝내고, 1시 37분 절을 떠나, 먹거리마을로 가기 위해 금강루를 지나자, 천왕문이다.
역시 지나칠 수 없는 문이라, 안으로 들어가 사대천왕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천왕문을 통과하자, 왼쪽은 전나무숲길, 오른쪽은 주차장이다. 아무래도 먹거리마을은 주차장 부근에 있을 확률이 높아 우회전해 주차장으로 갔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어, 도로를 따라 아래로 계속 가며, 전나무숲길로 가지 않은 걸 후회했다. 추위와 허기에 정신이 흐릿해 일주문을 지나야 상가가 있다는 걸 망각한 결과다. 어쨌든 일주문이 빨리 나타나기를 바라며 계속 가, 1시 51분에 도착했다. 고로 금강루에서 일주문까지 14분 거리로 대사찰답게 꽤 멀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먹거리 마을까지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핸드폰이 있으면 지도로 확인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가깝기를 빌며 한참을 내려가 2시 4분경 지나자, 저 아래로 차단봉이 보인다. 추자 요금 징수소다. 이렇게 먼 곳에 선재길 탐방객을 내려준, 안내산악회의 패기에 절로 존경심이 생긴다.
3
목표한 2시보다 6분이 늦은 2시 6분 '먹거리마을'에 도착했다. 선재길 끝인 월정사에서 멀어도 너무 멀다. 오전에 주차 요금을 받는 곳에서 선재길 탐방객이 내리는 걸 보고, 그 부근이 시작 지점일 거로 생각한 게 큰 실수였다. 해서, 산행이 끝난 후 지도 앱으로 월정사부터 '먹거리마을'까지 거리를 재봤다. 2.5km! 고려하지 않은 거리라, 목표 시간을 초과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2시가 조금 지나 도착해, 하산주에 주어진 시간이 처음 계획대로 2시간이 조금 넘는다. 계획을 세울 때는 4시 정각에 상원사를 출발한 버스가 주차 요금 받는 지점까지 도착하는 시간을 계산에 넣지 않았으나, 왕복 2차선 포장도로지만, 곳곳이 비좁은 도로에, 급회전 구간이 많다. 와중에 도로 상태도 좋지 않아, 정상 속도를 내지 못해 10분 이상 걸린다. 고로 3시 50분이 아니라, 4시 10분경 요금소 앞에서 상원사 주차장에서 내려오는 버스를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먹거리마을이라고 해서 예산 수덕사[산행기]와 비슷하게 수십 채의 식당이 모인 마을이라 생각했는데, 고작 10여 채에 불과하다. 어쨌든 어떤 메뉴의 식당이 있는지 마을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내려가며 확인했다. 그래봐야, 30m도 안 되는, 거리지만. 다 같다. 산나물비빔밥과 황태정식이다. 식당마다 한두 개 메뉴만 다를 뿐이다. 와중에 두세 채는 다른 주인을 찾고 있고, 또 다른 두세 채는 정기 휴일이라, 정작 문을 연 식당은 대여섯에 불과하다. 해서 일단 그 중간에 있는 공중화장실로 가 볼일을 보고, 씻었다. 그리고, 문을 연 식당 중 그나마 손님이 있는 '민속식당'으로 들어가자, 주인장이 혼자인지 묻고, 차림표의 아래 세 개의 메뉴를 가리킨다. 1인분 주문이 가능한 메뉴다. 해서, 안주가 필요하다고 하자, 가운데를 가리켜, 더덕구이는 어떤지 묻자, 양이 좀 많을 거라고 해, 황태구이를 주문했다.
그리고 밥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럼, 공기밥을 주문하며, 반찬과 국물을 제공하겠다고 해, 달라고 했다. 물론 이슬이도. 이슬이와 맥주잔을 앞에 두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단체 손님이 들이닥친 후, 계속 손님이 들어온다. 역시, 미끼가 중요하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하는 동안, 먼저 황태구이가 나왔는데, 생각보다 양이 적다. 뭐,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밥과 반찬이 나온다. 1,000원짜리 공기밥에 같이 나온 반찬이다. 가장 놀라운 건 국으로 황태 백반에 따라 나오는 황탯국이라 생각했는데, 된장찌개다. 해서 처음에는 정식을 주문한 뒤 식탁의 부부 음식이 잘못 배달된 거로 생각해 고개를 돌려보니, 식탁 가득 반찬인 게, 실수는 아니다. 밑반찬이 좋아하는 나물과 채소라, 황태구이는 뒷전이고 밥과 반찬으로 이슬이 두 병을 마셨다.
그렇다고 황태구이를 남길 수는 없어 그것도 먹으며 시간을 끌고 있는데, 다른 손님은 다 나가고 혼자 남았다. 그리고 내 식탁에 있는 그릇들 외에는 설거지가 끝나가고 있다. 괜히 주인장과 직원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라,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가 3시 20분경으로 버스가 도착하려면, 최소 50분이 남아, 어쩔 수 없이 먹거리마을 입구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자의에 의해 혼자 카페에 들어가는 거의 십 년이 넘은 거 같다. 어쨌든 다른 이들은 '얼죽아'라지만, 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리고 창밖으로 주차 요금소를 관찰하며 커피를 마시다가 무언가 부족한 거 같아,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는 것 중 견과류 봉투를 꺼내 같이 먹었다. 그리고, 4시 8분경 카페를 나와 주차 요금소로 가, 버스를 기다리다가, 예상대로 4시 10분이 조금 넘어 도착한 버스에 탔다.
버스에 타자 제일 앞에 앉아 있던, 대장이 왜 전화를 안 받는지 물어, 분실했다고 하자, 이해한 듯한 표정이다. 그를 뒤로하고 내 자리로 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선재길을 종주한 거라, 산행이 아니라 도보 여행이었으나, 추위에 떨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피곤했다. 오죽하면 식당에서 손이 곱아 젓가락질을 잘못할 정도였다. 거기다 비록 이슬이기는 하나, 두 병이나, 마셨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그리고 깨어보니, 문막휴게소다. 벌써? 어쨌든 자리에서 일어나 볼일 보고 온 후 다시 잠이 들어 깨어보니, 죽전에서 승객을 내려주고 있다. 대장의 인사말대로, 한파라 차량이 나오지 않아, 거의 정체가 없었던 덕이다. 물론, 7시간 20분짜리 오대산 종주를 한 산꾼이 아무도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리고 7시 2분 종점인 사당에서 내렸다. 평소라면 양재에서 내리나, 핸드폰을 찾으러 이태원역으로 가야 해 종점까지 왔다.
기사와 대장에게 인사 후 차에서 내려, 역으로 내려가, 열차를 타고 삼각지역으로 갔다. 그리고 6호선으로 갈아타, 집과는 반대 방향인 이태원역에서 내려, 위로 올라가 역 안내소로 가 혹시 핸드폰 맡겨 놓은 게 있는지 물었으나, 없단다. 현재, 시각 7시 40분 조금 지났다. 연신내역 기준 신내행 첫 열차를 타고 이태원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이니, 퇴근도 다른 직장인과 같은 시간은 아닐 거 같아. 일단, 8시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리고, 8시가 조금 지나, 다시 물어봤으나, 역시 없어, 내일을 기약하고, 집으로 향했다. 8시 30분경 집에 도착하자, 마누라가 문을 열어주며 핸드폰을 준다. 응? 시간이 맞지 않을 거 같아, 좀 일찍 퇴근하는 마당에 이태원 직장까지 가서 찾아왔단다.
선재길만 아니라, 상원사 위 적멸보궁까지 한 번은 걸어봐야 할 길로, 생각보다 볼 게 많은 길이다. 물론 생각할 것도!
호령봉은 2월 중 다시 시도한다.
이번에도 준비해 간 컵라면과 김치, 보온병에 든 뜨거운 물 1L를 배낭에서 꺼내 보지도 않고, 그대로 가져왔다. 과연 어느 산행에서 들고 다니기만 한 컵라면을 먹을지 나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